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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수치에 대하여

오민석 문학평론가단국대 교수·영문학

오민석 문학평론가단국대 교수·영문학

헤겔은 수치를 “자연계와 감각계로부터의 분리”라고 정의했다. 짐승들은 자연계에만 머물러 있기 때문에 아무런 수치심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수치는 존재가 자연의 단계를 넘어 인간의 층위로 진입할 때 생겨나는 것이다. 그가 말하는 ‘자연’은 타자와의 연대를 배제하고 사적인 이익만 추구하는 (짐승 같은) 상황을 지칭하기도 한다. 일례로 독재자들은 수치를 모른다. 따라서 수치는 닫힌 존재(자연)가 타자를 향해 열린 존재(인간)로 전이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것이기도 하다. 수치를 알고 수치심을 느껴야 비로소 인간의 반열에 들 수 있다는 것이다.
 

수치심 느껴야만 비로소 인간의 반열에 들어
막무가내 인신공격은 수치를 대면 않기 때문

자기 바깥의 사유를 하지 않는 모든 존재는 수치심을 모른다. 그런 존재들은 오로지 자신밖에 모르며 자신의 이해관계에만 충실하기 때문이다. 지난겨울 내내 많은 시민이 대통령의 국정 농단이라는 엄청난 사건 앞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수치를 느꼈다. 대통령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사람이고, 그리하여 그는 바로 국민의 ‘얼굴’이었기 때문이다. 국민과 대통령 사이의 이와 같은 동일시 혹은 거울 효과가 없었다면 우리들은 그렇게 분노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를 대표하는 얼굴이 우리를 외면하고, 무시하고, 배반하며, 철저하게 자신에게만 몰두할 때 우리는 버림받음을 느낀다. 우리의 다른 얼굴이 ‘인간’에서 ‘자연’으로 돌아갈 때 그 다른 우리의 얼굴에 대해 우리는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고, 우리에게서 그 얼굴을 지우기 위해 긴 겨울을 광장에서 견뎠던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수치는 사랑과 연결돼 있다.
 
추운 겨울의 몇 달 동안 우리는 우리 내부의 이런 수치심과 싸웠고, 대통령은 다른 사람으로 바뀌었다. 성향이 전혀 다른 얼굴이 이제 우리를 대표하는 얼굴이 됐다. 문제는 국민을 버리고 사욕에만 빠져 있던 대통령과 한 패가 되어 나라의 수치를 키워 왔던 사람들의 태도다. 다수 국민이 극도로 분노할 때 그들은 자연에서 인간으로 넘어와 수치의 얼굴을 국민들에게 잠깐 보여준 적도 있었다. 그러나 대선에서 패배하자 이들은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 그들만의 완강한 성에 자신들을 가두고 있다. 그들의 얼굴에서 수치를 찾아본다는 것은 현재로서는 거의 불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수치심을 느끼는 것이 비로소 인간의 영역에 발을 딛는 것이라면, 수치에서 벗어나기 위해 가장 먼저 할 일은 그 수치를 유발한 진원(震源)과 정직하게 대면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과 단호하게 작별하는 것이다. 이 ‘대면’과 ‘작별’이 부재할 때 존재는 영원히 자연의 상태에 머물게 될 것이다. 그러나 모든 존재는 관계적이어서 자연 상태에 있는 인간들은 수치를 아는 다른 인간들로부터 끊임없이 ‘호명(interpellation)’당한다. 사회적 양심이 관계 내부에 있는 수치의 영역을 용납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상태에서 수치의 진원을 떠나지 않고 여전히 그 늪에 빠져 있는 ‘자연인’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행위는 생존을 위한 ‘공격’밖에 없다. 왜냐하면 자연인들에게 공격은 방어의 다른 이름이기 때문이다. 이 공격 때문에 국민이 위임한 대의정치가 제대로 가동되지 않는다. 공화국의 이념은 정지되고, 국가는 자연과 인간의 각축장이 된다.
 
이제 겨우 자연에서 인간의 상태로 넘어온 자유 대한민국은 소수의 자연인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어떤 자연인은 현 정부를 아무런 위장도, 망설임도 없이 ‘주사파 정부’라고 공격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현 대통령에게 표를 던진 다수의 국민이 주체사상의 추종자들이란 말인가. 수치를 대면하지 않을 때, 막무가내성 공격이 난무한다.
 
앞뒤, 물불 가리지 않는 공격은 수치를 모르는 자연이 스스로를 자연의 감옥에 가둘 때 발생한다. 헤겔의 먼 철학적 아버지인 플라톤이 그의 ‘공화국’에서 독재자를 짐승의 상태에 비유한 것도, 자연의 상태가 갖는 이와 같은 맹목성, 타자 의식의 부재 때문이었다. 해방 이후 우리는 과도할 정도로 자연에 가까운 정권들을 여러 번 경험했다. 무차별적인 공격과 폭력이 난무했으며, 수많은 사람이 그 자연의 폭력 앞에 희생됐다. 소크라테스의 말대로 인간의 모든 행위는 선을 지향해야 한다. 선악은 인격에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오민석 문학평론가·단국대 교수·영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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