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江南人流] 와인잔은 까다롭게 고르면서...차 맛 살리는 찻잔은 따로 있어

중국 차는 향, 일본 차는 색, 한국 전통차는 향·색보다 한 차원 높은 맛을 강조한다. 시원하고 맑고, 경쾌한 맛이다. 구수한가 하면 뒤끝은 정갈하다.
이런 차 맛을 온전히 느끼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좋은 생육지에서 잘 재배되어 만들어진 찻잎은 기본. 알맞은 물의 온도, 우려내는 시간과 정성도 물론 필요하다.  
하지만 동아시아차문화연구소 박동춘(64) 소장은 다른 얘기를 했다. 바로 찻잔 말이다. 어떤 찻잔에 차를 담는지가 차의 맛을 좌우한다는 얘기다.
차 맛을 온전히 담는 그릇을 만들기 위해 도예가 하빈 이명균(51) 작가와 지난 7년간 공동연구를 해왔다. 그렇게 청자 찻잔과 다호(茶壺·차 우리는 다기)를 완성했다.
글=유지연 기자 yon.jiyoen@joongang.co.kr 사진=김성룡·김경록 기자·예문방
 
-찻잔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니. 그저 주관적 느낌 아닐까.  
박동춘 소장(이하 박) “아니다. 정말 맛이 확연하게 차이가 난다. 한국의 전통 차는 특히 맑은 맛을 강조하는데, 잘 만들어지지 않은 잔에 마시면 쓴맛이 난다. 마실 수가 없다. 평소 청자 찻잔을 사용하다가 다른 찻잔에 차를 마셔보고 깜짝 놀랐다.”
 
-차에 문외한인 사람도 느낄 정도의 차이인가.  
이명균 작가(이하 이) “그렇다. 누구나 쉽게 감별할 수 있다. 특히 까만 유약을 바른 도자기와 백자 도자기에 마셔보면 잔에 따라 맛이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쉽게 알 수 있다. 까만 그릇은 철이 많이 들어 있기 때문에 쓴맛이 강해 못 먹는다.”
 
-이 찻잔은 어떻게 맛을 잡아주나.  
"청자를 균열이 가지 않게 굽는 건 정말 어려운데 오랜 시행착오 끝에 무균열 청자 찻잔으로 만들었다. 표면이 거칠지 않고 부드럽기 때문에 맑은 차 맛이 왜곡되지 않는다. 두께가 너무 두껍지도, 또 너무 얇지도 않아 들었을때 가벼울 뿐만 아니라 뜨겁지도 않다. 지금보다 유약의 두께가 조금만 더 두꺼우면 보다 적절한 온도를 잡을 수 있다."
“찻잔에서 입이 닿는 구연부(口緣部) 쪽이 살짝 오목하게 모아져있다. 아주 작은 각도지만 그 덕분에 이 안에 들어있는 차가 향이나 온도 변화로부터 보호를 받는다. 와인잔이랑 비슷하다. 향이 확 빠져나가지 않고 서서히 회류되도록 한다.”
 
-공동 연구를 했다고 들었다. 어떤 인연인가.  
“차 문화의 전래와 찻그릇의 중요성을 주제로 명지대학교에서 차 문화 특강을 한 적이 있다. 차를 만드는 것만큼이나 찻그릇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얘기였는데, 당시 강의 들으러 온 도공 30~40명 중 한 명이 이명균 작가였다. 나는 고려 시대를 차 문화 못지않은 찻그릇 전성시대로 본다. 그 시절의 영광을 재현하려면 차도 차지만 고려청자를 재현하는 힘든 일을 해야 하는데, 이명균 작가가 선뜻 나서줬다.”
“올해로 도자기 입문 32년째다. 처음 공동 연구를 시작한 것이 2011년 4월이었는데, 당시에도 경력 20년이 훌쩍 넘은 상태였다. 차 도구를 전문으로 만들어왔는데, 그릇에 따라 차 맛 차이가 난다는 얘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 박 소장님이 처음 찻그릇을 만들어오게 했는데, 지금 눈높이로보면 당시 그릇은 아예 차를 담을 수 없는 그릇이었다. 이전에는 조형미나 색, 기능을 좋게 하는 데만 중점을 두고 만들었다. 맛은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관점이었다.”
경기도 여주의 도자공방 예문방의 장작 가마 앞에서 박동춘 소장(왼쪽)과 이명균 작가가 지난 7년간 공동 연구한 청자 찻잔을 선보였다. 고려시대의 청자 찻잔을 현대적으로 재해석 했다. 김경록 기자

