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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세계, 가상세계, 현실세계

공감 共感
물리적인 규칙이 사라지면 그 세상의 물건들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 우선 떠올릴 수 있는 세계는 마법의 세계. 상상하는 대로 모든 것을 움직일 수 있고 마음대로 할 수 있다. 거기선 시간도 가역적이고 존재와 존재가 아닌 것 사이도 경계가 없다. 마법사 혼자서 지배하는 세계라면 정말 마음대로 해도 된다. 그런데 마법사가 둘이라면 둘이 마음이 맞지 않을 수도 있어 조정이 필요하다. 하나가 마음대로 한 것이 다른 하나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계속 주고받는 공방 속에서 피로가 쌓여갈 뿐이다.
 

가상공간에서도 방화벽 높아져
보통사람들의 자유는 구속당해
가상세계에서도 현실세계에서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 없어져
빡빡해진 세상 일탈의 꿈을 꿀뿐

둘 사이에 약속이 필요하다. 만약 마법사의 숫자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더 많은 약속이 필요하고 그 약속이 모이면 규칙이나 질서가 생길 수밖에 없다.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세상에서도 둘 이상이 모이면 마음대로 할 수 없다.
 
눈에 보이지 않는, 작고 가벼운 전자는 분명히 물질이다. 하지만 가벼운 탓인지 전자의 신호로 이뤄진 인터넷과 가상 공간에서의 움직임은 거시 물리 세계보다는 훨씬 자유롭다. 물건과 사람들로 이루어진 세계에서 하나의 개인이 시스템에 대항하고 균열을 만들어내는 것은 아주 어렵다. 그래서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공산당 선언’에서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고 독려했을 것이다.
 
거대한 힘에는 거대한 힘으로 대결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 하지만 가상 세계에서는 골방의 해커 한명이 거대한 시스템을 쓰러뜨리고 천지개벽을 이루는 경우도 있다. 보이지 않는 네트워크가 현실의 물건들과 사람들을 촘촘히, 그리고 단단히 엮고 있는 지금은 가상현실에서의 붕괴가 현실의 붕괴로도 이어질 수 있다. 대단한 기득권을 쥐고 있지 않다면 현재의 시스템이 무너지는 것을 특별히 두려워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할 수 있다고 모든 것을 해도 좋은가? 아무런 제약이 없는, 혹은 없다고 가정한 마법의 세계에서 조차, 둘이 모이면 규칙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그 이유는 서로 힘을 겨루다 오는 결정적 파국을 막고자 함이다. 힘이 비등하면 겨루기는 끝을 보기 어려울 것이고 힘에 차이가 나면 지배와 피지배의 흉한 결말을 맞을 것이다. 하물며 현실 세계에서 이룰 수 없는 것들을 이루어 낼 수 있는 가능성의 세계이지만 여전히 현실과 모든 고리가 연결되어 있는 가상현실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는 것이 옳을까? 물론, 다른 방법으로 때려잡을 방법이 없는 괴물, 손을 쓸 도리가 없는 장벽을 넘으려는 시도가 주는 이점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이런 시도 때문에 투명성이 늘어나고 어두운 구석이 줄어드는 효과가 있다. 점점 강고해지는, 뒤집기 어려운 냉혹한 시스템을 전복할 수 있는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자유로운 가상세계에 있다면 그것을 봉쇄하는 것은 스스로의 목을 죄는 것일 수도 있다.
 
아이러니는 가상공간에서 자유롭게 움직이는 것을 막는 방화벽은 점점 높아지고 끝도 없이 복잡한 암호 체계가 등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수한 재능을 가지고 있지 않거나 훈련을 받지 않은 사람들은 오히려 소외되는 결과가 생긴다. 막는 쪽이든 뚫는 쪽이든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들은 극소수로 줄어들고 오히려 대다수의 사람들은 가상공간의 말단에 연결된 채 감시를 받는 상황으로 전락해 버릴 수도 있다.  
 
아니, 실제로 그러하다. 공고한 시스템과 해커들의 싸움은 흥미진진한 구경거리지만 밖의 사람들은 구경꾼일 따름이다. 어떻게 보면, 보통 사람들은 가상공간의 장벽과 규제들이 낸 길 사이를 지나면서 모든 자유를 구속당하고 있다. 전복의 가능성 때문에 더 제약이 커져버린 셈이다.
 
여전히 기대를 하는 것은, 어떤 장벽이 서더라도 원리적으로 뚫을 수 있다는 것이다. 네트워크에 물려있으면 어디에 있든지 연결의 가능성은 있다. 전복의 가능성이 있다. 이제 무언가를 지키려면 네트워크를 차단하고 고립되는 것 밖에는 방법이 없다. 모든 네트워크에서 차단하고 경계가 삼엄한 금고에 구식 컴퓨터를 넣고, 그 컴퓨터로만 읽을 수 있는 저장매체에 담아 정보를 지키려했던 영화가 생각난다. 세상에 둘도 없는 첩보원의 활약으로 금고가 열렸다는 것이 함정이다.
 
하지만 진짜 함정은 모든 것에서 고립된 정보는 돈과도 권력과도 연결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무엇을 원해서든, 네트워크의 끝에 매달려 있을 수밖에 없는 운명인데 답답한 것은 이제 가상공간에서도 정해진 길, 정해진 움직임을 벗어날 방도가 별로 없다는 것이다. 가상세계에서나 현실세계에서 모두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세상이 되었다. 세상 참 빡빡해졌다. 실낱같은 가능성에 기대 일탈의 꿈을 꾸긴 하지만.
 
 

주일우
이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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