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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려라 공부] 근의 공식도 모르던 세호, 학원 끊고 ‘공부 탐험대’ 했더니 수학 전교 39등

성적 올리는 자기주도학습
학부모 대부분은 자녀의 성적이 떨어지면 학원부터 알아봅니다. 하지만 사교육을 받는 것보다 혼자 공부하는 시간을 늘리는 게 성적 향상에 효과적이라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실제로 서울 경복고에서 지난해 1학년을 대상으로 ‘자기주도학습탐험대’를 운영했더니 참여자의 71.4%가 성적이 올랐습니다. 수업에서 배운 내용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자기주도학습’ 과정이 중요하다는 걸 보여 줍니다. 2006년 처음 등장한 자기주도학습은 학생 스스로 학습에 대한 목표를 세우고 전략을 실행해 자신만의 공부법을 만들고 적용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학생이 학습의 주인이 돼 전체 과정을 통제하고 진행하는 게 필요합니다. 판단력과 의사결정 능력이 생기는 초등학교 3~4학년부터 할 수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번 주 ‘열려라 공부’에서는 자기주도학습의 중요성과 효과를 소개합니다.
 
일반고 중 하나인 경복고(서울 종로구) 2학년 박세호(17)군은 중학교 때까지 이른바 ‘수포자(수학을 포기한 사람)’ ‘영포자(영어를 포기한 사람)’였다. 중학교 3년 동안 수학 과목은 20점대, 영어 과목은 10점대에서 벗어나 본 적이 없다. 수학·영어 시험에서 문제가 세 줄 이상이면 문제를 다 읽지도 않고 답을 찍었다.
 
수학·영어 과목은 공부할 엄두를 못 냈다. 초등학교 때부터 학업을 소홀히 한 탓에 기초가 부족했다.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수학의 기본인 ‘근의 공식’을 이해하지 못했다. 영어 문장의 기본 형식 중 하나인 5형식 역시 잘 알지 못했다.
 
이런 박군이 고등학교에서 ‘대포자(대학 진학을 포기한 사람)’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 같았다. 1학년 1학기 중간고사에서도 수학·영어 성적이 30점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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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던 박군의 수학·영어 성적이 올해 1학기 중간고사에선 각각 60·50점대로 껑충 뛰었다. 특히 수학은 전교 39등 을 기록했다. 박군에게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사교육이라도 ‘세게’ 받은 것일까.
 
그렇지 않다. 오히려 박군은 지난해 ‘사교육을 받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학교에 냈다. 경복고에서 지난해부터 운영하는 ‘자기주도학습탐험대’의 대원이 되기 위해서였다. 서약서엔 사교육을 안 받는다는 것 외에도 ‘주 2회의 자기주도학습 컨설팅에 빠짐없이 참여하며, 성실히 참여하지 않아 ‘경고’를 받으면 탈퇴할 것을 보호자 연서로 약속한다’는 내용도 들어 있다. 현재 대원은 1, 2학년 11명씩 모두 22명이다.
 
대원들은 매주 화·목요일 오후 6~9시 학교의 ‘자기주도학습실’에 남아 있다. 국어·영어·수학·사회·과학교사가 번갈아 들어와 이들에게 질문을 받고 설명해 주는 등 학습 컨설팅을 해 준다. 월·수·금요일엔 그야말로 각자 알아서 자율학습을 한다. 학생 중 상당수는 자기주도학습실에 남아 공부를 한다.
 
초·중학교부터 혼자 공부하는 습관을
 
‘자기주도학습탐험대’에 참여한 1~2학년 학생들이 지난 14일 오후 ‘자기주도학습실’에서 김성회 수학교사(오른쪽)의 설명을 듣고 있다. 학생들은 매주 화·목요일엔 주요 과목 교사들에게 학습 컨설팅을 받고 월·수·금요일엔 자율학습을 한다. [임현동 기자]

‘자기주도학습탐험대’에 참여한 1~2학년 학생들이 지난 14일 오후 ‘자기주도학습실’에서 김성회 수학교사(오른쪽)의 설명을 듣고 있다. 학생들은 매주 화·목요일엔 주요 과목 교사들에게 학습 컨설팅을 받고 월·수·금요일엔 자율학습을 한다. [임현동 기자]

박군은 탐험대에 들어와서야 자기 스스로 계획을 세우고 체계적으로 공부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처음으로 ‘탐험’했다. 탐험에서 얻은 성과는 자신감이다. 박군은 “예전엔 혼자 문제집 한 권을 못 풀었는데 이제는 혼자서 해내고 뿌듯함을 느낀다. 자신감을 얻어 장차 방송 PD가 되는 꿈을 키우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보람은 다른 대원들도 맛보고 있다. 탐험대 학생들은 “혼자 공부한 덕분에 학습에 흥미가 생기고 성적이 올랐다”고 한결같이 말했다. 실제로 지난해 참가자 중 71.4%가 국·영·수 성적이 올랐다. 이들의 전체 평균 점수는 1학년 1학기 중간고사에서 72.9점이었는데 기말고사에선 77.4점으로 4.5점 올랐다. 평균이 20점이나 상승한 학생도 있다.
 
