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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초’ 조선업 도시의 역설 … 작년 직장서 밀려난 10명 중 4명이 여성

불황 몸살 앓는 거제, 데이터로 분석해보니
대우조선해양의 초대형 크레인. 수주 부진이 지속되면 언젠가 멈춰 설지도 모른다. [거제=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대우조선해양의 초대형 크레인. 수주 부진이 지속되면 언젠가 멈춰 설지도 모른다. [거제=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대한민국 대표 제조업 도시 거제가 몸살을 앓고 있다. 조선업 불황 때문이다. 세계 선박 시장 점유율 수위를 다투던 대우조선해양은 최근 2년간 3조7000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위기의 거제를 실업률과 부동산 두 데이터를 통해 들여다봤다.  
 

구직급여 수령자 역대 최대
작년 6481명 받아 1년 새 82% 급증
정년 앞둔 58~60세 15%로 많아
숙박·음식업 종사자들도 타격 심해

부동산 시장 거품 꺼져 꽁꽁
아파트 값 들썩이는데 거제만 역주행
외국인 근로자 15% 줄어 임대 안 돼
“은행 대출 이자도 못 내는 집이 태반”

역대 최고 실업률 뜯어보니
 
지난해 거제의 실업률은 2.6%였다. 전국 평균(3.7%)보다는 낮지만 거제시가 자체 통계를 내기 시작한 2008년 이래 최고치다.
 
구직급여(비자발적으로 실직한 근로자가 구직 활동을 할 때 받는 실업급여) 수령자 역시 지난해 6481명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2015년 대비 82%나 늘었다.
 
중앙일보는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2005~2016년 거제시 구직급여 수령자 데이터 전수(약 1만5000여 건)를 확보해 분석했다. 그 결과 최근 1~2년 새 나타난 몇몇 특징을 확인할 수 있었다.
 
 
우선 1000인 이상 사업장 출신 수령자가 급증했다. 이런 수령자는 2014년까지만 해도 전체 수령자의 5~10% 수준에 불과했다. 하지만 2015년 22%, 2016년 35%로 늘었다. 대우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이 대규모 희망퇴직을 받으며 구조조정을 한 탓이다.
 
여성 수급자 비중이 큰 것도 특징이다. 조선업은 대표적인 ‘남초 산업’이다. 설계에서 건조까지 대부분의 일을 남성이 담당한다. 그런데도 지난해 구직급여 수령자 중 37%(2421명)가 여성이었다. 구조조정이 ‘약한 고리’인 여성에게 집중된 여파다. 2015년 대우조선해양의 여성 직원 숫자는 606명이었지만 지난해엔 381명만 남았다. 1년 새 40% 가까운 여성이 회사를 떠난 것이다. 대부분 경리 업무를 담당하던 무기계약직 여성이었다.
 
 
한밤중에도 불을 밝힌 조선소. 조선업계는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분투 중이다. [거제=권혁재 사진전문기자]

한밤중에도 불을 밝힌 조선소. 조선업계는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분투 중이다.[거제=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수급 비중이 큰 상위 3개 연령은 60세(5.72%), 58세(4.51%), 59세(4.38%)였다. 이들 연령이 거제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각각 약 1%다. 인구 비중이 가장 큰 35세(2.2%)의 지난해 구직급여 수령자 비중은 3.1%였다. 정년을 1~2년 앞둔 50대 후반이 가장 먼저 회사 밖으로 내몰린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12년 새 구직급여 수령자가 가장 많이 늘어난 업종은 과학 및 기술 서비스업(894%), 제조업(557.1%), 숙박·음식업(496.0%)의 순이었다. 조선업과 직접 관련이 없는 업종 중에선 숙박·음식업이 가장 큰 타격을 입은 셈이다.
 
재취업은 더 힘들어졌다. 2015년까지만 해도 전체 구직급여 수령자 중 35~40%가 재취업해 급여 수령을 중단했다. 하지만 지난해 재취업에 성공해 급여 수령을 중단한 실업자는 26.6%에 불과했다.
  
부동산 과열이라는데 거제는 얼어붙어
 
 
이른 아침 출근하는 조선소 직원들. [거제=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이른 아침 출근하는 조선소 직원들.[거제=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정부는 지난 19일 아파트 분양권 전매를 전면 제한하는 등 고강도 부동산 대책을 내놓았다. 그만큼 부동산 시장이 과열이란 얘기다. 하지만 거제의 부동산 시장은 꽝꽝 얼어붙었다.
 
