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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충기의 긴가민가] 장사익 아자씨가 뿔난 이유

<긴가민가> 이번 등판 선수는 이름만 들어도 짜르르한 장사익 아자씨. 
맨발에 슬리퍼 차림의 장사익 아자씨. 손전화 들고 쭈그리고 앉은 형아는 권혁재 중앙일보 사진전문기자. 아자씨 보러 간다고 하니 마침 사진 찍을 일이 있다고 합류했다. 정재숙 문화전문기자 언냐는 미모 초상 프라이버시 관계로 손과 무르팍만 살짝 보여준다. 혁재 형아의 뒤춤은 세계 최초로 공개하는데, 이 사진의 포인트다

맨발에 슬리퍼 차림의 장사익 아자씨. 손전화 들고 쭈그리고 앉은 형아는 권혁재 중앙일보 사진전문기자. 아자씨 보러 간다고 하니 마침 사진 찍을 일이 있다고 합류했다. 정재숙 문화전문기자 언냐는 미모 초상 프라이버시 관계로 손과 무르팍만 살짝 보여준다. 혁재 형아의 뒤춤은 세계 최초로 공개하는데, 이 사진의 포인트다

아자씨 집에 가던 지난달 4일, 재숙 언냐와 혁재 형아를 만나기로 한 경복궁역에 오전 9시반경 도착했다. 시간이 남아 아자씨 얘기를 다룬 기사를 이리저리 살피다가 노래 한 자락 듣고 가야겠다 싶었다.  
 
어머니, 꽃구경 가요.
제 등에 업히어 꽃구경 가요.
세상이 온통 꽃 핀 봄날
어머니 좋아라고
아들 등에 업혔네.
 
마을을 지나고
들을 지나고
산자락에 휘감겨
숲길이 짙어지자
아이구머니나
어머니는 그만 말을 잃었네.
 
봄구경 꽃구경 눈감아 버리더니
한 움큼 한 움큼 솔잎을 따서
가는 길바닥에 뿌리며 가네.
 
어머니, 지금 뭐하시나요.
꽃구경은 안하시고 뭐하시나요.
솔잎은 뿌려서 뭐하시나요.
 
아들아, 아들아, 내 아들아
너 혼자 돌아갈 길 걱정이구나.
산길 잃고 헤맬까 걱정이구나
 
고른 노래가 하필 ‘꽃구경’이다. 오가는 언냐아재들에게 습도가 올라가는 눈을 들키지 않으려고 코를 패앵. 아침부터 삽자루를 이상한 놈 만든 아자씨댁은 홍지동에 있다. 굽이굽이 흘러내려온 북한산 줄기 끄트머리다. 집 앞으로 흐르는 홍제천 너머가 인왕산이다.  
저짝이 거시기구 이짝이 뭐시기여. 동네를 설명하는 아자씨

저짝이 거시기구 이짝이 뭐시기여. 동네를 설명하는 아자씨

옥상에 서니 가슴이 뻥 뚫린다.  
-저어기가 보현봉이구, 저그가 북악산, 여 앞이 인왕산이여.
 
아자씨가 왼편에서 오른편으로 가리키는 손가락 끝에 백운대에서 뻗어 나온 봉우리들이 줄지어 서있다. 저 장한 풍경을 앞에 두고도 고기 굽기 좋은 위치를 가늠하는 삽자루는 식신마귀.  
 
옥상도 옥상이지만 이 집의 제1경은 2층 거실이다. 창가에 앉으니 앞마당에 어마어마한 바위가 버티고 서있다. 홍제천 너머 인왕산이 창문에 가득하다. 
거실 창밖으로 보이는 마당과 인왕산

거실 창밖으로 보이는 마당과 인왕산

: 와이구메. 저 산 바위덩어리들이 거실 창으로 확 밀구 들어오는 느낌이어유. 기세가 대단허유.  
: 산봉우리들이 메산(山)자 모습이잖여. 산 위에 있는 바위를 자세히 보면 사람 얼굴이 셋이여. 나두 몰렀는디 어떤 스님이 보구서 말씀을 해주시지 뭐여.  
 
