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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노숙자, 히로시마 피폭자 … 그 작은 목소리

보디츠코

보디츠코

“제가 매료된 건 한국에 대한, 통일된 한국에 대한 그의 비전이었습니다. 제가 읽은 바로는, 당시 글이 쓰여진 맥락으로는 그가 생각한 것이 기쁨의 나라, 생각과 의견이 자유로이 교류되는 민주적인 나라, 건강과 문화에 촛점 맞춘 나라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강력하거나 제국주의적인 나라가 아니라.”
 
2017년작 ‘나의 소원’.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2017년작 ‘나의 소원’.[사진 국립현대미술관]

백범 김구의 ‘나의 소원’에 대해 이처럼 말하는 사람은 크지슈토프 보디츠코(74), 폴란드 출신의 세계적 미디어 아티스트다. 그의 신작 제목도 ‘나의 소원’이다. 백범이 앉아 있는 모습을 본 딴 큼직한 조형물에 지금 시대 여러 한국인이 개인적 소원을 말하는 모습을 투사한 작품이다. ‘아이들을 지켜주는 어른이 되고 싶다’, ‘사람이 소중한 나라, 사람 목숨이 소중한 나라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하다 끝내 울음을 삼키는 사람은 세월호 참사로 아들을 잃은 어머니다. 이를 포함해 방글라데시 출신으로 한국에 귀화한 배우, 탈북예술가, 해고노동자, 다큐 사진가, 동성애 인권운동가, 평범한 20대 청년 등이 각자 ‘나의 소원’을, 들어보면 그들만의 소원은 아닐 소원을 말하는 모습이 백범의 형상과 정교하게 겹쳐진다.
 
서울 삼청동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5일 개막한 ‘크지슈토프 보디츠코: 기구, 기념비, 프로젝션’은 1960~70년대 초기작부터 모두 80여점을 통해 보디츠코의 작품세계를 본격적으로 보여주는 회고전이다. 본래 디자인을 전공한 그는 현미경을 디자인하는 일을 하는 한편 아방가르드 예술공간을 중심으로 개인적 창작활동을 시작했다. 어쩌면 지금까지 그가 만든 작품 역시 일종의 현미경, 혹은 확대경이자 확성기 같기도 하다. 노숙자와 이주민을 비롯해 사회적 약자의 작은 목소리를 주목하고 공공장소에 증폭시켜 보여주는 점에서다.
 
노숙인이 미국 뉴욕 트럼프 타워 앞에서 노숙자 수레를 시연 중인 모습(1988).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노숙인이 미국 뉴욕 트럼프 타워 앞에서 노숙자 수레를 시연 중인 모습(1988).[사진 국립현대미술관]

70년대 후반 캐나다로 이주한 보디츠코는 그동안 세계 곳곳에서 독특하고 다양한 작품을 선보였다. 80년대말 미국 뉴욕 길거리에서 퍼포먼스와 함께 선보인 ‘노숙자 수레’는 널리 알려진 대표작이다. 노숙자에게 흔한 쇼핑카트를 개조해 그 안에서 잠도 자고 다른 일상도 영위하게 만들었다. 이를 끌고 다니는 모습부터 시선을 끌어 노숙자의 존재에, 그 목소리에 관심을 갖게 하는 작품이다. 90년대초 선보인 ‘외국인 지팡이’나 ‘대변인(마우스피스)’도 거리에 갖고 나가면 누구라도 쳐다볼만한 디자인, 그래서 발언과 소통의 기회를 내포한 작품이다. 미디어를 신체의 확장으로 본 먀샬 맥루한의 시각을 빌리자면 상처받고 억압받은 이들을 위한 신체의 확장인 셈이다. 작가 자신은 ‘문화적 보철기구’라고 부른다. 표현능력을 회복하게 도와주는 기구란 점에서다.
 
히로시마 평화기념관 원폭돔에서 열렸던 공공 프로젝션 ‘히로시마 프로젝션’(1999).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히로시마 평화기념관원폭돔에서 열렸던 공공 프로젝션 ‘히로시마 프로젝션’(1999).[사진 국립현대미술관]

공공 프로젝션, 즉 공공장소에서 건물 외벽 등을 스크린 삼아 영상을 투사한 작업도 유명하다. 원폭 투하를 직접 경험한 70대 노인을 비롯해 치료에서도 차별을 받은 재일 조선인, 피폭 자녀라는 이유로 결혼 반대를 겪은 30대 여성 등 15명 얘기를 담은 ‘히로시마 프로젝션’(1999) 등이다.
 
전시의 하이라이트는 물론 ‘나의 소원’이다. 보디츠코는 지난해 5월부터 한국을 거듭 다녀가며 여러 사람을 만나고 이곳저곳 다니며 구상과 제작을 진행했다. 그 중 백범을 만난 건 서울 효창동 백범김구기념관에 자리한 좌상과 영문판 ‘나의 소원’을 통해서다. 지난해 12월 광화문 촛불 시위도 목격했다. 그는 “‘공공장소’라는 것은 이번 전시의 중요한 모티브이자 내러티브”라며 “한국에서, 서울에서 공공장소가 어떻게 사용되는가에 큰 감명과 영감을 받았다”고 말했다. 문화의 힘도 강조했다. "대규모 집회나 시위를 통해 공공장소가 정치적으로 활기를 띤다”며 "이런 장소가 진정 공공적이 되는 건 문화적 프로젝트를 통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시는 10월 4일까지 서울관 제5, 제7 전시실에서 열린다.
 
이후남 기자 hoon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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