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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이 간다] 강원랜드의 숨겨진 과거 … 무더기 부정 채용 폭탄 터지나

조강수의 세상만사
지난달 찾은 ‘폐광촌의 젖줄’ 강원랜드의 카지노 객장. 오후 6시, 도박꾼들이 뿜어내는 욕망의 들숨과 날숨이 환희와 탄식으로 엇갈렸다. 블랙잭 테이블에서 카드를 돌리는 여성 딜러의 명찰에 이름 석 자가 뚜렷했다. 이 사람일까? 그 옆을 오락가락하며 관리·감독하는 남자 매니저-. 저 사람일까? 아까 카지노 정문에서 짐 검사를 하던 다부진 체격의 검은 양복 차림 직원들 중 누구일까? 저 중에 누군가는 부정 합격자다. 가당키나 한 일인가.
 
‘신의 직장’으로 불리는 국내 유일의 카지노 공기업이 엄청난 비밀을 간직한 채 잔뜩 웅크려 있다. 정직원 12명 중 한 명이 부정 합격자라는 ‘말할 수 없는 비밀’, 그것은 4년 전에 생겼다. 2015년 기획재정부가 강원랜드 직원 숫자가 정원을 초과한 사실을 적발하고 강원랜드 감사실이 특감을 벌이면서 수면 위로 떠올랐다. 그리고 춘천지검이 1년 이상 수사한 끝에 올해 4월 최흥집(65) 전 강원랜드 사장과 권모 전 인사팀장 등 인사팀 직원 10여 명이 공모한 사실을 밝혀냈다. 검찰은 최씨·권씨만 불구속기소 하는 선에서 수사를 마무리했다.
 
본지가 입수한 공소장에 따르면 최씨 등은 강원랜드가 2013년 518명(1차 320명, 2차 198명)의 ‘하이원 교육생(현재 정규직 신분)’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271명을 부정 합격시켰다. 서류전형 탈락 대상자들의 자기소개서 점수를 상향 조작하거나 인성·적성 평가 결과를 반영하지 않아 면접에 응시하게 하는 수법을 썼다.
 
사정을 모르는 면접위원들을 속였기에 최씨 등에겐 채용 업무를 방해한 혐의(위계에 의한 업무방해)가 적용됐다. 조작 지시는 최씨가 권씨를 통해 내렸다. 권씨는 최씨와 임직원, 외부 인사 등으로부터 넘겨받은 청탁 대상자 명단을 통합 관리하며 인사팀 직원에게 점수 조작을 지시했다.
 
일부 직원은 직접 심사위원들의 아이디·비밀번호를 이용해 자기소개서 평가시스템에 접속한 후 명단에 기재된 청탁 대상자들의 점수를 2~22점씩 상향 조정했다. 이런 부정은 카지노 영업장 증설에 따른 인력 충원 과정에서 저질러졌다. 춘천지법에서 진행된 두 번의 재판에서 최씨는 사장인 자신이 직접 인사팀에 지시한 것이라서 업무 방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법리를 다투고 있다.
 
실체는 확인됐지만 검찰 수사엔 구멍이 숭숭 뚫려 있다. 사건의 핵심 중 하나는 최씨가 어떤 사람들의 부탁을 받고 부정 선발을 지시했느냐는 원인 규명 부분이다. 이번 채용 비리를 처음 규명한 강원랜드 감사실 직원 김모씨는 “인사팀장 권씨의 삭제된 컴퓨터 파일 복원 과정에서 청탁자 명단을 일부 확보해 검찰에 넘겼다”고 말했다. 거기엔 강원 지역 국회의원과 공무원·언론인 등 60여 명의 이름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공소장에는 ‘불상의 다수인으로부터 청탁을 받아 합격시켰다’는 딱 한 줄뿐이다.
 
검찰은 청탁자로 지목된 이 지역 K·Y 국회의원 등을 상대로 서면조사를 했으나 “잘 알지 못한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한다. 박계현 춘천지검 차장검사는 “여러 경로로 확인했으나 청탁자가 돈을 줬다는 등의 구체적 진술이나 혐의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결국 최씨가 2014년 강원도지사 선거 출마를 위해 혼자 알아서 대규모 부정 선발을 지시했다는 게 된다.
 
