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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조장 찾아올 땐 샴푸하지 말라는 샤또 하이야스

와인 이야기
샤또 하이야스로 들어가는 입구. 멀리 허름한 양조장과 숲으로 둘러쌓인 포도밭이 보인다.

샤또 하이야스로 들어가는 입구. 멀리 허름한 양조장과 숲으로 둘러쌓인 포도밭이 보인다.

몇 년 전 필자가 일하던 회사의 회장님댁에서 와인을 한잔하게 되었다. 회장님은 “지하 셀러에서 마시고 싶은 와인 하나를 골라 보라” 하셨는데, 그때 눈에 띈 것이 바로 샤토 하이야스(Chateau Rayas)였다. 프랑스 남부 샤토네프 뒤 파프 지역의 최고 와인 중 하나로, 좀처럼 접하기 힘든 와인이었다. 아직 10년이 되지 않은 것이라 활짝 열리진 않았지만 조밀하면서 응축된 맛과 섬세한 향, 특히 전체적인 균형이 돋보였던 기억이 난다. 회장님도 물론 좋아하셨다. 
 
그 후 1년이 안 되어 다시 한번 회장님댁에서 같은 기회를 갖게 됐다. 이번엔 1993년산 샤또 하이야스를 발견했는데 뜻밖에도 회장님은 “이 와인이 어떤 와인인데” 하시며 다른 와인을 가져오라고 하셨다. 그 사이 이 와인의 명성에 대해 많은 정보를 얻으신 것 같았다. 그 후 다시는 회장님댁에서 하이야스를 맛볼 수는 없었다.
 
샤토 하이야스로 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프로방스의 한 작은 마을에서 택시를 불렀는데, “금방 찾을 수 있다”던 운전사는 30분이 지나도 헤매기만 했다. 결국 주변 샤토의 오너에게 전화해 상세한 안내를 받은 후 겨우 도착할 수 있었다. 와인의 명성에 비해 너무 작은 곳이었고 일반인 방문은 허락되지 않아 홍보도 전혀 되지 않은 곳이었다.
 
포도밭에는 이 지역 토양을 대표하는 둥근 자갈이 없었고 대신 찰진 석회질 점토와 모래로 구성된 붉은 토양이 있었다. 이들은 나무로 둘러싸여 보호받고 있었는데, 가만히 보니 일조량이 적은 북쪽을 향하고 있어 흥미로웠다. 오너인 엠마뉴엘 레이노 또한 조용하면서 섬세한 인상이 포도밭의 수호자 같은 느낌이었다.
 
하이야스 와인은 1920년대 초 현 오너의 증조부였던 루이 레이노가 포도밭에서 직접 손으로 돌을 골라낸 뒤 포도나무를 심고 수확해 병입까지 하면서 시작됐다. 지금의 전설적인 명성을 얻은 데는 그의 아들 작크 레이노의 괴팍(?)하면서 천재적인(?) 양조 방식과 헌신이 있었다. 그가 1997년 독신으로 타계하자 샤토는 조카인 엠마뉴엘에게 승계됐다.
 
와인 제조법은 독특했다. 프랑스와인협회가 이 지역에 허락한 13개 품종 중 적어도 3~7가지를 섞어 만드는 관행을 깨고, 그레나슈라는 한 품종만으로 레드 와인을 만든다. 화이트는 두 품종을 반반씩 사용한다.
 
게다가 양조장은 충격적이었다. 시멘트로 만든 발효통과 100년 정도 사용한 오크통 등 처음 만들어질 때 모습 그대로 있는데, 지저분함에 혀를 내두를 지경이었다. 구석구석 곰팡이가 검고 하얗게 피어 있어 냄새 또한 향기롭지 않았다. 시음잔도 필자가 사용해본 것 중 가장 청결과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그 허름한 곳에서 통들을 옮겨가며 조금씩 따라주는 와인을 시음했을 때, 그 향기로움과 완벽함에 다른 것은 모두 잊을 수밖에 없었다. 엠마뉴엘은 시음 내내 아무 설명도 하지 않았다. “전문가는 당신이니 알아서 시음하고 생각하라”는 것이었다. 다른 양조장 같으면 어떻게든 잘 설명하려고 했을 텐데, 그는 끝까지 침묵했다. 시음을 마치고 나가려는데 비로소 입을 열었다. “다음에 방문할 땐 아침에 샴푸를 하지 말고 오세요, 인공적인 향은 여기 있는 오래된 효모 균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으니까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오싹한 기분이 들었지만, 샤토 하이야스 와인에서 느낄 수 있는 완벽하면서 흐트러짐 없는 깔끔함과 예리함의 이유를 비로소 알 수 있었다.
 
 
김혁 와인·문화·여행 컨설팅 전문가
www.kimhyuc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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