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돈 안 되는’ 상상력이 빚은 보편적이면서 특수한 세계

[CRITICISM] 20주년 맞은 『해리 포터』, 그 스토리텔링의 힘

최근 개봉한 영화 ‘트랜스포머: 최후의 기사’가 선택한 것은 영국이었다. 주요 촬영의 대부분이 영국에서 이뤄졌고, 영국의 대표적인 명배우 앤서니 홉킨스가 출연했고, 집사 문화와 성(城)이 주요 소재로 등장했다. 게다가 이 영화의 주요 서사는 아서 왕의 전설이다. 중세인 9세기 무렵 시작된 아서 왕의 전설은 무려 1000년의 세월이 흘렀어도 현대 스토리텔링의 최전선에서 활용되고 있다. 올해만 해도 가이 리치 감독의 영화를 비롯해 세계 곳곳에서 새롭게 재탄생하고 있는 것이다. 흥미로운 이야기는 이처럼 시간을 버티고, 초월하는 힘을 갖고 있다.  

영국 판타지 문화, 켈트 신화 바탕
공감과 개성의 스토리 만들어 내
골방서 스스로와 싸워 이룬 작품
상업적이지 않았기에 팬덤 형성
한 사람의 외로운 고집 존중해야

 
올해로 출판 20주년을 맞은 ‘해리 포터’ 역시 그런 힘을 가진 이야기 중 하나다. 200개 나라에서 79개의 언어로 번역돼 4억 5000만 부 이상이 팔린 이 이야기는 그 숫자만으로 이미 현대적 의미의 신화 반열에 올랐다.  현대적 의미의 신화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경제적인 가치다. 1997년 6월 26일 출간된 이후 20년 동안 인세만 11억 5000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영화 수입은 77억 달러, 우리 돈으로 8조7000억 원을 넘겼다. 게임이나 캐릭터 산업 등 확장 사업에서 얻은 수입도 대단했다. ‘해리 포터’ 촬영지나 작가가 작업했던 장소까지 관광 상품이 되었다고 하니, 그 경제적 효과는 실로 어마어마하다고 할 수 있다.
 
 
‘경제 효과’라는 모순과 덫  
2 ‘해리 포터’가 20주년을 맞은 지난달 26일, 영국 런던 킹스크로스역의 ‘9와 4분의 3 승강장’에서 한 여성이 해리 포터 짐수레를 잡고 뛰어오르고 있다. [사진 워너브러더스코리아·로이터=연합]

2 ‘해리 포터’가 20주년을 맞은 지난달 26일, 영국 런던 킹스크로스역의 ‘9와 4분의 3 승강장’에서 한 여성이 해리 포터 짐수레를 잡고 뛰어오르고 있다. [사진 워너브러더스코리아·로이터=연합]

해리 포터 시리즈의 성공을 두고 한국 언론이 주로 눈길을 모으는 부분도 바로 이 경제적 효과다. 해리 포터 20주년을 맞아 국내에서 작성된 수 많은 기사나 특집 기고들을 살펴보자면 주로 이 경제적 효과를 강조하는 데 치중하고 있다. 해리 포터 시리즈가 그동안 창출한 경제효과가 308조원에 이르고 이는 같은 기간 반도체를 수출해서 벌어들인 230조원보다 훨씬 더 많다는 식의 논리다.  
 
그런데, 이런 논리는 기시감이 있다. 신지식인 열풍이 한창이던 시절, 영화 ‘주라기 공원’이 거둬들인 경제적 이익이 자동차 판매보다 훨씬 더 높았다는 기사들 말이다. 차이가 있다면 당시 우리나라 최고의 수출 기업이 자동차 기업이었다는 것이고 현재 그 자리를 반도체 기업이 차지하고 있다는 정도일 것이다.  
 
하지만 이야기를 만들어 내고 써 나가는 작가의 일에 있어서, 경제적인 효과는 매우 사후적인 결과이지 예측 가능한 투자가 아니다. 조앤 롤링의 ‘해리 포터’ 시리즈가 거둔 성과는 그녀가 처음부터 대단한 경제적 가치를 노리고, 마치 주식투자 하듯 설계해서 이룬 결과가 아니다.
 

