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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주의자? 치밀한 수학자이자 끈질긴 실험가!

밀라 주택 옥상의 굴뚝. 기괴한 형상의 굴뚝과 계단실은 우리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밀라 주택 옥상의 굴뚝. 기괴한 형상의 굴뚝과 계단실은 우리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Antoni Gaudiㆍ1852~1926)가 지은 ‘작품’들은 관광 필수 코스다. 현지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가우디 투어’는 주요 건축물 예닐곱 개를 둘러보는 데만도 꼬박 하루가 걸린다. 비센스 주택·구엘 공원·밀라 주택·바트요 주택 그리고 1882년에 착공해 아직도 짓고 있는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성가정 성당) 등이 대표적이다.  
 

가우디의 참모습을 찾아 떠나는
스페인 카탈루냐 여행

이곳을 둘러보면 가우디가 얼마나 독창적인 건축가인지 건축 문외한이라도 쉽게 알게 된다. 육중한 돌이 살아 움직이듯 구불거린다. 딱딱해야 하는 건물이 유려한 자연을 닮은 듯 신비롭기까지 하다. 가우디는 별나라에서 뚝 떨어진 인물일까.  
 
스페인어권의 건축과 건축 이론을 중점적으로 다루는 출판사 아키트윈스의 이병기(37) 대표는 바르셀로나 건축대학에서 10년간 건축 공부를 했다. 그는 “우리가 보는 가우디 작품 대다수가 건축 인생 후반기에 지어진 것”이라며 “가우디는 언제나 합리적인 구조체계를 바탕으로 건축했고, 지금 알려진 이야기보다 그의 건축세계는 더 깊고 넓다”고 전했다. 지난 봄 카탈루냐 지방으로 훌쩍 여행을 떠나 일반인은 잘 볼 수 없는 가우디의 흔적을 샅샅이 훑고 돌아온 그가 중앙SUNDAY S매거진에 글을 한 편 보내왔다. 그 속에는 우리가 지금까지 잘 몰랐던 가우디의 이야기가 가득 차 있었다.  
 
글 한은화 기자 onhwa@joongang.co.kr

 
성가정 성당의 탄생입면. 가톨릭 교리를 조각에 담아낸 성가정 성당은 ‘돌에 새긴 성경’이라고도 불린다. 조각과 건축이 하나로 어우러진 작품이다.

성가정 성당의 탄생입면. 가톨릭 교리를 조각에 담아낸 성가정 성당은 ‘돌에 새긴 성경’이라고도 불린다. 조각과 건축이 하나로 어우러진 작품이다.

과연 가우디 건축에도 합리성이 있을까. 역동하는 형태와 복잡한 기하학, 기괴한 문양과 화려한 색채. 그의 건축은 육중한 돌 건축물에 생명체의 부드러움을 덧입힌다. 한없는 자유 속에 우리 감각과 감성을 자극하는 듯한 그의 건축을 이성의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하지만 학생 시절 그의 건축 수첩을 보면 합리적인 건설방식에 대한 고민이 가득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첫 작품인 마타로 협동조합에서부터 마지막 작품인 성가정 성당에 이르기까지, 언제나 합리적인 구조체계에 바탕을 뒀다. 몽상가보다 실험가, 자연을 모사한 자연주의자보다 계산에 근거한 기하학자에 가까웠다.  
 
가우디가 자신만의 스타일을 구축하기 전, 동시대에 지었음에도 다양한 건축양식을 선보이던 시기가 있었다. 상상 속에서 창조했다기보다 시대와 장소, 환경을 반영하고 실험한 결과물이었다. 스페인의 세계적인 건축가 라파엘 모네오는 “가우디가 특별한 인물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 역시 시대의 맥락 속에서 이해된다”고 술회했다. 따라서 가우디를 보다 입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천재성뿐 아니라 그가 살았던 사회와 건축, 도시에 관심을 먼저 기울여야 한다.  
 
밀라 주택의 출입구. 화려하게 채색된 출입구는 돌 건축이 담을 수 없는 부드러움을 드러낸다.

밀라 주택의 출입구. 화려하게 채색된 출입구는 돌 건축이 담을 수 없는 부드러움을 드러낸다.

베예스구아르드 주택의 방. 모퉁이와 구조체가 부드러운 곡면이다.

베예스구아르드 주택의 방. 모퉁이와 구조체가 부드러운 곡면이다.

