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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소 제로 섬은 없다...첫 에너지 자립섬 가파도 주력 발전은 '디젤'

 ‘친환경 명품 섬’.
제주도 남단 모슬포항과 마라도 사이에 위치한 작은 섬, 제주도 서귀포시 대정읍 가파도 선착장에 내리면 이런 문구가 새겨진 기념비가 반긴다. 이어 ‘탄소 제로섬(Carbon Free Island)’이라는 안내문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섬 어디에서나 보이는 높이 30m의 풍력발전기 2대는 가파도의 상징으로 많은 관광객을 끌어모았다. 바람과 태양만으로 주민 220여 명, 120가구가 쓸 전력을 충당하는 ‘에너지 자립 섬’으로 유명하다.  

홍보와 달리 57% 디젤
에너지저장장치 불충분
성급히 도입한 풍력발전
가파도 지형과 맞지 않아
억지로 끼워 맞춘 기술
결국 재원 부담 가중

가파도 선착장에 설치된 '탄소 없는 섬' 안내판. '탄소 제로(Zero)'라고 돼 있다. 전영선 기자

가파도 선착장에 설치된 '탄소 없는 섬' 안내판. '탄소 제로(Zero)'라고 돼 있다. 전영선 기자

 
하지만 이런 화려한 수사는 사실과 달랐다. 지난 8일 가파도 발전소 1층에 위치한 마이크로 그리드 운영센터 모니터 현황엔 가파도 누적 발전량(1871MWh)의 57%가 경유를 쓰는 디젤 발전을 통해 이루어졌다고 표시돼 있었다. 가파도 주민과 방문객이 사용한 전력 절반 이상이 화석연료로 생산된 것이다. 같은 기간 풍력은 32%, 태양광은 11%의 전력을 생산하는 데 그쳤다. 
 
한국전력을 대신해 가파도 발전소를 운영하는 업체인 JBC의 김문봉 사업소장은 “풍력과 태양광이 일정하게 전력을 생산하지 못해 비상시에 대비해 디젤 발전을 병행하고 있다”며 “기상 상황에 나빠 디젤 발전만 6일 연속으로 한 시기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동안 제주도와 한국전력의 설명과는 달리 보조 수단이라던 디젤 발전이 오히려 주력인 셈이다.
8일 가파도 발전소 내 디젤저장탱크(왼쪽)와 에너지저장설비(ESS) 동이 나란히 보인다. 전영선 기자

8일 가파도 발전소 내 디젤저장탱크(왼쪽)와 에너지저장설비(ESS) 동이 나란히 보인다. 전영선 기자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우선 2012년 제주에서 열린 세계자연보전총회(WCC) 개최를 앞두고 면밀한 타당성 검토 없이 풍력 발전기를 들여오면서 첫 단추를 잘못 끼웠다. 급하게 들여온 가파도 풍력 발전 설비는 인도 에너지 기업인 시바에서 만든 것으로 이곳 지형과는 맞지 않는다. 효율이 떨어져 둘 중 한 대, 혹은 두 대 모두 가동을 하지 못할 때가 많아 한동안 “높은 사람이 와야 돌아간다”는 말이 돌았을 정도다.
 
신재생 에너지를 저장할 ESS의 규모가 충분치 않은 것도 문제다. 스마트 그리드는 태양광 패널을 설치한 곳마다 개별 ESS를 두고 연결하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이렇게 해야 생산하고 남은 전력을 ESS에 저장해 나중에 쓰거나 팔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섬에서 생산된 에너지는 바로 쓰지 않으면 대부분 버리게 된다. 가파도에 설치된 3대의 ESS 용량은 3.86MWh 정도로 비축에 한계가 있다. 저장 설비 가격이 계속 떨어졌지만 아직도 1MWh 증설에 약 8억원이 든다. 이미 수십억원을 써 더 이상의 증설은 쉽지 않다.  
 
