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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녀' 정병길 감독, 죽어라 고생해도 액션이 좋다

'악녀' 정병길 감독 / 사진=라희찬(STUDIO 706)

'악녀' 정병길 감독 / 사진=라희찬(STUDIO 706)

[매거진M] 제70회 칸국제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 부문에 진출해 화제를 모은 ‘악녀’(6월 8일 개봉, 정병길 감독)의 뚜껑이 열렸다. 이전 한국영화에서 찾아보기 힘든, 여성 주인공을 앞세운 액션영화라는 점은 물론, 시작부터 몰아치는 고강도 액션은 찬사를 받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인물의 감정을 제대로 비추지 못하는 이야기 구조와, 주인공 숙희(김옥빈)와 현수(성준)의 조악한 멜로드라마를 생각하면 마냥 박수를 칠 수만은 없다. 서울액션스쿨 출신으로, 스턴트맨을 주인공으로 한 다큐멘터리 ‘우린 액션배우다’(2008)로 데뷔한 뒤, 액션 스릴러 ‘내가 살인범이다’(2012)에 이어 ‘악녀’를 선보인 정병길(37) 감독. 그는 이 영화에 쏟아진 찬사와 비판에 어떤 답을 내놓을까.
 
 
―여성 전사 퓨리오사(샤를리즈 테론)가 나오는 ‘매드맥스:분노의 도로’(2015, 조지 밀러 감독)를 보고 영감을 받아 ‘악녀’의 시나리오를 단숨에 썼다고 하던데.
 
“아니다. ‘악녀’는 뤽 베송 감독의 액션영화 ‘니키타’(1990)에 오마주를 바치는 작품이다. ‘니키타’를 처음 봤을 때 열 살이었다. 시골에 살다가 서울로 이사 왔는데, 적응을 못해 어린 마음에 ‘죽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웃음). 그 무렵 친구 집에 놀러 갔다가 친구 부모님이 비디오 대여점에서 빌려 놓은 ‘니키타’를 봤다. 안느 파릴로가 연기하는 주인공 니키타가 정말 매력적이었다. 국가에서 니키타에게 살인 면허를 준다는 설정이 무서우면서도 신기했다. 만화영화를 보다 처음으로 그런 영화를 봤으니(웃음). 그때 영화와 영화감독이라는 직업에 처음으로 흥미를 느꼈다.”
 
―그렇다면 이 영화를 연출하고 싶다는 생각을 오래 전부터 하고 있었겠다.
 
“그렇다. ‘내가 살인범이다’(투자·배급 쇼박스)가 관객 272만 명을 동원해 손익분기점(180만 명)을 넘긴 덕분에, 투자·배급사 NEW로부터 ‘당신이 하고 싶은 영화를 만들어 보라’는 제안을 받았다. 그때 2주 만에 ‘악녀’의 초고를 썼다. ‘조선족 여성 킬러가 한국의 국가 조직에 스카우트되면 어떨까. 주인공이 한국에 온 게, 알고 보니 누군가가 판 함정이었다면. 결국 주인공이 한국의 국가 조직이 내린 임무를 수행하다 자신을 함정에 빠뜨린 사람을 맞닥뜨려야 한다면’이란 상상에서 출발했다.”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액션영화라니, 한국에서는 좀처럼 만들어지지 않았던 작품이다.
 
“투자·배급사의 특별한 제안이 아니었다면, 지금 한국영화의 투자 환경을 통과하지 못했을 거다. 액션영화는 상업적인 장르로 치니까 투자 과정에서 별다른 제약이 없는데, 여성 원톱 주인공 영화는 얘기가 다르다. 그나마 여성 주인공이 익숙한 드라마나 멜로 장르도 아닌 액션영화라고 하면 투자 받기 정말 힘들다. ‘악녀’의 순제작비는 47억원이다. 액션영화 치고 예산을 적게 쓴 편이다. 두 남성이 주인공인 범죄 액션영화 ‘불한당:나쁜 놈들의 세상’(5월 17일 개봉, 변성현 감독)의 순제작비는 60억원이다.”
 
―첫 장면부터 숙희가 범죄 조직을 일망타진하는 액션 장면을 펼친다. 그것도 숙희의 1인칭 시점으로 약 8분 동안 이어지는 원 신 원 컷의, 야심 찬 액션 장면인데.
 
