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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백범일지 70년

박정호 논설위원

박정호 논설위원

1895년 2월, 열아홉 청년 백범 김구는 황해도 신천군 청계동 안태훈 선생의 집을 찾았다. 동학 농민전쟁에서 패한 백범이 몸을 숨기고 다니던 때였다. ‘안 진사’로 불린 안태훈은 시대에 밝은 명망가였다. 이때부터 한국 독립운동사에 길이 남을 두 집안의 인연이 시작됐다. 안 진사는 안중근 의사의 아버지다. 김구는 당시 세 살 아래의 안 의사를 처음 만났다. 『백범일지』에 다음과 같이 썼다.
 
‘당년 열여섯에 상투를 틀었고 (중략) 날마다 사냥을 다녔다. 영기(英氣)가 넘치고 여러 군인들 중에도 사격술이 제일로, 나는 새 달리는 짐승을 백발백중으로 맞히는 재주가 있었다’.
 
두 사람의 인연은 이후에도 계속됐다. 안 의사의 두 동생 정근·공근 형제는 상해임시정부의 주요 인물로 활동했다. 특히 막내 공근은 김구의 최측근으로 일했다. 백범은 정근의 딸 미생을 맏며느리로 들이기도 했다. 광복 이후 임시정부를 이끌고 환국한 백범이 가장 먼저 추진한 일 가운데 하나가 안 의사 가묘(假墓)를 서울 효창공원에 조성한 것이다. 빈 무덤은 지금도 ‘주인’을 기다리고 있지만 말이다.
 
지난 26일 오후 효창공원에서 백범과 안 의사가 다시 만났다. 백범 서거 68주기 추모식에서 일반 시민들이 김구 자서전 『백범일지』를 낭독했다. 특히 올해는 『백범일지』 발간 70주년을 맞는 해. 백범 묘소 앞에서 백범의 충정이 울려 퍼지기는 처음이다. 의례성 추도를 넘어 백범의 ‘육성’을 오늘로 불러냈다. 하이라이트는 백범과 안 의사의 운명적 만남 대목. 행사명도 ‘청년 백범은 어떻게 안중근을 만났을까’였다. 불우한 시대를 우뚝 뛰어넘은 두 장부(丈夫)의 기개가 새로웠다.
 
행사를 기획한 서해성 서울시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 총감독의 변(辯)은 이렇다.
 
“『백범일지』는 문학작품으로도 훌륭하다. 활달·유쾌한 문체가 살아 있다. 두 분의 호방한 기운으로 쪼그라진 우리들의 오늘을 돌아보려 했다. 김구 선생 탄생일인 8월 29일, 『백범일지』 발간일인 12월 15일에 두 차례 더 낭독회를 열 계획이다.”
 
이날 낭독회는 백범이 스승으로 섬긴 고능선의 당부로 마무리됐다. 백범이 유학자 고능선을 처음 만난 곳 또한 ‘안 진사댁’ 사랑방이다. 스승은 제자에게 이런 가르침을 남겼다. ‘가지를 잡고 나무에 오르는 것은 기이하게 여길 만한 재주가 아니다. 벼랑에 매달려 있을 때 잡은 손을 놓는 것이 진정한 대장부다’. 서늘하다. 세상이 힘들어도 우리 모두 호기롭게 살아갈 일이다.
 
박정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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