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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택희의 맛따라기] ‘개미’ 깊은 전라도 음식의 정수 … 특급 맛 오케스트라 ‘해남천일관’

해남천일관 떡갈비는 손으로 다진 소 갈비살에 파를 다져 넣고 조선간장으로 맛의 중심을 잡은 갈비양념을 섞어 잘 치대고 빚어 숯불에 구웠다. 콩알만한 고기 알갱이가 톡톡 씹하면서 촉촉한 육즙이 숯불 향과 어우러져 갈비구이의 풍미가 후각과 미각을 동시에 깨운다. 해남천일관 대표음식으로 꼽을 만하다. 창업주 당대에는 없던 메뉴를 2대 들어 시작했지만 어느 집보다 맛있는 떡갈비를 만들었다. 달군 돌판에 올려서 내오기 때문에 온기가 오래 간다.

해남천일관 떡갈비는 손으로 다진 소 갈비살에 파를 다져 넣고 조선간장으로 맛의 중심을 잡은 갈비양념을 섞어 잘 치대고 빚어 숯불에 구웠다. 콩알만한 고기 알갱이가 톡톡 씹하면서 촉촉한 육즙이 숯불 향과 어우러져 갈비구이의 풍미가 후각과 미각을 동시에 깨운다. 해남천일관 대표음식으로 꼽을 만하다. 창업주 당대에는 없던 메뉴를 2대 들어 시작했지만 어느 집보다 맛있는 떡갈비를 만들었다. 달군 돌판에 올려서 내오기 때문에 온기가 오래 간다.

3대 93년 한정식 명가...문화재라 해도 손색없어 
기사가 나가면 힐난이 있을 줄 안다. 한 사람 점심(한 상 차림 3종) 3만5000원, 저녁(천일코스) 10만원 하는 비싼 음식점이기 때문이다. 알면서도 쓴다. 그럴 가치가 있는 음식이고, 먹어보면 비싼 이유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비싸다는 생각을 바꿀 수도 있다. 1924년 창업해 3대 93년을 이어온 전라도 한정식 집 ‘해남천일관(서울 강남구 테헤란로13길 21/전화02-568-7775)’ 얘기다. 해남 ‘천일식당(전남 해남군 해남읍 읍내길 20-8/전화 061-535-1001)’의 서울 분점 격이다. 그렇지만 형제라도 개성이 다른 것처럼 음식 맥락은 약간 다르다.
330㎡(100평)쯤 되는 대지의 절반쯤은 마당이다. 마당 둘레를 왕대나무가 둘러싸고 있어 마당 자체도 시원하고 운치가 있다. 방은 대부분 창 밖으로 마당을 볼 수 있게 돼있다.

330㎡(100평)쯤 되는 대지의 절반쯤은 마당이다. 마당 둘레를 왕대나무가 둘러싸고 있어 마당 자체도 시원하고 운치가 있다. 방은 대부분 창 밖으로 마당을 볼 수 있게 돼있다.

천일식당은 고(故) 박성순 여사가 20대 초에 해남읍내 장터에서 국밥 집으로 시작했다. 자체 홍보물에는 ‘백제음식의 일인자였던 부잣집의 딸’이라고 그 분을 소개하고 있다. 백제음식인지는 확인할 길이 없지만 대물림한 음식을 먹어보면 전라도 음식을 잘하는 부잣집 출신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창업주의 아들·며느리가 식당을 물려받아 지금은 손자 부부가 운영하고 있다. 이 집은 유홍준 교수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제1권(1993년) 첫 편 「남도답사 일번지」에 소개하면서 전국적 명소로 떠올랐다. 나도 그 책을 읽고 1994~95년쯤 가본 걸로 기억한다.
 
