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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고 당하고 뒤통수 맞는 게 추리소설의 묘미

『악마의 증명』 낸 판사 출신 추리소설가 도진기
지난 2월, 20년간의 판사 생활을 마친 도진기 변호사. 소설에 나오는 세 명의 주인공인 고진 변호사, 김진구 탐정, 이탁오 박사는 모두 도 변호사의 일부다. 우상조 기자

지난 2월, 20년간의 판사 생활을 마친 도진기 변호사. 소설에 나오는 세 명의 주인공인 고진 변호사, 김진구 탐정, 이탁오 박사는 모두 도 변호사의 일부다. 우상조 기자

‘세상의 모든 미스터리를 어찌 일본만 쓰고 나는 쓰지 못한다 하는가.’

마흔 넘어 시작해 아홉 권째 책
“주인공 3명에 내 모습 투영
추리소설은 수학과 논리
처음부터 캐릭터·결말 다 정해 놔”

『유다의 별』로 한국추리문학대상
“추리소설 강국 일본에 도전
셜록 홈스 같은 캐릭터 만들 것”

 
한국의 추리소설가가 자신의 책 후기에 쓴 내용이다. 추리소설 최강국인 일본에 도전을 선언한 주인공은 현직 변호사다. 4개월 전 부장판사로 퇴직할 때까진 20여 년간 법복을 입었다. ‘한국의 존 그리샴’을 꿈꾸는 도진기(50·사법연수원 26기) 변호사다. 그는 판사 시절이던 2015년 펴낸 『가족의 탄생』에 그렇게 썼다.
 
도 변호사는 최근 단편 8편을 묶은 단편집 『악마의 증명』을 출간했다. 그의 아홉 번째 미스터리 책이다. 그중 네 편은 영화판권 계약을 했고 네 편은 중국에 수출했다. 마흔 넘어 입문한 늦깎이 추리소설가이지만 그간 한국추리작가협회 신인상, 한국추리문학대상을 수상했다. 판사가 쓴 책이라는 선입관과 달리 그의 소설은 마치 영화나 만화책을 보는 것처럼 술술 잘 읽힌다. 15일 도 변호사를 서울 서초동 법조타운 그의 변호사 사무실에서 만났다.

 
소설이 매우 치밀하다. 각 소설 내에서뿐 아니라 연작이 모두 연결됐고 복선이 깔렸다.
“처음 소설을 쓰기 시작할 때부터 세 명의 캐릭터와 결말까지 모두 정해 놨다. 수학을 좋아했다. 수학은 논리다. 감정이 들어간 소설이 아니고 추리소설이니까 논리와 플롯이 중요하고 그래서 수학이 유용하다. 지금 사회가 감정이나 진영 등에 왜곡돼 있지만 본질적으로 순수한 논리만으로도 사회적인 문제를 풀 수 있다고 생각한다.”
 
추리소설 독자들은 작가와 두뇌 싸움을 즐긴다. 어떻게 게임을 하나.
“난 독자로서 작가에게 속는 걸 좋아한다. 추리소설을 읽으며 범인을 맞혀본 적이 없다. 늘 속고 당하면서 뒤통수 맞는다. 그걸 즐긴다. 그러나 기어이 작가에게 이기려는 독자들도 있더라. 그들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 소설을 보며 내가 당했던 경험들, 범인을 놓쳤던 경험들을 활용한다.”
 
문학은 인간 내면의 통찰이라고 한다. 추리소설 치고도 심리 묘사가 적어 보인다.
“내면의 풍경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면 문학적이기도 하고 깊이가 있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구체적 행동으로도 인간을 보여줄 수 있다. 행동에 그의 마음이 드러난다. 법에서 얘기하는 증거도 그런 것이다. 심리 묘사를 좋아하지 않는다. 앓는 소리하는 것, 내면을 지나치게 묘사하면 작가는 즐겁고 좋을지 모르지만 독자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 일본 대표 추리소설가인 히가시노 게이고도 내면 묘사 대신 행동과 대사, 사소한 행동으로 심리를 묘사한다. 그런 글이 젊은 독자들의 감각과 감성에 먹혀들어간다. 내면 풍경에 지나치게 치우쳐 독자들을 일본 소설에 빼앗겼다고 생각한다. 추리소설을 쓰면서 가장 큰 원칙은 독자의 입장에서 쓴다는 것이다. 추리소설은 논리적이어야 한다. 나는 처음부터 순수문학에서 출발한 사람이 아니다. 동경이나 콤플렉스가 전혀 없다. 순수문학에서 미스터리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다. 미스터리 천대 얘기가 많긴 한데 그런 사실 자체를 못 느껴서 개의치 않는다.”
 
