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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훈, 치열하고 가혹하게 박열이 됐다

'박열' 이제훈 / 사진=전소윤(STUDIO 706)

'박열' 이제훈 / 사진=전소윤(STUDIO 706)

 ‘박열’(6월 18일 개봉, 이준익 감독)은 일본 제국의 심장부에서 항일운동을 벌인, 그동안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박열(1902~1974) 의사의 이야기다. 내용은 이렇다. 1923년 관동대지진 발생 후, 일본 내각은 민란을 차단하기 위해 조선인에 대한 괴소문을 퍼트린다. 당시 이 일로 일본에서 6000여 명의 조선인이 학살당한다. 뒤늦게 국제사회의 비난이 두려워진 일본은 ‘불령사’라는 조직을 만들어 활동하던 박열을 대역사건의 배후로 지목하고, 사건을 은폐하려 한다. 억울한 누명을 쓰게 된 박열. 하지만 그는 오히려 일본의 계략을 역이용해 그들의 만행을 전 세계에 알릴 계획을 세운다. 바로 스스로 대역 죄인이 되기로 한 것. 이후 박열은 재판에서 일본의 부도덕한 태도를 비판하며, 일본 내각을 한바탕 가지고 논다. ‘일제강점기, 고작 스물두 살이던 조선 청년이 어떻게 저런 대담한 일을 벌일 수 있었을까.’ 거침없이 저항하고, 불꽃같이 타올랐던 조선 최고의 불량 청년 박열. 그의 뜨거운 삶을 오롯이 연기한 이제훈(33)이 멋들어진 답을 들려줬다.
 
 
―이준익 감독과 첫 호흡을 맞췄다.
 
“실존 인물인 독립운동가를 연기하는 건 배우로서 상당히 심적 부담감이 크다. 그런데도 이 영화를 선택할 수 있었던 건 이준익 감독님 때문이다. 평소 감독님 작품을 보면서 함께 작업할 수 있는 기회가 오길 바랐는데, ‘박열’이라는 좋은 작품에 불러주셔서 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영화를 대하는 진중한 마음가짐이 필요했고, 시나리오도 어려웠지만, 감독님이 계셔서 용기를 낼 수 있었고, 모든 걸 내던지며 연기할 수 있었다.”
'박열' 이제훈 / 사진=전소윤(STUDIO 706)

'박열' 이제훈 / 사진=전소윤(STUDIO 706)

 
―박열이라는 역할에 왜 이제훈이라는 배우를 캐스팅했는지 생각해 본적이 있나.
 
“스케줄이 맞아서 아닐까(웃음). 이 부분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본 적이 있는데, 아마도 이준익 감독님이 내가 지금껏 했던 작품들을 보시고, 내 안에서 불덩이 같은 청춘을 보신 거 같다. ‘이 친구라면 박열을 온전히 투영시킬 수 있겠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아무리 좋은 역할이라도 나를 이입할 수 없으면 출연하는 게 쉽지 않다. 박열이란 인물에 이제훈을 대입했을 때 잘 맞아 떨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내가 할 수 있고, 내 역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박열은 우리가 잘 몰랐던 인물이다. 그의 삶을 연기하면서 많은 생각을 했을 것 같은데.
 
“이런 인물이 실제로 존재했다는 자체가 놀라웠다. 우리나라를 위해서 희생하신 분들에 대해 다시금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사실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독립운동가 분들이 정말 많지 않나. 영화를 통해 박열 의사에 대해 많은 분들이 알게 되길 원하고, 그동안 우리가 몰랐던 분들이 재조명 되는 기회가 많아지길 바란다. 배우로서 앞으로도 이런 영화가 있다면 적극적으로 알리고, 참여하고 싶다는 의무감이 생겼다.”
 
―처음에 포스터를 보고 깜짝 놀랐다.
 
“나한테도 굉장한 충격이었다(웃음). 첫 테스트 촬영 때 아무도 나를 몰라보더라. 감옥 세트장에서 촬영을 했는데, 이리저리 돌아다녀도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걸 보고 의아하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했다. 한편으론 기존에 이런 파격적인 모습을 한 적이 없어서, 나의 새로운 면모를 보여줄 수 있다는 점이 개인적으로 반가웠다. ‘이제훈을 지우고 온전히 캐릭터로서 연기할 수 있겠구나’라는 약간의 희열과 기대감이 있었다고 할까.”
'박열' 이제훈 / 사진=전소윤(STUDIO 706)

'박열' 이제훈 / 사진=전소윤(STUDIO 706)

 
―영화에선 그 모습이 정말 잘 어울리더라.
 