KB국민은행이 매달 발표하는 아파트매매가격지수에 따르면 거제 아파트값은 2012년 3월을 정점(102.6)으로 하락세가 뚜렷하다. 2015년 들어 반등하는 듯했지만 얼마 가지 못해 다시 하락세로 돌아섰다. 전국 지수가 2014년 7월을 최저점(94.0)으로 꾸준히 상승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거제 아파트값이 나홀로 역주행하는 것도 조선업 탓이다. 거제시엔 2010년 이후 아파트 공급이 꾸준히 늘었다. 이 무렵 조선업체들은 해양플랜트를 대거 수주했다. 해양플랜트 사업은 보통 조 단위에 달할 정도로 덩치가 크다. 하지만 국내 업체들은 수주만 했지 설계 능력이 부족해 유럽 등에서 엔지니어를 대거 데려왔다. 거제시 등록 외국인 숫자는 2012년 9000명 수준에서 2015년 1만5000명으로 3년 새 66%나 늘었다. 이들을 겨냥해 면 단위까지 아파트가 우후죽순 들어섰다. 거제에서 30년간 부동산중개업을 해 온 우종모씨는 “외국인 대상 임대사업 투자가 늘며 아파트 공급이 크게 증가했다”고 말했다.
 
 
조선소 내 자전거 주차장. 대규모 희망퇴직으로 빈자리가 늘었다. [거제=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조선소 내 자전거 주차장. 대규모 희망퇴직으로 빈자리가 늘었다.[거제=권혁재 사진전문기자]

하지만 버블은 오래 가지 않았다. 단지 안에 국제학교가 있는 옥포동 엘크루랜드마크, 49층짜리 장평동 유림노르웨이숲 등의 월세는 한때 200만~300만원을 호가했지만 지금은 그 절반에도 못 미친다. 조선업 불황으로 외국인들이 본국으로 돌아가며 수요가 급감했기 때문이다. 거제시청에 따르면 지난 4월 현재 등록 외국인은 2015년 대비 15% 적은 1만2900명이다.
 
버블이 꺼지며 부동산 투자자들은 사면초가에 빠졌었다. 대우조선해양 인근 아주동에서 외국인을 대상으로 아파트 임대사업을 했던 조미애씨는 “지난해 9월 이후 세입자를 못 구해 요즘은 관광객들에게 단기로 방을 빌려주고 있다”고 말했다.
 
 
안개에 잠긴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신규 수주가 부진해 미래가 불투명하다. [거제=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안개에 잠긴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신규 수주가 부진해 미래가 불투명하다. [거제=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가장 타격이 큰 것은 대우조선해양 등 대기업 협력업체들에 기숙사용으로 다가구·다세대 주택을 빌려주던 사람들이다. 불황이 닥치며 협력업체 물량팀(파견 일용직 근로자)이 가장 먼저 구조조정됐기 때문이다. 아주동에 다세대 주택을 갖고 있는 조귀숙씨는 “협력업체 임대 수요가 줄며 은행 대출 이자도 제대로 못 내는 집이 태반”이라고 말했다.
 
 
“여자들 일부터 정리”
지난해 희망퇴직한 최순씨


 
최순(39)씨는 지난해 1월 대우조선해양을 퇴사했다. 입사 21년 만이었다.
 
최씨는 계약직으로 시작해 무기계약직으로 일했다. 경리 업무 담당이었다. 20년 넘게 같은 일을 했지만 큰 불만은 없었다. 한창 호황이던 2012년 연봉이 4000만원. 거제엔 여자가 이만큼 벌 수 있는 일자리가 별로 없다. 최씨는 “고마운 마음으로 열심히 일했다”고 했다.
 
하지만 회사가 어려워지자 가장 먼저 희망퇴직 압박이 들어왔다.
 
“회사를 줄여도 배는 만들어야 하니까요. 필수적이지 않은 일부터 정리할 수밖에 없잖아요.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은 대부분 여자죠. 서운했지만 수긍할 수밖에 없었어요.”
 
최씨와 같은 일을 하던 동료 대부분도 희망퇴직을 신청했다. ‘남초 산업’ 조선업의 도시 거제에서 지난해 여성 구직급여 수급자가 37%나 된 건 그래서다.
 
최씨는 그나마 운이 좋은 편이다. 사내 커플이었던 남편은 회사에 남았다. 최씨 역시 아파트 감리업체에 재취업했다. 아파트가 완공되는 2019년까지만 일하는 계약직이지만 요즘 거제에선 이만한 여성 일자리 구하기도 만만찮다.
 
