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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재의 시시각각] 때려잡자 부동산 투기?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통계의 왜곡에 관한 유명한 일화가 있다. 존스 홉킨스 대학은 오랫동안 여학생 입학을 불허했다. 40여 년 전 논란 끝에 여성 입학을 허용했다. 그해 지역 신문엔 이런 기사가 실렸다. ‘존스 홉킨스 여학생 33.3%가 입학 첫해 같은 대학 교수와 결혼.’ ‘뽑아줬더니 공부는 안 하고 연애?’ 여성 입학을 다시 막아야 한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그런데 웬걸. 더 파고 들어보니 숫자는 맞지만 현실을 제대로 반영한 건 아니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여학생 수는 3명, 그중 한 명이 지도 교수와 결혼해 나온 통계였다.
 

굳이 강남 통계 과장해서
전쟁 치르듯이 해야 하나

이 일화가 떠오른 건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의 취임사 때문이다. 그는 ‘투기와의 전쟁’을 말했다. “최근 집값 급등은 투기 수요 때문”이라고 했다. 근거로 든 숫자는 두 개다. 지난달 5주택 이상 보유자의 강남 4구(강남·서초·송파·강동) 아파트 매입이 전년보다 53% 늘었다는 게 첫째요, 29세 이하 매입은 54%가 급증했다는 게 두 번째다.
 
숫자는 사실이지만 진실은 좀 다르다. 5월 강남 4구 주택 거래량은 총 3997건이었다. 5주택 이상의 거래는 98건, 29세 이하는 134건이다. 각각 전체 거래량의 2.5%, 3.3%에 그친다. 게다가 5주택자나 29세 이하의 주택 매입은 각각 전년도의 18%와 21%로 거의 5분의 1로 줄었다. 과열로 보기도, 과열의 주범으로 단정하기도 민망한 수준이다.
 
김 장관이 몰라서 그런 것 같지는 않다. 가능성은 두 가지다. 진짜 그렇게 믿었을 수 있다. 그는 한 번도 국토부 업무를 다뤄본 적이 없다. 무주택자의 설움도 단단히 겪었다고 한다. 업무 파악이 채 안 된 취임 초엔 그럴 수 있다. 그게 아니라면 아예 의도적·전략적 선택이었을 수 있다. 과잉 일반화의 ‘낙인찍기’를 통해 부자와 서민을 가르고, 주택 문제의 표적지를 투기·전쟁으로 옮기는 것이다. 전자라면 전략만 수정하면 된다. 그러나 후자라면 방법이 없다. 시장과 정책의 극한 대치, ‘노무현 시즌2’로 치달을 수 있다.
 
최근 강남 집값이 오른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서울은 집이 모자라고 지방은 남아돈다. 특히 강남 4구의 수급 부족은 고질병이다. 게다가 지난해 정부는 8·15, 11·3 대책을 연이어 내놓으면서 강남 재건축 아파트의 집값 상승을 막아왔다. 여기에 새 정부 출범에 따른 기대감, 재건축이 더 어려워질 것이란 조바심, 오랜 저금리로 풍부해진 유동성, 새집에 대한 욕구 등이 맞물렸다.
 
구조적 문제인 만큼 뾰족한 해법은 없다. 길게 보고 정공법으로 가야 한다. 정권 따라 수단은 다를 수 있지만 주택 정책의 목표는 딱 두 가지다. 주거 수준을 높이는 것, (주거 약자에 대한) 주거 복지를 확충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시장 안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뜨거워지면 청년·신혼부부 같은 주거 약자가 고통받고 차가워지면 집 한 채로 노후를 지내는 노년이 고통받는다. 가계 자산의 73.6%가 부동산이라 집값 급락→경제 불안으로 이어진다는 현실론도 무시할 수 없다.
 
지금 주택 시장은 만성 질환과 급성 질환이 겹친 상황이다. 오래된 문제(지역별 수급·가격 차)와 새 문제(세대 간 이해 상충)가 같이 불거졌다. 한쪽 약을 과하게 쓰면 다른 쪽이 탈 날 수 있다. 게다가 시장은 청개구리다. 장관의 의도와 따로 놀기 일쑤다. 과잉 반응하거나 콧방귀도 안 뀐다. 오죽하면 이명박 정부는 5년간 23차례, 박근혜 정부는 4년간 18차례나 부동산 대책을 내놨겠나. ‘엄포’와 ‘한 방’으로 안 된다는 교훈은 이미 노무현 정부 때 얻었다. 당시 종합부동산세 정책의 주역이었던 김수현 청와대 사회수석은 몇 년 뒤 “주택정책에 한 방은 없더라”고 했다.
 
본래 정책이란 메시지를 단순화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다고 과하면 곤란하다. ‘투기와의 전쟁’은 좋은 구호지만 본질에서 벗어나 있다. 정치적 냄새도 짙다. 전 국토부 고위 관계자는 “주택은 과학의 영역이어야 하는데 우리나라에선 종종 이념의 영역이 되곤 한다”고 했다. 주택시장이 이념화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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