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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파리기후협정은 산업 혁신의 기회다

안병옥환경부 차관                   전 기후변화행동연구소장

안병옥환경부 차관 전 기후변화행동연구소장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파리협정 탈퇴를 공식 발표하면서 그 파장이 어디까지 미칠지 주목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세계 최강국이자 온실가스 2위 배출국인 미국의 탈퇴 선언으로 파리협정이 사실상 유명무실해졌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비관론을 압도하는 것은 냉정하면서도 낙관적인 시각이다. 대다수 분석가들은 국제사회의 기후 체제에서 미국의 부재가 가져올 부정적 영향은 매우 제한적일 것으로 전망한다. 타격을 입게 될 것은 파리협정이 아니라 트럼프 대통령 자신과 미국의 미래라는 것이다.
 
미국 국민의 여론도 트럼프 대통령에게 유리하지 않다. 최근 워싱턴포스트와 ABC방송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10명 중 6명은 트럼프 대통령의 결정에 반대 의사를 표시했다. 흥미로운 점은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지지자들도 파리협정 탈퇴를 반대하는 기류가 강하다는 것이다. 이 사실은 올해 2월 예일대와 조지메이슨대의 공동 조사 결과로 확인된다. 지난해 대선에서 트럼프 후보를 지지했던 유권자 가운데 47%가 파리협정 잔류를 지지한 반면 탈퇴에 찬성하는 사람들의 비율은 28%에 그쳤다.
 
지방 정부와 기업들의 반발도 예사롭지 않다. 지금까지 1200명이 넘는 주지사·시장·기업 최고경영자들이 ‘우린 아직 탈퇴하지 않았다(We Are Still In)’ 캠페인의 지지 서명에 참여했다. 그 수는 날이 갈수록 불어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의 결정은 월가와 대규모 투자가들의 이해에 반하는 것이라는 비판도 거세지고 있다. 애플·아마존·구글·페이스북·마이크로소프트 등에 이어 거대 석유기업 엑손모빌까지 비판 대열에 합류한 것은 이례적이다.
 
미국의 기후변화 정책이 새 대통령에 의해 격랑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면 새 정부가 출범한 우리나라에서도 기후변화 정책은 큰 변화를 앞두고 있다. 물론 문재인 대통령의 후보 시절 공약 목록에 굵직한 기후변화 정책이 들어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공약을 문자 그대로만 해석하면 앞으로 전개될 변화의 폭과 깊이를 가늠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변화의 진원지는 과연 어디가 될까. 그건 미세먼지 배출량을 임기 내 30% 감축하겠다는 문 대통령의 공약일 가능성이 크다.
 
 
미세먼지와 지구온난화를 일으키는 물질의 배출원은 거의 같다. 미세먼지를 틀어막으면 온실가스 배출량도 덤으로 줄게 된다. 문재인 정부의 기후변화 정책은 미세먼지라는 달리는 호랑이 등에 올라타게 될 것이라는 얘기가 그래서 나오는 것이다. 노후 석탄발전소 조기 폐쇄, 신규 건설 전면 중단과 공정률 10% 미만 건설 원점 재검토 공약이 현실화된다면 발전 분야에서는 감축 공약을 지킬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발전 분야의 감축만으로 충분한 것은 아니다. 우리 현실에서 더 중요한 것은 산업 분야다. 기후변화 정책은 환경보호가 본질이지만 산업 부문의 혁신을 촉진한다는 점에서 산업정책의 성격도 갖는다. 박근혜 정부로부터 ‘4대 기후 악당 국가’라는 유산을 물려받은 새 정부가 그 굴레에서 벗어나려면 산업정책의 패러다임부터 바꿔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미국 기업들은 ‘파리협정은 미국에 나쁜 거래’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을 왜 ‘시대착오적’이라고 평가할까.
 
첫째, 자동차 시장과 에너지 시장의 변화된 현실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탈퇴 선언이 나온 후 불과 4시간 만에 일론 머스크가 대통령 경제자문역에서 탈퇴하겠다고 밝힌 것은 그가 환경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어서만은 아니다. 전기차를 생산하는 테슬라의 최고경영자인 머스크의 이해관계는 과감한 온실가스 감축을 예정하고 있는 파리협정의 방향과 정확히 일치한다. 파리협정 잔류를 지지하는 엑손모빌의 태도도 마찬가지다. 이 석유 대기업이 수년 전부터 탄소 배출량이 적은 연료 개발에 약 70억 달러를 투자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면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둘째, 미국의 파리협정 탈퇴 선언은 화석연료 산업과 재생에너지 산업의 대리 전쟁이 격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런데 이 전쟁의 승자는 이미 결정돼 있다. 승패를 결정짓는 잣대로 가장 중요한 것은 일자리다. 트럼프 대통령이 번지수를 잘못 찾았다는 사실은 미 에너지부의 통계가 증명한다. 미국에서 화석연료 산업 고용 인원은 18만7000명인 데 비해 재생에너지 산업 종사자 수는 47만5000명으로 상당한 격차를 보인다.
 
셋째, 파리협정 탈퇴는 다른 국가들이 국경에서 미국산 제품에 탄소 관세를 부과하는 등 무역 제재를 가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한다. 이 논의는 이미 많은 유럽 국가에서 시작됐다. 트럼프 대통령 스스로도 경쟁력을 왜곡시키는 수입품에 대해 관세를 물릴 수 있다고 위협해 왔다는 점에서 거부 명분을 찾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대다수 국가가 파리협정을 비준한 이유는 그것이 국익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탈퇴는 재생에너지 등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경쟁 국가들에 양도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독일과 일본은 벌써부터 미국의 빈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 새 정부 앞에는 엄혹한 기후 전쟁이 기다리고 있다. 이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기후변화 대응을 경제에 부담을 주는 것으로만 여기는 낡은 사고방식부터 벗어던져야 한다.
 
*이 칼럼은 환경부 차관 지명 이전에 기후변화행동연구소 소장 자격으로 쓴 것임을 밝힙니다.   
 
안병옥 환경부 차관 · 전 기후변화행동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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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