“촬영을 진행하면서 진짜 그 인물이 되고 싶었다. 완벽하진 않아도 최대한 가깝게 가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했다. 박열은 독립운동가로서 지조 있고 결의에 찬 모습도 있지만, 그걸 넘어선 행동주의자로 어디로 튈지 모르는 터프한 인물이다. 그의 모든 행동은 올곧은 신념을 바탕으로 한다. 그런 모습을 연기할 수 있다는 게 굉장한 흥미로웠다.”
 
―박열이란 인물의 해학적인 면모가 잘 드러난 거 같다.
 
“그 부분에 있어서 고민을 정말 많이 했다. 박열은 진중하고 비장한 면도 있는 반면, 일본 내각을 상대할 땐 해학과 풍자, 유쾌함이 있는 인물이다. 그걸 어떻게 표현할 지가 관건이었다. 나는 박열이란 인물이 힘들고, 고통스러운 모습보다 호탕하게 해쳐나가는 모습이 더 많이 비춰지길 원했다. 박열은 감옥에 갇혀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계속해서 일본을 갖고 놀지 않나. 그 모습을 통해 관객들에게 통쾌함을 선사해주고 싶었다.”
 
―박열을 연기하는 데 있어서 가장 고민한 부분은 무엇인가.
 
“허투루 인물이 왜곡되거나 미화되는 걸 경계하고, 박열의 사상과 신념이 영화를 통해서 관객에게 잘 전달될 수 있도록 노력했다. 그래서 그분의 자료와 책을 찾아봤고, 박열의 신념적 동지이자 연인인 가네코 후미코(최희서)의 평전인 야마다 쇼지 작가의 가네코 후미코도 열심히 읽었다. 박열과 가네코가 어떤 마음으로 일본 내각과 정면으로 맞섰고, 감옥에서도 끝까지 투쟁할 수 있었는지를 올곧게 보여드리고 싶었다.”
'박열' 이제훈 / 사진=전소윤(STUDIO 706)

'박열' 이제훈 / 사진=전소윤(STUDIO 706)

 
―조심스러운 부분이 많았나 보다.
 
“내가 연기를 하는 데 있어서 출발점은 리얼리즘이다. 픽션이지만 실제처럼 느껴져야 연기를 할 수가 있다. 박열이란 인물은 일단 실존인물이고, 자료를 찾을 수 있고, 고증이 완벽하게 된 시나리오가 있어서 연기를 하는 게 어렵진 않았다. 다만 혹시나 연기를 하면서 인물의 행동을 왜곡하거나 진정성을 훼손시키지 않을까 스스로 내 자신을 재단하는 과정을 많이 거쳤다. 그렇게 캐릭터 행동을 예의주시하고, 내 안에 각인시키면서 정말 많이 빠져버린 거 같다. 한 달 반 정도 촬영을 했는데 정말 하루하루가 소중했다. 워낙 밀도 있고 강렬하게 연기해서 그런지, 영화가 오래도록 기억날 거 같다.”
 
―촬영 내내 자발적 단식을 했다고.
 
"실제로 박열 의사가 감옥 안에서 단식투쟁을 불사하며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켰다고 하더라. 배우로서 그 모습까지 표현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주위에서 아무도 단식을 하라고 하지 않았지만 거짓 연기를 하고 싶지 않았다. 진정성 있게 인물에 다가가지 않으면, 혹시 보시는 분들이 그가 진짜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놓치지 않을까 두려운 마음이 컸다.”
 
―일본어로 대사를 해야 하는 분량이 정말 많던데.
 
"일어를 전혀 못하기 때문에 그 압박이 상당했다. 특히 3차 공판에서 박열이 일어로 진술하는 대사 양이 어마어마하다. 시나리오를 보는데 ‘이건 불가능이다’라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한국어로 해도 부담되는 장면인데, 일어라니. 촬영이 들어가기 전에 최희서 배우와 미즈노 역의 김인우 배우, 후지시타 역의 최우수 배우가 대사를 녹음해서 보내줬다. 나는 그걸 일어나서부터 잘 때까지 온종일 끼고 살았다. 보통 연기하느라 외운 대사는 금방 잊어버린다. 하지만 이 영화의 대사만큼은 정말 오래갈 거 같다. 지금 해보라고 해도 바로 술술 나올 정도다.”
'박열'이제훈 / 사진=전소윤(STUDIO 706)

'박열'이제훈 / 사진=전소윤(STUDIO 706)

 
―엄청 열심히 했나보다.
 
