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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때 홍준표 찍었냐구요? 고건 답변하지 않겠습니다 예~예~"

tvN 'SNL 코리아'의 대표코너 '미운 우리 프로듀스 101'(이하 '미우프')은 정치권 이슈를 가요계에 빗대 풍자하는 정치풍자극이다.  
 
제19대 대통령 선거를 아이돌센터 선발전 '프로듀스 101'에 비유했던 '미우프'는 대선과 함께 종영하는 듯 했다. 하지만 시청자들의 호응에 힘입어 시즌2가 시작됐다. 센터로 선발된 문재수(김민교, 문재인 대통령을 패러디한 캐릭터)가 '더 블루'(청와대)라는 그룹을 결성해 가수활동을 하는 이야기다. 전 센터(전 대통령)들이 남겨놓은 문제들을 수습하느라 고생하는 스토리가 이어지는 가운데, 레드준표(정이랑, 홍준표)·안찰스(정상훈, 안철수)·유목민(장도윤, 유승민)·심불리(이세영, 심상정) 등 센터자리를 놓고 경쟁했던 캐릭터들도 틈틈이 등장할 예정이다. 
레드준표를 연기하는 개그우먼 정이랑

레드준표를 연기하는 개그우먼 정이랑

특히 센터 선발전에서 문재수 저격수로 활약했던 레드준표는 시즌2에서도 문재수와 사사건건 각을 세우며, 고정 자리를 꿰차다시피 했다. 홍준표 전 경남지사가 자유한국당 신임대표로 선출됨에 따라 '미우프'에서 레드준표는 더 자주, 더 임팩트있게 등장할 전망이다. 
정이랑(37)은 개그우먼임에도 남성 정치인, 그것도 가장 마초적인 성향의 홍 대표를 코믹하면서도 제법 실감나게 패러디했다. 말투와 억양, 제스처 등이 홍 대표를 빼다박은 듯 하다. 레드준표가 '미우프'의 최고 인기캐릭터가 된 건, 전적으로 정이랑의 아이디어와 노력 덕분. 
SNL 촬영장에서 그를 만나 레드준표 캐릭터를 어떻게 만들었는지, 어떤 고충이 있었는지 등 뒷얘기를 들었다.  
 
개그우먼 정이랑

개그우먼 정이랑

 
어떻게 레드준표 역을 맡게 됐나.
원래 이재명 성남시장 역할이 주어져 연구하고 있었다. 그런데 해보기도 전에 제작진이 홍준표 전 지사 역을 하라고 하더라. 그것도 촬영 반나절 전에.
  
준비할 시간이 부족했겠다.
학생 입장에선 시험범위가 바뀐 거나 마찬가지인 상황이었다. 시간이 없어서 그분 관련 동영상을 찾아봤다. 어마어마한 분이더라. 워낙 기행(奇行)이 많은 분이라 동영상도 많았다. 독설도 하시고, 구설수에도 오르시고, 여러 면에서 이야깃거리가 많은 분이었다. 얼핏 할아버지를 닮은 것 같기도 했다. 억양도 독특해서 차라리 다행이다 싶었다.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내는 이재명 후보 역할을 준비할 때는 대사를 어떻게 외울지 고민했는데, 레드준표는 재밌게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남자 정치인 역할인데 부담스럽지 않았나.  
그동안 남자 역할, 어르신 역할을 많이 했었다. 수염달고 어르신 역할 자주 하니까, 평소에 머리 안감고 추레하게 다녀도 실물은 예쁘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웃음). 남자역할 하니까 그런 장점이 있다. 남자 역할 하면 할수록 예쁘다는 말 많이 들으니까 좋다.  
 
레드준표를 연기하는 개그우먼 정이랑

레드준표를 연기하는 개그우먼 정이랑

  
홍준표 전 지사가 자유한국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떨어지진 않을까 걱정하진 않았나.  
당연히 노심초사했다. 그 분이 경선에서 탈락하면, 내 분량도 날아가는 거니까. 우리 개그맨들은 캐릭터 싸움이다. 선배들이 캐릭터에 욕심내고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뭐하고 있나 불안하기도 했다. 욕쟁이 할머니 캐릭터를 이을 만한 게 뭐 없을까 고민하던 차에 임팩트 강한 레드준표 캐릭터를 만났다. 내 분량을 지키기 위해서 홍 전 지사가 대선후보가 되길 바랐다.  
 
짧은 시간내에 홍 전 지사를 연구하면서 어떤 걸 패러디의 핵심 포인트로 삼았나.  
매의 눈으로 동영상을 훑어보니 그의 독특한 말투와 표정, 억양, 손버릇이 눈에 쏙쏙 들어왔다. 곧바로 메모했다. ①엄지와 검지로 입꼬리를 훑는다 ②화난 듯 인상을 쓰고 있다 ③매우 집요하게 누군가를 공격한다 ④손가락질을 잘한다 ⑤그러면서도 능글맞다 등 다섯가지 포인트다.  
 
 
레드준표를 연기하는 개그우먼 정이랑

레드준표를 연기하는 개그우먼 정이랑

 
패러디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게 뭔가.
사투리였다. 선배들로부터 섬에서 거북이 잡으며 자랐을 것 같다는 놀림을 자주 받았지만, 실제론 서울 논현동 토박이다. 대사를 연습할 때 부산출신 남편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홍 전 지사 고향이 경남 창녕이어서 부산 사투리와는 억양이 좀 달랐다. 그래서 도와주려는 남편에게 예민하게 굴기도 했다. 아무튼 사투리가 가장 어려웠다.
 
레드준표를 연기하며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특정 장면을 꼽기보다는, 말을 주고받다가 말문이 막힐 때 '고건(그건) 답변하지 않겠습니다'라며 되게 능글맞은 표정을 지을 때 스스로도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분의 능글맞음을 과장해서 연기하다 보니 나름 나쁘지 않은 호흡이 나오는 것 같다.   
  