수사 매뉴얼대로라면 부정 합격한 271명 또는 그들의 부모를 전수조사해 청탁 여부를 확인하고 계좌추적도 했어야 한다. 이러니 처음부터 수사 의지가 약했던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되는 것이다. 김씨는 “단일 공기업으로는 부정 합격자 숫자가 역대 최다인 사건인데도 특별수사팀 구성 없이 검사 1명에게 맡긴 것부터 의외였다”고 말했다. 한 직원은 "컴퓨터도 못하는 사람이 선발되고 얼마나 백이 대단한지 ‘나는 곧 다른 부서로 갈테니 일 시키지 마라’고 큰소리치는 사람도 있었다”고 기억했다.
 
지난 대통령선거를 10여 일 앞두고 수사 결과 보도자료조차 내지 않은 채 슬그머니 종결한 것도 수상하다. 검찰은 2명의 불구속기소로 그친 데 대해 “폐광 지역 주민이 많이 합격하는 등 비난 가능성이 낮아 구속할 만한 사안이 아니라고 봤다”고 설명했다. 정말 친절한 검찰이다!
 
청년 실업·취업 문제는 국가적 골칫거리다. ‘있는 자, 가진 자’들의 갖가지 청탁에 의한 부정 취업 비리에 국민적 분노가 들끓고 있다. 이번 사건 처리는 특히 최경환(62) 자유한국당 의원의 지역구 사무실 인턴 직원 황모씨가 2013년 중소기업진흥공단 신입사원 공채에 부정 채용된 사건과 극적으로 대비된다. 최 의원과 독대 후 황씨 채용을 지시한 혐의(업무 방해)로 기소된 박철규 전 이사장 등 2명이 지난 5월 법원에서 각각 징역 10개월을 선고받고 나란히 법정구속됐다.
 
재판부는 “박씨 등의 행위는 정당한 절차를 밟아 실력으로 공기업에 취업하려는 젊은이들에게 허탈감과 상실감을 안겨줬다”고 질타했다. 청탁자인 최 의원은 어떤가. 1명 채용 압력 건으로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강요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하물며 271명의 부정 채용 지시자에게 구속영장조차 청구하지 않은 게 정의와 상식에 맞는지 의문이다.
 
자연스럽게 공지영 작가의 소설 『도가니』가 연상된다. 사회복지 시설의 원장과 직원들이 짜고 장애인 원생들을 성추행·학대하고 지원금을 횡령한 사건을 기록한 작품이다. 그 사건과 이번 사건은 기본 틀이 다르지 않다. 자기들끼리 짬짜미해 기득권을 나눠 갖는다는 점에서 우리 사회에 남아 있는 현대판 ‘카스트 제도’의 이면일 수 있다. 수사 결과대로라면 부정 합격자 중엔 본인이 부정 합격했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는 사람도 있다는 것이니 기가 막힐 따름이다.
 
강원랜드로서는 지금부터가 더 문제다. 일단 정원을 초과해 인원을 선발한 문제는 강원랜드가 해당자들을 집단 해고하려 하자 지역 사회가 나서고 기획재정부가 정원을 늘려주면서 구제됐다. 그러나 이들 중 상당수가 부정 채용된 것으로 검찰 수사 결과 확인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부정 합격자라도 직접 청탁한 게 아니라면 법적 처벌 대상은 아니다. 하지만 부정행위가 심각하다면 입사 취소(면직) 등을 시키는 게 맞다는 지적도 나온다.
 
2013년 강원랜드 입사 경쟁률은 1차 교육생이 9대 1, 2차 교육생이 5대 1을 기록했다. 271명의 부정 합격자로 인해 공정한 기회를 박탈당하고 왜 떨어지는지도 모른 채 발길을 돌린 응시자들의 잃어버린 4년은 누가, 어떻게 보상해줄 수 있을 것인가. 자칫 잘못하면 불합격생들의 대량 소송 사태로 번질 수도 있다. 함승희 사장의 고민이 깊어지는 이유다.
 
검찰의 새 지휘부가 제일 먼저 전면 재수사에 나설 것은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 세월호 수사 외압 사건 등이 아니라 공기업 부정 취업 사건이다. 그렇지 않으면 검찰의 존재 이유는 또 한 번 부정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강원랜드에 장치된 시한폭탄이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 
 
조강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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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