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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드만삭스 "블룸버그에 맡겼던 역할 되찾겠다"

[투자은행의 세계] 디지털 금융 시대의 도전
2015년 알렉스 저코 최고경영자(오른쪽에서 둘째)가 창업한 XTX마켓츠는 알고리즘 거래로 이트레이딩 시장에서 급성장했다. [사진 런던증권거래소]

2015년 알렉스 저코 최고경영자(오른쪽에서 둘째)가 창업한 XTX마켓츠는 알고리즘 거래로 이트레이딩 시장에서 급성장했다. [사진 런던증권거래소]

1981년, 당시 최대 투자은행(IB)인 살로먼브라더스에서 해고된 한 임원이 월스트리트를 상대로 금융데이터를 판매하는 테크놀로지 기업을 창업했다. “테크놀로지가 금융의 미래가 될 것”이라고 일찌감치 예견한 블룸버그의 창업자 마이클 블룸버그 (75) 얘기다. 고품질 금융데이터를 빠르게 원하는 형태로 얻고 싶어한 월스트리트의 욕구를 테크놀로지로 충족시킨 성공 사례다. 창업 후 첫 고객인 메릴린치를 시작으로 이젠 전 세계 금융기관들이 블룸버그 생태계에 참여하고 있다. 금융데이터 접근과 거래 체결은 말할 것도 없고 의사소통도 블룸버그 플랫폼(터미널)으로 이뤄진다. 게다가 빅브라더 블룸버그는 사용자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며 빅데이터를 축적해 가고 있다.
 

데이터 분석, 메신저 등 자체 개발
신기술로 금융생태계 구심점 노려

빅데이터, 인공지능 등으로 무장한
XTX마켓츠 등 강소 기업 급부상
국내서도 네이버·미래에셋 제휴

블룸버그가 창업한 지 33년이 되던 2014년 6월, 로이드 블랭크파인 골드만삭스 CEO는 마이클 블룸버그와 함께 출연한 방송 인터뷰에서 “골드만삭스는 테크놀로지 기업”이라고 공개 선언했다. 그리고 블룸버그 창업자는 “골드만삭스는 블룸버그의 고객이지만 동시에 경쟁자”라며 맞장구쳤다. 테크놀로지 만능 시대를 맞아 148년 전통의 월스트리트 투자은행이 금융기관도 아닌 원조 월스트리트 테크놀로지 기업의 경쟁자로 변신한 셈이다. 지금까지 테크놀로지의 영향력에서 멀찌감치 벗어나 있다고 여겨지던 투자은행에 과연 어떤 변화가 일어난 걸까.
 
투자은행이 테크놀로지 기업이 되려면 우선 투자은행 업무가 성문화(codification)될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업무 체계를 성문화할 수 있어야 테크놀로지 기업의 초보 단계인 자동화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답은 ‘절반은 어렵고 절반은 가능하다’이다. 투자은행 사업의 양대 축인 전통 IB와 트레이딩으로 구분해 보면 IB는 성문화가 ‘아직은’ 어렵고 트레이딩은 가능하기 때문이다. 증권 발행과 인수합병(M&A) 업무를 하는 IB에선 암묵적 기술이 성문화된 기술을 압도한다. 고객을 직접 대면해 논의하고 해결책을 제시하는 IB 업무는 도제식 교육을 통해 발로 뛰며 쌓는 경험이 최우선이라서 자동화가 어려운 게 현실이다.
 
금융전문 매체인 블룸버그를 창업한 마이클 블룸버그.

금융전문 매체인 블룸버그를 창업한 마이클 블룸버그.

