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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훈의 시시각각] “영혼 있는 공무원이 되시라”

고대훈 논설위원

고대훈 논설위원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며칠 전 취임식에서 “영혼이 있는 공무원이 되시라”고 주문했다. “ ‘공무원이 무슨 영혼이 있느냐’라는 말은 하지 마라. 국정 농단에 관여한 문화행정에 책임을 묻겠다”는 말도 했다. 유추하자면 박근혜 정부에서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업에 개입한 ‘영혼 없는 공무원’은 각성하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고개를 끄덕이게 되면서도 영혼이라는 게 없애고, 만들고, 복원시킬 수 있는 관리의 대상이 되는지엔 의문이 든다.
 

권력에 줄 세우기는 위험
영혼 없는 게 관료의 본질

공직사회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무사안일, 복지부동, 철밥통을 거쳐 영혼론으로 변천해 왔다. 백 년 전 막스 베버는 정치적 중립성에 방점을 두고 영혼 없는 관료라는 개념을 처음 제기했다. 1970년대 미국의 응용현상학자 랄프 험멜은 ‘생김새가 인간과 비슷해도 머리와 영혼이 없는 존재’를 공무원으로 규정했다. 정치에 휩쓸리지 말고 법과 원칙에 따라 일하면 그만인 게 관료의 본질이라는 취지였다. 이 표현이 한국으로 건너오더니 정권의 입맛에 맞춰 자신의 소신과 신념을 내던지며 변신을 거듭하는 정치적 관료를 상징하는 말로 변질됐다. 여기서 영혼을 인위적으로 조절할 수 있다는 인식의 왜곡은 출발한다.
 
정권 교체기에는 개혁을 앞세워 공무원의 군기를 잡아 보면서 힘을 시험해 보는 게 권력의 속성이다. 이때 통치권자의 영혼에 주파수를 맞추는 건 공직사회의 불문율이다. 권력은 절대적인 충성을 얻고, 공무원은 자리 보전과 영달을 챙기는 영혼의 거래가 가능해진다. 꼭 우리만의 일도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직후 제임스 코미 당시 연방수사국(FBI) 국장에게 러시아 내통 의혹 사건의 수사를 중단하라며 ‘충성(loyalty)’을 요구했다는 보도를 접했을 때엔 미국도 다르지 않구나 하며 위안을 삼았다. 다만 코미가 자신의 영혼이 길들여지는 걸 거부한 점은 달랐다.
 
요즘 국가 정책이 한순간에 휴지로 변하는 모습을 보면 어리둥절하고 걱정이 된다. 성과연봉제 도입에 앞장섰던 사람이 주무부처 차관이 되자 없던 일로 만들었다. 교육부는 개발비 43억원의 혈세를 낭비하고도 죄송하다는 말 한마디 없이 국정 역사교과서를 폐기했다. 원자력의 장점을 홍보해 온 산업통상자원부·한국수력원자력은 ‘탈원전 시대’가 선포되자 꿀 먹은 벙어리가 됐다. 감사원은 4대 강 사업에 네 번째 감사에 착수하고, 민간 영역의 통신비를 정부가 정한다고 하지만 누구 하나 입도 뻥끗 못하고 있다.
 
국민의 삶과 직결된 정책을 조변석개(朝變夕改)처럼 뒤집으려면 명분과 당위성은 물론이고 국민적 합의를 구해야 하는데 이런 절차는 생략됐다. 정권의 이념과 철학을 간파한 눈치 빠른 공무원의 오락가락하는 영혼만큼이나 어지럽다. 되돌아보면 박근혜 정부의 몰락은 ‘문화융성’이니 ‘창조경제’니 하며 일부 공무원들이 법과 원칙에서 벗어나 영혼이 있는 척하며 앞장선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조만간 관가에는 인사태풍이 몰아칠 것이다. 전 정권에서 요직을 맡았다는 이유만으로 고위 공무원들은 1호 청산 대상이다. 권력이 시키는 대로 한 죄뿐이라고 변명한들 소용없다. 졸지에 하수인과 부역자라는 ‘영혼 부재’의 낙인이 찍히면 물러나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 빈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영혼 맞추기 경쟁은 이미 익숙한 풍경이 됐다. 박근혜 정부 때 옷을 벗은 중앙부처의 고위 공무원이 들려준 하소연이다. “호기를 부리며 눈치 없이 입바른 소리를 했다가 밀려난 뒤 밥거리를 찾아 기웃거리는 선배를 보고 후배 공무원들이 뭘 배우겠소.” 영혼을 고민하지 말고 알아서 기는 게 상책이라는 말을 하고 싶었으리라.
 
영혼의 유무(有無) 논란에는 정치권력의 책임이 크다. 과거 정부들도 예외 없이 줄 세우기와 코드 맞추기를 강요했다. 소신보다 보신, 공복 의식보다 노예 근성이 판치는 공직문화가 정착됐다. 공무원에게 영혼이 없도록 그냥 놔두면 된다. 그래야 권력을 의식하지 않고 소신껏 정책을 펴면서 통치세력이 아닌 국민을 상전으로 모신다. 잃어버린 영혼을 회복시켜주겠다는 발상은 그래서 위험하다. 
 
고대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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