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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내 곁에… 100년 전 아르누보 스타일에 반하다

미술관에서 바라본 성산일출봉 풍경. 땅과 바다가 편안하게 수평을 이룬다.

미술관에서 바라본 성산일출봉 풍경. 땅과 바다가 편안하게 수평을 이룬다.

저녁 무렵의 유민미술관 입구 전경.

저녁 무렵의 유민미술관 입구 전경.

제주도 동쪽 끝 섭지코지. 완만한 경사의 드넓은 풀밭과 억새 숲이 하늘과 맞닿아 있고, 화산섬의 검붉은 기암괴석이 푸른 바다로 이어지며 보는 이의 눈과 마음을 후련하게 만들어주는 곳. 2007년 7월 유네스코 지정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된 성산일출봉이 한눈에 보이는 이곳에 새로운 명소가 탄생했다. 8일 개관한 ‘유민미술관(Yumin Art Nouveau Collection)’이다. 국내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100년 전 ‘아르누보 스타일’의 유리 공예품으로 공간을 특화했다.
 
‘새로운 예술’이라는 뜻의 프랑스어 ‘아르누보(Art Nouveau)’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까지 유럽을 뜨겁게 달군 공예·디자인 운동을 지칭한다. 산업혁명 이후 도시화와 공업화에 지친 사람들은 자연의 아름다움에 시선을 돌리게 됐고, 세기말의 불안함과 새로움에 대한 갈망을 일상 용품에 담아내고자 했던 장인들의 열정은 일세를 풍미했다. 유민(維民) 홍진기(1917~1986) 중앙일보 선대 회장은 일찍이 이 같은 유리공예의 아름다움에 심취해 1984년 문을 연 중앙일보 신사옥의 중앙갤러리 개관기념전으로 ‘아르누보 유리 명품전’을 한 달여 간 개최한 바 있다. 이번 전시는 유민 탄생 100주년을 맞아 그가 오랜 시간 연구하고 정성 들여 수집한 유리 공예품 중 미술사적으로 또 디자인적으로 의미 있는 작품 47점을 추려내 구성했다.
 
세계적인 건축가인 일본의 안도 다다오는 2008년 명상 센터 ‘지니어스로사이’를 국내 최초로 섭지코지 한가운데에 선보였다. 그리고 꼭 10년 만인 올해, 이곳은 미술관으로 변신했다. 거무튀튀한 제주의 현무암 돌벽과 안도 다다오 특유의 연회색 노출 콘크리트 벽으로 겹겹이 둘러싸인 공간은 단순히 작품을 전시하는 곳이 아니었다. 예술의 본질과 장인의 열정에 대해 관람객에게 끊임없이 소리없는 질문을 던지고 있는 사유와 힐링의 공간이었다. 그곳을 중앙SUNDAY S매거진이 다녀왔다.

▶유민 미술관
위치는 휘닉스 제주 섭지코지 내. 도슨트 프로그램 하루 4회
(오전 10시 30분, 오후 1시· 3시·5시) 및 오디오가이드 무료 제공.
매주 화요일 휴관. 성인 1만2000원(개관 기념으로 7월 21일까지 1만원).
www.phoenixhnr.co.kr 문의 064-731-7791
 

 
새로 개관하며 미술관 입구에 설치한 ‘샤이닝 글라스’. 반대 방향이 거울처럼 비쳐진다.

새로 개관하며 미술관 입구에 설치한 ‘샤이닝 글라스’. 반대 방향이 거울처럼 비쳐진다.

하늘을 느끼고 물소리를 들으며 미술관으로 걸어내려가는 길

하늘을 느끼고 물소리를 들으며 미술관으로 걸어내려가는 길

13일 오후 휘닉스 제주 섭지코지 안에 있는 유민미술관 앞은 마침 이날이 휴관일(화요일)임을 아쉬워하는 관람객들로 어수선했다. 이들은 건물 벽면에 새로 설치된 가늘고 긴 직사각형 색유리 ‘샤이닝 글라스’에 비쳐지는 풍광에 자신들의 모습만 찍고 발걸음을 돌렸다.
 
안으로 들어가면 처음 시선을 붙잡는 것은 수련과 아이리스로 가득한 연못이다. 안예진 큐레이터는 “공간 구조가 정상에서 점점 아래로 내려가는 제주의 지형을 본 따 만들었기에 이곳은 백록담에 비유된다”며 “바로 보여주지 않고 골목을 돌거나 벽을 지나야 비로소 뭔가 보이도록 한 것이 안도 다다오 건축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다시 벽 하나를 지나자 시야에 색다른 풍광이 펼쳐졌다. 노란 금계국이 곳곳에서 여름을 노래하고 있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구성한 정원. 검붉은 화산석 ‘송이’를 모아 중산간 느낌을 낸 ‘돌의 정원’, 타원형 경계 안쪽으로 진분홍색 해국이 피어있는 ‘여인의 정원’, 그리고 마주 보는 ‘ㄷ’자 형 벽 사이에 억새를 심어 제주의 자연을 만끽할 수 있는 ‘바람의 정원’이다.
 
