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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송의호의 온고지신 우리문화(1) 가훈 없다고? 그럼 밥상머리 교육을

기자
송의호 사진 송의호
은퇴하면 많은 일이 기다리고 있다. 그 중에는 문중 일도 있다. 회갑을 지나면 가장을 넘어 누구나 한 집안의 어른이자 문중을 이끄는 역할이 주어진다. 바쁜 현직에 매이느라 한동안 밀쳐 둔 우리 것, 우리 문화에 대한 관심을 가져 보려고 한다.우리의 근본부터 전통문화, 관혼상제 등에 담긴 아름다운 정신, 잘못 알고 있는 상식 등을 그때그때 사례별로 정리할 예정이다. 또 영국의 신사, 일본의 사무라이에 견줄 만한 우리 문화의 정수인 선비의 정신세계와 그들의 삶을 한 사람씩 들여다보려 한다. <편집자>  
 
 
경북 안동시 도산면 농암 이현보 선생의 종택 사랑채에 걸린 조선 선조 임금의 어필 ‘적선’. 농암의 아들 이숙량이 왕자의 사부가 되자 선조는 “네 집안은 적선지가가 아니냐”며 즉석에서 써서 하사했다고 전해진다. [사진 송의호]

경북 안동시 도산면 농암 이현보 선생의 종택 사랑채에 걸린 조선 선조 임금의 어필 ‘적선’. 농암의 아들 이숙량이 왕자의 사부가 되자 선조는 “네 집안은 적선지가가 아니냐”며 즉석에서 써서 하사했다고 전해진다. [사진 송의호]

 
가훈(家訓)이란 단어 한번쯤은 들었을 것이다. 가끔 백화점이나 고속도로 휴게소 등지에서는 요즘도 ‘가훈 써주기’ 행사가 열린다. 한동안은 초등학교에서 가훈 써주기 교육이 유행한 적도 있었다. 여러분은 집에 가훈이 걸려 있나.
 
가훈하면 흔히 4자, 5자, 8자 등 짤막한 문구를 떠올릴지 모르겠다. 그러나 중국에 전하는 가훈은 한 줄로 처리되기가 어려웠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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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훈으로는 중국 위진남북조시대 지식인인 안지추(顔之推·531∼590전후)가 쓴 게 널리 알려져 있다. 당시 중국은 북방 이민족이 내려와 여러 왕조를 세우고, 남쪽은 한족이 나라를 세우며 왕조의 명멸이 이어지고 혼란이 계속됐다. 그런 환경에서 성실하게 살았던 유교적 교양인 안지추는 그 경험을 자손에게 전하고 싶었다. 그게 『안씨가훈(顔氏家訓)』이 만들어진 배경이다. 
 
내용은 교자(敎子, 자녀교육), 치가(治家, 집안을 다스림), 풍조(風操, 마음 가짐), 지족(止足, 분수를 지킴), 계병(誡兵, 군사 일에 관여하지 않음), 양생(養生, 섭생) 등 모두 20편이나 된다. 가훈이 한 줄이 아니라 책 한 권의 분량이다.  
 
 
中 남북조시대 안지추가 가훈의 효시 
 
『소학(小學)』 5권에는 양문공의 가훈이 나온다. 소개하면 이렇다. 
 
 
양문공가훈(楊文公家訓)에 왈동치지학(曰童穉之學)은 부지기송(不止記誦)이라 양기양지양능(養其良知良能)이니 당이선입지언(當以先入之言)으로 위주(爲主)니라.
 
풀어 보면 “양문공의 가훈에서 말하기를 ‘어린이의 배움은 기억하고 외우는데 그칠 것이 아니라 타고난 지혜와 재능을 기르고 마땅히 먼저 알게 된 것을 바탕으로 삼아야 한다’고 했다.” 
 
가훈은 이어진다.  
 
 
일기고사(日記故事)하야 불구금고(不拘今古)호대 필선이효제충신예의염치등사(必先以孝第忠信禮義廉恥等事)니 여황향(如黃香)의 선침(扇枕)과 육적(陸績)의 회귤(懷橘)과 숙오(叔敖)의 음덕(陰德)과 자로(子路)의 부미지류(負米之類)를 지여속설(只如俗說)이면 변효차도리(便曉此道理)니 구구성숙(久久成熟)하면 덕성(德性)이 약자연의(若自然矣)리라.
 
뜻을 새기면 “날마다 옛 일을 기억하여 어제와 옛날에 구애받지 아니하되, 반드시 먼저 효도와 공경과 성실과 신의와 예절과 의리와 청렴함과 부끄러움 등의 일로써 해야 한다. 황향이 베갯머리에서 부채질을 한 것과 육적이 귤을 품은 것과 숙오가 남몰래 덕을 쌓은 것과 자로가 쌀을 지고 온 고사 같은 것을 풍속의 이야기처럼 들려주면 이 도리를 깨달을 것이니 오래 오래 이루어지고 익으면 덕성이 자연스러워질 것이다.”


