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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정규직으로 모두 전환은 현실성 약해, 비정규직 임금 더 줘야

카를 마르크스가 『자본』을 출간한 지 올해로 150년이 됐다. 자본주의의 모순과 불평등한 현실을 비판한 『자본』은 20세기 공산주의 혁명의 이념적 토대가 됐다. ‘혁명의 시대’는 비록 1989년 베를린 장벽의 붕괴와 함께 몰락했지만, 분배와 자본 독점에 대한 문제 제기는 여전히 유효하다. 현대 자본주의는 『자본』의 이념을 자양분 삼아 수렴하며 발전했다. 『자본』의 현대적 가르침은 뭘까. 한국을 대표하는 마르크스주의자인 이진경(본명 박태호) 서울과학기술대 기초교육학부 교수에게 물었다.
 
지난달 30일 서울 신촌의 인문지식·예술공동체 ‘수유너머 104’에서다. 이 교수는 서울대 대학원에 다니던 87년 25세의 나이에 『사회구성체론과 사회과학 방법론』을 써 변혁 논쟁의 중심에 섰던 인물이다.
 
이 교수의 본명은 박태호다. 1980년대 그 시절엔 독재의 감시망을 피하기 위해 흔히 필명을 썼다. 그는 그때의 필명을 아직까지 사용하고 있다. 교수 명함에도 괄호 안에 필명을 병기했다. ‘이것이 진짜 경제학이다’의 앞 글자를 따 ‘이진경’인 것으로 많이 알려졌지만 실상은 좀 다르다. 자신은 ‘이진형’으로 지었는데 당시 출판사 측에 잘못 전달되는 바람에 ‘이진경’이 됐다. 그는 ‘이진경’의 어감이 좋아 계속 사용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바꾸려는 문재인 정부의 일자리 정책을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평가했다. 대신 비정규직도 충분한 경제적 여유 속에 살아갈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1980년대 학생운동권 변혁 논쟁의 중심에 섰던 이진경 서울과학기술대 교수. 이 교수는 자신을 "2017년의 마르크스주의자"라고 자칭했다. 『자본』은 생명력은 자본주의 체제가 이어질 때까지 계속될 것이며 철학과 문제설정 방식은 '영원성'을 가졌다고 평가했다. [김우진 PD]

1980년대 학생운동권 변혁 논쟁의 중심에 섰던 이진경 서울과학기술대 교수. 이 교수는 자신을 "2017년의 마르크스주의자"라고 자칭했다. 『자본』은 생명력은 자본주의 체제가 이어질 때까지 계속될 것이며 철학과 문제설정 방식은 '영원성'을 가졌다고 평가했다. [김우진 PD]

 
『자본』은 어떤 책인가.
“자본의 운동법칙과 경향에 대한 고전적인 틀을 제시했다. 21세기에도 자본의 원리를 이해하는 힘을 갖고 있다. 일자리가 사라질 인공지능(AI) 시대나 거대한 파생상품 시장을 이해할 기본 개념을 제공한다.”
 
체제 경쟁에서 공산주의가 패배한 이유는.
“스탈린식으로 진행된 러시아의 공산혁명 실패가 마르크스주의가 패배한 것처럼 인식된다. 자본주의의 근본적 문제와 모순을 어떻게 해결하느냐의 문제 제기는 여전히 유효하다.”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가 여전하다.
“파생상품이 원인이었다. 파생상품처럼 허구적인 상품이라도 유통되기 시작하면 자본의 기능을 하며 실물 생산에 지배력을 갖게 된다. 마르크스는 주식시장의 등장 초기에 이런 위험성을 감지했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도 파생상품을 제한하려고 했지만 월가의 반발에 부닥쳐 실패했다.”
 
1980년대 학생운동권 변혁 논쟁의 중심에 섰던 이진경 서울과학기술대 교수. 이 교수는 자신을 “2017년의 마르크스주의자”라고 표현했다. [사진 김우진 PD]

1980년대 학생운동권 변혁 논쟁의 중심에 섰던 이진경 서울과학기술대 교수. 이 교수는 자신을 “2017년의 마르크스주의자”라고 표현했다. [사진 김우진 PD]

 
자본이 정치권력을 좌우하고 있나.
“초국적 자본이 정치를 좌우하면 민주주의는 와해된다. 2008년 미국 정치권은 막대한 공적자금을 들여 금융회사들을 살렸다. 문제는 금융에 공급된 자금이 실물로 퍼지지 않고 금융회사들의 빚잔치에만 쓰이고 있다는 점이다. 허구적 자본이 고삐 풀린 악마가 된 셈이다.”
 
