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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희의 사소한 취향] 여자 남자, 말고 사람

이영희 중앙SUNDAY 기자

이영희 중앙SUNDAY 기자

어릴 적부터 ‘훤칠한’ 아이라 레이스 달린 핑크 원피스가 잘 어울리지 않았다. 로봇 조립에 심취했던 적은 없지만, 그렇다고 바비 인형을 사 달라 부모님을 졸라 본 적도 없다. 여성스럽다거나 여자답지 않다거나, 톰보이라거나 혹은 중성적이라거나, 이런 식의 평가는 늘 불편했다. 대학교 때, 남녀 관계의 바이블이라 불리던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를 읽고는 ‘뭐지?’라고 생각했다. 갈등 상황에 처하면 ‘동굴’을 찾아 들어가고픈 ‘여성’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과학이 말하는 성차별이 불편합니다』(사진)는 남자와 여자의 ‘타고난’ 특징을 규정해 차이를 강조하는 진화 심리학자들을 비판하는 책이다. 미국 사회학자이자 문학가인 저자 마리 루티는 ‘과학’이라는 이름하에 남자와 여자를 분류해 ‘사용 설명서’를 내놓는 행태를 ‘젠더 프로파일링’이라 표현한다. 예를 들어 ‘남자는 더 많은 여성과의 짝짓기를 원하도록 생물학적으로 결정돼 있으며, 여자는 무능한 유전자를 피하기 위해 성에 소극적이다’라는 주장, ‘남자는 여성의 외모를 보고, 여자는 남자의 돈을 본다’는 통념 등은 왜 이토록 지속적으로 되풀이되고 있는가.
 
저자가 ‘성별에 따른 차이는 없다’고 단정하는 것은 아니다. 단 제시된 특징들이 생물학적으로 결정된 것인지 문화적으로 학습된 것인지에 대해선 과학계에서도 논란이 있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원래 그런 것이므로 어쩔 수 없다’를 강조하는 데는 특정한 의도가 끼어든다. 즉 과학의 권위를 등에 업고 어떤 권력관계를 방어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다. 인간은 침팬지 같은 영장류와 유전적으로 가깝지만, 언어는 물론 자기애·공감·환멸 같은 단순하지 않은 감정을 지닌 존재다. 배우자의 자질에 대한 선호도 조사 결과를 분석하면, 한 문화권에 속하는 남성과 여성이 서로 다른 문화에서 온 동성들끼리보다 더 비슷한 경향을 보였다. 이런 결과들은 무엇을 의미할까.
 
갑자기 이 책 이야기를 꺼낸 이유를 눈치챘을 것이다. 요즘 논란이 되고 있는 저명인사들의 ‘남자 담론’이 왜 문제인지 생각해 보고 싶어서다. 나 자신뿐 아니라, 주변을 둘러봐도 ‘남자’ 아니면 ‘여자’라는 기준만으로는 해석도 소통도 불가능한 복잡한 피조물이 차고 넘친다. “남자/여자는 원래 이래” 라는 말에 대해 곱씹어 볼 때가 왔다는 게 한편으론 다행스럽다. 많은 사람이 이 책을 읽고 논쟁을 했으면 좋겠다. 여자 또는 남자다운 것도, 중성적인 매력의 소유자인 것도 싫고 그냥 ‘괜찮은 인간’이 되고 싶을 뿐이라면 더더욱. 
 
이영희 중앙SUNDAY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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