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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사법시험 2차를 치른 '삼선슬리퍼' 고시생들...아듀! 사법시험

마지막 사법시험 2차 시험이 치러진 21일 오전 한 응시생이 시험장이 마련된 연세대 백양관으로 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마지막 사법시험 2차 시험이 치러진 21일 오전 한 응시생이 시험장이 마련된 연세대 백양관으로 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21일 오전 8시,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백양관 로비에 ‘삼선 슬리퍼’의 행렬이 이어졌다. 몸통보다 두꺼운 백팩을 메고 한 손에는 점심 도시락과 간식거리를 담은 쇼핑백이 들려 있었다. 걸으면서도 색색 형광펜으로 줄쳐진 노트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제59회 사법시험 제2차 시험에 응시한 수험생, 세칭 '고시생'들이다.
 
시험장 앞에서부터 말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차자자자작. 고요 속에 기자들의 카메라 셔터 소리가 반복됐다. 마지막 사법시험의 현장을 취재하기 위해 기자들이 몰렸다. 마지막 2차 시험은 오는 24일까지 나흘간 치러진다. 변호사시험법 시행으로 사법시험은 연말에 폐지된다. 
 
고사장까지 따라 나온 수험생 가족들은 목소리를 최대한 낮춰 "잘 봐, 화이팅" "긴장하지 마"라고 속삭이듯 응원했다. 감독관은 자판기에 음료수를 채워 넣으러 온 자판기 관리인에게 "(시험이 끝나는) 오후 4시까지는 위(시험장)에 올라가면 안 된다"고 당부했다. 2차 시험이 두 번째라는 한 수험생은 시험에 임하는 각오를 묻자 나지막이 "그냥 뭐, 하는 데까지 해봐야죠"라고 말하고는 서둘러 고사장으로 들어갔다. 성균관대·한양대 등 몇몇 대학은 자교 출신 수험생들을 대학 로고가 붙은 버스로 실어 날랐다.
 
내년부터 사법시험 2차가 사라지기 때문에 올해 1차 시험은 실시되지 않았다. 지난해 1차 시험 합격자를 대상으로 2·3차 시험만 치러진다. 올해 2차 시험 응시자는 186명(21일 1교시 기준), 최종 선발 인원은 50여 명이다. 21일 시험장에서 만난 수험생 정모(21)씨는 "결과가 어떻게 되든지 최선을 다해보겠다"며 "혹시 떨어지더라도 로스쿨에 진학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마지막 사법시험이 치러진 연세대 백양관 앞 화단에서 강원도 원주시에서 올라온 응시생과 어머니가 점심을 먹고 있다. 우상조 기자

마지막 사법시험이 치러진 연세대 백양관 앞 화단에서 강원도 원주시에서 올라온 응시생과 어머니가 점심을 먹고 있다. 우상조 기자

 
◇54년 만에 폐지
1975년 제17회 사법시험 수석합격자 유성수 변호사(가운데)가 가족들에 둘러싸여 축하 전화를 받고 있다. [중앙포토]

1975년 제17회 사법시험 수석합격자 유성수 변호사(가운데)가 가족들에 둘러싸여 축하 전화를 받고 있다. [중앙포토]

현재의 사법시험은 사법시험령이 제정된 1963년부터 치러졌다. 이전까지는 조선 변호사시험(1947~1949년), 고등고시 사법과(1950~1963년)를 통해 법조인을 뽑았다. 사법시험은 공무원을 임용하는 '고시'가 아니라 사법연수원에 입소할 자격을 얻는 '시험'이다. 하지만, 이전의 고등고시 사법과라는 명칭이 혼용돼 '사법고시'로 불리기도 한다.
 
초기의 사시는 평균 60점 이상을 얻으면 합격하는 절대평가 방식이었다. 합격인원을 따로 정해두지 않았지만, 시험이 어려워서 합격자가 많지 않았다. 1967년에는 합격자가 5명에 불과할 정도였다. 합격자가 너무 적다는 지적에 따라 1970년 합격 정원제를 도입해 합격자 수를 조금씩 늘렸다. 100명 정도였던 합격자는 1980년에 300명으로 확대됐다.
 
1990년대 초 서울 신림동의 한 고시촌의 모습. [중앙포토]

1990년대 초 서울 신림동의 한 고시촌의 모습. [중앙포토]

1990년대 들어 법조인이 부족해 국민들의 법률서비스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나왔다. 로스쿨 도입 주장도 있었지만 1995년부터 선발 인원을 단계적으로 늘리는 절충안으로 사시 합격자 수도 증가했다. 1995년까지 300명이 조금 넘던 최종 합격자 수는 2004년에 1000명을 넘어섰다.
 
이후 사법개혁 추진의 일환으로 2007년 7월 '로스쿨법'(법학전문대학원 설치·운영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면서 사법시험은 변곡점을 맞았다. 국회는 변호사시험법을 제정하면서 2017년 사시를 전면 폐지하기로 결정했다. 2009년 전국 25개 로스쿨이 문을 연 뒤로 사시 선발 인원은 2010년 814명에서 지난해 109명으로 줄었다.
 
◇아직은 사시를 놓을 수 없는 사람들
1990년대 들어 사법시험은 더 어려워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광복 이후 40여 년간의 판례가 쌓이고 경쟁도 치열해지면서 공부해야 할 분량이 늘었다. 고시생들이 신림동 학원에 모여든 이유다. 55년간 ‘사법고시'가 배출한 법조인은 2만명이 넘지만 합격률은 3% 정도였다. 2014년 발표된 논문 '법조인 선발제도별 법조계 진입 유인 실증 분석' (천도정 전북대 교수와 황인태 중앙대 교수 공동연구팀)에 따르면 사법시험 합격에 걸리는 시간은 평균 4.79년이었다. 좁은 합격의 문을 넘지 못한 '장수생'이 늘고 신림동 고시촌에서 20·30대 청춘을 다 보내는 '고시 낭인'이 사회 문제가 되면서 사법시험의 문제점도 제기됐다. 시험공부만 한 인재보다 다양한 사회적 경험을 가진 자원들을 뽑아야 법조인의 경쟁력이 높아진다는 주장도 힘을 얻었다.
 
사시의 대안으로 2009년부터 도입된 로스쿨은 여전히 찬반론이 엇갈린다. 학비가 1년에 2000만원 정도로 비싸 저소득층이 소외되고 입학에도 학벌과 집안 등의 '연줄'이 작용한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이때문에 일각에서는 사시를 존치해야한다고 목소리를 내고 있다.
 
21일 '사법시험 존치를 위한 고시생 모임' 회원들이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문 앞에서 사법시험 존치 법안 통과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21일 '사법시험 존치를 위한 고시생 모임' 회원들이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문 앞에서 사법시험 존치 법안 통과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사법시험 존치를 위한 고시생 모임' 회원 30여 명은 이날 오전 국회 앞에서 사법시험 존치 법안 통과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신분과 빈부에 상관 없이 누구든 노력과 실력으로 법조인이 될 수 있는 공정사회의 상징적 제도가 완전 폐지될 위기에 처했다"며 "문재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 국민의 뜻에 따라 사법시험 존치법안 통과에 전력을 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현 기자 lee.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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