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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 과정 로스쿨 낙오한 이무기에게도 역전의 기회 줘야”

‘개천의 용’ 산실 사법시험, 올해로 폐지
사법시험 2차 시험이 치러진 지난달 21일 서울 신림동 고시촌의 한 독서실 앞 게시판에 학원 강의 관련 홍보물이 붙어 있다. 1963년 도입돼 그간 2만여 명의 법조인을 배출한 사법시험은 로스쿨 도입으로 폐지가 결정됐다. 올해 마지막 선발 인원은 50여 명이다. [연합뉴스]

사법시험 2차 시험이 치러진 지난달 21일 서울 신림동 고시촌의 한 독서실 앞 게시판에 학원 강의 관련 홍보물이 붙어 있다. 1963년 도입돼 그간 2만여 명의 법조인을 배출한 사법시험은 로스쿨 도입으로 폐지가 결정됐다. 올해 마지막 선발 인원은 50여 명이다. [연합뉴스]

한국 사회에서 개천의 용은 계속 나올 수 있을까. 1963년 처음 실시된 이후 54년간 2만 명이 넘는 이무기들의 등용문 역할을 해온 사법시험이 올해를 끝으로 폐지된다. 지난달 21일부터 나흘간 치러진 마지막 사시 2차 시험을 전후해 각종 포털사이트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선 사시 폐지 이후를 걱정하는 이들의 게시글이 줄을 이었다. 부모의 경제력이 자녀의 성공을 결정하는 흙수저 담론이 일상화된 사회에서 오로지 시험 성적만으로 당락을 결정해온 사시는 우리 사회에 몇 안 남은 공정한 계층 이동의 사다리였기 때문이다.

사시 통해 로펌 대표까지 지낸
흙수저 출신의 박영립 변호사
“역기능 있지만 사시는 기회의 문
로스쿨, 계층 사다리 역할 못 해
적게 뽑더라도 비정규 과정 필요”

 
박영립 변호사

박영립 변호사

중앙SUNDAY는 지난달 29일 박영립(64) 법무법인 화우 고문 변호사를 서울 삼성동 아셈타워에 있는 사무실에서 만났다. 가정 형편이 어려웠던 박 변호사는 초등학교 졸업 후 이불솜 가게 점원, 양복점 보조, 공사장 일용직을 전전하며 생계를 꾸리다 20세에 검정고시 공부를 시작했다. 2년 후 대학에 진학한 그는 일과 공부를 병행한 끝에 81년 28세 나이도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이후 변호사로 성공가도를 달리며 국내 6대 대형 로펌 중 하나인 화우의 대표 변호사까지 지냈다. 법조계 대표적 개천의 용인 그에게 사법시험 폐지에 대해 묻자 “아쉽다”는 말이 돌아왔다.
 
왜 그런가.
“우리나라는 정말 역동적인 나라였다. 가난했어도 꿈을 꿀 수 있었고 인생을 바꿀 기회가 많았다. 대표적인 게 사시였다. 사시는 조선 초기 과거시험처럼 천하의 실력 있는 인재를 발굴하는 순기능을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고시낭인을 양산하고 사회적 자원 배분에 왜곡을 가져온다는 역기능에 대한 지적이 많아졌지만 그래도 가난한 젊은이가 원하는 삶을 살 수 있게 도와주는 통로로 사시만 한 제도가 없었다. 코리안 드림의 상징이나 마찬가지 아닌가. 사시 폐지가 단순히 법조인 선발제도의 변경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젊은이들에게 희망이 됐던 역전의 기회 중 하나가 또 사라진다는 의미가 더 크다.”
 
로스쿨이 그 역할을 하면 되지 않나.
“로스쿨은 1년 학비가 적어도 1000만원, 많게는 2000만원씩 들어가는데 3년을 다 다녀야 한다. 입학하기도 어렵다. 대학도 괜찮은 곳을 졸업해야 하고 좋은 학점에 영어 점수 등 스펙도 필요하다. 남자들은 그사이 군대도 갔다 와야 한다. 아무리 적게 잡아도 7년은 걸리는데 누군가 생계를 대신 책임져 주지 않으면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 장학금이 있다 해도 계층 이동의 사다리 역할까지 기대하긴 무리다.”
 
