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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 수백 명 편지 수집하였으므로 행복하였네라

청마 유치환이 정운 이영도에게 보낸 편지 중 한통. 새벽에 일어나 공부하겠다는 뜻을 밝히며 안부를 묻고 있다. [사진 박영돈]

청마 유치환이 정운 이영도에게 보낸 편지 중 한통. 새벽에 일어나 공부하겠다는 뜻을 밝히며 안부를 묻고 있다. [사진 박영돈]

시작은 펜팔이었다. 1952년 전북 이리(익산)의 한 생약시험장에서 일하던 17세 문학 소년은 생면부지 문인들에게 문필 지도를 청하는 편지를 보냈다. 소설가 김동리와 오영수, 시인 조지훈과 이영도 등에게 펜팔을 시도했는데 여성 시조시인이었던 정운(丁芸) 이영도(1916~76)는 특히 따듯하게 그의 편지 벗이 돼 주었고, 인연은 소년의 일생을 바꾸었다.
 
원로 서지학자 박영돈(82)씨는 “그 분들이 보내 주신 서신을 모으면서 삶의 빛을 보았다”고 회고했다. 그중에서도 이영도 시인은 양어머니가 되어 잊을 수 없는 길을 열어 준 은인이다. 군에 입대한 박씨가 첫 휴가를 나오자 이 시인은 정인(情人)이었던 시인 청마(靑馬) 유치환(1908~67)과 함께 양아들을 해운대로 불러 격려했다. 청마는 1963년 경남여고 교장으로 부임하며 박씨를 정원사로 채용해 일하며 공부할 수 있도록 도왔다. 나중에 은행 수위(서무)로 부임해서도 평생을 재야 사학자이자 금석학자로 우뚝 서 중요 고서(古書)와 탁본 수천여 점을 수집할 수 있는 안목과 마음 바탕이 이때 마련됐다.
 
청마와 정운은 ‘죽순(竹筍)’지 동인으로 20여 년 교유하며 5000여 통 편지를 주고받아 한국 문단에 서간 문학의 전통을 세운 대표 문인이다. 청마는 ‘우편국에서’라는 시에서 “진정 마음 외로운 날은/ 여기나 와서 기다리자/ 너 아닌 숱한 얼굴들이 드나는 유리문 밖으로”라 읊었을 만큼 이영도를 향한 연모의 마음을 편지에 담아 띄웠다. 그 일부가 『사랑하였으므로 행복하였네라』라는 서간집으로 발표됐고 그중 한 구절인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느니/-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는 널리 회자되는 명구가 되었다.
 
박영돈씨는 역사적으로 희귀한 고탁본과 문헌을 보는 눈이 밝아 학계의 인정을 받으며 장서가 상을 여러 차례 받았지만, 그가 모은 수백 명 한국 문인들 편지 컬렉션은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 이영도 시인이 남겨 준 편지를 비롯해 그가 펜팔로 모은 서간이 주소와 이름이 쓰인 봉투와 첨부한 그림, 붓글씨까지 곱게 정리돼 서울 화곡동 집에서 빛을 볼 날을 기다리고 있다.  
 
최근 국립문학관 설립이 논의되면서 간직해온 수 천 통 서간문 소장품이 주목받자 그는 “보존보다 연구가 더 시급하다”고 쓴 소리를 했다. 문인의 글씨체와 편지 내용은 그의 성격과 작품 배경까지 알아볼 수 있는 한 단서인데 아무도 들여다 볼 생각을 안 한다는 것이다.
 
박영돈씨는 이영도 시인이 1960년 5월 보낸 편지 한 구절을 보여 주며 “이 시인은 오늘의 나를 지탱해 주는 정신적 모친”이라 했다. “영돈아! 4월의 혁명이 가져오는 결과를 교훈 삼아 인생이란 결코 의(義) 아니고 참 아닌 생각이나 행위를 행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깊이 깨닫기 부탁한다.”
 
 

정재숙
문화전문기자 johan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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