산업혁명 격동기에 건축 시작 … 밀라 주택은 19세기형 주상복합
바르셀로나는 스페인 북부 카탈루냐 지방의 수도다. 가우디는 카탈루냐 타라고나 지방에서 태어났다. 대장장이 집안이었다. 그래서일까. 스페인 건축가 유이스 보넷은 “하나의 면(面)을 통해 입체를 이뤄가는 가우디의 조형원리가 평편한 금속판을 두드려 입체를 만드는 대장일과 유사하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이후 바르셀로나로 이주해 고등건축학교를 1878년 졸업한 그는 곧 산업혁명의 바람이 휘몰아치는 격변의 시대를 맞이한다. 일찌감치 기계공업에 집중해 산업도시로 변모한 카탈루냐는 스페인의 산업화를 선도했고, 지역 사회에는 진보와 번영에 대한 기대가 충만했다. 이윤에 눈 밝은 신흥 부르주아가 등장하면서 1층에 상점, 그 위층에 임대주택을 배치한 새로운 주거유형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요즘의 상가주택이나 주상복합의 주거 형태가 이때 나타난 것이다. 가우디의 대표작인 칼벳 주택, 바트요 주택, 밀라 주택은 아래층에 자기 공장이 있던 산업 자본가의 집이었다.  
 
이 무렵 문예ㆍ음악ㆍ조형예술ㆍ 건축 분야에서 르네상스, 즉 부흥을 의미하는 ‘레나이센샤 운동’이 일어난다. 이는 지역 문화부흥으로 이어졌다. 건축의 경우 지역 산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풀과 꽃을 장식의 소재로 사용하는 등 문화예술 전반에 걸쳐 지역주의 색채를 드러냈다.  
 
1888년과 1929년 바르셀로나에서 두 차례 열린 만국박람회는 이런 문화적 흐름을 하나의 운동으로 이끄는 촉매이자, 약동하는 카탈루냐 지역의 산업과 문화를 세계 만방에 선보일 수 있는 기회였다. 박람회를 전후해 도시가 대폭 정비됐고, 박람회장 자체가 명망 있는 건축가들의 경연장이 되면서 새로운 건축이 사회 전면에 등장했다. 바로 ‘모데르니스마(모더니즘)’ 운동이었다. 신고전주의의 딱딱한 건축 양식에서 벗어나, 자연을 닮고자 하는 ‘자연주의’ 운동이기도 했다. 박람회장 건물과 산파우 병원, 카탈루냐 음악당 등 당시의 공공건축물들은 반짝이는 다채색 도기와 자연물 장식으로 화려하게 치장됐다. 육중한 돌 건축물에 자연의 활기와 생명력을 담기 위한 건축적 장치였다.  
베예스구아르트 주택의 계단실. 주택 외부는 고딕 양식을 띄지만 계단실의 부드러운 곡면은 밀라 주택의 내부를 연상시킨다.

베예스구아르트 주택의 계단실. 주택 외부는 고딕 양식을 띄지만 계단실의 부드러운 곡면은 밀라 주택의 내부를 연상시킨다.

 
아르누보 등 다양한 장식 실험 통해 자기만의 양식 만들어
당시 가우디는 유이스 도메넥 이 문타네르, 주셉 푸치 이 카다팔크와 더불어 모데르니스마 건축을 대표하는 세 인물 중 하나로 꼽혔다. 하지만 가우디는 그 중에서도 장식을 가장 절제하는 편이었다. 동시에 의미 없는 장식을 줄이려는 노력을 계속 했다. ‘자연을 사랑하는 건축가, 가우디’라는 말로는 그의 모든 면을 드러낼 수 없다. 다른 두 건축가가 여전히 건축물에 꽃 장식을 하고 있을 때, 가우디는 여기서 벗어나 자신만의 새로운 기하학을 만들어 건축물에 활기를 덧입히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후기에 지은 밀라 주택과 성가정 성당 등에서 꽃ㆍ나무 등 자연을 그대로 모사한 장식을 볼 수 없다.  
 
저명한 가우디 연구자 조지 콜린스의 분류에 따르면, 1883년부터 1900년까지 가우디는 여러 장식 실험을 거쳤다. 당시 완공한 9개 건축물에는 고딕·아르누보·바로크 양식이 고루 사용되었다. 처녀작 ‘비센스 주택’만 해도 꽃과 나무를 본 따 장식했다. 채색 타일과 식물 문양을 이용한 아르누보 건축이었다.  
 
하지만 이 시기에 지어진 베예스구아르드 주택은 고딕 양식이다. 바르셀로나의 북쪽 산 기슭에 위치한 주택은 중세 카탈루냐 지역을 지배하던 왕의 여름별장 유적지 안에 지어졌다. 그는 중세 고딕 양식을 오늘날 카탈루냐 지역에 맞춰 각색하면서, 고딕의 구조적 합리성에 지중해의 부드러운 빛에 어울리는 옷을 입혔다. ‘지중해 고딕’ ‘옷 입은 고딕’이라 이름 붙여진 스타일이었다.  
 