탐험대에 들어오기 전까지 사교육을 받은 학생도 여럿이다. 이들은 학원에 다닐 때는 오르지 않던 성적이 탐험대에 들어온 뒤 오르는 진기한 경험을 했다. 탐험대의 강준묵(17·2학년)군이 이런 사례다. 강군은 중학교 3년 내내 수학·영어학원을 다니며 하루 평균 4시간을 학원에서 보냈다고 한다. 그 바람에 혼자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이 거의 없었다.
 
고교에 올라와 탐험대에 참여하면서 학원을 그만뒀다. 그러면서 혼자 계획을 세워 공부하고 지식을 알아가는 즐거움을 알게 됐다. 중학교 때까지 3등급대에 머물던 그의 성적은 1~2등급으로 올랐다.
 
“선생님,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2학년 구본준군이 매주 화·목요일 이뤄지는 학습 컨설팅 시간에 손을 들고 교사에게 질문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선생님,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2학년 구본준군이 매주 화·목요일 이뤄지는 학습 컨설팅 시간에 손을 들고 교사에게 질문하고있다. [임현동 기자]

경복고가 탐험대를 운영하는 것은 박군·강군 같은 학생들에게 자기주도학습을 경험하게 하기 위해서다. 이 학교 김성회 수학교사는 “고교의 각종 프로그램은 주로 방과후 활동 위주이고 교과목은 학생들이 사교육에 많이 의존하기 때문에 스스로 공부하며 자신감을 키우는 프로그램이 흔하지 않다. 이 점에서 자기주도학습탐험대가 상당한 효과를 내고 있다”고 소개했다.
 
실제로 사교육 없이 혼자 힘으로 공부하는 학생이 국내엔 흔치 않다. 만 15세의 사교육 시간은 주당 평균 3.6시간(2012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길며 회원국 평균(0.6시간)의 6배에 이른다. 지난 3월 교육부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초·중·고생 중 67.8%가 사교육을 받았다.
 
서울 경복고 ‘자기주도학습탐험대’ 참가자들이 학교에 제출한 서약서. ‘사교육을 받지 않고 혼자 힘으로 공부하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임현동 기자]

서울 경복고 ‘자기주도학습탐험대’ 참가자들이 학교에 제출한 서약서. ‘사교육을 받지 않고 혼자 힘으로 공부하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임현동 기자]

너도나도 사교육을 받는 상황에서 역설적으로 각 고교의 전교 1등들은 공부 비결로 ‘자기주도학습’을 꼽고 있다. 본지가 2013년 6월 이후 ‘열려라 공부’(전교 1등의 책상)에 소개된 각 고등학교 문·이과 1등 80명을 분석해 보니 혼자 공부하는 시간이 주당 평균 37.7시간으로 사교육 시간(6.5시간)의 5.8배나 됐다. 이들은 혼자 공부하는 시간을 확보하려고 학원을 그만두기도 했다. 2015년 치러진 대입 수능에서 만점을 받은 최민주(20·서울대 경제학부2)씨는 “어려운 문제는 최대한 혼자 힘으로 해결하려 했다. 이 과정에서 탐구력이나 문제해결력이 좋아졌다”고 말했다.
 
아이가 성적 떨어져도 참고 지켜봐야
 
학생들의 이 같은 경험은 2011년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연구 결과와 일치한다. KDI가 그해 발표한 보고서(‘왜 사교육보다 자기주도학습이 중요한가’)에 따르면 고3이 수학 사교육을 주당 1시간 더 받으면 수능 점수(수리영역 백분위)가 평균 1.5점 높아지지만 혼자 1시간 더 공부하면 1.8~4.6점 상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연구자였던 김희삼 광주과학기술원 기초교양학부 교수는 “학년이 높아질수록 자기주도학습의 효과가 발휘되는 것을 보여 주는 연구가 많다. 자기주도학습 능력을 극대화하려면 초·중학교 때부터 혼자 공부하는 습관을 기르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자기주도학습을 강조하는 교육 전문가들에 따르면 자기주도학습 능력은 학습 목표 설정, 계획 수립, 실천, 진단과 평가, 수정의 과정을 거치며 길러진다. 여기엔 학생·부모·교사 간의 친밀한 관계 형성이 필수적이다. 김판수 숭실대 CK교수학습계발연구소장은 “초등학생들의 학습 동기는 ‘부모를 기쁘게 하기 위해서’인 경우가 많다. 부모와의 관계가 좋아야 자기주도학습 능력이 잘 높아진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이런 만큼 부모가 자녀보다 앞서 모든 것을 결정하거나 결과에만 집착하는 것은 자기주도학습 능력을 키우는 데 걸림돌이 된다. 송인섭 숙명여대 교육학과 명예교수는 “학생 스스로 학습권을 갖고 주도적으로 해 나가는 능력을 갖추려면 부모는 한 걸음 떨어져 자녀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송 교수는 “아이가 자기만의 공부법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시행착오를 겪거나 성적이 떨어질 수도 있다. 이때 결과만으로 자녀를 평가하면 자녀는 학업에 흥미를 잃을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전민희 기자 jeon.mi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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