현무암 돌담, 콘크리트 담벼락, 말들이 풀을 뜯어먹는 초원, 성산일출봉, 수평선, 그리고 안도 다다오가 이곳에 설계한 또 하나의 건물 ‘글라스하우스’가 보는 이의 눈높이에 맞춰 단일하게 이뤄내는 평평한 라인은 안정감을 준다.
 
길 양 옆으로 물소리도 시원한 평면 폭포를 지나 어느새 키가 훌쩍 높아진 돌벽과 콘크리트벽 사이를 천천히 걷다 보면 바닥 모를 땅 속으로 들어가는 느낌이 든다. 어둠 속에서 육중한 철문이 열리면, ‘유민미술관’의 세계가 시작된다.
 
평범한 유리공예는 가라 … 모험심 강한 ‘낭시파’
‘아르누보 미술의 탄생’코너에 있는 작품들. 오른쪽부터 에스칼리에 수정공예사의 ‘오리와 아이리스 무늬 화병’(1880), 외젠 미셸의 ‘양귀비 무늬 화병’(1904), 외젠 미셸의 ‘바다의 신 트리톤 무늬 화병’(1904), 외젠 미셸의 ‘인어와 아이리스 무늬 화병’(1904)

‘아르누보 미술의 탄생’코너에 있는 작품들. 오른쪽부터 에스칼리에 수정공예사의 ‘오리와 아이리스 무늬 화병’(1880), 외젠 미셸의 ‘양귀비 무늬 화병’(1904), 외젠 미셸의 ‘바다의 신 트리톤 무늬 화병’(1904), 외젠 미셸의 ‘인어와 아이리스 무늬 화병’(1904)

르네 랄리크와   유리공예품회사가 만든 제품들.

르네 랄리크와 유리공예품회사가 만든 제품들.

2층 ‘램프의 방‘ 모습.

2층 ‘램프의 방‘ 모습.

1890년대부터 1910년대까지 20년간 뜨겁게 타올랐던 아르누보는 “예술이 고고한 박물관을 벗어나 사람들의 생활과 결합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영국의 예술공예운동(Art & Crafts Movement)에 뿌리를 두고 있다. 자연에 대한 관심과 함께 이색적인 외국 문화, 특히 1867년 파리 만국박람회 이후 알려지기 시작한 일본 문화에 대한 관심은 ‘자포니즘(Japonism)’ 열풍을 불러일으키며 아르누보의 또 다른 축이 됐다. “일본인들이 분재를 하는 이유는 자연을 곁에 두고 싶어하기 때문” 같은 말은 아르누보 작가들의 마음에 열망의 불을 지폈다.
 
파리와 함께 아르누보의 중심적 역할을 했던 곳이 프랑스 북동부 로렌 지방의 낭시(Nancy)다. ‘낭시파(Ecole de Nancy)’라 불린 이 지역 유리공예가들은 모험심이 강했다. 고온에서 녹인 유리를 대롱으로 불어 형태를 만드는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색유리를 덧씌우고, 조각하고, 깎아내고, 부식시키는 등 여러 기법을 통해 유리공예를 한단계 업그레이드 했다.
 
유리점토기법으로 만든 작품들

유리점토기법으로 만든 작품들

‘아르누보 전성기의 방’ 모습

‘아르누보 전성기의 방’ 모습

회전숯돌기법으로 만든 작품들

회전숯돌기법으로 만든 작품들

무릇 모든 움직임에는 앞장서서 이끄는 이들이 있다. 에밀 갈레·돔 형제·외젠 미셀·르네 랄리크는 프랑스 아르누보 유리공예를 이끈 걸출한 인재들이다.
 
우선 낭시 출신의 에밀 갈레(Emile Gallé·1846~1904)는 파리 만국박람회에서 그랑프리를 두 번이나 받으며 화려하게 등장한 스타 디자이너다. 독일 마이젠탈에서 유리공예 기술을 익힌 뒤 부친의 유리공방에서 일하며 자신만의 스타일을 갖춰 나갔다. 그는 두 겹의 유리 사이에 장식을 삽입하는 세공을 비롯해 에칭·녹청 입히기·유리조각 덧붙이기 같은 기법을 능수능란하게 구사한 최초의 작가였다. 목공예 디자이너로서도 출중한 재주를 발휘했던 그는 특허를 여럿 획득한 기술자이면서 진지한 식물학자이기도 했다. 식물에 대한 인문학적 애정이 그의 작품에 고스란히 드러나는 이유다.
 
에밀 갈레와 쌍벽을 이룬 사람이 돔 형제다. 오귀스트 돔(Auguste Daum·1853~1909)과 앙토냉 돔(Antonin Daum·1864~1930)은 아버지가 인수한 유리 제작소에서 처음엔 경영을 맡았다가 나중에 제작으로 돌아섰다. 예술공예품에 주력했던 에밀 갈레와 달리 이들은 재능 있는 화가, 디자이너와 기술자들과의 협업을 통해 시리즈 생산에 더 힘을 기울였다.
 