왜 추리소설을 쓰나.
“어릴 때 추리소설만화 등을 많이 읽었다. 소설가를 꿈꾼 적은 없으나 호기심은 많았다. 사이비 종교 모임에 나간 적도 있다. 판사가 되어 바쁘게 살다가 마흔이 넘어 일상에서 벗어나는 취미가 필요했다. 출퇴근길 지하철에서 일본 추리소설을 읽다가 의외로 졸작도 많아 나도 도전해볼 만하겠다고 생각했다.”
 
고교 시절 다방면에 관심을 기울이면서도 학력고사 대구 지역 1등이었다. 천재인가.
“아니다. 사소한 것을 그냥 넘기지 못하는 성격과 시험 직전 벼락치기가 입시나 시험에 얄팍하게 들어맞았던 것 같다. 고교 시절은 괴로웠다. 학교는 (깡패들이 많이 나오는)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 같았고 집은 형편이 어려웠다. 나는 사람은 죽고, 언젠가는 소멸한다는 존재론적 회의에 빠졌다. 차라리 불량하게 지냈으면 나았을 것이다. 사회 문제로 시끄럽던 대학에 들어가 내적 문제를 좀 해결했다.”
 
도진기의 책들에는 크게 세 명의 주인공이 나온다. 변호사 고진과 탐정 김진구, 이탁오 박사다. 도 변호사는 그중 고진 변호사의 캐릭터를 두고 “작은 눈, 비뚤어진 입술, 시니컬한 성격, 정의·불의 따위의 명분은 체질상 싫어하는 인물”로 묘사했다.
 
고진 변호사의 외모는 도 변호사와 비슷한 것 같다. 성격도 비슷한가.
“나를 모델로 했다. 그뿐 아니라 또 다른 주인공 김진구는 사법시험 합격 전 방황하던 나의 캐릭터라 할 수 있다. 악역으로 나오지만 이탁오 박사도 나의 일부분을 드러낸 것이다. 세 사람 모두에게 내 모습이 조금씩 투영돼 있다.”
 
소설 속 고진 변호사는 때론 탈법도 저지른다. 판사 생활을 오래 한 도진기와 고진이 달라졌는가.
“그런 부분도 있다. 내 안의 기질에는 판사에 맞는 기질과 재미와 상상력을 추구하면서 자유스러움을 추구하는 것도 있다. 정의를 담당하는 공직을 수행하는 판사로서는 최대한 신중해야 했다. 판사 생활이 너무 팍팍해지고 답답함을 느껴 스트레스를 받았다. 판사에 대한 기대와 관심도가 높아져 성직자의 삶을 요구한다. 지난해 일어난 판사 출신 최유정 변호사 사건 등도 계기다. 그 기대를 내적·외적으로 맞춰 살기가 힘들어 그만뒀다.”
 
판사로서 범죄가 나오는 추리소설을 쓰는 어려움은 뭐였나.
“내가 맡은 사건은 소재로 쓰지 않는다는 소신이 있고 소설은 주말에만 썼다. 그런데도 일을 등한시한다는 눈빛도 있었다. 개인적으론 독자가 많아지면서 법원과 판사에 대한 호감도를 높였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윗분들은 판사가 왜 딴짓 하느냐고 보는 시각도 있더라. 물론 판사라서 자기 검열도 있었다. 이제 변호사가 됐으니 소설이 좀 더 재미있어질지도 모르겠다.”
 
소설 속 주인공들이 불법·탈법 등을 행하고 법의 허점도 이용한다.
“고교, 대학 때 법과 정의 사이의 모호한 부분, 예를 들어 성폭행한 의부를 살해한 살인자를 처벌하는 것이 옳은가 등의 고민을 했다. 판사가 돼서도 갈등을 했다. 그래서 공식적인 말과 행동은 조금 달라질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이런 것이다. 임금을 상습적으로 체불한 업주가 있었다. 아주 악질적인 경우였다. 그래도 법은 고소한 사람의 임금만 갚으면 공소가 기각되게 돼 있다. 그 사람이 고소한 사람 돈만 갚고 재판정에 당당하게 왔다. 아주 나쁜 사람인데 절차적으로는 처벌할 수 없다. 그래서 임금 모두를 갚을 때까지 공소 기각을 해주지 않겠다고 했다. 결국 그는 청소부 아주머니 등의 임금을 다 갚았다. 판사의 행동으로 약간 무리수였고 결과적으로 월권일 수도 있다. 말은 법 절차를 무시하라고 할 수 없지만 나 한 명 정도는 다르게 행동할 수도 있었다. 올바른 결과를 위해서다.”
 