박 여사가 나이 마흔 줄 들어 낳은 늦둥이 막내 고 김정심(1943~2015. 2) 여사는 1990년대 서울로 올라와 음식점을 시작했다. 처음엔 동업도 하고 작은 음식점도 하면서 서울 물정을 살피다가 ‘해남천일관’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건 1994년이다. (※2016년 블루리본 2개 인증서에는 개업 날을 1990년 8월 19일로 기록했다. 서울에 올라와 처음 음식점을 연 날인 듯하다.) 서울에서 판을 벌일 때 해남 창업주 밑에서 주방 일을 보던 찬모(옥자 어머니)가 올라와 주방을 맡았고 딸 옥자씨도 어머니를 도와 주방에서 대를 이었다. 어려움도 있었지만 지금은 창업주 외손녀이자 김 여사의 딸인 이화영(51)씨가 대를 이어 운영하고 있다.
현관과 복도에는 해남천일관 93년 역사를 일군 고 박성순(외할머니·작은 사진 왼쪽)·김정심(어머니) 여사의 사진이 놓여있다. 대물림 3대 이화영 대표가 숙연한 표정으로 사진을 보고 있다. 본인 얼굴은 절대 나가면 안 된다며 사진 찍기를 한사코 사양했다.

현관과 복도에는 해남천일관 93년 역사를 일군 고 박성순(외할머니·작은 사진 왼쪽)·김정심(어머니) 여사의 사진이 놓여있다. 대물림 3대 이화영 대표가 숙연한 표정으로 사진을 보고 있다. 본인 얼굴은 절대 나가면 안 된다며 사진 찍기를 한사코 사양했다.

해남천일관에는 김 여사가 운영하던 2000년대 초반 저녁에 몇 차례, 올 3월과 6월 저녁 두 차례, 직업적으로 먹는 사람들이 모이는 비교 시식회(천일미식회)와 취재를 위한 점심식사에 각각 한 차례 가서 음식을 먹어봤다. 전라도 한정식이니 여러 가지 음식이 나오는 거야 당연하다. 가짓수보다 놀라운 건 맛이다. 내가 탐식가(探食家)이긴 하지만 어느 것 하나 접시를 비우지 않은 것이 없다. 일행도 그랬다. 음식의 깊은 맛을 표현하는 전라도 말이 ‘개미’인데, 이 집 음식에 그 본령이 담겨있지 않나 싶다. 음식도 문화재가 될 수 있다면 빼놓아서는 안 되는 문화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문화재 현장을 기록하는 마음으로 글을 쓴다.
6월 8일 몇 달 만에 고국에 들른 재일동포 원로 기업가 부부와 우리 부부가 저녁식사를 했다. 그날의 음식을 순서대로 살펴보자.
식전 먹거리

식전 먹거리

식전 먹거리(꼬투리째 삶은 강낭콩, 배추와 된장, 삶은 찰옥수수): 철 따라 바뀌는데 찰옥수수는 햇물이다. 올해 처음 나온 것을 사다가 삶았다. 좋은 음식이 많이 나올 텐데 왜 이런 걸 주나 하고 먹지 않다가 한 사람이 맛있다고 해 먹어보니 참 쫄깃쫄깃했다.
새끼갈치무침

새끼갈치무침

새끼갈치무침: 풀치보다 더 작은 새끼갈치 말린 것을 이 집 양념으로 무쳤다. “풀치구나” 했더니 정색을 하고 “풀치 아니예요” 하면서 설명을 했다. 그냥 무치면 비린내가 있는데 2~3일 동안 말리고 오븐에 굽기를 3~4회 반복해 냄새를 빼 고소하다.
들깨탕

들깨탕

들깨탕: 탕에 우무를 각설탕 크기로 잘라 넣었다. 우무는 완도에서 보내준 우뭇가사리를 끓여서 직접 만든다.
반지김치

반지김치

반지김치: 양지·사태를 6시간 동안 푹 고아서 기름을 걸러낸 국물에 담근 백김치다. 고기는 찢어서 넣고 산낙지, 새우살, 채친 밤·표고와 청각을 넣고 담갔다. 맛이 깊고 시원하다. 해남천일관이 자랑하는 집안 음식 가운데 하나다.  
토하젓과 홍어삼합

