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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속으로] 초졸 여장부, 기자 질문에 운 ‘울보’, 인기 스타 ‘강효리’

역대 여성장관들
“여자의 정치적 능력이란 극히 한정된 범위, 즉 외교적 보조, 기껏 해봤자 문교적(文敎的) 일부 구실밖에는 더 못한다는 것은 정치사가 증명하는 바가 아닌가….(중략)”

이승만 대통령이 청혼한 임영신
거절했지만 이름 따 ‘승당’ 호 지어

소신 밝혀 전두환이 발탁한 김정례
“가방끈 짧아 보따리 싸들고 와 공부”

의원들이‘독한 여자’라 부른 송정숙
“말로 성폭행을 당한 기분 들었다”

여장관 비율 9%, 186개국 중 142위
국회의원·전문가·위원회 출신 많아

“여성들은 전문성 비해 사회성 부족
인적 네트워크·소통 적극 나서야”

 
1948년 8월 이승만 대통령이 지금의 산업통상자원부에 해당하는 상공부 장관에 여성인 임영신씨를 앉히자 한 일간지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초역사적 사실”이라고 반대하며 쓴 사설의 일부다.
 
정부 수립 69년. 바야흐로 ‘여성장관 시대’가 본격화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23일 현재 4명의 여성 장관을 기용했다. 초대 내각으로는 노무현 정부와 함께 역대 가장 많은 숫자다. 강경화(외교부)·김현미(국토교통부) 장관은 이미 임명됐고, 청문회를 앞두고 있는 김은경(환경부)·정현백(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에 대해서도 “무난히 임명장을 받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노무현 정부에 몸담았던 장하진(66) 전 여성가족부 장관은 23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그동안 여성들이 임명되지 않았던 분야, 즉 인사수석·보훈처·외교부·국토부 리더에 여성을 임명했다는 점에서 숫자를 넘어서는 질적인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임영신 장관을 시작으로 한국의 여성 장관 역사는 70년에 이른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 전까지 여성 장관은 총 40명에 불과하다. 여성의 사회참여가 제한된 유교 문화 속에서 여성 장관의 기용은 그 자체로 늘 ‘홍일점’ ‘대사건’ ‘이변’ 같은 수식어를 달고 다녔다.
 
임영신(1899년생) 장관은 교사이자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에서 신학 석사학위를 받은 지식인이었다. 50세의 유부남이었던 이승만 대통령이 미국에서 임영신 장관에게 청혼했던 일화는 유명하다.
 
임 장관은 “나는 고국에 돌아가 국민을 교육시키며 박사께서 돌아오실 때까지 기다리겠다”며 청혼을 거절했지만 훗날 이승만의 ‘승(承)’을 따 자신의 호를 ‘승당(承堂)’이라 지었다.
 
장관 재직 시절 공금 유용과 횡령 혐의로 기소돼 물러난 임 장관은 결국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이후 국회의원, 중앙대 초대 총장 등 수많은 ‘여성 최초’ 기록을 남겼다.
 
80년대 초까지는 여성 장관을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암흑기’였다.
 
초등학교 졸업에 그친 김정례 보건사회부 장관은 전두환 정부 시절을 통틀어 유일한 여성 장관이다. 김 장관은 기백이 대단한 여장부였다.
 
당시 전두환 장군이 쿠데타에 성공해 각계 인사들을 만났을 때 전 장군의 말을 끊고 자기 소신을 밝히는 당당함 때문에 장관에 발탁됐다고 한다. 2013년 미수(米壽·88세)를 맞은 김 장관의 집에 장관 시절 함께 일했던 보사부 직원 45명이 감사패를 들고 찾아왔다. “내가 가방끈도 짧고 (보건정책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잖아. 그래서 저녁이면 보따리를 싸들고 와서 정말 열심히 공부했어. 전임 장관들은 주로 국장들에게 보고를 받았지만 나는 과장급 이하 실무진에게 직접 보고를 받고 대화를 굉장히 많이 했지. 그 사람들이 다 찾아와 준 거야.”
 
김영삼 정부부터 조금씩 여성 장관의 수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주로 여성 관련 부처와 복지부·환경부·교육부 등에 국한됐다. 게다가 개인적 성향이 ‘여성의 한계’로 둔갑해 정치적 표적이 된 경우가 적지 않다.
 
