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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산·바둑·한자 … 인공지능 시대에 다시 뜬 아날로그 교육

서울 서초구 우솔초등학교 학생들이 2일 방과후 수업으로 주산을 배우고 있다. 최정동 기자

서울 서초구 우솔초등학교 학생들이 2일 방과후 수업으로 주산을 배우고 있다. 최정동 기자

 “1의 짝은 4고요, 2의 짝은 3이죠. 3의 짝은 2고요, 4의 짝은 1이죠….” 
 

“집중력·창의성·사고력 키우기 도움”
초등교 방과후수업 신청자 몰리고
주산암산학원 서울에만 100여 곳
학부모 “바둑 통해 예의도 배워”

지난 2일 오후 2시 서울 서초구 우솔초등학교의 한 교실. 노란색 대형 주판이 놓인 교탁을 중심으로 둘러앉은 학생 20명이 주산을 주제로 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아이들 책상에는 무지개색·주황색·갈색 등 다양한 색상의 주판이 놓여 있었다. 
곧이어 문제 풀기 시간. 교재 한 쪽당 20여개의 문제가 있었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페이지를 넘긴 뒤 1분 안에 “다 풀었다”며 손을 들었다. 50여분 간의 수업 동안 딴청 피우는 학생은 없었다.
 
4학년 이상아 양은 “주판알을 똑딱똑딱 움직이는 게 재미있다. 무엇보다 주판에 숫자가 표시되니까 셈할 때 헷갈리지 않아 좋다”고 말했다. 4학년 장석훈 군은 “2학년 때 1년간 해외로 어학연수 다녀온 뒤 수학에 자신이 없었는데, 주산을 배우니 곱셈과 나눗셈이 편해졌다”고 했다.
 
우솔초에선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총 4차례의 주산암산 수업이 진행된다. 최미연 교감은 “다른 방과후 수업은 신청자가 적어 폐강될 때도 많지만, 주산은 신청자가 100명이 넘어 결국 추첨을 통해 정했다”고 밝혔다. 주산암산반의 김지현 강사는 “우솔초 외에도 초등학교 4곳에서 주산을 가르치는데, 모두 3~4개반씩 개설되고 정원도 다 채울 정도로 학생과 학부모의 관심이 높다”고 전했다.
서울 서초구 우솔초의 방과후 주산 수업은 늘 신청자가 몰린다. 최정동 기자

서울 서초구 우솔초의방과후 주산 수업은 늘 신청자가 몰린다.최정동 기자

AI(인공지능)으로 대표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주산·바둑·한자 등 과거에 유행했던 ‘아날로그 교육’이 다시 인기를 끌고 있어 화제다.     
 
우솔초 등 서울 지역 초등학교 10곳의 방과후 수업을 위탁 운영하는 에스이방과후교육원은 올해 주산·바둑·한자 수업의 수강 인원이 3년 전인 2014년에 비해 2배로 늘었다고 밝혔다. 양재영 대표는 “바둑 수강생 수가 가장 많고, 이어 주산, 한자 순”이라며 ”특히 ‘교육특구’로 불리는 강남·서초구가 가장 많이 늘었다”고 소개했다.
 
우솔초는 지난해 방과후 수업으로 바둑과 한자를 신설했다. 김경연 방과후부장교사는 "기존에 운영하고 있던 주산암산반 외에 바둑과 한자를 가르치고 싶다는 학부모 의견이 많았다”며 “주산과 마찬가지로 바둑과 한자 수업도 개설 첫해부터 신청자가 몰려 4개 반을 추첨을 통해 운영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고 말했다. 
  