“3년 전에 VR(가상현실) 단편영화의 연출을 제안 받은 적이 있다. 결국 성사되지는 않았다. 그때 VR에 대한 공부를 하면서 설계한 액션을 이번에 ‘악녀’의 오프닝 장면으로 썼다. VR도 헤드셋을 낀 시청자가 고개를 돌리는 방향대로 1인칭 시점의 영상을 보여 주는 방식이지 않나. 실제로 8분여를 한 테이크로 찍은 건 아니고(웃음), 어떤 지점에서 컷과 컷을 이어 붙여 한 컷처럼 보이게 할지 전체 시퀀스를 미리 정교하게 설계한 뒤 촬영에 들어갔다. 마지막에 숙희가 에어컨 실외기에서 떨어져 상대 무리를 쫓아간 뒤 버스에서 펼치는 액션도 7~8분 정도 원 신 원 컷으로 나온다. 그 장면도 실제로는 버스 장면을 먼저 찍고 실외기에서 떨어지는 장면은 나중에 찍어 붙였다.”
영화 '악녀'

영화 '악녀'

 
―‘악녀’만의 액션, 그 콘셉트는 무엇인가.
 
“새로운 액션을 보여 주는 것. 그래서 권귀덕 무술감독과 참고 작품을 찾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카메라가 액션을 하는 인물에 최대한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까, 그러다 얼마나 다시 멀리 떨어질 수 있을까, 그걸 어떻게 카메라가 한 번에 움직이는 것처럼 이어서 보여 줄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많이 했다. 특히 마지막 액션 장면에서 숙희가 오토바이를 타고 갈 때, 카메라가 달리는 오토바이 바퀴 밑으로 이동하는 앵글은 ‘이걸 어떻게 찍을 수 있을까’ 우리끼리 머리를 맞대야 했다. 오토바이 옆에서 달리는, 촬영장비차에 매달린 사람이 손으로 직접 카메라를 오토바이 바퀴 밑으로 넣자는 아이디어를 권 무술감독이 냈다. 아무래도 그런 동작은 무술감독이 더 잘할 것 같아 권 무술감독이 하려고 했는데, 박정훈 촬영감독이 ‘카메라는 내가 잡아야지’라면서 자기가 하겠다고 했다(웃음).”
 
―영화 액션의 독창성이란 무엇일까.
 
“중요한 건 ‘얼마나 새로운 액션 동작이나 그 합을 보여 주느냐’가 아니라, ‘그 동작을 얼마나 효과적인 카메라 앵글로 보여 주느냐’다. 영화 액션은 실전 무술이 아니다. 실제로 싸워 이기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럴 듯하게 보이는 게 더 중요하다. 차를 아무리 멋있게 뒤집어도 그걸 제대로 찍지 못하면 소용없다.”
 
―액션 장면에 비해 극 중반을 차지하는 드라마 장면은 완성도가 현저히 떨어진다.
 
“액션 장면을 먼저 찍고 드라마 장면을 나중에 찍었다. 힘든 장면을 찍느라 진이 다 빠진 상태에서 드라마를 찍으니 긴장이 풀렸던 것 같다. 다음에는 방심하지 않겠다.”
 
―액션이 전면에 나서는 작품이니 액션에 더 집중해도 좋았을 텐데, 중반의 드라마 장면이 꽤 길다.
 
“다음에는 액션과 드라마 중 하나만 해야겠다(웃음). ‘악녀’는 처음부터 액션과 드라마를 지금 같은 비중으로 구상했다. 한데 처음부터 고강도 액션이 이어지다 보니, 더 센 액션을 계속 보고 싶은 마음에 드라마를 더 지루하게 느끼는 것 같더라. 편집 단계에서 중반의 드라마 부분을 줄일까 했는데, 모니터 시사 결과, ‘숙희와 국정원 요원 현수의 풋풋한 멜로드라마가 재미있다. 액션 사이에서 쉬어 가는 느낌이 들어 좋다’는 의견이 많았다.”
 
―이렇게 고된데도 계속 액션영화를 찍는 이유는 무엇인가.
 
“원래 화가가 되려 했다. 그림을 관두고 영화감독이 되면서 ‘캔버스나 화선지 대신 스크린에 움직이는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를 만들면서 내가 그림을 그린다는 기분을 느끼는 순간이 바로 액션 장면을 찍을 때다. 뭔가 진짜 창작하는 느낌이다. 또 관객과 일대일로 호흡하는 것 같아 좋다. 액션 장면에서는 관객이 탄성을 지르고 손에 땀을 쥐면서 영화를 보지 않나. 앞으로 연출하려고 기획해 놓은 작품도 몇 편 있는데, 그것들도 다 액션영화다.”
 
장성란 기자 hairpin@joongang.co.kr
사진=라희찬(STUDIO 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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