일례로 93년 4월 황산성 당시 환경처 장관은 기자간담회에서 기자들이 수돗물 자료의 부실을 지적하자 흥분한 나머지 눈물을 보였는데 내내 ‘울보 장관’이란 별명에 시달리다 10개월 만에 물러났다.
 
반면에 신문기자 출신인 송정숙 보사부 장관은 다른 의원들의 강한 질타에도 전혀 동요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독한 여자’로 불렸다. 정치권에서 ‘환경처 여자 장관은 때리면 울기나 하지 보사부 여자 장관은 독해서 울지도 않는다’는 말이 나돌았다. 송 장관은 “말로 성폭행을 당한 기분이 들었다”고 했다.
 
노무현 정부에서는 ‘금녀의 벽’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2003년 법무부 최초로 판사 출신인 강금실 장관이 임명됐다. 그는 개혁적인 성향과 솔직한 감정 표현으로 스타급 인기를 누렸다. 별명이 당시 최고 인기를 누리던 핑클 멤버 이효리에 빗댄 ‘강효리’였을 정도다.
 
한명숙 총리는 2006년 4월 대한민국 첫 여성 총리라는 역사의 한 페이지를 썼다. 국회의원 3선에 두 차례 장관까지 지낸 베테랑 정치인인 한 총리는 그러나 9억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2015년 8월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최근 취임한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김현미 국토부 장관 역시 각각 해당 부의 첫 여성 장관이다. 유엔이 올 1월 기준으로 발표한 ‘2017 여성 정치(Women in Politics: 2017)’에 따르면 한국의 여성 장관 비율은 9.1%로 전체 186개국 중 142위를 기록했다.
 
하영애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임명권자가 주로 남성이고 여전히 가부장적인 문화가 남아 있어 이론적으로는 ‘양성평등’을 인정하면서도 실질적으로는 받아들이지 않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연구 결과 남성 장관은 관료·교수 출신이 많았지만 여성 장관은 국회의원 출신과 정부 위원회 경력자, 여성 분야 전문가가 많이 기용됐다”고 분석했다.
 
전직 여성 장관들은 여성 후배들에게 어떤 조언을 들려주고 싶을까.
 
3년8개월이라는 ‘최장수 여성 장관 겸 환경부 장관’ 타이틀을 보유한 김명자(73)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회장은 “세상은 다양한 생각을 갖고 일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어느 한쪽에 치우쳐서는 일로 성과를 내기 어렵다”며 “감성과 논리를 잘 조화시켜 ‘대화→협상→설득’으로 목표를 달성해 내는 전인적 능력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말했다.
 
장하진 전 장관은 “아주 작은 정책이라도 이해관계가 상충되고 부처 간 조율이 필요하다. 타 부처와의 조율이 내겐 매일매일의 일과였다”고 말했다. 그는 “여성들은 전문성에 비해 사회성이 부족한 측면이 있다. 인적 네트워크나 소통을 보다 왕성하게,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S BOX] 독일·이탈리아·네덜란드·스페인 … 유럽 국방장관은 여인천하
여성 장관들의 활약은 세계적인 추세다.
 
특히 유럽은 독일·이탈리아·네덜란드·스페인 국방장관이 모두 여성이다.
 
지난 21일(현지시간) 프랑스의 실비 굴라르 국방장관이 사임하기 전까지 유럽연합(EU)의 5대 경제대국의 국방부 수장이 모두 여성이어서 ‘유럽의 안보가 여성의 손에 달렸다’는 말까지 나왔다. 이들은 군 출신이 아니다. 독일의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은 의사, 스페인의 마리아 돌로레스 데 코스페달은 외교관, 이탈리아의 로베르타 피노티는 교사 출신이며 네덜란드의 제닌 헤니스플라스하르트는 정치인이다.
 
최근 “위안부 문제는 이미 해결된 것”이라고 말해 논란이 됐던 일본의 방위상도 여성(이나다 도모미)이다.
 
영국 왕립합동군사연구소(RUSI) 연구원은 “최근 국방업무에선 사이버전쟁 등 전통적이지 않은 방식의 전투 등 예상하지 못한 일들이 복잡하고 빠르게 일어난다”며 “합의점을 찾고 협력관계를 만들어야 하는 일이 빈번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성들은 ‘멀티태스킹(multi-tasking)’ 능력과 빠른 판단력, 결단력 덕분에 전통적인 남성들의 분야에서 입지를 넓히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소아 기자 ls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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