카메라 화면을 확대해가며 아자씨가 얼굴바위 모습을 하나하나 설명했다. 얼굴이 둘, 누운 사람 모습이 하나였다. 아자씨는 창가 자리를 우리에게 내주었다.
 
-그쪽이 손님 자리여. 바깥이 한눈에 다 들어오잖여. 나는 맨날 보는 풍경이니 젤루 좋은 자리를 손님 앉으시라구 주는 거여.  
 
같은 충청도 물 먹고 컸는데 아자씨의 사투리 농도는 58도짜리 금문고량주급이다. 북도에서도 북쪽인 충주 제천 단양 쪽의 억양은 이웃하고 있는 강원도 경상도말과 섞여있다. 높낮이의 폭이 크고 말도 상대적으로 빠르다. 여기서 음성 청주를 거쳐 남도 쪽으로 넘어가면서 말은 점점 느려진다. 서해와 맞닿은 당진 서산 태안 보령에서 그 절정을 이룬다. 아자씨 고향이 서산 예산 청양 보령에 둘러싸인 홍성이다. 성질 급한 언냐아재들은 이쪽 동네 말 들으면 속 터진다.            
 
-누가 그려. 내 소리가 백제 소리라는 거여. 우리 고향이 전라도와 가까워 거기와 말이 비슷허지. 백제, 가만 생각해 보니 그려.    
 
거실의 중심은 창가에 붙어있는 다탁이다. 안동에 있던 고택 마루를 가져와 만들었다. 100년 넘은 세월의 더께가 켜켜이 묻어있다. 다탁 옆에 통기타가 서 있다. 가사거치대 위의 가요책은 종이 색으로 보아 서른은 먹어 보인다. <가거라 삼팔선아>가 펼쳐져 있다. 청춘들은 알 수 없는 노래다.  
 
아~~~ 산이 막혀, 못 오시나요  
아~ 물이 막혀 못 오시나요  
다 같은 고향땅을 가고 오련만  
남북이 가로막혀 원한 천리길  
꿈마다~ 너를 찾아 꿈마다  
너를 찾아 삼팔선을 탄한다
 
전쟁 겪은 부모님 세대는 이런 노래에 깜빡 넘어간다. 그러니까 언냐아재들아, 사익 아자씨 콘서트표 선물하면 삽시간에 동네방네 효녀효자라고 소문난다.   
-저 큰 창 풍경은 선계, 요 작은 창밖 풍경은 속계여.  
 
속계는 작은 창으로 보이는 세검정 삼거리 일대다. 계곡을 따라 건물들이 빼곡하다. 속계로 통하는 창틀에 시 세편이 붙어있다.  
 
고영민의 <겨우살이>, 김준태의 <길>, 나머지 하나는 김제현의 <풍경>이다.    
 
댕그렁 바람 따라
풍경이 웁니다
그것은, 우리가 들을 수
있는 소리일 뿐
아무도 그 마음 속 깊은
적막을 알지 못합니다
卍등이 꺼진 산에
풍경이 웁니다
비어서 오히려 넘치는
무상한 별빛
아, 쇠도 혼자서 우는  
아픔이 있나봅니다.
 
가만히 읽으니 가슴 깊은데서 싸한 마음 오천육백 킬로그램이 밀려나온다. 아자씨 노래의 정서가 대개 이렇다.   
작은 책상 위에 놓인 손목시계에 두 마리의 봉황이 새겨져있다. 뒤집어 보니 ‘대한민국 대통령 노무현’이라고 새겨져있다. 탁상시계에는 ‘장영신 해장국’이라고 찍혀 있다. 구기동에 있는 가게인데 아자씨의 단골집이겠다.  
 
서재는 따로 있는데 거실의 간이 책꽂이에는 정지용 전집과 갖가지 노래책과 CD들이 꽂혀있다.  
 
