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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들이 저 보고 ‘장심청’이래요."

12일 김포공항 경내 공원에서 팬들을 향해 하트를 날리는 장하나. 그는 “잠깐 떠났던 친구가 돌아온 것처럼 맞아주시면 감사하겠다”고 했다. [김춘식 기자]

12일 김포공항 경내 공원에서 팬들을 향해 하트를 날리는 장하나. 그는 “잠깐 떠났던 친구가 돌아온 것처럼 맞아주시면 감사하겠다”고 했다. [김춘식 기자]

지난 12일 오전 김포공항 국내선 게이트.
 
장하나(25·BC카드)가 빨강색 골프백을 카트에 싣고 모습을 드러냈다. 바로 뒤엔 아버지 장창호(65)씨와 어머니 김연숙(66)씨의 모습이 보였다. 2주 연속 제주도에서 열린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KLPGA) 투어 대회에 참가한 뒤 귀경하던 길이었다.
 
장하나는 국내 복귀 무대였던 롯데 칸타타 여자오픈에서 공동 9위에 올랐다. 6월 11일 끝난 에쓰오일 챔피언십에서는 3라운드 합계 5언더파로 공동 29위에 그쳤다. 장염과 고열에 시달리는 등 컨디션이 썩 좋지 않았다. 장하나는 “제주에서 먹은 육회가 잘못되는 바람에 대회 내내 고생을 했다. 그래도 부모님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며 좋은 추억을 쌓고 왔다”며 밝게 웃었다.
 
제주도 유리박물관인 유리의성에서 장하나 가족이 찍은 사진. [사진 장하나 제공]

제주도 유리박물관인 유리의성에서 장하나 가족이 찍은 사진. [사진 장하나 제공]

장하나는 지난 5월 미국여자프로골프협회(LPGA) 투어 카드를 반납하고 국내에 복귀하겠다고 전격 선언했다. 지난 시즌 3승을 올렸고, 올해도 한국 선수 중 가장 먼저 우승(2월, 한다 호주오픈)을 차지하며 2019년까지 풀 시드를 확보한 터라 팬들은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장하나와 마주 앉아 국내 투어 복귀를 결정한 이유와 심경을 들어봤다.
 
국내 투어에 복귀해 대회를 치른 기분은.
“마음이 편안하고 좋았다. 다른 선수의 팬까지 나를 응원해 주시는 걸 보고 기뻤다. 어떤 사람은 나를 ‘장심청’이라고 불렀다. 대회 관계자 한 분은 엄마와 지내기 위해 복귀했다는 내 얘기를 듣고 눈물을 흘리시더라.”
 
3년 만에 돌아온 국내 투어는 어땠나.
“선수층이 더 두터워진 느낌이다. 전에는 20여 명이 선두권에서 우승을 다퉜는데 지금은 생각지도 못한 선수가 튀어나와 우승을 한다. ”
 
LPGA 투어를 접기로 결심한 건 언제인가.
“지난해 말부터 ‘돌아와야 겠다’ 마음을 먹었지만 아빠가 어떻게 생각하실까 싶어 말을 못 꺼냈다. 그런데 피닉스에서 열린 대회 이후 아빠가 ‘이제 그만 들어가는 게 좋지 않겠니’라고 하셨다. 아빠가 그런 말을 하시기까지 얼마나 고민하셨을까 싶었다. 두말 없이 ‘네’ 하고 다음날 비행기표를 예약했다.”
 
미국 생활이 그렇게 힘들었나.
“국내에서 우승을 하면 가족·친구와 함께 파티를 했다. 그런데 미국에선 우승을 해도 저녁에 아빠와 건배 한번 하고 들어와 다음 대회를 위해 짐을 싸야 했다. 나 자신이 꼭두각시 같기도 했고, 하염없이 쳇바퀴를 도는 햄스터 같기도 했다. 타이틀을 따면 그 다음해는 그걸 지키기 위해 더 안간힘을 써야 하고…. 그러는 동안 엄마와 아빠는 조금씩 더 늙어가신다고 생각하니 견디기 힘들었다.”
 
제주도 관광지 ‘유리의 성’에서 장하나가 찍은 사진. 부모님에게 ‘연애 모드’를 요청했다. [사진 장하나]

제주도 관광지 ‘유리의 성’에서 장하나가 찍은 사진.부모님에게 ‘연애 모드’를 요청했다. [사진 장하나]

장하나의 어머니는 서울 반포에서 30년 넘게 운영하던 식당을 지난해 그만둔 데다 외동딸까지 미국으로 떠나버리는 바람에 우울증에 시달렸다고 한다. 아버지 장씨도 지난해 3월 싱가포르 공항 짐가방 사건(에스컬레이터에서 장씨가 놓친 짐가방이 굴러 전인지 선수를 쳤고, 부상당한 전인지가 대회 출전을 못함)으로 마음고생을 했다.
 
제주도 유리박물관인 유리의성에서 장하나 가족이 찍은 사진. [사진 장하나 제공]

제주도 유리박물관인 유리의성에서 장하나 가족이 찍은 사진. [사진 장하나 제공]

앞으로 어떤 골프를 하고 싶나.
“미국에 진출하면서 세계 1위라는 목표와 꿈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2013년 행복하게 골프하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 나 혼자만의 꿈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하는 꿈을 만들고 싶다.”
 
결혼은 30세 전에 하고 싶다고 했는데.
“나름대로 시나리오도 짜 놨다. 2020 도쿄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뒤 귀국하는 공항 입국장에서 남친이 꽃다발을 안기며 프러포즈를 하는 거다. ‘지금까지는 나라와 골프를 위해 살았다면 이제부터는 날 위해 살아줘’라고. 하하.”
 
제주도 유리박물관인 유리의성에서 장하나 가족이 찍은 사진. [사진 장하나 제공]

제주도 유리박물관인 유리의성에서 장하나 가족이 찍은 사진. [사진 장하나 제공]

장하나는 솔직하고 호탕한 원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골프를 즐기기 위한 팁’을 가르쳐 달라고 하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골프장에서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룰을 어기지 않는 범위에서 내 방식대로 하면 된다. 봄꽃, 여름의 녹음, 가을 단풍을 느끼며 소풍처럼 라운드를 즐기시길 바란다.” 
 
정영재 스포츠선임기자 jerry@joongang.co.kr
 
※ 인터뷰 전문은 16일에 발행되는 월간중앙 7월호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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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