특히 바둑의 인기는 한국기원 자료에서도 확인된다. 지난해 전국 초등학교 5880곳 중 1500여곳에서 방과후 수업으로 바둑반을 운영한 것이다. 강준열 초등바둑연맹 회장은 “학부모들이 바둑이 전략적 사고 등 창의적 역량을 기르고, 상대에 대한 배려와 같은 인성 교육에도 좋다는 점을 깨닫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인기에 힘입어 한때 침체기를 겪었던 관련 학원도 다시 기지개를 켜고 있다. 김선태 동국대 평생교육원 교수(주산활용수학교육사)는 "80년대 중반 계산기와 컴퓨터가 보급되면서 주산이 교육 시장에서 20년 이상 완전히 사라지다시피 했다”며 “하지만 최근 집중력과 기억력 등 뇌 개발 등에 효과적이라는 입소문이 나면서 주산 교육에 대한 관심이 다시 뜨거워졌다"고 말했다. 
 
전국주산수학암산교육회에 따르면 서울에만 주산학원 100여곳이 운영 중이고, 집계되지 않는 공부방 등을 포함하면 수백 군데에 달한다는 추정이다. 마땅한 학교·학원 수업을 찾지 못한 학부모는 아예 과외 교사를 구하기도 한다. 초1 딸을 둔 직장맘 이모(42·경기도 과천시)씨는 “애 아빠가 ‘주산이 수학적ㆍ논리적 사고를 키우는데 좋다’고 하는데, 학교에 수업이 없어 결국 과외 교사를 수소문하고 있다”고 말했다.   
인성 교육과 두뇌 개발을 위해 전교생에게 바둑을 정규과목으로 가르치는 홍진초등학교의 바둑 교육 장면.[중앙포토]

인성 교육과 두뇌 개발을 위해 전교생에게 바둑을 정규과목으로 가르치는 홍진초등학교의 바둑 교육 장면.[중앙포토]

이같은 아날로그 교육에 관심을 갖는 학부모들은 대부분 공통적으로 “당장 유행하는 교육보다 사고력과 집중력, 끈기를 기르는 게 중요하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초3 아들에게 지난해부터 방과후수업으로 바둑을 가르치는 조은주(36·서울 문래동)씨는 “바둑판을 두고 마주 앉은 아이들이 서로 정중하게 목례하고, 경기를 마치면 승자가 패자에게 ‘나랑 바둑을 함께 해줘서 고마워’라고 말하는 게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바둑을 통해 집중력과 함께 올바른 인성도 길렀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덧붙였다.   
 
초5 아들에게 7년째 학습지와 학원 수업을 통해 한자를 가르치고 있는 남지선(40·신도림동)씨도 “주변에선 영어, 수학이 아닌 한자에 몰두한다고 ‘청학동에서 사는 것 같다’는 핀잔도 주지만, 아무리 세상이 달라진다 해도 아이들이 반드시 익혀야 할 건 있다고 믿는다”고 했다. 남씨는 “아이와 종종 명심보감의 여러 구절을 놓고 대화를 나누는데, 이렇게 얻은 통찰력과 사고력은 어느 시대에서나 필요한 경쟁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학계에선 아날로그 교육이 집중력과 판단력을 기르는 데 도움된다는 연구 결과도 나온다. 권준수 서울대 정신의학과 교수 연구팀은 2014년 “바둑이 학생들에게 통찰력과 직관적 판단력을 높이는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를 담은 논문을 발표했다. 2015년 순천향대와 가천의대 정신과 공동연구팀은 “주산을 배우면 수학 능력과 판단력·집중력이 향상된다”는 연구 결과를 내놨다.
 
『한자 실력이 과학 실력이다』를 쓴 최상용 인문기학연구소장은 “뜻글자인 한자를 쓰다보면 형상과 이미지를 관장하는 우뇌가 발달해 창의력이 배가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교육 전문가들은 주산·바둑·한자교육의 효용을 인정하면서도 기술 연마에만 맞춰 주입식으로 교육하면 효과가 반감된다고 지적한다. 송기창 숙명여대 교육학과 교수는 “초등학교 교육의 본질은 지식의 쓸모와 용도를 따져 습득하는 게 아니라, 배움의 즐거움을 깨닫게 하는 게 핵심”이라며 “주산·바둑·한자교육도 반복적·주입식 교육으로 기능 익히기에 치중하면 비틀어진 교육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형수·하준호 기자 hspark9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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