<흘러간 노래대백과> <흘러간 팝송대백과>… 책들은 흘러간 세월만큼 빛바래 누렇다. 그렇게 책들도 늙고 아자씨도 늙어간다. <인기가요 대백과>는 겉장이 떨어져 테이프를 붙여 수선했다.   
<프랭크 시내트라 마이 웨이> <일본 엔카 명곡선집> <프리 재즈 김대환> 같은 CD가 보인다. 테이프의 주인공들 이름들이 푸근하다. 진성, 황금심, 유지나, 나훈아, 윤항기, 이용복, 윤복희, 패티김, 정미조, 최양숙, 배호, 조용필, 심수봉, 박일남, 백야성, 현인, 조영남, 이미자, 들국화, 이장희 … 시대를 주름잡은 목소리들이다.   
<민요명창> <회심곡 김영임> <클래식 명곡> <불후의 명곡 100>도 있다. 아자씨의 공연 모습을 기록하고 있는 사진작가 김영만의 사진집 <시대의 기억>도 있다. 1970년대부터 현대사를 기록한 역작이다. 
창밖 늦봄의 정취에 취해 정신이 없는데, 찻물을 우리던 아자씨…
 
-그런데 사람덜이 자꾸 나보구 사익을 취한다고 하지 뭐여. 사익은 저기 가 있는 그분이 취했지, 난 그런 적 읎는디 말여.
-그게 뭔 소리래유?
-내 이름이 사익이잖어, 사익.
-아 아하하하학핥핥핥핡 아재야.
  
거실 구석에 서 있는 두 폭 병풍 왼쪽에 ‘백년 가약서’가 쓰여 있다.
 
하늘 ○▲▽과, 땅 장사익은 금후 100년 동안 항상 사랑하고 존경하고, 늘 행복함을 유지키로 약서를 씁니다. 일구구육년 춘사월십이일.
(단 100년이 경과 후에는 영원으로 계약조건을 변경합니다)  
 
아자씨가 지었을까. 다른 쪽에는 <천국은>이란 제목 아래 시 한 수가 적혀있다.
 
겨울햇살이/저만큼/음지까지 오고/따사한/맘이/가득한/좋은 소리가/항상/살아있는/내 집/이곳이/정말/천국이야/
 
그 앞 거치대에는 대금, 새납, 단소 등을 가로로 걸어놓았다. 아자씨가 속한 농악대는 1993년 전주대사습놀이에서 장원을 받는다. 94년에는 KBS국악대제전 뜬쇠사물놀이에서 대통령상도 받았다. 사물놀이패 이광수와 노름마치에서 아자씨는 태평소 연주자로 이름을 날렸다. 소리를 업으로 삼기 전이다.  
붓으로 먹물 찍어 슥슥. 읽고 난 신문은 밥집에서 배달하는 쟁반을 덮기도 하고, 이처럼 글씨 연습도 하고, 창틀 먼지를 닦아내는 데도 그만이다. 신문 많이 읽는 나라 선진 나라 멋진 나라 아름다운 나라.

붓으로 먹물 찍어 슥슥. 읽고 난 신문은 밥집에서 배달하는 쟁반을 덮기도 하고, 이처럼 글씨 연습도 하고, 창틀 먼지를 닦아내는 데도 그만이다. 신문 많이 읽는 나라 선진 나라 멋진 나라 아름다운 나라.

글씨를 쓰는 방은 1층에 있다. 작년 초 아자씨는 성대에서 혹을 발견하고 수술을 받았다. 농부가 밭에 나가지 못하고, 주방장이 칼을 잡지 못한 셈인데, 글씨가 있어 그 답답한 시간을 이겨내지 않았을까.
 
3층 옥상 방에는 4개의 징과 천체망원경이 있다. 가수이자 화백인 최백호가 그린 아자씨 초상화가 눈길을 끈다.  
오른쪽에 서 있는 물건이 망원경. 배율이 커 달 표면을 속속들이 살필 수 있다

오른쪽에 서 있는 물건이 망원경. 배율이 커 달 표면을 속속들이 살필 수 있다

일 끝내고 장비를 수습하는데…
 
: 밥 먹으러 가야지
: 가야돼요. 차 마시고 토마토까지 먹으니 배부르네요.  
: 그래도 밥은 먹어야 허는겨.  
: 아니에요. 우리가 바빠서 그래요.  
: 뭔 소리여. 아무리 바뻐두 그렇지. 집에 온 손님 그냥 보내면 안 되는 거여.
 