문재인 정부 초기에 일자리 문제가 화두다.
“모든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바꾸려는 것은 혁명적 요구며, 자본 경쟁이 국제화된 현대사회에서는 현실적인 한계가 있다. 다만 인건비를 낮추기 위한 비정규직 채용의 개념은 바뀌어야 한다. 기업은 고용 안정의 부담을 더는 대가를 비정규직에게 더 지급해야 한다. 비정규직 임금이 정규직보다 낮아서는 안 된다. 많은 사람이 비정규직으로도 살 수 있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정규직 노조의 비정규직 노조 차별도 문제 아닌가.
“노조 결성으로 임금과 노동 강도가 개선되면서 노조는 자본가들과 어느 정도 타협하게 됐다. 정규직 노조는 막강한 영향력이 있지만 비정규직이나 이주노동자를 위해 같이 싸우는 데에는 미온적이다. 비정규직은 일을 열심히 하지만 점점 무산자처럼 돼 가고 있다. 기본소득 같은 보호막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경제활동 의지가 없는 사람에게도 기본소득을 줘야 하나.
“지금은 의지가 있어도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게으름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시간과 경제적 여유가 창의성을 부른다. 기계가 사람을 대체하는 마당에 이를 인정하지 않으면 한국의 자본주의도 끝이다.”
 
요즘 한국에선 자본가보다 임대사업자의 영향력이 더욱 커 보이기도 한다.
“기업 경영보다 땅장사가 돈을 더 많이 번다면 자본주의 발전에도 좋지 않다. 땅은 인간이 만든 상품이 아니며, 교통 편의에 의한 높은 지대는 지하철 건설 등 공공투자의 결과물이다. 임대소득 세율을 대폭 인상해 이 재원을 기본소득 재원 등으로 활용해야 한다.”
 
1990년 1월 18일자 중앙일보 12면. 이진경 교수의 국가보안법 위반 구속 소식을 전했다. [중앙DB]

1990년 1월 18일자 중앙일보 12면. 이진경 교수의 국가보안법 위반 구속 소식을 전했다. [중앙DB]

 
좌파는 수정주의를 거칠게 비판한다. 마르크스주의자였던 독일의 이론가 베른슈타인의 수정주의는 과거 운동권에서 몰매를 맞곤 했는데.
“스탈린과 트로츠키가 대립했듯 공산진영은 분열하고 싸우기 바빴다. 차이를 적대적으로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견을 조율하는 것을 (들뢰즈의) ‘차이의 철학’에서 배웠다. 굽은 것들끼리 만나면 새로운 길이 생긴다.”
 
본인도 곧기만 한 때가 있었지 않나.
“사회주의 붕괴는 나를 허무의 심연으로 몰아넣었다. 그러나 만약 그런 일이 없었다면 지금도 남의 생각을 재단하고 싸우며 살았을 것이다.”
 
본인은 마르크스주의자라고 생각하나.
“그렇다. 2017년의 마르크시스트다. 관계를 통한 사고방식과 문제 설정이란 점에서 강한 의미의 마르크스주의자라고 할 수 있다. 관계를 어떻게 해석하고 사고하느냐는 역사 유물론의 핵심이다.”
 
자본주의의 대안으로 주장해 온 ‘코뮌주의’는 무엇인가.
“구성원이 함께 개개인을 먹이는 공동체를 말한다. 동네 아낙네들이 심청이를 동냥젖으로 키운 것도 코뮌주의의 한 모습이다. 낯선 사람과도 소통하면서 스스로 변화하는 열린 공동체가 현대적 의미의 코뮌이다.”
 
『자본』은 언제까지 유효할 것이라고 보나.
“2500년 전 세상을 떠난 플라톤처럼 마르크스의 철학과 문제 설정 방식도 ‘영원성’을 가졌다고 본다. 특히 자본과의 관계를 질문하는 사고방식은 자본주의가 지속되는 한 마르크스는 계속해서 불려나올 것이다.”
 
[S BOX] “나뭇결을 거슬러 깎으면 쪼개져 … 삶도 마찬가지”
“곧기만 한 견해는 독단으로 빠지기 쉽다. ‘차이의 철학’에서 이견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웠다.”
 
이진경 교수는 1980년대 민중민주(PD) 계열 운동권의 논객이었던 시절과는 사뭇 달라져 있었다. 『철학과 굴뚝청소부』 『문화정치학의 영토들』 『자본을 넘어선 자본』 등 30여 편의 저서를 쓰며 정치·사회·경제학에서 인문·철학·영화·종교 분야로 시야를 넓히고 있다. 2002년에는 프랑스의 ‘차이의 철학자’ 질 들뢰즈의 철학 해설서 『노마디즘』을 썼다.
 
이 교수는 “사회주의 붕괴 이후 혁명이 무엇인지, 68혁명의 경험을 바탕으로 예전과 다르게 생각하는 방식을 배웠다”고 했다. 최근에는 불교의 개념을 현대적 의미로 해석한 『불교를 철학하다』를 쓰기도 했다.
 
이 교수는 ‘서울사회과학연구소’에서 1999년 나와 청년들의 학술공동체인 ‘너머’를 만들었다. 이 공동체는 ‘수유+너머’ ‘수유너머N’ ‘수유너머104’로 변신을 이어 가고 있다.
 
그는 최근까지 나뭇조각에 흠뻑 빠져 있었다고 했다. 수유너머를 찾아오던 조각가로부터 한 수 배운 실력이 어느새 인물과 동물상 등을 만들 정도로 늘었다.
 
이 교수는 조각상을 만들며 “나뭇결에 대해 생각했다”고 말했다. “결은 세월의 응결이죠. 이 결을 거슬러 나무를 깎으면 나무는 쪼개지고 맙니다. 삶 또한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김유경 기자 neo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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