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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훈범의 시시각각] 윤리장전을 만들자 2

이훈범 논설위원

이훈범 논설위원

내가 절대 쓰지 않는 말이 있다. ‘지도층’이란 단어다. 1986년 개정판 국어사전에도 존재하지 않는 이 근본 없는 용어는 권위주의 시대에 생겨난 게 분명할 터다. ‘사회 구성원 대부분은 무지렁이며, 소수 엘리트가 이들을 이끌어야 한다’는 선민(選民)의식이 바탕에 깔렸다. 얼마 전 문제가 됐던 “민중은 개·돼지”란 인식과 맥이 통하는 거다.
 
선민의식은 이끄는 데만 발휘되지 않는다. 이른바 ‘특권’을 정당화하는 데 긴요하다. 무리의 길잡이로 노고가 많으니 남들과 다른 권리 좀 누리는 건 당연하지 않은가. ‘지도’하면서 얻은 정보나 기술을 써먹는 건 약간의 편의 제공과 다를 바 없다. 어차피 우민(愚民)들은 알아도 못 쓸 테니 말이다. 특권은 이 대목에서 ‘기득권’이 된다.
 
욕망엔 브레이크가 없다. 이미 내 것이 된 권리는 안 쓰면 손해인 거다. 더 자주, 더 폭넓게 쓰일 일만 남는다. 안 쓰는 사람들을 찾아보기 어렵게 되는 게 놀랄 일이 아니다. 그런데 복잡한 현대사회에선 어느 한길로 이끌기 어렵다. 다양한 관심을 가진 민중이 따르지 않을뿐더러 스스로 확신이 서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욕망에 제동이 걸리진 않는다. 이제 길잡이보다는 기득권에만 관심이 남는다(처음부터 남의 길엔 흥미가 없던 이들도 있겠으나 그런 부류까지 생각할 겨를은 없다).
 
내가 이들을 일컬어 특권층·기득권층이라 부르는 이유다. 문제는 이들이 공적(公的) 경계를 넘으면서 비롯된다. 사적 영역에서 특권과 기득권을 마음껏 누릴 때 이들의 마음속에 ‘공공(公共)’의 개념은 존재하지도 않았을 터다. 그렇지 않고서는 범죄 수준을 넘나드는 기득권 남용을 그토록 유려하게 행하기 어렵다. 부동산 재테크와 절세(節稅), 시(時)테크, 논문 활용, 주소 이전이 스스럼없이 행해진다.
 
그러다가 생각지 않던 기회로 공직 제안을 받게 되거나 사적 성취에 성이 안 차 공직을 넘보게 된다. 그런데 아뿔싸! 공적 렌즈로 들여다보니 여태껏 해 왔던 일들이 다름 아닌 부동산 투기와 세금 탈루, 병역 기피, 논문 표절, 위장 전입이었던 거다. 구원투수로 화려하게 등장한 우리의 대통령이 스스로 한 말에 발목이 잡혀 애를 먹고 있는 이유다. 이 사회 기득권층의 ‘내로남불’이 이 정도인지, 그것엔 좌우의 구분이 없었음을 미처 몰랐던 거다.  
 
이제 선을 그을 때가 됐다.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의 경계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서로 넘나들지 못하게 하자는 게 아니라 넘을 수 있는 옷차림을 확실하게 정하자는 거다.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는 영화 제목으로만 남아야 한다. 같은 짓을 하고도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 된다는 건 똑같은 우(愚)의 반복을 예고할 뿐이다. 이 정도쯤은 문제없을 것이란 허망한 기대를 키울 뿐이다.
 
지난번 글에서 ‘윤리장전(倫理章典)’을 만들자는 제안을 했다. 적어도 청문회를 거치는 고위 공직자들한테는 최소한 갖춰야 할 도덕성 기준을 정하자는 얘기였다. 자격 미달자에게 언감생심 꿈도 못 꾸게 하거니와 뛰어난 인재들이 젊어서부터 흔들림 없이 큰 뜻을 길러 나갈 수 있도록 차선을 그려 주자는 뜻이었다. 그래서 능력과 청렴이 함께할 수 있음을 증명하는 인물들이 많이 나와 기꺼이 지도층이란 말을 쓸 수 있는 날을 기대하면서 말이다.
 
윤리장전을 만들든 도덕성 헌장을 만들든 그 서문에는 이 말을 꼭 넣었으면 좋겠다. 특권이나 기득권 대신 윤리를 추구하며 도덕적으로 사는 삶 또한 그리 나쁘지는 않다는 걸 알게끔 하기 위해서다. 루이 14세에게 충성을 다하면서도 한 치의 부끄러움 없이 살았으며 부와 명성을 초개처럼 내던질 줄 알았던 프랑스의 풍자시인 니콜라 부알로의 말이다. “도의에 해로운 단 한 줄의 글귀도 쓴 적이 없는 한 시인에게는 죽음이란 하나의 커다란 위안인 것이다.” 
 
이훈범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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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