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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미국은 철강 우회 수출에 왜 불만일까

정인교 인하대 대외부총장, 국제통상학

정인교 인하대 대외부총장, 국제통상학

한·미 정상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우리나라의 자동차와 철강 분야를 불공정무역 업종으로 지목했다. 무역수지 적자 규모를 불공정무역 기준으로 보는 트럼프 대통령이 우리나라 전체 대미 무역흑자의 70% 내외를 차지하는 자동차를 불공정무역 업종으로 지목한 것은 일견 수긍이 간다. 미국에서 상품을 팔려면 미국에 기여해야 한다는 트럼프식 무역관에 비춰보면 미국은 한국 자동차메이커에 미국에서의 일자리 창출을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철강의 경우 미국이 반덤핑 규제를 하고 있고 대미 총수출 중 철강 비중이 3.5% 수준으로 낮기 때문에 왜 철강 우회 수출이 지적됐는지 궁금해하는 이가 많다. 김현철 대통령 경제보좌관이 우리나라 대미 수출에서 차지하는 중국 철강의 우회 수출 비중이 2%로 낮다는 점과 무엇보다 한국이 중국 철강의 최대 피해국이므로 공동 대응하자고 제안한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철강은 세계에서 과잉 생산설비 문제가 가장 심각한 산업이고 세계무역기구(WTO),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과잉 설비 해소를 논의하는 위원회를 가동하고 있을 정도로 국제 산업·통상 현안이다.
 
현행 WTO 무역구제 방식으로 중국 철강 규제에 한계를 느낀 미국은 2015년 6월 관세법을 개정, ‘불리한 가용 정보(AFA)’ 방식을 도입해 중국 철강에 500%대 덤핑 판정을 하기도 했다. AFA는 덤핑 조사 과정에서 피소국이 제출한 자료가 적절하지 않다는 이유로 피소국에 징벌적 관세 폭탄(덤핑률)을 산정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으로 다분히 WTO 규정에 배치된다. 현재 중국의 대미 철강 수출은 거의 막혔고, 유일한 비규제 품목인 H빔만 수출되고 있는 실정이다.
 
WTO 규정에 위배되는 미국의 무역 규제에도 불구하고 최근 중국 철강산업은 가격 상승 및 수출 호조로 예상 밖의 호황을 누리고 있다. 풍선효과다. 이는 미국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다. 동남아·아프리카 등 고로 시설이 없거나 조강 설비가 부족한 국가들이 압연제품을 만들기 위해 중국산 슬래브 반제품을 수입하고 있다. 놀랍게도 우리나라가 중국의 철강 수출 대상국 1위다.
 
지난 4월 20일 트럼프 대통령은 1962년 제정된 무역확장법 232조에 의거해 외국산 철강에 대한 수입 조사를 지시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하면서 “미국산 철강을 위한 역사적인 날”로 언급했다. 이르면 이번 주에 조사 결과가 발표될 예정이며, 중국산 철강의 우회 수출 국가가 집중 거론될 것으로 짐작된다. 무역확장법 232조는 안보를 이유로 수입을 규제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으로, 시장 논리로는 도저히 중국 철강을 견제할 수 없기에 국내법으로 국가안보 논리를 적용하는 것이다.
 
한·미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 철강의 우회 수출을 언급한 것은 이미 무역확장법 232조 조사 결과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고, 미 통상 당국의 제재 조치가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2% 우회 수출을 넘어 향후 우리나라의 대미 수출 전반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다. 고로가 없는 국내 철강 기업들은 품질이 양호하면서 상대적으로 싼 중국산 철강소재를 가공해 강관이나 도금판을 생산, 수출한다. 주요 공산품 외장재에는 중국산이 많이 사용되고 있다. 이들 제품이 자유무역협정(FTA)망을 타고 미국에 수출되고 있어 중국 철강 규제의 풍선효과를 차단하기 위해 미국은 한·미 FTA 재협상을 거론하는 것일 수 있다.
 
미국 입장에서 보면 최종 소비재인 자동차 수입은 자국의 조치만으로 소기의 정책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하지만 중간재인 철강에 대한 규제 효과는 명확하지 않다. 중국산에 대한 풍선효과 차단, 즉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 수입을 막아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중국이 구조조정을 통해 생산 설비를 확실하게 줄이기 전에는 글로벌 과잉 설비 해소는 물론이고 현재 70%대인 미국 철강 설비 가동률도 개선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는 미국의 중국 철강 우회 수출 방지 요구를 대수롭지 않게 보고 있으나 미국은 국가안보를 들먹일 만큼 중대한 사안으로 보고 있다. 윌버 로스 상무장관은 철강산업 전문가이고, 트럼프 행정부에는 대중국 협상 경험자들이 포진하고 있다. 철강 문제는 미·중 분쟁이 우리나라에 불똥이 튄 것으로 볼 수 있지만 파급 영향은 중국보다 우리나라에 더 클 수 있다. 국내 철강업계는 물론이고 제조업 전반에 대한 영향을 고려해 우리 통상 당국은 글로벌 시각에서 대미 대응 및 협상 전략을 수립해야 할 것이다.
 
정인교 인하대 대외부총장, 국제통상학
 
◆ 외부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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