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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한마디로 유권자 사로잡는 고이케 … 멘토 고이즈미의 ‘극장 정치’ 빼닮아

고이케 유리코

고이케 유리코

"머리가 검은 쥐가 잔뜩 있다.”
 
지난해 12월, 고이케 유리코(사진) 도지사가 2020년 도쿄 올림픽 경기장 재검토 문제가 벽에 부닥치자 했던 말이다. ‘머리가 검은 쥐’는 “낡은 체제를 통칭한 것”이라고 했다. 즉, 느리고 답답한 기득권 세력을 겨낭한 말이었다.
 
자민당 의원연합에 의해 점령된 도의회의 ‘깜깜이식’ 의사결정 구조를 ‘블랙박스’라고 비판했다. 취임 후 한 언론 인터뷰에선 “블랙박스를 열어 보니 엠프티(텅 빈) 박스였다”고 꼬집었다. 고이케는 투명성과 행정개혁을 기치로 내걸었다.
 
2일 도쿄도의회 선거에서 유권자들을 열광시킨 것은 고이케의 막힘 없는 언행과 개혁의지였다. 이른바 ‘고이케 극장’이다. 한 70대 남성은 “지금까지 정치에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고이케를 보려고 매일 TV를 켠다”고 말했다. 선거 기간 동안 고이케는 매일 두 차례 기자회견을 했다. 도지사로서, 도민퍼스트회 대표로서 TV화면을 종횡무진 했다. 정치적 멘토인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郎) 전 총리의 현란했던 극장식 정치와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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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고이케는 지난 1년간 자민당이 시간만 끌고 뭉개고 있던 공약들을 건드렸다. 간접흡연 금지 조례, 사립고교 수업료 무상화 등 자민당 정부가 보류했던 정책들을 도쿄도가 추진하겠다고 하자, 자민당도 뒤늦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가 움직이면 안되던 일도 된다는 강한 인식을 심어줬다.
 
‘고이케 극장’의 흥행은 2020년 도쿄올림픽 예산과 쓰키지 시장 이전 문제에서 클라이막스에 달했다. 그는 취임 직후 “유치 당시 7349억엔이었던 도쿄올림픽 예산이 3조엔이 넘어갈 가능성 마저 있다”면서 예산을 적재적소에 쓰자고 깃발을 들었다. 도쿄 올림픽위에 포진한 자민당 주류를 정조준한 것이자, 아베 정권에 대한 견제였다.
 
쓰키지 시장 이전 계획 연기 역시 밀어붙이기에 능한 자민당 세력과의 차별화를 이뤄냈다. 이전 예정지의 환경 오염 문제를 본격 제기해 환경 이슈에 예민한 도민들의 마음을 얻었고, 반발하는 상인들에 대한 끈질긴 설득으로 ‘신뢰할 수 있는 정치인’이란 이미지를 구축했다.
 
고이케는 도지사 당선 직후 만든 ‘희망의 학원’을 통해 이번 선거에 다수의 후보를 배출했다. 가수, 운동선수, 의사, 변호사 출신의 정치경력이 없는 생 초짜들이 몰렸다. 입후보자 가운데 34%를 여성으로 채우는 등 ‘고이케 키즈’를 만들기 위해 애쓴 흔적도 드러난다.
 
아다치구(足立区)에서 당선된 회사원 출신의 고토 나미(後藤奈美)가 대표적. 고이케 연설에 감동받아 임신 6개월의 몸으로 선거판에 뛰어든 고토는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는다는 걸 느꼈다”며 포부를 밝혔다. 지난해 도지사 선거에서 고이케를 도왔다가 자민당에서 제명된 ‘7명의 사무라이’ 가운데 3명도 이번에 ‘도민퍼스트회’ 후보로 출마해 의원 뱃지를 달았다.
 
이번에 당선된 55명(도민퍼스트회 49명+고이케 계열 무소속 6명)은 고이케의 든든한 우군이다. 하지만 도의회 의원이라는 한계가 명확하다. ‘도민퍼스트회’ 역시 지역 정당일 뿐이다. 중앙 무대에서는 아직 고이케파(派)라고 부를 만한 세력이 없다.
 
자민당을 탈당한 와카사 마사루(若狹勝) 중의원, 민진당 출신의 나가시마 아키히사(長島昭久) 중의원, 일본유신회의 와타나베 요시미(渡邊喜美) 참의원, 무소속 마쓰자와 시게후미(松澤成文) 참의원 정도가 지지세력으로 꼽힐 뿐이다.
 
일본 정계에서는 고이케가 도의회 선거 압승을 계기로 지역을 뛰어넘는 ‘고이케 신당’을 창당할지 여부에 관심이 쏠린다. 일각에서는 ‘고이케 신당’이 참의원, 중의원 선거에서 돌풍을 일으키면 고이케가 일본에서 첫 여성 총리라는 역사를 쓰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일본 주간지 아에라(AERA)는 그를 ‘셀프 메이드 퍼슨(self made person)’, 즉 자신의 능력으로 현재의 위치까지 온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고이케 열풍이 얼마나 확산될 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4년 넘게 지속되온 ‘아베 1강’을 흔들며 철저한 남성중심의 일본 정치에 태풍급 변화를 불러일으킨 것만은 확실하다.
 
윤설영 기자 snow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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