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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하원 전통 깨고 노타이 허용, 저무는 '넥타이 시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첫 정상회담이 열린 백악관. 
두 정상이 나란히 맨 파란색 넥타이가 이목을 끌었다. 파란색은 더불어민주당과 문 대통령의 상징색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을 상징하는 빨간색 넥타이 대신 파란색을 맨 것이 문 대통령을 예우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남성 패션의 시작이자 완성이라고 불리는 넥타이는 정치적 메시지를 담는 소품으로까지 받아들여져 왔다. 
 하지만 신사의 나라로 불리는 영국의 하원이 전통을 깨고 의원들에게 ‘노타이’를 허용하기로 했다. 넥타이의 발원지인 유럽에서도 권위와 격식 대신 실력을 중시하는 분위기로 바뀌면서 ‘넥타이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
지난달 29일(현지시간) 의회에서 넥타이를 매지 않은 복장으로 발언권을 요청하고 있는 영국 자유민주당(LD) 소속 톰 브레이크 의원. [BBC 캡처]

지난달 29일(현지시간) 의회에서 넥타이를 매지 않은 복장으로 발언권을 요청하고 있는 영국 자유민주당(LD) 소속 톰 브레이크 의원. [BBC 캡처]

 지난달 29일 영국 웨스트민스터궁 의사당에서 집권 보수당의 피터 본 의원이 의사진행 발언에 나섰다. 자유민주당(LD) 소속 톰 브레이크 의원이 의사당에서 발언을 요청하면서 넥타이를 매지 않았다면서 의회 옷차림 규정에 어긋난다는 지적이었다. 
 평소 화려한 넥타이를 즐겨 매는 본 의원은 “패션 감각에 관해 얘기하는 게 아니라 하원의 규정이 바뀌었느냐"고 질의했다. 그러자 존 버커우 하원의장은 “의원들은 일반적으로 비즈니스 옷차림을 해야 한다. 그러나 넥타이를 매는 게 필수는 아니다"며 노타이가 규정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유권해석을 내렸다.
 노타이가 허용되자 일부 의원들은 즉석에서 넥타이를 풀기도 했고, 보수당 마이클 파브리컨트 의원은 “반바지를 입겠다"며 반발하기도 했다. 
 
 의회주의가 시작된 영국의 의회에선 과거 가발과 모자 등이 필수 복장이었으나 모두 사라졌고, 정장과 넥타이 차림이 남성 드레스 코드로 남아있다. 영국 의회의 규정집에는 의원들이 군복을 입어선 안되고 남성 의원들은 재킷에 타이를 매는 게 관습이라고 적혀있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이에 따라 그간 넥타이를 매지 않은 의원들에 대해선 의회 내에서 비판이 제기돼 왔다. 
2009년 노동당 그레이엄 앨런 의원이 넥타이를 매지 않고 질문하려 하자 당시 부의장이 “적절한 복장을 갖추지 않았다"고 제지했다. 2011년엔 보수당 나드힘 자하위 의원이 의회 연설 도중 자신이 맨 기이한 문양의 넥타이에 대해 사과하기도 했다.
 
 넥타이 차림은 정치인들이 의회의 권위주의와 격식 위주 문화를 비판하는 대상으로 활용되기도 했다. 지난달 총선을 계기로 인기가 급등한 제러미 코빈 노동당 대표가 선봉격이다.
 1984년 보수당 테리 딕스 의원은 코빈이 단정치 못한 복장을 하고 다니는 만큼 의회에서 발언권을 주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도 했다. 당시 코빈은 면바지와 캐주얼 재킷에 노타이 차림으로 어머니가 짜준 스웨터를 받혀 입고 다녔다.  
 옷차림 시비에 대해 코빈은 오히려 “의회는 패션 퍼레이드나 신사 클럽, 은행가 조직이 아니라 국민을 대표하는 기관"이라고 일축했다. 그는 “의회에서 밤에 투표가 진행될 경우 정장 차림으로 저녁 식사에 다녀오는 의원들의 리무진 행렬을 보면 역겹다"며 “나는 저녁 초대를 항상 거절하는데, 그건 의원의 업무가 아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넥타이의 퇴조는 사회의 변화상을 보여주는 지표이기도 하다.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영국인 중 넥타이를 매고 출근하는 이는 3분의 1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됐다고 BBC는 보도했다. 상당수 직장에서 금요일에만 하던 간편 복장이 정식 근무 복장으로 확대되고 있으며, 공공 업무 종사자들만 매일 넥타이를 매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넥타이를 맨 모습을 보면 구직 인터뷰를 하러 가거나 법정에 출두하느냐고 물을 정도라고 한다.
2013년 북아일랜드에서 열린 주요 8개국(G8) 정상회의에선 공식 복장이 노타이 차림의 '스마트 정장'으로 정해졌다. [G8 정상회의 사이트]

2013년 북아일랜드에서 열린 주요 8개국(G8) 정상회의에선 공식 복장이 노타이 차림의 '스마트 정장'으로 정해졌다. [G8 정상회의 사이트]

 과거 사회적 지위를 상징하던 넥타이의 기능이 현격히 줄어들면서 국가 정상들의 공식 회담에서도 퇴출될 정도다. 2013년 북아일랜드에서 열린 주요 8개국(G8) 정상회담에서는 정장을 입되 타이를 하지 않는 ‘스마트 캐주얼'이 공식 복장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영국에선 여전히 회원들만 입장 가능한 각종 클럽과 사립학교 등에서 넥타이 차림이 의무화돼 있지만 왕실에서조차 파격이 등장하고 있다. 해리 왕자는 지난해 군 행사장에 노타이 차림으로 참석했다. 당시 91세 노병이 그에게 넥타이를 어디에 두고 왔는지를 물었다고 영국 언론은 전했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과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등은 노타이는 물론이고 소매를 걷어붙인 셔츠 차림으로 젊고 역동적인 리더십을 드러내기도 했다. 권위와 격식 대신 소통이 각광받는 시대가 넥타이 문화를 저물게 하고 있다.
 
 런던=김성탁 특파원 sunt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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