법조계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에 계층 이동성이 떨어졌다.
“동감한다. 내가 지금 태어났다면 어떻게 했을까 싶다. 무엇보다 한 번 실패하면 재기가 불가능한 사회 구조적 문제가 있다. 정규과정에서 이탈하면 영원한 패배자가 돼버린다.”
 
무엇이 문제일까.
“공정한 기회의 문이 자꾸 닫히고 있다. 난 지금도 우리 사회에 감사하는 마음이 크다. 가난 때문에 정규 교육과정에 들어갈 수 없었던 내게 검정고시와 사법시험이 없었다면 사회에 안정적으로 자리 잡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먹고살 길이 없었던 우리 가족은 67년 서울로 올라왔다. 그후로 8년간 난 이런저런 직업을 전전하며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다. 그러다 스무 살에 우연히 검정고시 제도가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중급과정을 2년 만에 마칠 수 있다고 해서 당시 일하던 이불솜 가게 주인에게 부탁했다. 오전에 공부하고 오후에 일하도록 양해해 준 덕분에 검정고시에 합격했고 스물두 살에 숭실대에 들어갔다. 이후 월부 책장사, 입주 가정교사를 해가며 대학 공부를 마쳤고 이듬해 사시에 합격했다. 그때 내 나이가 스물여덟 살이었다. 중·고교 6년을 다니지 못하고 뒤처졌지만 막상 사시 합격 시점을 놓고 비교해 보면 또래보다 불과 2~3년 늦은 정도였다. 덕분에 정규 교육과정을 거친 사람들과 큰 차이 없이 사회에 진출해 자리 잡을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젊은 세대에겐 그런 기회가 계속 사라지고 있다.”
 
어떻게 바꿔야 할까.
“사다리를 계속 치우지 말고 늘려갔으면 한다. 이건 젊은이들에게 정신이 나약해졌다, 왜 이리 쉽게 포기하느냐 비판할 문제가 아니다. 사회 구조적 문제 해결이 선행돼야 한다. 창업만 해도 그렇다. 젊은이가 처음부터 어떻게 성공하겠나. 하지만 예전엔 창업이 활성화됐던 우리나라도 지금은 새로운 기업가가 나타나지 않는다. 창업에 실패하면 신용불량자가 되고 재기불능이 되기 때문이다. 로스쿨도 마찬가지다. 정규과정을 제대로 거치지 않은 가난한 집 젊은이가 어떻게 로스쿨에 진학해 법조인이 될 수 있겠나. 이래저래 젊은이들이 꿈을 꾸고 희망을 갖기 어려운 구조다. 재기의 발판을 자꾸 만들어야 한다.”
 
로스쿨 제도는 어떻게 보완할 수 있을까.
“다른 통로가 필요하다. 로스쿨이 정규과정이라면 비용과 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는 비정규 과정 하나쯤은 적은 수를 뽑더라도 만들어야 한다. 인생의 경로는 사람마다 매우 다르다. 통상의 경로에서 벗어난 사람에게도 법조인이 될 기회를 줘야 한다.”
 
박 변호사는 1시간30분간 인터뷰가 진행되는 동안 “이 사회에 감사하다”는 말을 수차례 반복했다. 사회가 개인에게 기회를 주고 개인이 또다시 사회에 기여하는 선순환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그는 공익소송에 열심이다. 2004년부터 강제 격리수용, 단종·낙태 정책으로 피해를 본 한센인 540명을 대리해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을 진행 중이다. 지난 2월 대법원에서 처음으로 강모씨 등 19명에 대해 1인당 3000만~4000만원을 지급하라는 배상판결이 확정됐고 다른 이들의 재판도 올해 안에 확정될 전망이다.
 
“나에겐 부족한 게 많았다. 하지만 잘 갖춰진 사회 제도가 나를 도와줬고 안정적으로 자리 잡을 수 있는 기회를 줬다. 그래서 항상 이 사회에 대한 부채의식이 있다. 도움을 받았으니 돕고 싶은 게 사람 마음 아니겠나. 나는 이런 게 우리 사회를 유지하고 발전시켜 나가는 선순환이라고 본다. 노력만 하면 얼마든지 성공을 꿈꿀 수 있도록 사회가 도와주고 성공한 사람은 사회를 다시 돕는 그런 방식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가 자꾸 이런 선순환을 제한하는 쪽으로 구조가 바뀌고 있어 안타깝다. 개천의 용이 사라진 사회가 과연 지속가능하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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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제 기자 letm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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