레드준표 캐릭터에 대한 애착이 강한 것 같다.
당연히 애착을 가질 수 밖에 없다. 레드준표 역할 덕분에 어르신들까지 날 알아봐 주신다. 예전엔 젊은 사람들만 좀 알아보는 정도였는데. 감사하게 생각하며 레드준표를 재밌게 연기하고 있다. 그 분께도 고맙다는 생각을 한다. 살아온 이력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나고, 성향과 언행이 워낙 독특하다 보니 연기자 입장에서 패러디하기가 상대적으로 쉽기 때문이다.    
  
레드준표를 연기하며 달라진 점이 있다면.  
난 사실 낯가림이 심하고 하고 싶은 말도 혼자서 속으로 삭인다. 남들이 잘한다 칭찬해도 스스로는 늘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자존감이 낮은 사람이다. 그렇게 소극적인 내가 워낙 직설적인 사람을 흉내내다보니 덩달아 세지는 느낌이 든다. 반대되는 성격의 사람을 패러디하면서 내 자신을 돌아보게 되고, 나도 때로는 배포있게 나가보자는 생각을 갖게 된 거다. 연기적인 면에서도 이 정도면 잘했지 라며 스스로 후한 평가를 준다. 이런 건 긍정적인 영향이라 할 수 있다.    
  
홍 전 지사가 호불호가 워낙 뚜렷한 인물이어서 고민되는 부분도 있지 않나.
처음엔 그 분의 동영상을 보면서 '홍카콜라'란 별명처럼 호탕한 사람이라 생각했다. 사이다처럼 시원한 발언 한다고 해서 붙은 별명 아닌가. 매력적인 면도 분명 있었다. 하지만 그 분에 대해 알면 알수록 내가 생각했던 방향과 다른 면들이 있었다. 워낙 일도 많고 구설도 많은 분이셔서…. 특히 대선을 앞두고 돼지흥분제 파문이 터졌을 때는 정말 당황스러웠다. 미치겠더라. 물론 그분이 한 일 때문에 나까지 영향받는 건 아니라 생각했지만, 그래도 당황스럽고 안타까운 건 어쩔 수 없었다.  
  
패러디 대상과의 적당한 거리두기가 필요했을 것 같다. 
그렇다. 그분을 너무 좋게 보려고도, 너무 나쁘게 보려고도 안했다. 내가 연기하는 레드준표라는 캐릭터만 사랑하자고 생각했다. 그 역할을 사랑해야 진짜 연기를 할 수 있는 거니까. 돼지흥분제 파문을 보면서 그 생각이 더 강해졌다. 그분을 패러디하는 연기자 입장에서 이왕이면 그분과 관련한 좋은 뉴스가 더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한다. 안좋은 기사 때문에 나까지 혼란을 겪고 어떻게 연기할지 난감해지는 일은 더 이상 없었으면 좋겠다.    
  
대선 전에 실제로 홍 전 지사를 만날 기회를 가졌는데, 만나보니 어떻던가.
안만나주실까봐 무척 걱정했다. 그런데 다행히 레드준표의 팬이라며 흔쾌히 응해주셨다. 그분을 만나는 날 새벽기도를 다녀왔다. 그분 앞에서 말 실수 하지 않게 해달라, 긁어 부스럼 만들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홍 전 지사를 직접 만나니, 동네에서 바둑두는 어르신 같은 느낌이었다. 보기보다 체격도 왜소해서 깜짝 놀랐다. 그런 분이 이런 거친 정치판에서 살아남기 위해 더 세게 강하게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대통령 후보로 나섰던 홍준표 전 경남지사와 함께 포즈를 취한 레드준표 정이랑. [사진 tvN]

대통령 후보로 나섰던 홍준표 전 경남지사와 함께 포즈를 취한 레드준표 정이랑. [사진 tvN]

 
그때 만남에서 홍 전 지사가 '미스 정'이라는 호칭을 썼는데.
난 애도 있는 아줌마인데, 미스라고 불러줘서 감사했다(웃음). 기념 촬영을 할 때 누군가 손가락으로 '브이'를 해달라고 요청했는데, 레드준표 말투로 '고건 안하겠습니다'며 거절했다. 홍 전 지사가 기호 2번이라서 자칫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었다. 다시 생각해봐도 그 때 상황 판단을 잘한 것 같다.
  
프로그램에서 레드준표 캐릭터는 계속 고정으로 가는건가.
이 바닥에 고정이 어딨나. 반응 안좋으면 내려오는 거지. 하지만 개인적으론 탄력받은 김에 계속 갔으면 좋겠다. 이왕이면 긍정적인 면으로 더 버라이어티한 일들이 많이 생겨서 레드준표가 더 자주 나왔으면 좋겠다. 제작진에 다른 캐릭터 제안한 게 있는데, 별다른 반응없이 레드준표 얘기만 하더라. 그만큼 레드준표의 캐릭터적인 가치가 있다는 거겠지.    
  
홍 전 지사를 사석에서 만난다면 어떤 말을 나눌 것 같나. 
'배포있게 살아. 남들이 아니라 해도 니가 기라 하면 긴거야' '거 말이야. 소심하게 말이야. 그래 살지마. 뭐야, 한번 사는 인생 까짓거 밀어붙여'라고 말하실 것 같다. 그런 에너지만 받고 싶다. 안좋은 거 말고.  
  
마지막 질문이다. 지난 대선에서 홍 전 지사에 한 표 던졌나.
(손가락으로 입꼬리를 훑으며) 고건 답변하지 않겠습니다. 예~예~  
 
  
정현목 기자 gojh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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