토하젓과 홍어삼합

토하(민물새우)젓과 함께 나온 홍어삼합: 홍어는 매주 목포에서 올라온다. 아주 살짝 삭혔다. 이화영 대표는 “생 홍어가 더 좋은데 굳이 수액이 다 빠지는 삭힘 과정을 오래 거칠 필요는 없다”고 했다. 토하젓은 해남에서 잡은 민물새우로 담가 2년을 묵혔다. 토하젓은 지금도 꽤 귀한 음식이다. 토하를 이용하는 전설의 음식으로 토하알젓도 있다. 민물새우 알만 모아서 담근다. 예전 대지주들이나 먹던 진미 중 진미라고 한다. 조정래의 대하소설 『태백산맥』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토하알젓은 맛나기로는 젓 중에 제일이오. 정력에 좋기는 동삼이 아이고 할배 한다. 애첩이 저분 끝으로 살짝만 찍어 먹어도 따귀를 올려 붙인다는 맛이 토하알젓 맛.” 돼지고기는 국산 삼겹살에 7가지 채소와 된장·한약재 등 10여 가지 부재료를 넣고 삶았다. 묵은 김치는 해남배추·추자멸치젓·신안천일염으로 담가 청계산 자락 땅에 묻어 1년 숙성했다.  
갑오징어·미나리 초고추장무침

갑오징어·미나리 초고추장무침

갑오징어·미나리 초고추장무침: 싱싱한 갑오징어를 잘 데쳐서 아삭하고 향기로운 미나리를 섞어 이 집에서 담근 고추장으로 만든 초장으로 무쳤다. 조리과정은 간단하지만 맛의 균형이 잘 맞아 고급스러운 음식이 됐다.  
육전과 마전

육전과 마전

육전과 마전: 얇게 편으로 썬 쇠고기와 마에 계란 물을 입혀 얌전하게 전으로 부쳤다. 가늘게 채친 파 무침을 몇 가닥 얹어 먹으면 향과 맛이 서로 도움작용을 한다.  
열무물김치

열무물김치

열무물김치: 연속된 맛의 세례에 혀가 조금 지칠 무렵 기름진 전을 먹어 둔해진 미각을 깔끔하게 씻어주는 맑고 시원한 맛의 물김치다.
생 홍어회

생 홍어회

생 홍어회: 날개살·코·애·볼살(왼쪽부터 시계방향) 등 특수부위를 고루 섞어 한 접시에 담았다. 날마다 나오는 음식은 아니다. 손님 일진이 좋아야 먹을 수 있다. 목포에서 구입할 땐 살아있던 싱싱한 홍어를 회로 쳤다. 생 홍어는 대개 6~8㎏ 크기를 쓴다. 코와 볼살은 한 마리에서 나오는 양이 많지 않아 단골만 먹을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애-코-볼살-날개살 순서로 앞 세 가지는 기름장, 하나는 초고추장을 찍어 먹으라고 권했다. 이 대표의 해남 고향 집에서는 예전부터 홍어를 삭히지 않고 생으로 먹었다고 한다. 살아있던 홍어를 사서 당일 회를 친 살이라 아주 차졌다. 삭힌 홍어만 먹던 사람은 알지 못하는 맛이다.  
숯불구이 삼겹과 팥 들어간 찹쌀밥 김 말이

숯불구이 삼겹과 팥 들어간 찹쌀밥 김 말이

숯불구이 삼겹과 팥 들어간 찹쌀밥 김 말이: 어머니 때도 찰밥을 손님 상에 잘 냈다. 어머니는 손님 방에 들어가 허물없이 찰밥을 김에 싸주며 이것 저것 음식을 챙겨주기도 했다. 두 음식은 별도로 내던 것을 이 대표가 운영하면서 하나로 합쳐 맛이 강한 삼겹구이에 간을 하지 않은 김밥을 어울려 먹도록 조합한 메뉴다. 음식이 짜다는 손님들 불평을 반영한 진화다.
문어 숙회와 기름장

문어 숙회와 기름장

문어 숙회와 기름장: 이 순서에는 피문어나 낙지 탕탕이가 나간다. 살이 워낙 차져 어떤 문어냐고 묻자 원래 회로 뜨려고 살아있는 피문어를 사왔는데 오는 도중 죽어서 할 수 없이 데쳤다고 했다. 싱싱하니까 숙회 살이 그렇게 차진 것이다. 문어보다 산 낙지 탕탕이가 나오는 날이 많다.
우거지