 
인의예지신 휘호. 왼쪽에 황영례 선생댁 가훈이라고 적혀 있다. [사진 송의호]

인의예지신 휘호. 왼쪽에 황영례 선생댁 가훈이라고 적혀 있다. [사진 송의호]

 
여기에 4가지 고사를 등장시킨다. 
 
황향은 마음을 다해 부모를 봉양하느라 여름이면 베개에 부채질하고 겨울이면 체온으로 이불을 따뜻하게 한 중국의 10대 효자다. 육적은 나이 여섯 살에 원술(袁術)을 만나는데 원술이 귤을 내온다. 
 
육적은 귤 세 개를 품속에 넣었다가 떠날 때 절을 하느라 몸을 구부리자 귤이 땅에 떨어진다. 원술이 육적을 보고 “손님이 어찌 귤을 품에 넣었는가” 물으니 육적이 대답하기를 “돌아가 어머니께 드리려고 했습니다”하니 원술이 기특하게 여겼다고 한다.
 
숙오는 어렸을 때 나가 놀다가 머리가 두 개인 뱀을 보고 죽여 묻고는 집에 돌아와 울었다. 당시 머리가 두 개인 뱀을 보면 반드시 죽는다는 속설이 있었다. 어머니가 이유를 묻자 조금 전에 그 뱀을 보았으니 어머니를 두고 먼저 죽을까 두렵다고 한다. 
 
어머니가 뱀이 지금 어디 있느냐고 묻자 다른 사람이 또 볼까 염려돼 죽여 묻었다고 답한다. 어머니는 음덕이 있는 자는 하늘이 복으로 보답해 준다고 하니 너는 죽지 않을 것이라 일러 준다. 어머니 말대로 숙오는 죽지 않았다. 그는 커서 초(楚)나라 정승이 되었다. 
 
공자의 제자 자로는 일찍이 말하기를 “옛날 어버이를 섬길 적에는 항상 명아주 잎과 콩잎 국만 먹고 어버이를 위해 100리 밖에서 쌀을 지고 왔다. 어버이가 돌아가신 뒤 초나라 대부가 돼 따르는 수레가 100대나 되고 쌓인 곡식이 1만 가마니가 되며 여러 솥을 벌려 놓고 밥을 먹게 됐다. 
 
이제 명아주 잎과 콩잎을 먹으면서 부모를 위해 쌀밥을 지으려 하지만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이제 안 계시니 어버이를 섬기고 싶어도 무슨 방법이 있겠는가. 모두 효와 음덕을 강조한 고사다. 그런 이야기를 가훈에 포함시킨 것이다.  
 
 
가훈 남기지 않은 퇴계  
 
양문공의 가훈도 이렇게 길다. 물론 이게 전부가 아니지만.
 
우리나라로 눈을 돌려보자. 퇴계 이황 선생은 가훈을 남겼을까. 아쉽게도 전하는 게 없다. 왜 그럴까.
 
 
경북 봉화군 명호면 청량산 입구에 세워진 퇴계 이황의 시비 ‘독서가 산놀이와 같고’. 퇴계는 수많은 시와 글을 남겼지만 가훈은 전하지 않는다. [사진 송의호]

경북 봉화군 명호면 청량산 입구에 세워진 퇴계 이황의 시비 ‘독서가 산놀이와 같고’. 퇴계는 수많은 시와 글을 남겼지만 가훈은 전하지 않는다. [사진 송의호]

 
가르침을 꼭 글로 써서 집에 걸어 둘 필요 없이 조상이 살다간 모습을 보고 배우면 되기 때문이었다. 가훈이라며 굳이 몇 글자로 요약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한 집안의 가르침을 짧은 한 구절로 정리할 수 있는 성격도 아니고. 그래서 우리나라는 가훈이 많이 전하지 않는다고 한다. 
 
한때는 교육 현장에서 ‘밥상머리 교육’을 강조한 적이 있었다. 당시 일선 교육 책임자들은 밥상머리 교육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 여기저기 물어보는 소동이 벌어졌다고 한다. 하지만 누구도 딱 떨어지게 답을 하지 못했다. 가훈이 조상들이 살아간 모습이듯이 밥상머리 교육 역시 바로 부모의 모습을 보고 따라 배우게 하는 것이다. 
 
그러니 가훈이라며 간혹 4자씩 8자씩 쓰는 게 꼭 바람직한 일만은 아닌 것 같다. 물론 자녀들에게 전하고 싶은 여러 가르침 가운데 하나를 뽑아 강조할 수는 있겠지만. 그래도 엄밀한 의미의 가훈과는 성격이 좀 다르다. 
 
송의호 중앙일보 객원기자 yeeho121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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