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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복지 협치보다 복지 공감이 먼저다!

송인한 연세대 교수·사회복지학

송인한 연세대 교수·사회복지학

I. 함께 식사하며 N분의 1로 계산하는 상황을 가정해 보자. 공동 부담은 이기심과 경계심을 발동시킬 수 있다. 비싼 요리를 먹는 것이 이익 아닌가? 다른 이가 더 비싼 것을 먹는다면 손해 아닌가? 혼자였다면 충분했을 짜장면 대신 선택한 해삼탕은 모두에게 불필요한 지출을 가져온다. 잘 알려진 글랜스와 후버먼의 ‘저녁 식사의 딜레마(diner’s dilemma)’의 한 예다. 손해를 피하려는 행동이 결국 사회 전체의 효용을 낮추고 결국 그 손해는 개인에게 돌아가게 된다. 근저에 있는 타인과 제도에 대한 불신에서 시작한다. 이러한 불신은 복지에도 적용되곤 한다. 자신의 세금이 제대로 사용되지 않을 것이며 자신에게 복지가 안 돌아올지 모른다는 불신은 복지 반감과 조세 저항으로 이어진다.
 

공동 부담은 이기심·경계심 발동
불신은 복지 반감·조세 저항 유발
복지를 위한 부담은 ‘문명의 대가’
인간 존엄 존중하는 복지 공감 필수

II. 대한민국 공공 사회지출 수준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하위다. 최근 통계에 따르면 국내총생산(GDP) 대비 10.4%로 OECD 평균 21%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복지국가 수준으로 보자면 멕시코·칠레 등과 함께 저부담-저복지 수준에 머물러 있다. 국민의 복지 체감은 더욱 열악하다. 올해 국가 예산 400조원의 3분의 1에 육박하는 130조원이 보건·복지·노동 분야에 지출되고 있고 민간 분야 지출도 38조원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국민은 복지 혜택을 못 받고 있다고 인식한다. 낮은 인식과 불신을 비난할 수만은 없다. 우리 국민은 국가가 시행하는 제대로 된 안전망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저복지 수준에서나마 제공되는 다양한 안전망에도 불구하고 이런 불일치는 어디서 연유하는가? 우리 복지제도가 장기적 청사진 위에서 지속 가능성을 고려해 설계됐다기보다는 상황적 필요에 따라 대증적으로 시행된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흔히 복지 포퓰리즘을 지적하지만 포퓰리즘이란 바로 이런 일시적 복지를 뜻하는 것이 맞다. 게다가 역설적으로 한 대상에 대한 복지는 다른 집단의 반감을 자극하며 불신을 키워왔다.
 
III. 새 정부의 복지정책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일자리 창출과 치매국가책임제도다. 비용에 대한 우려와 비판에도 일자리 창출은 복지의 궁극적 목표가 돼야 한다. 복지 공급보다 큰 복지 수요는 사회적 부담을 가중시키므로 잠재적 복지 수혜자의 일자리는 복지 수요를 감소시킬 수 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노동이 주는 자존감과 독립된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이다. 이 점에서 정부는 자존감과 사회 통합감을 높이는 ‘괜찮은 일자리’를 창출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치매국가책임제는 새로운 제도라기보다는 이미 실시되고 있는 중증희귀질환산정특례와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를 기반으로 내용과 범위가 확대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이는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개인과 가족이 감당해온 치매라는 문제를 사회적 위험으로 인식하고 국가의 책임을 공언한 첫 정부 복지정책이기 때문이다.
 
 
IV.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다. 복지를 위한 재원이 필요함은 산술적 상식이다. 공채 발행이나 부채 증가로 일시적으로 증세 없는 복지가 확대될 수 있으나 궁극적으로 그것은 불가능함을 인정해야 한다. 해법은 두 가지다. 조세부담률 인상과 세금의 효율적 사용. 현재로서는 법인세 실효세율과 소득세 최고세율을 높여 기업과 부유층의 사회에 대한 책임을 높이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방안으로 보이며 국가의 사회복지 전달시스템 역시 진화해야 한다.
 
V. 복지를 위한 부담은 제프리 삭스의 표현을 빌린다면 ‘문명의 대가(Price of Civilization)’, 즉 문명시민으로서 자부심을 가지고 문명사회를 살아가기 위해 지불하는 비용이다. 복지국가의 대모 베아트리체 웹은 복지가 시민들이 누려야 할 최소한의 문명화된 삶이라고 말했다. 정복·약탈국가에서 시작해 복지국가로의 변화 자체가 문명의 발전이다. 사회의 문명화된 품격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태도로 알 수 있다. 도산 안창호 선생이 재무적·정신적·도덕적 자본의 필요성을 주장했듯 재무적 자본으로서 경제, 정신적 자본으로서 지식을 위해 그간 경주해 왔다면 이제 도덕적 자본, 즉 사회에 대한 책임과 신뢰를 발전시켜야 할 때다.
 
VI. 복지는 동정이 아닌 공감이다. 감정적 차원의 동정과 달리 공감은 인류를 존중하는 노력이고 태도다. 노벨평화상 수상자(1931)인 근대 사회복지의 선각자 제인 애덤스는 감상적 동정심과 전문적 사회복지를 구분해 도덕적 이기심으로 변하기 쉬운 동정을 경계했다. 젊은 시절 사회복지사로 활동했던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 역시 돌봄을 연민과 구분하며 인간 사이의 유대가 만드는 세계애를 강조하기도 했다. 동정에 의한 복지는 수혜자가 수혜 자격을 증명하는 과정에서 빈곤과 불행을 재확인하게 만들며 시혜자 역시 동정 피로를 통해 결국 소진되게끔 만든다.
 
VII. 요즘 ‘협치’가 자주 사용되듯 복지 협치도 필요하다. 그러나 그 이전에 공감 위에서 사회적 신뢰와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 추상적으로 들릴지언정 복지 공감에서 시작하지 않은 개별적 제도는 지속되기 어렵다. 모든 인간이 존엄과 가치를 존중받으며 품위 있게 함께 살 수 있는 데 대한 복지 공감이 우선이다. 복지 협치에 앞선 복지 공감이 요구된다.
 
송인한 연세대 교수·사회참여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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