경기도 여주의 도자공방 예문방의 장작 가마 앞에서 박동춘 소장(왼쪽)과 이명균 작가가 지난 7년간 공동 연구한 청자 찻잔을 선보였다. 고려시대의 청자 찻잔을 현대적으로 재해석 했다. 김경록 기자

 
-목표를 왜 고려 시대로 삼았나.  
“우리나라 차 문화가 가장 발달한 시기가 11~12세기다. 그 시기 청자가 찻그릇으로서 가장 훌륭할 거라는 가정을 했다. 그 시기의 고려청자 진품을 구해 사용해보니 예측이 맞았다. 이 고려청자를 목표로 해서 이 맛에 가깝도록 찻잔을 만드는 것이 일단 방법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7년간 어떤 과정이 있었나.
“맨 처음 흙을 고르는 것부터 시작했다. 요즘은 흙은 흙 공장에서 사오고, 유약은 유약 공장에서 사온다. 그렇게 해서는 완성도 높은 도자기가 나오지 않겠다 싶었다. 원천 재료부터 구해서 만들려고 노력했다. 방식도 되도록 전통 방식을 고집했다. 물에 흙탕물을 내면 흙의 고운 입자들은 가라앉지 않고 일정기간 떠 있는데, 그 물만 받아서 침전 시켜서 만들어진 흙으로 도자기를 빚었다. 이게 ‘수비’라는 방식이다. 유약도 요즘 쓰는 석회석이 아니라 전통 방식인 나무 태운 재를 썼다.”
“전통 방식으로 도자기를 만들다보니 정말 거짓말처럼 찻잔 상태가 좋아졌다. 5년 정도 작업을 해 나가다보니 향이나 시원한 맛까지는 갔는데 풍미가 살아나지 않았다. 그 이상 나아가지 않자 최종적으로 가마를 바꿔봤다. 가스 가마가 아니라 전통 방식인 장작 가마로 구워냈더니 차의 뒷맛이 살아났다.”
 
-얼마나 실패했나.  
“7년 동안 소성(도자기 등을 굽는 것) 작업만 60~70번 정도 했다. 그 전에 재료를 가져다가 시험적으로 구워보면서 했던 시도까지 포함하면 100여 차례다. 사실 균열이 가지 않는 청자를 만드는 게 아주 고난도 작업이다. 천 년 전에도 그랬지만 오늘날에도 마찬가지다. 게다가 현대적인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 전통적인 방법으로 해 낼 수 있을 것인지 고민이 많았다.”

 
-지금 만든 게 완성작이라고 보나.  
“고려 시대의 청자가 10이라고 하면 지금은 7 정도 온 것 같다. 사실 이정도만으로도 참 대단하다. 나머지 3은 유약의 두께를 더 두껍게 하고, 고려청자 특유의 곡선미를 좀더 아름답게 살리면 될 것 같다.”
“옛 가마터에서 구한 고려청자 파편을 가지고 계속 연구하고 있다. 전 같으면 고려청자의 색만 흉내 내려고 했을 거다. 이젠 맛에서 접점을 찾는다. 물론 맛을 잡으면서 고려청자 특유의 극상의 비색은 계속 추구해 나갈 것이다.”
 