소설 속 고진 변호사는 대략 정의를 위해 일하지만 다른 주인공들은 그렇지 않다. 특히 이탁오는 집에 침입한 좀도둑들을 굶겨 죽였다.
“현실에서도 악인이 승리하는 경우가 있다. 게다가 소설은 일종의 판타지이고 말 그대로 허구다.”
 
요즘 공인탐정을 허용한다는 얘기가 나온다.
“신중해야 한다. 사생활 침범 등 부작용이 있다.”
 
소설 주인공 중 김진구가 탐정인데 멋있고 돈도 잘 번다. 요즘 취업난 속 젊은이들이 그런 걸 바라지 않을까.
“그런 영향은 거의 없을 거라고 확신한다. 폭력 영화 보고 살인을 일으킨다는 주장이 있었는데 그 인과관계는 입증되지 않았다고 결론이 났다. 얼마 안 팔리는 내 소설 때문에 동기 부여가 되는 사람은 없을 거다. 소설은 현실에서 하지 못하는 부분을 픽션을 통해 주장하는 것이다.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모델은 절대 아니다.”
 
직업이 변호사인가, 소설가인가.
“변호사다. 가정의 생계를 위해 책임이 있는 사람이다. 내 소설의 마니아층이 있지만 넓지는 않다. 많이 팔리지 않았다. 요즘 잘나가는 소설가 장강명씨도 전업작가가 된 후 기자 시절보다 수입이 적다고 하더라. 난 1쇄도 못 넘긴 경우도 있다. 소설가는 직업으로 버팀목이 안 된다.”
 
소설에 자주 나오는 법의 허점을 줄이기 위해 법을 바꿔야 하나.
“법을 바꿔 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사회의 수준이 올라가야 한다.”
 
소설 속 고진 같은 유능한 변호사가 법의 허점을 이용하면 죄가 있어도 무죄가 되지 않는가.
“어떤 변호사가 해도 이기는 사건, 누가 해도 안 되는 사건, 변호사에 따라 달라지는 사건이 있다. 세 번째 경우가 많지는 않다. 아주 적다고도 할 수는 없지만.”
 
한 드라마가 도 변호사의 소설을 표절한 논란이 있었는데 소송을 하지 않았다. 판사가 아니고 변호사인 지금이었더라면 어땠을까.
“당시 소송을 안 한 가장 큰 이유는 판사라는 직위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금이라도 안 했을 것이다. 법률 싸움은 오래 걸리고 많은 에너지가 소모된다. 남은 인생을 분쟁과 싸움에 말려들기보다는 생산적인 일에 쓰고 싶다. 싸웠다면 억울함은 해소됐겠지만 작품들을 쓰지 못했을 것이다.”
 
분쟁과 싸움의 전문가 아닌가.
“내 소송과 남의 소송은 완전히 다르다. 수술 전문가인 외과의사도 주위 사람에게 웬만하면 수술하지 말라고 권한다고 한다. 나도 주위 사람에게 억울해 죽을 지경이 아니면 소송은 안 하는 게 좋다고 권한다.”
 
소설들이 고진 변호사, 김진구, 이탁오 등의 연작 형식이다.
“이미 세 캐릭터의 마지막 대결 결과까지 짜 놨다. 셜록 홈스 같은 추리소설사에 오래 남는 캐릭터로 만들고 싶다.”
 
‘세상의 모든 미스터리를 어찌 영국만 쓰고 나는 쓰지 못한다 하는가.’ 도 변호사의 책 후기에 이런 내용이 실릴 날이 언제쯤일까.
 

도진기 대구 출생으로 대구고와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했다. 1994년 제36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판사로 임용됐다. 올해 2월 서울북부지법에서 부장판사로 퇴직했다. 법무법인 유한영진 대표변호사다. 2010년 단편소설 ‘선택’으로 한국추리작가협회 신인상, 2014년 『유다의 별』로 한국추리문학대상을 수상했다.
 
 
성호준 기자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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