우거지

우거지: 무시래기 된장찜이다. 생 무청을 삶아 육수에 된장 풀고 자작하게 지졌다. 보통은 사골국물로 하는데 더울 때는 멸치육수로 한다. 생 무청을 삶아서 그런지 줄기가 아주 부드러웠다. 국물 맛도 봄바람처럼 구수하고 부드러웠다.  
홍어만두

홍어만두

홍어만두: 다른 곳에서는 본 적이 없는 음식이다. 만두가 익으면서 삭힌 홍어의 암모니아가스가 활성화되지만 만두피가 그걸 가두는 효과가 있어 한입 베어 물면 코가 뻥 뚫린다. 처음에는 접시에 내고 남은 홍어 자투리를 다져서 동그랑땡 전으로 부쳐서 상에 냈었다. 그걸 본 지인이 만두로 하면 어떻겠냐고 해서 해보니 반응이 좋아 계속 하고 있다.
떡갈비

떡갈비

떡갈비: 해남천일관 건물의 지층 주차장 한 켠 화덕에 숯불을 피워 떡갈비를 굽고 있다. 이 집 떡갈비는 모든 과정을 일일이 손으로 하기 때문에 대량으로 구워내는 떡갈비와 근본부터 맛이 다르다.
토종닭찜·닭죽·갓김치

토종닭찜·닭죽·갓김치

토종닭찜·닭죽·갓김치: 토종닭(시장 용어로)만 판매하는 가락동 거래상에게 구해온 닭을 백숙으로 익혀 살만 발라서 내왔다. 가슴살도 퍽퍽하지 않다. 함께 나온 닭죽은 잘 익은 갓김치와 궁합이 잘 맞았다.
송이 능이 쇠고기뭇국

송이 능이 쇠고기뭇국

송이 능이 쇠고기뭇국: 국물이 뽀얀데 입안에서 화하게 퍼지는 향이 있다. 송이와 능이가 들어갔다. 소 등심고기를 새끼손톱 크기로 반듯반듯 잘라 넣고 끓인 뭇국인데 고급스러운 맛과 향이 아찔했다.  
꽃게장

꽃게장

꽃게장: 살이 가득한 꽃게에 비법의 양념간장을 세 번 끓여 부어 만들었다. 이미 배가 부르지만 간장이 짜지 않고 맛있어서 수저가 자꾸 갔다. 철에 따라 참게장·양념게장이 번갈아 나오는데 일본 손님이 오신다고 해서 일부러 간장꽃게장을 준비했다고 한다. 일본 손님들이 간장게장을 좋아하더란다.  
쌀밥

쌀밥

쌀밥: 밥알이 눈이 부시도록 윤기가 흐르고 고슬고슬한 쌀밥. 밥을 정말 잘 지었다. 예산의 단골 정미소에서 2~3일마다 새로 도정해 보내는 쌀로 상에 내기 직전에 짓는다. “밥집은 밥이 가장 맛있어야 한다”는 게 이 대표의 음식점 운영 철학이다.  
5색 젓갈

5색 젓갈

5색 젓갈: 양념하지 않은 진석화젓(가운데)과 돔배젓·갈치속젓·자해젓·잡젓(2시부터 시계방향). 밥이 나올 때 나오는 젓갈은 원하는 사람에게만 내준다. 먹고 싶으면 예약할 때나 식사 시작할 때 미리 말해야 한다. 본래 기본코스에 있었으나 사람들이 손도 안 대고 나와 버리는 게 아까워서 달라는 사람에게만 주는 걸로 바꿨다. 젓갈은 어머니 때부터 거래하던 해남 젓갈상회에서 담근 것을 받아서 식당 지층 창고에서 숙성한다. 진석화젓은 알이 굵은 고흥 굴에 맛간장을 끓여 붓기를 여러 번 하면서 3년 동안 맛이 깊어진 젓갈을 무친 것이다. 돔배젓은 전어의 내장 가운데 위로 담근 젓갈이다. 전어속젓·밤젓이라고도 한다. ‘자해젓’은 자하(紫蝦)라는 작은 새우로 담근 젓갈이다. 지역에 따라 곤쟁이젓 또는 감동젓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설 전후에 나는데 해남에서 올해 2월에 올린 젓갈이다. 이 대표는 “자해젓은 자하젓과 다르다”고 하는데 무치지 않은 ‘자해젓’을 보면 곤쟁이의 일종이다. 곤쟁이 종류가 여러 가지여서 그 차이 때문에 이름을 다르게 부르는 듯하다.  
김치와 나물

