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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실문화의 '신 스틸러'(Scene Stealer)?

영친왕비 쌍가락지, 장도노리개와 포장용구. 20세기 초. 중요민속문화재 제265호. [사진 국립고궁박물관]

영친왕비 쌍가락지, 장도노리개와 포장용구. 20세기 초. 중요민속문화재 제265호. [사진 국립고궁박물관]

한마디로 정성이다. 단순한 포장이 아니다. 한 땀 한 땀 바느질 하듯 온갖 마음을 기울여 물건을 감쌌다. 절차는 엄격했다. 왕실의 권위와 격식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했을까, 의문이 들 정도다. 하지만 생각을 바꿔보면 수긍이 간다. 그게 바로 문화요, 전통이 되는 까닭이다. 하나라도 허투루 넘기지 않는 정신, 그게 조선왕조를 떠받친 힘이 됐는지도 모른다.
 27일 서울국립고궁박물관에서 시작하는 ‘조선왕실의 포장 예술’(9월 3일까지) 특별전을 미리 둘러보고 든 느낌이다. 고궁박물관 지연수 전시홍보과장은 “지금까지의 전시가 주로 궁중 소장품을 보여주었다면 이번 자리는 그 유물(주연)을 돋보이게 하는 보자기·상자(조연)에 집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조연이라고 얕볼 수 없다. 오히려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조선 궁중문화의 이면을 엿보게 한다. 영화나 드라마로 치면 ‘신 스틸러(Scene Stealer)’라고나 할까. 주연보다 빛나는 조연, 우리 문화재의 소중한 조연을 한자리에 불러 모았다.  

보자기로 싸고, 향을 넣고, 상자에 보관
책·장신구·인장 등 돋보이게 한 포장예술
국립고궁박물관서 27일부터 특별전 열려

조선 중종대왕 국조보감과 이를 포장했던 물품.

조선 중종대왕 국조보감과 이를 포장했던 물품.

 예컨대 『국조보감』과 봉과(封裏) 물품을 보자. 봉과는 중요한 국가의례에 사용되는 물품을 포장하는 것을 말한다. 『국조보감』은 조선시대 역대 왕의 업적 가운데 모범이 될 만한 일을 왕대 별로 편찬한 역사서다. 『국조보감』을 종묘(宗廟)에 모실 때 보자기·상자, 끈과 의향(衣香) 등을 사용했다. 의향은 좀을 막기 위해 옷장이나 옷 갈피에 넣어 두는 향이다. 봉과 절차는 대략 이렇다. 우선 책을 보자기에 싸서 보자기 끝에 달려 있는 끈을 이용해 둘러 묶은 후 천궁(川芎·미나리과의 여러해살이풀) 가루를 채워 넣은 의향과 함께 흑칠함에 담는다. 이게 끝이 아니다. 그 함을 다시 한 번 더 보자기로 싸서 마무리했다.
영조비 정성왕후 왕비 책봉 옥책과 봉과 물품.

영조비 정성왕후 왕비 책봉 옥책과 봉과 물품.

 옥책(玉冊)은 또 어떤가. 옥책은 왕비를 책봉하거나 왕과 왕비·대비 등에게 존호(尊號·덕을 기리며 바치는 칭호), 시호(諡號·죽은 뒤에 행적에 따라 추증하는 칭호) 등을 올릴 때 옥 조각에 내용을 새긴 뒤 첩(貼)으로 엮은 것을 말한다. 왕실을 상징하는 물품인 만큼 포장방법도 각별했다. 무거운 옥 조각이 훼손되지 않도록 첩 사이에 작은 솜보자기를 깔았고, 모두 접은 뒤에는 내함(內函)과 외궤(外櫃)에 넣고 비단보자기로 싸서 포장했다.
네 폭짜리 봉황문 보자기. 봉황·모란·접시꽃·귤·복숭아 등 다양한 문양을 그려넣었당

네 폭짜리 봉황문 보자기. 봉황·모란·접시꽃·귤·복숭아 등 다양한 문양을 그려넣었당

 보자기의 종류도 재료·형태·용도·문양별로 다양했다. 함이나 이불을 싸는 데는 홑보자기(마), 장신구 등의 훼손을 막으려고 1차 포장에 사용한 겹보자기(비단), 접시처럼 무게가 나가는 물건을 둘러싼 솜보자기(비단·솜), 음식물을 따듯하게 데우는 데 쓰는 맛보자기·솜맛보자기·누비맛보자기(비단·마·솜·종이) 등이 있었다. 의례용품에는 주로 홍색을, 생활용품에는 주로 청색·남색·자색·흰색 등을 사용했다.
 조선 왕실은 자세한 물품 포장법을 남겼다. 왕실 용품을 관리하는 관청인 상의원(尙衣院)에서 용품 종류·위계에 따라 다양한 보자기와 상자를 사용했다. 최고의 예복인 왕과 왕세자의 법복(法服)은 각각 주칠(朱漆)·흑칠(黑漆) 상자에 넣어 보관했다. 관련 규례를 꼼꼼하게 기록한 『상방정례(尙方定例)』라는 책도 간행했다.
현종의 셋째 딸인 명안 공주(1667~1687)의 혼례용품을 쌌던 운보문 보자기. 현재 남아 있는 조선왕실 보자기 중 가장 오래 됐다. 보물 제1220호. 오죽헌시립미술관 소장.

현종의 셋째 딸인 명안 공주(1667~1687)의 혼례용품을 쌌던 운보문 보자기. 현재 남아 있는 조선왕실 보자기 중 가장 오래 됐다. 보물 제1220호. 오죽헌시립미술관 소장.

 전시에는 왕과 왕비의 인장, 왕실 여인들이 썼던 각종 장신구, 기타 생활용품과 이들 물건을 더욱 기품 있게 감싼 포장재가 두루 출품됐다. 지금까지 우리가 주목하지 않았던 포장예술을 당당하게 끌어낸 아이디어가 새롭다. 화려하면서도 은은한 보자기와 상자, 그리고 그 안에 담긴 고품격 궁중문화를 들여다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전시품 못지 않게 전시 자체를 정성스레 준비한 박물관 측의 수고가 느껴진다. 지난 7년간 자료를 준비하고, 관련 연구를 진행했다는 후문이다. 고궁박물관 박수희 연구사는 “포장은 단순한 외피(外皮)가 아닌 내용물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또 다른 예술품”이라고 말했다.  
 과거가 과거에 그치면 의미가 줄어들 터, 박물관 지하층에 마련한 ‘조선왕실의 전통, 현대로 이어지다’도 빠뜨릴 수 없다. 조선왕실의 포장 전통에 영감을 받은 현대작가 24인의 공예작품을 소개한다. 과거와 현재는 그렇게 이어졌다.    
 박정호 문화전문기자
 jhlogo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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