자연의 형상을 유리에 부조로 새겨넣는데 탁월한 솜씨를 발휘한 외젠 미셸(Eugène Michel·1848~1910), 고대 유리점토기법을 부활시킨 가브리엘 아르지 루소(Gabriel Argy-Rousseau·1885~1953) 역시 아르누보 유리공예를 대표하는 이름이다.
 
삶을 은유하는 에밀 갈레의 ‘버섯 램프’
에밀 갈레의 ‘잠자리 무늬 화병’(1890)

에밀 갈레의 ‘잠자리 무늬 화병’(1890)

크게 십자형으로 구성된 전시장은 1층에 ‘영감(靈感)의 방’ ‘명작(名作)의 방’ ‘아르누보 전성기의 방’, 그리고 2층에 ‘램프의 방’으로 구성돼 있다. 그 사이사이에는 ‘낭시파’ 작가들의 작품을 공예 기법별로 배치했다. 이번에 전시 공간을 새로 꾸민 덴마크 건축가 요한 칼슨은 “새로운 방에 들어갔을 때 과연 어떤 공간이 펼쳐질지 기대하도록 설계에 초점을 맞췄다”고 밝혔다.
 
‘영감의 방’에는 유채 꽃밭과 푸른 하늘과 억새숲을 어릿어릿 보여주는 LED 영상이 어두운 방을 따뜻하게 비춘다. 에밀 갈레가 보들레르의 시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었다는 분홍색 병과 꽃 한 송이를 위한 목이 긴 화병 ‘솔라 프리에’ 등이 다소곳하게 자리하고 있다. 이 방의 특징은 진열대를 중심으로 의자와 돗자리를 같이 마련해 바닥에 편하게 앉아서도 볼 수 있게 했다는 점이다.
 
돔 형제가 만든 ‘장미 무늬 화병’(1900)

돔 형제가 만든 ‘장미 무늬 화병’(1900)

잠자리의 눈과 날개까지 정교하게 표현한 에밀 갈레의 작품이 돋보였는데, 안 큐레이터는 “서양에서 잠자리는 거짓말 하는 아이들의 입을 꿰매버린다는 속설이 있는데, 아르누보 작가들은  기이한 생명체를 그로테스크하게 표현했다는 특징이 있다”고 설명했다.
 
맨질맨질한 대리석 느낌의 원통형 공간인 ‘명작의 방’ 한 가운데에는 에밀 갈레의 절정기 작품인 ‘버섯 램프’(1902) 단 한 점만이 관람객을 기다리고 있었다. “프랑스 낭시 미술관, 일본 기타자와 미술관 등 세계에 5점 밖에 없는데 이 작품이 보존 상태가 가장 좋다”는 것이 안 큐레이터의 귀띔이다. 세 갈래의 버섯은 각각 청년, 중년, 노년을 의미한다고.
 
에밀 갈레의 ‘바다의 심연 화병’(1903)

에밀 갈레의 ‘바다의 심연 화병’(1903)

3개 면에 진열대를 설치한 ‘아르누보 전성기의 방’에서 가장 돋보이는 것은 깊은 바닷속을 산호 등으로 표현한 1903년작 새빨간 유리병이었다. 안 큐레이터는 “쥴 베르느의 『해저 2만리』가 출간되면서 사람들은 비로소 바다 밑 세상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는데, 이 작품에는 그런 관심이 담겨있다”고 말했다. 그는 “『나는 고발한다』로 드레퓌스의 무죄를 주장한 소설가 에밀 졸라를 지지하는 마음은 (고난의 상징인) 엉겅퀴가 부각된 작품으로 승화됐다”고 덧붙였다.
 
2층 공간은 형형색색 스탠드가 불을 밝히고 있었다. 1890년대 이후 전기 보급이 본격화되면서 전등 갓과 몸체를 모두 유리로 만드는 것이 대유행이 됐다. 돔 형제는 장인들과 컬래버레이션 작업을 많이 했는데 특히 금속 장신구 작가 루이스 마조렐과 함께 한 작품들이 인기를 얻었다. 돔 형제는 유백색 유리 전등갓을 만들고 마조렐의 회사는 전기선이 드러나지 않는 금속 받침대 및 스탠드를 만드는 식이다.
 
안 큐레이터는 “프랑스 아르누보 양식은 식물과 꽃에서 모티브를 얻은 양식화된 곡선을 사용하는 장식예술 형태로 나타났는데, 낭시파 작가들은 그런 문양을 양식화하는데 그치지 않고 자연을 더 깊이 관찰하고 이를 사실적으로 묘사함으로써 자연에서 느낀 감응을 깊이있게 표현해냈다는 것이 특징”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
 
 
제주 글 정형모 기자 hyung@joongang.co.kr  
사진 전호성 객원기자·유민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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