반면 다른 한 축인 트레이딩에선 전산을 통한 자동화 거래인 이트레이딩이 이미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IT 기술의 발전과 함께 지난 금융위기 이후 강화된 금융 규제가 초래한 변화의 흐름이다. 감독기관은 금융 거래가 투명하게 체결되고, 관리되고, 보고될 것을 요구했고, 이트레이딩이 이를 충족시킬 최선의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주식은 아주 오래전부터 이트레이딩을 통해 가장 활발히 거래되는 자산군이다. 제일 단순한 형태라 거래 과정도 복잡하지 않아 체결 속도, 정확성, 비용이 이트레이딩의 성과를 가른다. 외환도 마찬가지다. 특히 가장 단순한 스팟 거래(체결 후 2 영업일 결제)는 주식 못지않게 이트레이딩이 활발한 영역이다. 국제결제은행(BIS)의 2016년 조사에서 이트레이딩은 전체 주식 거래의 80%, 그리고 외환 거래의 70%를 차지했다.
 
그런데 문제는 투자은행이 자산별 각개 전투로 이트레이딩에 나서면 수세에 몰리기 십상이라는 점이다. 이미 이트레이딩이 대세인 금융시장에서 강소 플레이어들이 기술력과 민첩함을 무기로 속도 경쟁을 펼치며 급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빅데이터, 인공지능 등 신기술로 무장하고 시장에서 사고 파는 가격을 빛의 속도로 제시하는 시장조성자로서 세력을 키워 가고 있다.
 
대표 주자로는 외환 시장에 혜성처럼 나타난 XTX마켓츠가 있다. 2015년 영국에서 설립된 이 신생 회사는 트레이더가 아닌 자체적으로 개발한 알고리즘이 거래를 한다. 이 알고리즘은 외환시장뿐만 아니라 주식, 채권 등 다른 시장의 가격 움직임까지 재빠르게 분석해 통화별로 사고 파는 환율을 쉴 새 없이 쏟아 낸다. 
 
게다가 자본 비율이 높고, 대형 금융기관을 제외하곤 유일하게 영란은행 산하 외환위원회에도 참여하고 있어 시장의 신뢰도 높은 편이다. 무서운 기세로 성장하고 있는 이 회사는 유로머니지의 2016년 조사에서 유수의 글로벌 투자은행들을 제치고 7.6%의 시장점유율(스팟 거래)로 씨티그룹, 제이피모건, 유비에스에 이어 4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주식시장은 이미 이트레이딩 전문 회사들이 평정한 상태다. 헤지펀드로 유명한 시타델의 자회사인 시타델증권은 2016년 17%의 미국 시장점유율로 부동의 1위를 차지했다. 주식 거래의 상징인 뉴욕증권거래소조차 2015년 바클레이즈가 마지막으로 떠난 이후 시장조성자 중 투자은행은 아무도 남아 있지 않은 상태다. 결국 단순하고 시장에서 쉽게 사고 팔 수 있는 자산일수록 투자은행은 경쟁력을 잃게 되는 형국이다.
 
이처럼 이트레이딩만으론 기득권을 사수할 수 없다는 현실을 직시한 투자은행들이 내린 결론은 이른바 ‘금융계의 구글’이 되겠다는 것이다. 바로 블랭크파인 CEO가 말한 진정한 테크놀로지 기업의 반열에 들어서는 단계를 말한다. 구글이 광고 수입을 올리기 위해 신기술을 개발하고 자신들이 구축한 생태계의 영역을 확장해 가는 것처럼 투자은행은 수수료와 트레이딩 수익을 목적으로 신기술을 활용해 금융 생태계의 구심점 역할을 하겠다는 포부다. 그리고 이를 위한 출발점으로 금융 자본과 위험의 중개 기능을 원활하게 구현하기 위한 플랫폼을 구축하고 있다. 이는 우리가 일상의 정보를 찾을 때 구글을 찾는 것처럼 고객이 특정 금융 위험을 감수하거나 헤지(위험 제거)하고 싶을 때 클릭 할 투자은행 플랫폼을 의미한다.  
 
