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서른 전 마지막 기회, 5~6배 이상 준비했다”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우승한 피아니스트 선우예권. 콩쿠르 우승 기록보다 탈락 경험이 더 많지만 이번에 정상의 자리에 섰다. [사진 목프로덕션]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우승한 피아니스트 선우예권. 콩쿠르 우승 기록보다 탈락 경험이 더 많지만 이번에 정상의 자리에 섰다. [사진 목프로덕션]

피아니스트 선우예권(28)은 무엇을 잘할까. 그는 곡을 빨리 익히는 피아니스트다. 얼마 전 한 공연에서 그는 피아노 트리오를 연주했다. 피아노·바이올린·첼로가 함께하는데 선우예권만 곡목 변경에 대한 통보를 받지 못했다. 공연 사흘 전 연습을 위해 피아노 앞에 앉고서야 혼자 다른 곡의 악보를 가지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그는 즉석에서 새로운 악보를 처음 읽으며 다른 연주자들과 호흡을 맞췄다. 3일 후 연주에서 청중은 이런 해프닝을 눈치채지 못했다. 새로운 악보를 빨리 읽고 음악을 익혀서 무대에 내놓는 선우예권을 잘 보여주는 일화다.  
 

반 클라이번 콩쿠르 우승 선우예권
프로 연주자가 계급장 떼고 출전
서른 번 넘게 콩쿠르 도전한 이유?
궁핍한 유학생활, 상금이 절실해 …

축복과 같은 능력이 때로는 걸림돌이 된다. 선우예권은 “그동안 큰 콩쿠르에서 준비를 소홀히 해 안 좋은 결과를 받은 적이 많았다. 게으름이 컸던 것 같고 어떤 면에서는 자만했다”고 했다. 28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 중 한 말이다.  
 
이날 기자간담회는 제15회 반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 우승을 기념해 열렸다. 선우예권은 이 대회의 55년 역사상 첫 한국인 우승자다. 미국에서 4년마다 열리는 가장 큰 피아노 콩쿠르고, 우승자에게 연주 기회를 많이 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때문에 피아니스트에게는 꿈과 같은 콩쿠르다.
 
이 콩쿠르로 일약 스타가 된 선우예권의 경력은 직선도 탄탄대로도 아니었다. 그보다는 굴곡 많은 오르막길에 가깝다. 스스로 말했듯 그는 대형 콩쿠르에 도전했다가 고배를 마신 경험이 많다. “2년 전 쇼팽 콩쿠르 때 특히 게으름이 컸던 것 같다. 한 번도 안 쳐본 곡을 치겠다고 써냈는데 뒤늦게서야 곡을 바꾸고 싶어졌다.” 선우예권은 “그런데 콩쿠르 주최 측에서 곡 변경을 못 하게 했다”며 “일주일 미친 듯이 준비하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있었는데 할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마침 독일에서 열린 인터내셔널 저먼 피아노 어워드 대회에도 출전 중이어서 시간이 부족했다. 결국 그는 쇼팽 콩쿠르에서 탈락했다. 선우예권은 2010년 퀸엘리자베스 콩쿠르도 파이널리스트에 들었지만 수상에는 실패했다.  
 
반 클라이번 콩쿠르 트로피 옆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는 피아니스트 선우예권.

반 클라이번 콩쿠르트로피 옆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는피아니스트 선우예권.

반 클라이번 콩쿠르 이전에 그가 우승한 국제 콩쿠르는 7개. 독일·미국·스위스 등지의 콩쿠르였지만 명성이나 규모 면에서 반 클라이번에는 미치지 못했다. 7번의 우승 뒤에는 보이지 않는 탈락이 훨씬 더 많았다. “만 16세 때부터인가 국제 콩쿠르에 나가기 시작해 매년 두번에서 네번씩 출전했다”고 했다. 줄잡아 계산해도 서른 번이 넘는다.
 
선우예권은 기자간담회에서 30번 이상 국제 콩쿠르에 도전한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당시에는 금전적으로 어려워서…. 궁핍하다고 해야되나…. 절실했기 때문에 선택할 여지 없이 출전했던 점이 컸다.” 중학교 졸업 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 선우예권은 우승 상금을 받아야 유학 생활비를 충당할 수 있었다.  
 
그에게 다음 기회는 없었다. “이제 서른이 넘으면 콩쿠르 나이 제한 때문에 나가지 못한다. 인생에 후회를 남기고 싶지 않았다”며 28세에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 출전했다. 보통 4~5년마다 열리는 국제 콩쿠르에 나갈 마지막 기회였고, 그동안 겪은 실패의 경험은 그를 더욱 절박하게 만들었다.  
 
게다가 그는 이미 프로 연주자였다. 피아니스트 김주영은 선우예권을 두고 “이미 연주 무대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피아니스트가 계급장을 떼고 학생들과 함께 콩쿠르에 참가하는 데에는 대단한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선우예권은 올 4월 인터내셔널 저먼 피아노 어워드에 심사위원으로 참가했다. 반 클라이번에서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할 경우 피아니스트로서 명성에 올 위험부담이 그만큼 컸다.  
 
“이번에는 다른 콩쿠르 때보다 다섯 배, 여섯 배 이상 준비했던 것 같다. 주위에서 ‘그렇게 일찍 준비하면 금방 지친다’고 할 정도였다.” 재능을 과신한 게으름 같은 것은 없었고, 인생에 후회를 남기지 않겠다는 생각 뿐이었다고 한다.  
 
콩쿠르 무대에서도 음악만 생각하는 것이 전략아닌 전략이었다. “조급하게 생각하면 그게 음악에 나타난다. 순수한 음악 자체에만 집중을 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콩쿠르에서 연주한 곡목 또한 수상에 유리한 곡보다는 음악적으로 표현할 것이 많은 작품 위주로 골랐다. “독주회를 준비할 때처럼 다양한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어떤 점에서는 콩쿠르에 불리할 수도 있는 작품도 연주했다.”  
 
마음의 부담이 컸지만 마침내 우승했고, 피아니스트로 뻗어나갈 길을 닦았다. 이번 콩쿠르 기념 음반이 23일 데카에서 디지털 발매되고 3년간 미국 전역을 돌며 연주할 기회를 얻었다. 무엇보다 세계의 주요 오케스트라, 공연 기획자들의 섭외 리스트 중 중요한 위치에 이름을 올리게 됐다. 숱한 콩쿠르 도전 끝에 빛을 본 드문 성공 스토리로 기록될만하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