김치와 나물

김치와 나물(배추김치·갓김치·제철나물무침): 김치는 2016년 김장 때 담가 청계산 자락 땅에 묻은 항아리에서 익은 김치여서 맛이 은근하고 깊다.
보리굴비

보리굴비

보리굴비: 어머니 때부터 10년 넘게 거래한 전남 영광 조기상회에 크기와 말리는 정도를 정해 주문하면 원하는 대로 부세를 말려 보내준다. 쌀뜨물에 2시간쯤 불렸다가 찐 다음에 다시 구워 결결이 찢었다. 요즘 보리굴비는 참조기로는 비싸서 엄두도 못 내고 전국 99.99%가 부세일 거라고 말하는 이 대표는 보리굴비가 나오면 얼음 넣은 녹차 물에 말아먹는 걸 상식으로 아는데 고향 해남에 살 때 입맛 까다로운 아버지도 그러는 거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삶은 누룽지

삶은 누룽지

삶은 누룽지: 무쇠솥 누룽지 맛이 살아있는 반가운 맛이었다. 마무리까지 실망시키는 음식이 하나도 없다.
멜론

멜론

멜론: 입가심 과일로는 맛이 가볍고 뒤끝이 깔끔한 멜론이 나왔다. 
토하젓 고추김치

토하젓 고추김치

토하젓 고추김치: 6월 8일 식탁에는 나오지 않았고 3월 식사 때 먹은 김치가 있는데 특별해서 기록을 남긴다. 동치미 무보다 작은 늦가을 무를 한 달쯤 반그늘에서 말려 토하젓과 찹쌀풀 넣고 만든 양념에 버무려 담근 무김치다. 담그는 재료와 과정만으로도 이 집 음식의 내력이 어느 정도 경제력을 가진 집에 뿌리를 두고 있는지 여실히 알 수 있다. 초간장에 절인 고추를 함께 넣고 담그기 때문에 이름은 ‘고추김치’라고 부른다. 무를 말리는 까닭은 씹히는 질감은 꼬들꼬들하게 하고 맛은 진하게 농축하려는 것이다. 다른 곳에서 먹어본 적이 없는 고급스러운 맛의 김치다.
국·밥과 17찬으로 차려진 점심 한 상. 떡갈비·굴비·삼겹숯불구이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 먹을 수 있다.

국·밥과 17찬으로 차려진 점심 한 상. 떡갈비·굴비·삼겹숯불구이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 먹을 수 있다.

점심 상의 밥과 김치콩나물국. 밥알 하나 하나가 다 살아있다.

점심 상의 밥과 김치콩나물국. 밥알 하나 하나가 다 살아있다.

 
점심 특선(3만5000원)은 돼지삼겹숯불구이·굴비·떡갈비 중 하나를 선택하면 17찬에 밥·국이 한 상 차림으로 나온다. 취재하던 날에는 고등어조림, 우렁무침, 부추전, 도토리묵무침, 콩자반, 오이김치, 김장김치, 열무물김치, 3색 나물(토란대·호박고지·파드득나물), 백김치, 잡채, 맨 김, 얼갈이김치, 마늘종무침, 꽈리고추밀가루찜이 상에 올랐다. 밥은 눈부신 쌀밥, 국은 김치콩나물국이 나왔다. 국 맛이 시원해 전날 마신 술 독이 말끔히 풀리는 기분이었다. 큰 대접으로 한 그릇 더 달래서 먹었다. 비결을 물으니 모든 국물음식은 직접 뽑은 밑국물 3종(사골·멸치·채소)으로 맛을 낸다고 한다.
큰방 안쪽에는 이 대표의 어머니 고 김정심 여사가 사용하던 자개장이 아직 놓여있다. 워낙 화려해 자개를 잘 모르는 사람도 감탄이 절로 나온다. 벽에 걸린 액자의 휘호는 소전 손재형(素筌孫在馨·1903~1981)의 진적이다. 씌어있는 ‘看華品石’은 꽃을 살피고 돌을 평한다는 뜻이다. 음식도 그렇게 음미하면 좋을 터이니 이 방에 잘 어울리는 글이다. 소전은 지난 세기에 손꼽히던 서예가로 일본의 추사 연구가 후지즈카 치카시(藤塚隣·1879~1948)가 소장하고 있던 ‘세한도’를 정성과 집념으로 돈 한푼 안 주고 찾아온 사람이다.