중세의 요새처럼 단단해 보이는 이 주택의 내부는 가우디 특유의 부드러운 공간으로 완성됐다. 다락에서는 엄정한 구조체를 볼 수 있지만 거주 공간은 부드러운 곡면으로 덮었다. 지중해의 햇살이 그 곡면들 사이를 가득 채우며 만들어낸 장면들은 마치 그가 훗날 지은 밀라 주택의 내부 공간을 미리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베예스구아르드 주택은 최근 대중에 공개됐다.  
 
동시대에 지어진 ‘아스토르가 주교관’과 ‘보티네스 주택’ 역시 고딕 양식이다. 고딕 건축문화가 뿌리깊은 레온 지방에 지어졌다. 이처럼 가우디는 자신의 상상 속에서 모든 것을 창조하지 않았다. 지역 환경과 역사를 이해하고 그것과 대화하길 원했다.  
 
역시 이 시기에 지어진 ‘구엘 저택’도 밖에서만 보지 말고 꼭 내부에 들어가 보길 권한다. 가우디의 후원자였던 구엘이 연회용으로 지은 집이다. 건물 정면 중앙에 포물선 아치 모양의 출입구가 두 개 나 있다. 마차 출입구다. 저택 외관은 웅장하고 단단하지만 내부는 아랍풍으로 화려하게 꾸며져 미묘한 대비를 이룬다.  
 
구엘 저택의 출입구. 육중한 돌 구조물과 가는 철 구조물의 대비가 아름답다.

구엘 저택의 출입구. 육중한 돌 구조물과 가는 철 구조물의 대비가 아름답다.

구엘 저택의 살롱 부속실. 아랍의 영향을 받은 무데하르 양식으로 장식됐다.

구엘 저택의 살롱 부속실. 아랍의 영향을 받은 무데하르 양식으로 장식됐다.

구엘 저택의 살롱 천장. 절묘하게 계산된 작은 천창들의 배열은 무한한 우주를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구엘 저택의 살롱 천장. 절묘하게 계산된 작은 천창들의 배열은 무한한 우주를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성당은 정밀하게 계산된 구조체 … 숫자로 이루어진 공간  
1900년 들어 가우디는 자신만의 건축 세계를 펼치기 시작한다. 앞선 시기의 경우 입체파로 가기 전 청색시대를 보낸 피카소에 빗댈 수 있다. 가우디도 이 시기부터 자신만의 드로잉을 하기 시작한다. 기하학적으로 계산한 율동감 있는 형태를 빚어내기 시작한 것이다. 부드러운 곡면과 다양한 색깔로 채워진 밀라 주택과 구엘 공원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성가정 성당은 가우디 기하학의 집약체다.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성당은 네 가지 계획안 중 마지막 것으로 그가 젊어서 설계한 성당은 완전 고딕 스타일이었다.  
 
계획안은 가우디의 건축세계가 실험을 통해 진화했듯 점점 바뀌었고, 오늘날 우리가 보는 성당에 다다랐다. 성당 내부 기둥의 경우 언뜻 보기에 나무를 본떠 만든 것 같다. 올록볼록해 곡선처럼 보이지만, 모두 직선으로 이뤄진 형태다. 더군다나 하나의 체계를 따라 치밀하게 계산된, 기하학적인 형태다. 내부 공간을 자로 재지 않아도 가우디가 쓴 수 배열의 원리만 알면 기둥의 높이와 넓이를 바로 가늠할 수 있다. 똑같은 기둥을  계속 만들 수 있음은 물론이다.  
 
이를 이해하고 그의 성당을 보면 매트릭스처럼 숫자가 보인다. 가우디 스스로도 즉흥적으로 형태를 바꿀 수 없을 만큼 기하학적인 체계를 바탕으로 성당을 지었다.  
 
가우디는 평생 똑같은 고민을 했다. 그의 머릿속은 ‘오늘날 시대에 맞는 건축은 무엇일까’라는 화두로 꽉 차 있었다. 그리고 시대에 맞는 여러 시도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밀라 주택의 경우 당시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철골 구조체를 썼다. 그는 신비한 천재라기 보다는 치열한 건축가였고, 끈질긴 실험가였다. ●
 
 
글 이병기 아키트윈스 대표 architwins@outlook.com,  사진 황효철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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