오히려 그 시작은 이익의 예측과는 거리가 먼 매우 순수한 문학적 열정이었다. 조앤 롤링의 원고가 수많은 출판사들에 의해 거절당했던 이유도 역설적으로 경제적인 것이었다. 판타지로 이뤄진 아동문학으로는 수익을 거둘 수 없다는 출판사들의 판단에 의해 몇 년씩이나 거절당했던 이야기가 바로 ‘해리 포터’였던 것이다.  
 
중요한 것은, 경제 논리로 접근해서는 절대로 ‘해리 포터’가 태어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반도체보다 더 많은 수익을 거뒀으니 이제 우리도 이야기 산업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수많은 언론들이 말하고 있지만, 막상 그러한 이야기 산업에 바탕이 될 만한 자질을 키우는 이야기 산업 학과는 대학에서 경제 논리에 의해 밀려나고 있는 중이다. 문예창작학과나 국어국문학과는 취업률이나 경제논리로 봤을 때 평가에 걸림돌이 되는 학과로 취급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방식으로 따지자면, 조앤 롤링 역시 무직자였고 4대 보험 및 연금 수혜자에 해당되지 않는 민폐 선배에 불과했을 것이다. 즉, 투자와 그 결실이 몇 년 안에 바로 나타나는 산업 논리와 창작 및 이야기 산업의 논리는 다를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작가의 고집이 만들어 낸 입체적 캐릭터
1 2011년 개봉한 영화 ‘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물 2부’ 행사장에 선 배우들과 작가. 왼쪽부터 다니엘 래드클리프, 조앤 롤링, 엠마 왓슨, 루퍼트 그린트.

1 2011년 개봉한 영화 ‘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물 2부’ 행사장에 선 배우들과 작가. 왼쪽부터 다니엘 래드클리프, 조앤 롤링, 엠마 왓슨, 루퍼트 그린트.

‘해리 포터’의 근간이 되는 것은 수많은 영국식 판타지 문화와 그 바탕이 되었던 켈트 신화 및 동화들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10대 특유의 집단 문화와 훨씬 더 보편적인 성장담이 결합돼 보편적이면서도 특수한 이야기로 탄생한 것이 바로 ‘해리 포터’다.  
 
주요 독자층인 10대들의 전폭적 지지를 받았던 ‘주문’만 해도 그렇다. 일상생활을 편리하게 하는 ‘레파로’ ‘녹스’ ‘인센디오’와 같은 주문에서부터 ‘익스펙토 패트로눔’이나 ‘아바다 케다브라’와 같은 강력한 주문에 이르기까지 시리즈 전편에 등장하는 이 화려하고도 다양한 주문들은 또래 말이나 은어에 매혹을 느끼는 10대들에게 강렬한 유대감을 제공했다.  
 
한편 유명 사립학교 교육과정과 닮아 있는 호그와트의 기숙학교 시스템과 교수 및 학생들과의 관계, 학생들 사이의 갈등이나 우정은 보편적 학교 서사와 닮았으면서도 또 다르다. 매우 영국적인 호그와트는 그럼에도 누구나 한 번쯤 겪게 되는 학창 시절이라는 점에서 보편성을 갖는 것이다.  
 
무엇보다 ‘해리 포터’ 이야기의 중심 서사가 부모 잃은 고아 해리 포터의 성장기라는 사실이다. 살아남은 아이라는 특수성은 해리라는 캐릭터의 남다름과 외로움을 설득시키는 한편 출생의 비밀과 가족에 대한 그리움까지 해리만의 개성을 보여 주는 계기가 된다. 마법 명문가 출신의 아이들과 겪는 갈등이나 부모님의 죽음에 얽힌 비밀처럼, 해리라는 인물이 갖는 그 캐릭터성 자체가 이야기의 많은 부분을 파생케 하는 원동력이 되는 것이다.  
 
팬들 사이에서 과연 해리가 누구와 결혼하게 될 것이며, 부모님의 죽음과 관련된 비밀을 풀게 될 것인가에 대한 궁금증이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것도 마찬가지의 이유다. 해리는 아이이고, 모든 아이는 성장할 수밖에 없다. 엄밀히 말해 모든 아이들의 성장엔 나름의 이야기와 비밀이 있고, 성장 자체가 대단한 모험담일 수밖에 없다. ‘해리 포터’는 매우 영국적이며, 특수한 세계이면서 보편적이기도 한 셈이다.  
 