인터뷰만 하고 일어서자고 셋이 약조한 터였는데, 더 버티다가는 혼날 거 같은 분위기에서 혁재 형아가 타협책을 던졌다.      
 
-그러면 약속 하나 해주시면 됩니다. 밥값 내지 말고, 빨리 먹고 가자는 소리 안 하시면 됩니다. 저번에는 먼저 후딱 드시고 앉아있으니 밥이 안 넘어가더라고요.  
-그려 그려 으허허. 근디 김영란법 때문이여? 내가 돈 내면 걸리는 거여? 가족끼리인디 누가 찔르것어. 그리구 우리가 밥 먹는 건 청탁이 아니잖여.
 
한차에 모두 낑겨 타고 옆 동네에 있는 밥집으로 가는 길.
 
: 성님이 본격적으루다 소리를 시작헌 게 4학년5반 때지유?
: 글씨 남들이 그렇다고들 허대, 난 잘 몰르것어.
: 저두 그 즈음에 그림 그려보것다구 펜을 들었구먼유. 시상에 늦은 때는 읎는가봐유. 성님이 지 거울이유.
: 아이구 거울은 무슨 거울이여. 좋아서 하는 일인디.
 
스무살 할배가 있고 팔십 청년이 있다. 남들은 다 늦었다고 하는 연식에 마이크 앞에 선 아자씨는 그러니까 백세시대의 표준전과다.    
 
구기터널 삼거리 <본전가 쌈밥 생고기>에 들어서니 아지매가 반긴다. 큰길가 3층짜리 상가건물의 2층이다. 외벽의 갈색 타일이 듬성듬성 이빨 빠져있고 계단과 손잡이가 반질반질하다. 때 국물 흐르는 간판에 쓰인 전화번호는 앞에 02가 없다. 앞에는 우편배달 오토바이가 줄지어서있다. 동네 집배원들이 밥 먹으러 다니는 곳이니 동네 맛집의 기본자세를 갖춘 가게인데, 아니나 다를까 파김치를 씹어보니 다른 음식들은 보나마나다. 수북한 갖가지 채소, 선도 높은 생삼겹살은 숨이 넘어간다. 연분홍 치마가 꽃바람에~ 노래 한 자락 들으며 음식이 코로 들어가는지 귀로 나오는지도 모르고 수다를 떨다보니 두 시간이 후딱 지나간다.  
서둘러 계산대 앞에 갔던 아자씨가…    
 
: 아니 뭐여? 이게 무슨 짓이여.
: 왜 그러세요. 저희가 내야죠.
: 허 참. 손님들이 밥값 내는 게 어디 법도여. 이럴 순 읎는겨.    
: 올 때 약속하셨잖아요. 밥값내면 안 된다고.
: 말이 그렇다는 거지, 허 참 내가 X팔리잖여
 
맨 뒤에 들어오며 아예 먼저 계산을 해버린 재숙 언냐, 하여튼 대책 없는 언냐.  
바이바이 하려는데 아자씨 고무신이 눈에 들어왔다. 땀 빠져나가라고 구멍을 두개씩 뽕뽕 뚫어 놨다. 옆구리에는 ‘찔레꽃 향기 가득한 세상’이라고 쓰여 있다.  
아자씨 노래에서 나는 향기가 찔레향 아닌가.   
고무신엔 역시 맨발

고무신엔 역시 맨발

중앙SUNDAY에 기사가 나가고 난 뒤 아자씨가 혁재 형아에게 전화했단다.
-하느님 그림 잘 봤구먼.
 
하늘에서 내려다보고 거실을 그렸다고 삽자루가 졸지에 ‘하느님’됐다.
진짜 하느님아, 이 일을 어쩐대요.
  
여기를 콕 누르면 아자씨와 재숙 언냐가 나눈 엄청 재미난 이야기가 좌르르~.  
 
안충기 기자 newnew9@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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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