얼마 전 최씨의 사무실에서 사무 보조직을 뽑을 땐 여성 100명이 몰렸다. 남자들도 일자리 구하기가 어렵다 보니 최근엔 ‘맞벌이’가 아니라 아예 남편 대신 생계 전선에 뛰어드는 여성도 늘고 있다. 최씨는 “요즘엔 마트 캐셔(계산원) 자리도 없어서 못 구한다”고 말했다.
 
 
 
“이젠 중산층 아니다”
정년 2년 앞두고 퇴직 장오씨

 
장오(58)씨는 지난해 11월 입사 33년 만에 대우조선해양을 희망퇴직했다. 말이 희망퇴직이지 사실상 해고였다. 작업반별로 희망퇴직 정원이 정해져 내려왔다. 회사에선 정년 1~2년 남긴 직원들에게 잔업 특근을 주지 않았다. 연월차 수당도 없애겠다고 했다. 그러면 월급이 반 토막 난다. ‘이렇게 일하느니 위로금이라도 받는 게 낫겠다’ 싶어 희망퇴직을 신청했다.
장씨는 대우조선해양에 근무할 때 늘 사복(社服) 차림이었다. 일할 때도, 문상을 갈 때도 사복만 입었다. 회사가 그였고 그가 회사였다. 그에게 회사는 자부심이었고 자랑이었다. 하지만 “정년을 채우고 명예롭게 퇴직하고 싶었던” 그의 꿈은 희망퇴직과 함께 산산이 부서졌다.
그는 요즘도 사복을 입고 대우조선해양으로 출근한다. 하지만 그의 사복엔 ‘대우조선해양’이 아니라 협력업체인 ‘경민기업’ 마크가 붙어 있다. 같은 곳에서 같은 일을 하는데 소속 회사만 달라진 것이다. 바뀐 게 또 있다. 지난해 9000만원이었던 연봉이 올해는 3000만원으로 줄었다.
“이젠 마트에서 생필품 하나를 살 때도 가격을 봅니다. 자식이라곤 딸 하나뿐이고 다 키워서 남들보다 경제적 압박이 심하지 않은 편인데도 그래요. 그런데도 아내도 저도 참 힘듭니다.”
고졸 생산직이지만 대졸 사무직 못지않게 사는 ‘블루칼라 중산층’. 장씨가 그랬다. 하지만 그는 이제 “중산층이 아닌 것 같다”고 말한다.
 
 
“하우스푸어 내 얘기”
신도시 자영업자 김우섭씨

 
김우섭(51)씨는 2013년까지 대우조선해양에 다녔다. 고졸 생산직 출신으로 부장까지 승진했으니 제법 성공한 경우였다. 그런 그가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둔 데는 이유가 있었다.
“퇴사 직전 협력사 지원 업무를 했는데 대금 입금이 제때 안 되는 거예요. 회사는 흑자라는데 뭔가 이상하다 싶었죠. ‘회사가 어려워지면 다들 나올 테니 그 전에 나가서 기반을 잡자’고 생각했어요.”
퇴직을 결심한 김씨의 눈에 아주동이 들어왔다. 아주동은 2000년대 후반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배후지로 개발된 신도시다. 고급 아파트가 들어서고 사람들이 몰리며 상권이 커졌다. 김씨는 옥포동 집을 팔고 퇴직금에 은행 대출까지 끌어들여 땅을 샀다. 3층짜리 다세대 건물을 올린 뒤 1층에 직접 식당을 운영하며 2, 3층은 협력업체 기숙사로 임대했다.
처음엔 월 200만원 정도 하는 은행 이자를 갚고도 연 5000만원 이상이 남았다. 식당은 늘 꽉 찼고 임차인들은 따박따박 월세를 냈다. 한데 딱 1년뿐이었다. 지난해 대우조선해양의 구조조정이 본격화되자 식당에 빈자리가 생기고 임차인은 월세를 밀렸다. 불과 1년 만에 은행 이자 내는 것도 버거워졌다.
김씨는 요즘 제대로 잠을 못 잔다. 전 재산을 투자한 건물을 날리면 어쩌나 하는 걱정 때문이다. 실제로 몇 달 전 근처 건물이 경매에 넘어갔다. 건물 주인은 은행 빚을 못 갚아 결국 두 손을 들었다. 김씨는 “신문에서나 보던 ‘하우스푸어’가 내 얘기가 됐다”고 말했다.
 
거제=정선언·손국희 기자 jung.sune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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