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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 운동가 출신이 차려낸 깐깐한 술상

가끔 부모님이 부부싸움을 하신다. 주로 엄마 때문이다. 아빠는 굳이 비싼 유기농 식재료만 고집하는 엄마가 못마땅하다. “비싸든 어떻든 만드는 사람이 조금이라도 신경을 더 써서 만든 거잖니? 몸에 들어가는 건 옳은 걸 먹고 좋은 걸 먹어야 내가 건강하고 가족이 건강한 거야.”  
 

이지민의 "오늘 한 잔 어때요?"
<31> 별주막

처음엔 굳이 비싼 식재료를 살 필요가 있을까? 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음식 업계의 많은 분을 만나고 좋은 식재료를 접하면서 생각을 바꿨다. 우리 농산물, 건강한 먹거리는 대한민국의 미래라는 것을!  
 
‘별주막’은 이런 철학을 뿌리 깊게 반영한 곳이다. 정부 과천청사가 있는 별양동 한 상가 지하에 있다. 주점으로 들어서면서 깜짝 놀랐다. 한쪽으론 책이, 다른 한쪽으론 사진이 가득하다. 그 가운데 막걸리와 전통주가 냉장고를 빼곡히 채우고 있다.  
 
별주막 서형원(48) 대표와 이야기를 나눴다. 알고 보니 책이 있는 공간은 ‘여우 책방’이라는 서점이었다. 동네 이웃 다섯이 모여 만든 책방 협동조합으로, 에코 페미니즘(생태학과 여성주의의 합성어)과 관련된 책들을 전시·판매하고 있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운영되며, 커피와 차 등을 판다. 재미있는 건 막걸리를 파는 별주막과 같은 공간에 있다 보니 책을 사러 왔다가 막걸리를 마시는 손님이 많다는 것. 사진도 흥미로웠다. 과천 주민인 디자이너 이한진(34) 씨의 작품이다. 철거 중인 과천주공아파트 1단지를 추억한 책 『과천주공아파트 101동 102호』에 수록된 사진들이라고.  
 
여기에 21년째 과천 주민으로 살고 있는 서 대표의 삶이 그대로 반영됐다. 대학 졸업 후 청년 시절은 환경 운동가로, 그 뒤에는 과천시의원과 과천시의회 의장으로 활동했다. 녹색당 창당에도 참여해 2014년 과천시장 후보에 도전했으나 낙선하고 딸과 함께 네팔로 떠났다. 히말라야를 트래킹하고 출간한 『멀고 낯설고 긴, 여행이 필요해』에는 인생 2막을 준비하는 과정의 고뇌가 담겼다.  
 
그가 2016년 1월 오픈한 곳이 별주막이다. 화학조미료·GMO(유전자 변형 농산물)·수입 농수산물을 일체 쓰지 않는다. 산지 직거래로 친환경·유기농 제철 식재료를 공수한다. 환경운동연합 정책국장으로 일할 때 전국을 누빈 경험이 한몫하고 있다. 50개가 넘는 지역 조직을 다니며 만난 생산자들과 좋은 식재료, 지역 특산물과 막걸리가 별주막을 이끌고 있다. “생산자가 어떤 방식으로 만들었는지 알고 먹는 먹거리는 긍정적인 에너지를 줍니다. 그래서 저희 메뉴판에는 생산자의 이름이 언급돼 있죠.”  
 
이런 식이다. 나주 영산포의 안국현 홍어 명인이 삭힌 백령도산 홍어, 홍현리 바다 옥성호 조평옥 선장이 제공한 자연산 호래기(꼴뚜기), 홍성군의 김건태 농업기술명인의 친환경 돈육…. 여기에 철 따라 싱싱한 해산물이 달을 꿰찬다. 덧붙여 서 대표가 꼽는 메뉴는 가자미·아나고·꽃돔 등 제주에서 잡아 올린 생선 서넛을 구워낸 제주 모듬 생선. 아쉽게도 9월부터 5월까지만 선보이는 메뉴라 지금은 제주 서귀포 고등어 구이가 대신하고 있다.  
 
막걸리 설명도 빼놓을 수 없다. 서 대표가 직접 양조장을 찾아 다니며 원료와 생산과정,양조자의 정성과 철학을 살펴보고 선택했다. 유기농 쌀, 전통 누룩으로 빚어내고 아스파탐 같은 인공 감미료를 쓰지 않는 막걸리가 26종 준비돼 있다. 국산 천연꿀을 넣어 만든 꿀 막걸리와 칵테일처럼 편하게 마시기 좋은 모히또 막걸리도 눈길을 끈다.  
 
장마철에 맛보기 좋은 안주와 막걸리를 추천받았다. 스타터는 남해 다랭이마을에서 공수한 자연산 호래기 데침. 여기엔 평택산 1등급 햅쌀과 국내산 누룩으로 6개월간 빚어낸 삼양주(세 번의 담금 과정을 거치는 술) ‘술 그리다’를 매칭했다. 고소하면서도 천연의 단맛이 부드럽게 어우러진다.  
 
다음은 전남 벌교에서 들여온 뻘 낙지. 싱싱하고 오동통 살이 오른 튼실한 낙지가 한 가득 접시에 담겨 나온다. 매칭한 술은 ‘대대포 막걸리’. 담양에서 생산되는 100% 친환경 유기농 쌀을 원료로 만든 생 막걸리다. 합성 조미료인 아스파탐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벌꿀과 댓잎을 첨가해 천연 발효시켰다. 참기름장에 찍은 낙지를 씹다가 한 모금 머금으면 입안에 청량감을 더한다.  
 
돼지고기 수육과 겉절이는 하루 다섯 접시 한정으로 내놓는다. 기름기 없이 담백하게 삶아낸 친환경 수육에 전남 강진의 달마지마을의 전통장 ‘가배울 된장’과 겉절이가 곁들여진다. 막걸리는 유기농 현미와 토종앉은뱅이 밀 누룩을 쓴 경남 남해의 다랭이팜 생막걸리. 드라이하면서도 무게감이 있어 메인 요리에 잘 어울리고 달지 않아 주당들도 선호한다.  
 
마지막은 채식 두부김치. 젓갈을 쓰지 않은 비건(Vegan)용이다. 여기에 화학 응고제를 넣지 않은 친환경 두부가 곁들여진다. 함께 한 경기 평택의 호랑이 배꼽 막걸리는 발아 현미를 써서 100일간 숙성했다. 은은한 단맛이 몽실몽실 입안에서 부드럽게 녹아 내리는 두부와 잘 어울렸다. 간이 세지 않은 김치가 곁들여져 여성들이 즐겨 찾는다고.  
 
“막걸리는 문화의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식문화, 즉 ‘풀뿌리 문화’입니다. 우리 주식의 근간이 되는 쌀로 만든 막걸리를 매개로 잔치가 벌어지고, 다양한 관습이 생겨났죠. 저는 이곳을 막걸리와 건강한 음식과 좋은 생각을 나누는 도심 속 주막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
 
 
이지민 : ‘대동여주도(酒)’와 ‘언니의 술 냉장고 가이드’ 콘텐트 제작자이자 F&B 전문 홍보회사인 PR5번가를 운영하며 우리 전통주를 알리고 있다. 술과 음식, 사람을 좋아하는 음주문화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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