큰방 안쪽에는 이 대표의 어머니 고 김정심 여사가 사용하던 자개장이 아직 놓여있다. 워낙 화려해 자개를 잘 모르는 사람도 감탄이 절로 나온다. 벽에 걸린 액자의 휘호는 소전 손재형(素筌孫在馨·1903~1981)의 진적이다. 씌어있는 ‘看華品石’은 꽃을 살피고 돌을 평한다는 뜻이다. 음식도 그렇게 음미하면 좋을 터이니 이 방에 잘 어울리는 글이다. 소전은 지난 세기에 손꼽히던 서예가로 일본의 추사 연구가 후지즈카 치카시(藤塚隣·1879~1948)가 소장하고 있던 ‘세한도’를 정성과 집념으로 돈 한푼 안 주고 찾아온 사람이다.

이화영 대표는 “이렇게 하고 있지만 엄마 흉내나 내고 있는 것 같은 마음뿐”이라고 겸손해 했다. 그가 음식점을 물려받은 과정을 본인은 ‘우연찮은 일로’라고 했지만 운명이 아니고는 이럴 수가 있을까 싶다.
  
어머니는 ‘해남천일관’을 삼성동에서 시작해 대치동 휘문고 옆으로 옮겨 1990년대 후반 1차 전성기를 일궜다. 하지만 식당을 잘 하다가도 몸이 힘들면 대책 없이 문을 닫고 쉬었다. 대신 전화번호(유선) 두 개는 꼭 가지고 있었다. 몇 달 쉬면 맛을 아는 단골들이 전화를 해서 “집에서라도 준비해 달라”고 채근했다. 인정에 묶여 상을 차려주다 보면 ‘이러느니 제대로 하자’는 생각이 들어 또 시작했다. 하다가 힘들면 닫고 또 열고, 그러기를 두어 번 했다.
 
어머니는 해남 천일식당을 일군 고(故) 박성순 여사가 마흔 살 무렵 둔 늦둥이 막내였다. 음식 솜씨와 신체적 활력이 한창인 어머니의 사랑을 흠뻑 받으며 자랐다. 음식의 기초도 그렇게 익혔다. 자라서는 해남 부잣집으로 시집을 갔다. 아버지는 입맛이 까다로웠다. 토하알젓 같은 걸 챙겨 먹던 분이다. 이 대표는 “까탈스러운 남편 만난 주부가 음식 맛이 좋다 했는데 우리 어머니가 그랬다. 억지로 음식 솜씨가 좋아졌다. 외할머니 솜씨를 물려받은 것도 있지만 아버지 입맛 맞추느라고 별별 음식을 다 하다 보니 솜씨가 늘었다”고 회상했다.
  
어머니 노하우는 아주 차진 전라도 사투리와 임의로운 친근감이었다. 옛날 한정식 집 분위기가 대개 요정 같았는데 해남천일관은 그렇지 않았다. 혼자 방마다 휘젓고 돌아다니며 음식 설명도 하고 가족에게 하듯 산 낙지 손으로 감아서 입에 넣어도 주고, 김치도 손으로 쭉쭉 찢어 주고…
 
자신감이 생긴 어머니는 자신의 음식을 대중화 해보려고 반포IC 근처로 옮겨 크게 음식점을 열었다. 하지만 실패했다. 폐업하기로 했다. 젊은 딸은 어머니 서류정리나 도와주려고 음식점 일에 처음 발을 담갔다. 그때까지 이 대표는 이화여대 음대(오보에 전공)를 졸업하고 변호사 남편 만나 두 아들 키우며 집에서 살림만 하던 유복한 주부였다. 폐업한다고 생각하니 해남천일관이 망했다는 얘기를 들으면 자존심이 상할 것 같았다. 청산작업을 하다가 승계 수업을 시작했다. 
 