"일어로 감정을 전달하는 게 중요했기 때문에 완벽하게 이해하고, 외우려고 엄청 노력했다. 촬영 전에 공판 신을 찍는 꿈을 꿀 정도였다. 꿈속에서 완벽하게 외웠다고 생각했는데 대사가 생각이 안나는 거다. 꿈에서 깨서 ‘나 어쩌지’ 하면서 막 울었다(웃음). 그 정도로 완벽하게 습득하고 표현해야 한다는 압박이 심했다. 그런데 모든 심적 부담감이 촬영장에서 확 해소가 됐다. NG를 내지도 않았다. 정말 열심히 한 보람이 있더라. 끝나고 너무 행복해서 소리를 막 질렀다. 감독님도 만족해하셨고, 일본 배우들도 영상을 확인하고 잘했다고 해줘서 얼마나 안도의 한숨을 쉬었는지 모른다.”
 
―쉬지 않고 열일하는 배우다.
 
"이렇게 쉬지 않고 일하게 될 줄 몰랐다.(웃음) 작년 8월에 사전 제작 드라마였던 ‘내일 그대와’(tvN)를 찍으면서 ‘이제 곧 쉬겠구나’ 생각했는데, 이준익 감독님께 연락을 받았다. 사실 체력적으로 부담이 조금 됐지만 ‘박열’을 꼭 하고 싶은 마음이 더 강했다. 이번에도 ‘박열’ 끝나면 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지금 또 영화 ‘아이 캔 스피크’(김현석 감독)를 촬영 중이다. 뭔가 배우라는 직업은 계획을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거 같다. 지금 지쳐있는 상태인데, 그런데도 불구하고 힘을 내서 일할 수 있는 건 좋은 이야기로 관객을 만난다는 기쁨 때문이다. 그 생각만 하면 힘들어도 신나게 할 수 있다.”
 
―이제훈에게 현장은 재미있는 일터인가, 긴장되는 무대인가.
 
"항상 두 가지가 공존하는 곳이다. 재미있고 즐겁지만 극도로 예민해있는 시간이라고 할까. 요즘은 필름이 아닌 디지털이라 영상 자료가 오래 남지 않나. 배우로서 후회할 만한 모습을 절대 남기고 싶지 않다. 그래서 촬영을 할 때 나의 개인적인 시간을 쓰지 않는다. 오로지 작품 속에서 그 인물이 잘 투영되길 바라는 배우로만 지낸다. 사람들도 거의 만나지 않고 쉴 수 있는 시간이 생겨도 어떻게 연기할지만 고민하는 편이다.”
'박열' 이제훈 / 사진=전소윤(STUDIO 706)

'박열' 이제훈 / 사진=전소윤(STUDIO 706)

 
―배우 아닌 이제훈에게 너무 가혹한 거 아닌가.
 
"나라는 사람 자체가 그렇다. 주위에서 ‘연기하는 순간에 잘하면 되지. 개인적인 시간을 없애면서까지 해야 하냐고’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나는 연기를 할 수 없는 사람 같다.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즐기다가 촬영장에서 배우 이제훈으로 딱 돌변해서 연기 하는 게 잘 안 된다. 나는 계속해서 캐릭터의 감정을 쌓고 또 쌓아야만 진정한 연기를 할 수 있는 배우다. 그래서 작품이 없어야지 나라는 사람으로 다시 되돌아가고, 나를 찾을 수 있다.”
 
―행복한가.
 
"배우 이제훈의 삶에 감사하다. 좋은 기회가 주어지고, 좋은 사람들을 만나서 함께 연기하고, 작품을 만들어갈 수 있는 자체가 굉장히 행복하다. 또한 나를 좋아해주는 팬들이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하고 감사한지 모른다. 물론 나라는 사람에게 개인적인 시간이 없다는 게 조금 아쉬운 부분이지만 그렇다고 불행한 건 아니니까. 늘 감사하고 행복하게 살려고 한다.”
 
―인터뷰가 정말 진지하다.
 
"요즘 유머감각이 늘었다는 말을 자주 듣는데, 영화 때문에 실없는 농담을 할 수가 없다(웃음). 스스로도 대답이 너무 진지해지는 거 같아서 ‘이러면 안 되는데’라고 생각했다. 나처럼 모두가 진지하게 임한 영화이니 많은 분들이 극장에서 ‘박열’을 봐주셨으면 좋겠다.”
 
 이제훈의 마음을 울린 대사
 마지막 공판 날, 법정 밖 조선인들과 해외 기자들이 박열과 가네코를 향해 외치는 말이다. "기억하겠다! 드러내겠다! 잊지 않겠다!” 촬영 때 이 외침을 듣는데 정말 울컥하더라. 실제로 박열과 가네코도 사람들의 이런 응원 소리를 들으면서 많은 힘을 받지 않았을까. 이 장면을 촬영하면서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친 모든 분들을 기억하고, 잊지 말아야겠다고 다시 한 번 생각했다.
 
 이지영 기자 lee.jiyoung2@joongang.co.kr 사진=전소윤(STUDIO 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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