8일 제주도 가파도 발전소 내 마이크로 그리드 운영센터 모니터에 누적 발전량(오른쪽)을 확인할 수 있다. 이날까지 발전의 57%는 디젤 발전이었음을 보여준다. 전영선 기자

8일 제주도 가파도 발전소 내 마이크로 그리드 운영센터 모니터에 누적 발전량(오른쪽)을 확인할 수 있다. 이날까지 발전의 57%는 디젤 발전이었음을 보여준다. 전영선 기자

제주도와 한국전력이 지난 5년간 가파도를 탄소없는 섬으로 만들기 위해 쓴 돈은 국비와 도비 등을 모두 합해 약 143억원이다. 이는 주민 부담금은 제외한 수치다. 가파도 48가구에 설치한 태양광 패널(3Kw) 설치 비용은 각 1260만원에 달한다. 이 중 10%(126만원)는 수혜 가구가 부담해야한다. 한전은 “태양광 설치 뒤 전기료가 거의 나오지 않기 때문에 만족도가 높다”고 설명해왔다. 
가파도의 마이크로 그리드 개요 [자료 한국전력]

가파도의 마이크로 그리드 개요 [자료 한국전력]

하지만 주민들의 말은 이와 차이가 있었다. 가파도 선착장 인근에서 숙박업소를 운영하는 한 주민은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라는 연락이 오지만 거절하고 있다”고 말했다. 패널은 약 15년을 써야 경제성이 있지만 소금기가 많은 섬이나 바닷가에서의 수명은 이보다 짧다 . 이 주민은 “제주도 본가에 설치했는데 당장은 공짜 같아 펑펑 쓰니 좋지만 잘 부식돼 신경이 쓰인다“며 “고장나면 목돈이 들어가 결국엔 전기세를 내는 것과 차이가 없을 것 같다”고 설명했다.       
 
가파도가 겪는 문제는 신재생 에너지 도입을 시도한 섬들의 공통된 문제이다. 감사원이 지난해 실시한 ‘에너지 자립 섬 조성사업 감사‘에 따르면 에너지공단이 조성한 백아도(옹진군) 등 7개의 에너지 자립 섬 모두 ESS의 용량 부족 등을 이유로 디젤발전기를 우선 가동하면서 태양광·풍력 발전설비를 효율적으로 활용하지 않고 있다. 한국전력이 울릉도에서 추진하던 친환경에너지 자립 섬 조성사업은 기간이 촉박하다는 이유로 민간 사업자가 제시한 부풀려진 경제성 분석결과를 이용해 사업을 추진하다 감사원에 부적정 통보를 받았다.     
 
더 큰 문제는 근본적 해결책 없이 유사 프로젝트가 쏟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4월 공개된 ‘2025년 제주도특별자치도 도시계획’에 따르면 “제주도는 전력 부문에서 신재생에너지만 쓰고 있는 세계 최초의 카본 프리 아일랜드인 가파도를 거점으로 2030년까지 제주도 총 전력 사용량인 1만1334GWh를 모두 신재생 에너지로 공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국전력 관계자는“에너지공단과 함께 제주 비양도와 우도에 가파도와 같은 플랫폼을 도입하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두 섬 역시 디젤발전소를 ‘콘트롤 발전소’로 사용할 예정이라 ‘무늬만 탄소없는 섬’이 될 위험이 있다. 한 환경 전문가는 “각각의 섬 특성에 맞지 않는 기술을 억지로 적용하다 보니 실패한 사업이 속출하고 중복 투자도 많다”고 말했다.
 
 
가파도 초등학교 내에 설치된 친환경 에너지 섬 홍보물. 전영선 기자

가파도 초등학교 내에 설치된 친환경 에너지 섬 홍보물. 전영선 기자

지난해 한국전력을 비롯해 주요 에너지 공기업이 신재생 에너지 분야에 투자한 예산은 총 6조4000억원에 달한다. 이는 2015년 2조5000억원의 2배 이상 늘어난 액수다. 하지만 중복투자와 비효율, 무리한 사업 진행 등이 드러나 예산 낭비였다는 지적도 많다. 
문재인 대통령은 2030년까지 신재생 에너지 비율을 20%로 끌어올리겠다고 공약했다. 2015년 기준으로 신재생에너지 비중은 5,3%인데 이는 폐기물을 이용한 발전까지 포함한 수치다. 에너지 업계에 따르면 이 중 순수 친환경 에너지 비중은 5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한 에너지 업계 관계자는 “엄밀히 따져 현재 약 1% 정도인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20%로 올리는 일은 만만치 않은 목표”라며 “가파도 사례에서 보듯 엄밀히 따져보지 않고 의욕만 앞서면 좋지 않은 선례만 쌓는 악순환이 되풀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가파도=전영선 기자 az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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