딸로 자라며 어머니에게 음식을 배우겠다는 생각은 별로 하지 않았다. 하지만 2009년부터 본격 수련을 시작했다. 반포 음식점을 정리하고 2013년 현 위치로 이사했다. 그리고 2014년 겨울 김장을 봐주신 어머니는 다음해 2월 돌아가셨다. 이 대표는 해남천일관을 온전히 떠맡아 3대 대물림을 했다. “사회 경험이 없었던 게 오히려 도움이 됐다. 계산 속을 모르기 때문에 어머니 하던 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 외할머니·어머니와 호흡을 맞춰 주방 일 하던 분들 그대로 모시고 했다. 지금도 5명이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외할머니에게 배워 주방을 책임지던 이모님은 3주 전(지난 5월 중순)까지도 계셨는데 연로하셔서 이제 그만뒀다”고 이 대표는 말했다.  
상차림 준비가 한창인 주방. 전체의 절반도 채 보이지 않는다. 손님들이 도착할 시간이 돼 음식 하는 사람들이 한쪽에 몰려 있다. 대부분 이 대표의 외할머니나 어머니 때부터 일한 사람들이다.

상차림 준비가 한창인 주방. 전체의 절반도 채 보이지 않는다. 손님들이 도착할 시간이 돼 음식 하는 사람들이 한쪽에 몰려 있다. 대부분 이 대표의 외할머니나 어머니 때부터 일한 사람들이다.

어머니는 좋은 재료와 푸짐한 음식을 늘 강조했다. 혼자 시장을 보던 어머니는 그런 생각과 기준으로 물건을 사왔다. 딸은 짜임새가 없다고 생각했다. 냉장고에 무엇이 있는지 생각도 안 하고 시장에 좋은 물건이 보이면 무조건 사왔다. 6개월을 지켜보다가 따라 나섰다. “관리하고 조절해가며 사들이면 어떻겠냐”고 하니 어머니는 “눈에 보여 좋으면 사야지 어떻게 계산대로 하느냐”고 야단을 쳤다. 이 대표는 “7년을 시장을 다녀보니 이제 그 마음을 알겠다”고 했다. 지금도 식재료의 절반쯤은 해남·광주의 거래처에서 준비해 올려주고, 나머지는 일주일에 한두 차례 가락동농수산시장에 나가 사온다. 
 
이 대표에게 해남천일관은 가업이지만 아직도 벅차다.  
“이런 식당이 오래 갈 수 있을지 의문이다. 한식 부엌일을 너무 힘들어 한다. 하려는 사람이 없다. 이런 환경에서 언제까지 지켜나갈 수 있을지 걱정이다. 큰 욕심 안 부리면 운영은 할 수 있다. 아이들 다 키웠고 남편은 변호사이니 경제적 제약은 그다지 없다 할 수 있다(‘남편이 돈은 못 벌지만 타 가지도 않는다’고 했다). 여기서 돈 벌어서 먹고 살아야 한다면 무척 힘들 것이다. 비용 지출하고 인건비 주고 세금 내면 내 인건비가 없는 달도 제법 있다. 가끔은 이걸 왜 하고 있나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김영란법 발효(2016년 9월 28일)하고 한 달은 손님이 거의 없었다. 맡고 나서 처음 휘청했다. 두 달은 버틸 수 있을까, 문을 닫아야 하나 생각하다가 ‘천일도시락’ 사업으로 돌파구를 찾았다. 10개 이상 주문하면 배달을 해줬다. 값은 법이 허용하는 범위로 1개 2만9500원을 받았다. 떡갈비·낙지볶음·전복죽·제육김치볶음·잡채·전(2종)·나물(2종)·김치·후식(한과)에 밥과 국까지 한정식을 압축한 도시락이다. 배달 1시간 전에 음식 조리를 시작하고 밥도 갓 지어 따끈하게 먹을 수 있도록 했다. 요새는 손님 발길이 조금 살아나기는 했지만 이전보다는 어림없다.”
 