-맛도 중요하지만 형태도 아름다워야하지 않나.  
“고려 시대 잔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전체적으로 삼각 형태의 조형미가 있고, 고려 시대의 것보다 배 부분이 덜 불러있어 세련된 느낌이 있다. 고려 시대의 찻잔은 조금 더 볼록하고 낭창하다.”
 
-차 문화가 발달했다는 중국이나 일본에도 차 맛을 제대로 담는 그릇이 있나. 
“중국도 문화혁명을 거치면서 전통 차 문화가 많이 망가졌다. 찻그릇도 마찬가지 선상이다. 사실 지금은 한중일이 비슷한 상황이다. 우리와 똑같은 작업을 그들도 해야 할 것이라 본다.”
 
-이 찻잔은 한국 차에 특화된 것인가.  
“그렇지는 않다. 다만 한국 전통 차의 특징은 맑다는 것이다. 맑은 차를 제대로 담을 수 있다면 다른 어떤 차도 본연의 맛을 그대로 드러나게 할 수 있다. 일본이나 중국에 소개해도 성공할 것으로 확신한다.”
“7년 동안 연구해오면서 데이터가 쌓였기 때문에 얼마든지 다른 디자인이 나올 수 있다. 지금은 찻그릇이지만 나아가서는 음식을 담는 그릇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
 
-이 찻잔이 탄생한 스토리를 듣게 되면 누구라도 구입하고 싶을 것 같다.
“대중화가 그리 어렵지 않다고 생각한다. 물론 양이 아주 많아야하니 최고품은 대중화하기 어렵다. 하지만 가스 가마로도 해본 적이 있으니 그 데이터로 좀 더 대중적인 잔을 만들어도 좋을 것이다. 단 아무리 대중적이라고 해도, ‘찻잔’이라고 하면 최소한 쓰거나 탁하거나 이상한 신맛이 나지 않는, 최소한의 기준은 갖춰야한다. 그 최소한의 기준을 사람들에게 인식시키는 것이 우선이다.”
“장작 가마에서는 사실 성공률이 낮다. 100개 넣으면 30~40개 정도만 쓸만하다. 전통 방식으로 만들어낸 아주 최상의 것은 그 자체로 상징성을 갖는 것이고, 대중화를 하겠다면 장작보다는 불의 세기가 일정한 가스 가마로 굽는 것이 맞다. 합리적인 가격대의 중품을 보급시키는 것이 맞지 않나 싶다.”
 
-꼭 이 찻잔이 아니더라고 제대로된 찻잔을 구입하고 싶다면 뭘 봐야 할까.  
“가장 중요한 것이 소리다. 찻잔을 두드려봤을 때 청아하고 맑은 소리가 나야한다. 쇳소리나 둔탁한 소리가 나는 찻잔은 좋지 않다. 소리는 온도와 관련이 있다. 소리가 맑으면 균일하게 차의 온도를 받쳐준다. 또 채색이 짙은 것은 좋지 않다. 질감이 너무 거친것도 맛을 왜곡시킨다.”

박동춘
(사)동아시아차문화 연구소 소장, 성균관 대학교 겸임 교수.
현재 남아있는 한국 전통자의 유일한 원형이라 할 수 있는 ‘초의차’ 5대 계승자.
한학자이면서 40년 가까이 차 문화 연구와 활성화, 제자 양성에 매달려왔다.
이명균 
32년 경력의 차도구 전문 도예가.
경기도 여주에서 도자 공방 ‘예문방’ 28년째 운영.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중앙일보 핫 클릭

PHOTO & VIDEO

shpping&life

뉴스레터 보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 군사안보연구소

군사안보연구소는 중앙일보의 군사안보분야 전문 연구기관입니다.
군사안보연구소는 2016년 10월 1일 중앙일보 홈페이지 조인스(https://news.joins.com)에 문을 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https://news.joins.com/mm)를 운영하며 디지털 환경에 특화된 군사ㆍ안보ㆍ무기에 관한 콘텐트를 만들고 있습니다.

연구소 사람들
김민석 소장 : kimseok@joongang.co.kr (02-751-5511)
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