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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솜이불로 총알 피한 여고생의 6·25 증언

어느 인문학자의 6.25
강인숙 지음, 에피파니

한강철교 폭파 참상 지척서 목격
전쟁 중에 공부해 대학교에 입학
부산의 천막 교사에서 남편 만나
전쟁·분단의 굴곡진 현대사 응축

376쪽, 1만8000원
 
국문학자이자 문학평론가인 강인숙(84) 영인문학관 관장의 자전적 기록이다. 자신이 겪은 한국전쟁의 하루하루를 복기했다. 1933년 함경남도 갑산에서 태어난 그는 1945년 가족과 함께 월남, 서울에서 살며 경기여고에 다녔다. 그는 고2 때인 1950년 6월 25일 일요일, 날씨도 맑았던 그날의 기억부터 끄집어낸다. 그날 그의 집은 삼각지에서 이촌동으로 이사를 했다. 월남하고 2년 만에 시작한 아버지의 탄재(炭材) 회사가 망한 뒤 연거푸 집을 줄여가던 참이었다. 어머니는 이촌동 강변 물웅덩이에서 오리를 길러볼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짐을 부린 뒤에서야 그의 가족은 전쟁 발발 소식을 들었다.
 
“하지만 곧 평정을 되찾았다. 국방장관이 북침을 하면 점심은 평양에서 먹고, 저녁은 신의주에서 먹을 실력이 우리에게 있다고 말했던 생각이 난 것이다. 아마 그날 밤 서울 시민들은 대체로 편안한 잠들을 잤을 것이다. 우리 집처럼 말이다.”(27쪽)
 
한강변에 살았던 그는 6월 28일 새벽 한강철교가 폭파되는 엄청난 폭음을 지척에서 들었다. 또 철교가 끊어진 자리에서 자동차들이 강으로 곤두박질 치는 광경을 밤새도록 목격했고, 아귀다툼 속에 보트에 매달려 한강을 건너는 생지옥을 경험했다. 6월 29일 피난길 목적지였던 광주 정자리 아버지의 의형제 집에 도착했을 때, 그 곳은 전쟁터 한복판이었다. 그의 가족은 솜이불을 뒤집어쓰고 총알을 피했다. 총소리가 그친 뒤 나가보니 이미 인민군 세상이었다.
 
“그들은 우리 고향 사투리를 쓰고 있었다. 5년 만에 들어보는 진짜 고향 사투리다. 우리는 같은 민족끼리 죽고 죽이는 전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65쪽)
 
1951년 1월5일 중국의 인민해방군이 쳐들어오자 피난민들이 살을 에는 바람에 몸을 둘둘 싸맨 채 짐을 짊어지고 남쪽으로 길을 재촉하고 있다. [사진 에피파니]

1951년 1월5일 중국의 인민해방군이 쳐들어오자 피난민들이 살을 에는 바람에 몸을 둘둘 싸맨 채 짐을 짊어지고 남쪽으로 길을 재촉하고 있다. [사진 에피파니]

책의 장르는 에세이다. 하지만 어떤 소설보다 극적인 요소가 많다. 일제강점부터 해방과 분단, 그리고 전쟁까지 이어진 질곡의 한국 현대사가 한사람의 삶 속에 응축돼있다.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가 역사의 증언록이 되는, 그런 시대를 통과한 것이다.
 
저자의 가족은 1·4 후퇴 때 얼어붙은 한강을 걸어서 건넜다. 또 소한과 대한 사이, 혹한의 계절에 한뎃잠을 자면서 군산까지 도보로 이동했다. 그 사이 가족 이산도 겪어봤고, 무정부 상태도 체험했다. 생존자인 저자는 “전쟁이 준 보너스”를 이야기한다. 어지간한 일에는 놀라지 않는 배짱, 그리고 어떤 역경에서도 살아남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겼다는 것이다. 저자가 그리는 6·25는 끔찍한 참상의 전장이면서 동시에 나름의 질서를 만들어가며 사는 생활의 현장이다. 10대 후반 여학생의 눈으로 기억해둔 전쟁의 풍경에선 그동안 놓치고 있었던 장면이 많다. 일례로 1950년대 초 학생들은 책만 보면 환장을 했다고 한다. 피난을 가다 빈집이 나타나면 책 도적질을 할 정도였다. 책·앨범·일기장 같은‘기호품’은 피난보따리에 들어갈 수 없었던 시절이니, 책은 귀하고 귀한 존재였다.
 
1951년 1월말 군산에 도착한 저자는 그해 가을 혼자 부산으로 갔다. 피난학교가 부산에서 문을 열었기 때문이다. 전쟁 중이었던 그 당시에도 고3 학생들이 대학 입시를 위해 과외공부를 했다고 한다. 저자는 옛 스승들이 과외 무료 청강 기회를 준 덕에 52년 서울대 국문과에 무사히 입학했다. 그리고 부산 구덕산 기슭 천막 교사에서 남편 이어령(83) 초대 문화부 장관을 동급생으로 만나 캠퍼스커플이 됐다.
 
전쟁 이야기를 담고 있는 책에는 비극적인 요소가 많다. 정신대에 끌려가지 않으려고 열아홉살에 결혼한 큰언니가 스물넷 전쟁통에 남편을 잃고 두 아이를 혼자 길러야 했던 대목은 특히 아프다. 하지만 그 어떤 비극도 살아있는 사람을 송두리째 무너뜨리지는 못했다. 극한의 상황에서 사람이 자신과 가족을 지키고, 또 다시 일어나는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경이롭고 숙연하다.
 
[S BOX] 박완서·김원일도 증언문학
작가의 전쟁 체험은 문학 작품의 중요한 소재가 된다. 소설가 박완서(1931∼2011)와 김원일(75)은 6·25를 다룬 증언문학의 대표적 작가다. 한국전쟁 중 겪은 자전적 체험을 소설의 형식을 빌어 민낯 그대로 드러냈다. 박완서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1992)는 개성 부근에서 태어나 자란 작가가 서울로 상경, 일제 말기와 해방을 거쳐 전쟁을 겪는 과정을 주인공 ‘나’의 이야기로 풀었다. 좌익에 가담했던 오빠 때문에 가족들이 겪는 고초는 분단의 비극을 정면으로 보여준다. 1·4 후퇴에서 끝나는 소설의 뒷얘기는 후속작 격인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1995)로 이어진다. 김원일은 『아들의 아버지』(2013)를 통해 9·28 서울 수복 직전 단신 월북한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1950년 인공 치하 서울시당 재정부 부부장 집 아들로 살았던 시절도 소설 속에 담았다. 작가의 여덟 살때 기억이다.
 
이지영 기자 jy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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