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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보고 싶은 것만 본다면

이종화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전 아시아개발은행 수석이코노미스트

이종화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전 아시아개발은행 수석이코노미스트

바다에서 심한 풍랑을 만난 어부가 간절하게 기도했더니 풍랑이 잠잠해지고 살아난 이야기처럼 간절한 기도로 고난에서 벗어난 경우가 많이 있다. 그러나 이것이 신에게 기도하면 고난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증거는 아니다. 프랜시스 베이컨이 지적한 것처럼 간절히 기도하고도 풍랑으로 죽은 많은 어부는 아예 증언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직관적 사고에 의존하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다면
잘못 판단할 가능성 크다
건전한 비판을 귀담아듣고
효과가 검증된 정책 중에
최선책을 선택해야 한다

빨간 양말을 신고 골프를 친 날 홀인원을 했으면 ‘우연의 법칙’이 작용한 것이지 빨간 양말 때문에 홀인원을 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인간은 자신이 믿고 싶은 것에 유리한 증거만을 선택하는 성향이 있다. 통계학자 데이비드 핸드는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는 저서에서 기업의 최고경영자들에게 주가가 오르면 성과급을 지급하는 스톡옵션을 도입했더니 주가가 급격하게 오른 기업들을 소개한 신문 기사를 예로 들었다. 이런 선택된 증거는 스톡옵션이 기업 성과와 주가를 올린다는 ‘인과관계’를 보여 주지 못한다. 기자가 그 상황에 해당하는 경우만 뽑아 소개했을 가능성이 있고, 특정 기업들에서 스톡옵션 도입과는 상관없는 다른 중요한 요인으로 인해 주가가 올랐을 수 있다. 또 경영자들이 주가가 오를 것을 미리 알고 스톡옵션을 도입했을 수 있다.
 
과학자들은 인과관계를 입증하기 위해 엄밀한 실험을 한다. 신약의 치료 효과를 보기 위해 무작위로 환자들을 두 집단으로 뽑아 각각 신약과 가짜 약을 투입해 효과를 비교하는 ‘무작위 대조실험’을 한다. 그러나 사회과학에서는 어떤 정책과 결과 사이의 인과관계를 실험으로 증명하기가 쉽지 않다. 그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사회과학자들은 가능한 한 많은 자료를 가지고 다양한 통계기법으로 왜곡되지 않은 결과를 얻기 위해 노력한다. 중요한 학설들은 동료 학자들의 엄밀한 평가를 거치면서 학술지에 실리고 후속 연구자들에 의해 결과가 다시 입증된 뒤 교과서에 소개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 많은 주장은 객관적 검증을 거치지 않고 여과 없이 중요한 정책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임금을 인상하면 경제성장률이 높아질 수 있다는 주장은 이론적으로는 근거가 있다. 가계소득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임금을 높이면 가계소비가 늘고, 그로 인해 수요가 촉진돼 생산을 유발하고 다시 소득이 늘어나는 선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 반론도 많다. 실제로 효과를 뒷받침하는 증거도 부족하다. 임금은 가계소득이지만 동시에 기업의 비용이다. 비용 상승은 기업 투자와 수출에 악영향을 미친다. 영세업자들에게 과도한 임금 인상은 소득 감소를 의미하고 이는 곧 고용 감소로 이어질 수도 있다. 기업이 일자리를 줄이면 전체 노동소득이 늘어난다는 보장이 없다.
 
가계소비를 늘리는 것으로 현실에서 효과가 입증된 정책들로는 영세가구에 생필품 구매 쿠폰을 지급하거나, 육아·교육비를 직접 보조하거나, 내구소비재에 대해 일시적 세금 감면을 하는 것 등이 있다. 이는 수요 촉진을 위해 다양한 정책을 쓸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 좋은 일자리를 늘리고 생산성을 높이는 공급정책이 합해져야 지속적인 성장이 가능하다.
 
강남 4구에서 올해 5월 29세 이하 연령대와 5주택 이상 보유자들의 주택 거래가 전년 대비 급격하게 늘었다. 이를 보고 ‘투기 거래’ 때문에 집값이 오르는 정황이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그러나 이들의 주택 구입은 전체 거래량에서 비중이 매우 작아 가격 상승의 주된 요인이라는 증거가 확실하지 않다. 주택가격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려면 부동산 투기대책뿐 아니라 중장기 주택 수급, 저금리하에서 전·월세 인상, 가계대출 증가 문제를 종합해 봐야 한다.
 
정책을 선택할 때 많은 자료를 보고 객관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그러나 인간은 자기의 신념과 일치하는 것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믿고 싶은 정보만 믿는 심리적 성향을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이라고 한다. 인간의 직관적 사고는 잘못된 판단을 할 가능성이 크지만 자기가 틀렸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증거는 잘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워런 버핏은 투자자들이 유리한 정보만을 믿는 확증편향 때문에 실패한다고 지적했다.
 
새 정부에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만 모이면 잘못된 판단과 정책 실수를 할 가능성이 커진다. 중요한 정책을 결정할 때는 의도적으로 반대의견을 제시하는 ‘악마의 대변인(devil’s advocate)’이 필요하다. 언론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자기와 비슷한 견해의 글들만 골라 읽으면 확증편향에 빠지기 쉽다. 전문가들의 건전한 비판을 귀담아듣고 제대로 검증된 정책들을 검토해 그중 최선책을 선택해야 한다. 국민을 더 잘살게 할 수 있는 정책이라면 새 정부의 입맛에 맞지 않더라도 과감히 선택해 실행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종화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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