그렇다고 기대와 모색이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 집이 음식 맛있는 집이 아니라 손님 접대하기 좋은 집이라는 인식이 퍼져 안타깝다. 마당 넓고 실내도 널찍널찍하니까 그런 얘기가 퍼졌는데 음식이 좋은 집이라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다. 음식을 준비하는 진심을 알리고 싶다. 돈을 많이 벌고 적게 버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손님들이 진짜 좋은 음식을 먹고 간다는 사실을 알아주는 거다.  
변화의 필요성은 느끼지만 시류에 따르는 변화가 득이 될지 가늠이 잘 안 된다. 하던 대로 가는 게 살아남는 길일 것 같다. 여전히 고춧가루는 100% 국산 태양초만 쓰고 김치도 어머니 때 방식 그대로 다 담근다. 어머니 때와 달라진 것은 간이 약해졌다. 처음 일 도울 때 손님들에게 음식이 짜다는 불평을 많이 들어서 줄였다. 재료 수급이 달라져 메뉴가 약간 바뀐 것도 있다. 불가항력이다. 몇 년 전까지 조기조림을 빠지지 않고 올렸는데 지금은 값이 너무 비싸졌다. 3배는 뛴 것 같다. 구할 수 없을 때도 있다. 할 수 없이 고등어조림으로 바꿨다.음식 제대로 내고, 적정 이윤 생각하면 저녁상은 15만~20만원은 받아야 한다. 부엌일 하는 분들 공을 생각하면 10만원으론 이어가기 어렵다.”
해남천일관 입구. 석벽 위로 정원수가 보이는 곳부터 넓은 마당이 펼쳐진다. 오른쪽에 간판이 보이는 ‘민이한상’은 해남천일관이 직영하는 대중음식점이다.

해남천일관 입구. 석벽 위로 정원수가 보이는 곳부터 넓은 마당이 펼쳐진다. 오른쪽에 간판이 보이는 ‘민이한상’은 해남천일관이 직영하는 대중음식점이다.

해남천일관 식으로 맛을 내는 음식을 싸고 가볍게 먹고 싶은 손님들을 위한 대중음식점도 있다. 바로 앞 건물 1층에 ‘민이한상(서울 강남구 테헤란로13길 22/전화 02-566-7875)’을 직영한다. 해남천일관 솜씨로 만든 반찬과 즉석 솥밥이 함께 나가는 사태육개장·황태해장국(각 1만원), 양념꽃게살비빔밥·전복장비빔밥(각 1만5000원) 4가지 식사가 있다. 밥과 음식을 상에 나가기 직전에 조리하는 건 여기도 같이 지키는 원칙이다.
 
해남천일관 솜씨로 만든 음식을 싸고 간편하게 먹을 수 있게 파는 직영 대중음식점 ‘민이한상’이 길 건너 맞은편에 있다.

해남천일관 솜씨로 만든 음식을 싸고 간편하게 먹을 수 있게 파는 직영 대중음식점 ‘민이한상’이 길 건너 맞은편에 있다.

해남천일관은 고급주택을 음식점으로 개조해서 쓰고 있다. 약 330㎡(100평) 대지에 절반쯤은 왕대나무가 울타리를 친 마당으로 쓰고, 건물은 지층(주차장 겸 창고)과 지상 2층으로 구성됐다. 2개 층에 24인실 하나와 6~8인실 6개가 모두 별실로 돼 있다. 모두 합하면 70석쯤 된다. 일요일과 설·추석에 이틀씩 쉬고 영업시간은 오전 11시 30분~오후 2시 30분, 오후 5시 30분~10시이다. 예약한 손님만 받는다. 막걸리·소주·맥주 각 1만원, 코르키지(corkage)는 1병에 와인 2만원, 양주 5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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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