중요한 것은 이처럼 보편적이면서도 특수한 세계는 바로 한 사람의 작가를 통해 비롯되고 완성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처음부터 대단한 경제적인 효과를 노리고 상업적 요소들의 결합으로 이뤄진 세계가 아니라, 한 사람이 골방에서 외롭게 스스로와 대결하며 만들어 낸 세계가 바로 상품이 아닌 작품의 공간이다. 조앤 롤링은 이처럼 작품을 완성해서 뜻밖의 경제적 효과와 이익을 얻은 것이다. 처음부터 그러한 것을 노렸다면 결코 이러한 성공의 지점에 가 닿았을 리가 없다. 오히려 매우 순수한 열정과 노력에서 시작했기에 해리만이 가진 개성이 보존되고 발전할 수 있었으며, 그것이 단단한 팬덤을 형성할 수 있었다. 충실한 독자는 작가의 고유한 외골수에 교감한다. 상업적으로 조합된 결과에 열광하는 독자는 없다.  
 
 
독자와의 감정 교감에 성공한 영상화
1997년 6월 출간된 『해리 포터』의 영어판 초판본(위). 한국어판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1』 (문학수첩)

1997년 6월 출간된 『해리 포터』의 영어판 초판본(위). 한국어판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1』 (문학수첩)

조앤 롤링은 자신의 작품인 ‘해리 포터’의 영화화를 비롯한 다른 활용 과정에 꼼꼼하게 간섭하기로 유명하다. 영화화 당시 배역들의 선발 과정이나 영상화 과정에 작가가 구체적으로 개입한 것 역시 잘 알려져 있다. 그래서 초록색 눈동자로 묘사된 해리 포터를 푸른 눈동자의 다니엘 래드클리프가 맡게 되었을 때, 해리의 엄마가 거울에 비치는 사소한 장면임에도 불구하고 같은 푸른 색 배우로라도 일치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사실 ‘해리 포터’의 세계는 일상적 개연성이나 핍진성에 지배받는 리얼리즘적 공간이 아니라 작가의 상상과 환상을 문자로 구성해낸 판타지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다른 말로 그 세계를 상상하고 읽어 내는 독자들의 환상이 영화를 통해 다치는 게 아니라 충분히 존중받고 교감 되어야만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원작자인 조앤 롤링의 고집과 간섭은 그런 점에서 오히려 상상된 세계이기 때문에 더 엄격하게 재현되어야 한다는 원칙의 반영이라고 할 수 있다. 책에서 글자로 읽었던 퀴디치 게임은 영화를 통해 시시하게 여겨질 게 아니라 상상 이상의 박진감으로 다가와야 한다. 그게 바로 문자를 영상화하는 데 가장 필요한 조건이다.
 
그런 의미에서, ‘해리 포터’의 영상화 작업, 영화화 과정은 문학 작품이 어떤 방식으로 영상화가 될 수 있을지 그리고 현재적인 독자 및 팬덤과 어떻게 교류하고 또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을지 잘 보여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영화화 작업 동안 ‘해리 포터’는 충분히 주요 관객층이라고 할 수 있을 원작 독자와 원작에 충실한 10대 청소년 관객들과 교감하기 위해 노력해 왔고, 충분히 그 교감을 영화에 반영해 왔다고 할 수 있다. 싱크로율이 높은 배우들의 선택이나 배역의 활약 또한 그러한 결과 중 하나다.  
 
결국 문제는 상상력이다. 그리고 그 상상력은 한 사람의 외로운 고집을 존중하는 문화적, 사회적 배려의 산물이다. 상상력은 돈이 될 수 있긴 하지만 돈을 노린 상상력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상상은 한 사람의 특수성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쓸모없는 즉 돈이 되지 않는 상상에 빠져 있는 개인을 존중하고 기다려 줄 때, 한국의 ‘해리 포터’와 ‘조앤 롤링’이 탄생할 수 있을 것이다. 한 사람의 소중한 외로움을 존중하는 그런 세상에서 말이다.
 
 

강유정 고려대학교에서 문학박사가 되고 2005년 조선·경향·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동시 당선되면서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 강남대 한영문화콘텐츠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지은 책으로 『타인을 앓다』『스무살 영화관 』『3D 인문학 영화관』 등이 있다.

구독신청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