그리고 블룸버그 창업자가 골드만삭스를 경쟁자로 대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블룸버그 플랫폼의 주요 기능을 투자은행 플랫폼이 대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골드만삭스는 ‘마르키’, 제이피모건은 ‘제이피모건 마케츠’, 도이치뱅크는 ‘아우토반’을 앞세우며 테크놀로지 선도 은행 경쟁을 벌이고 있다.
 
플랫폼의 장점은 전 자산에 걸쳐 모든 서비스를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한 곳에서 통합적으로 제공한다는 점이다. 리서치와 자문 제공, 금융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위험과 가격의 산출, 거래의 체결, 거래의 사후 관리 등 모든 절차가 물 흐르듯 부드럽게 흘러가는 게 중요하다. 특히 무엇보다 큰 변화는 지금까지 철저하게 외부 공개를 꺼렸던 내부적 위험관리시스템을 몇 투자은행들이 플랫폼 상에서 고객에게 개방해 차별화를 꾀한다는 점이다. 투자은행은 자신의 생태계에서 함께 할 잠재적 파트너 기업에도 늘 주목하고 있다. IB사업부는 스타트업을 발굴해 스타트업 투자 포트폴리오를 구성하고 관리한다. 투자은행 본업의 하나인 자기자본투자를 하면서 동시에 생태계의 동반자를 물색하는 것이다. 과거의 자본 이익을 노린 재무적 투자가 아니라 이제는 시너지를 키울 전략적 투자가 주 목적이다.  
 
대표적 스타트업으로는 탁월한 보안성과 합리적 가격이 강점인 월스트리트 SNS ‘심포니’를 꼽을 수 있다. 골드만삭스의 사내 메신저로 출발한 심포니는 골드만삭스, 제이피모건, 모건스탠리 등 월스트리트 투자은행들뿐만 아니라 구글로부터 투자를 유치해 그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그런데 이 움직임 또한 블룸버그를 견제하려는 의도가 다분한 것으로 보인다. 값비싼 블룸버그 생태계로부터 독립하려는 첫 단계로 생태계의 소통 수단인 ‘블룸버그 메신저’를 위협할 대항마를 내세운 셈이다. 결국 투자은행이 추구하는 테크놀로지 기업은 투자은행 라이센스를 지닌 구글이다. 그리고 구글처럼 많은 고객을 자신의 생태계로 끌어들이기 위해 플랫폼을 매력적인 컨텐츠로 채워 나가는 중이다.
 
우리나라에선 지난달 26일 국내 최대 인터넷 기업 네이버와 최대 증권사(투자은행) 미래에셋대우가 상호 지분 출자를 통한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네이버의 인공지능(AI)과 미래에셋대우의 금융 빅데이터가 결합한 금융 생태계의 밑그림이 그려지기 시작한 것이다. 네이버는 데이터를, 미래에셋대우는 글로벌 투자은행의 디지털 금융 모델에 한 발짝 다가설 기술력을 얻게 됐다.
 
하지만 미래에셋대우는 네이버와의 파트너십을 자기자본투자 역량을 강화하는 계기로 삼는 게 급선무이다. 최근 들어 신성장동력을 찾는 네이버의 국내외 광폭행보에 적극 동참해 자기자본투자로 연결시켜야 한다. 앞으로 7조원이 넘는 자기자본을 어떻게 운용하는지가 글로벌 투자은행으로 성장하기 위한 첫 번째 시험대이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미래에셋대우가 추구할 금융 생태계의 또 다른 파트너도 틀림없이 나타날 것이다. 네이버의 ‘라인’이 미래에셋대우의 ‘심포니’로 거듭 나길 기대해 본다. 
 
 
최정혁 경영학박사. 씨티은행, 크레디트 스위스, UBS에서 FICC(Fixed Income, Currencies and Commodities, 채권·외환·상품) 트레이더로 일했다. 현재 대학에서 국제금융과 금융리스크를 강의하며 금융서비스산업의 국제화를 연구하고 있다. jungchoy@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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