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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BI 국장이 대통령과 가까울 수 없는 이유…임기 채운 국장은 단 1명

"역사를 통틀어 대통령이 법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법기관을 가까이 두려고 할수록 상황은 더 악화했다. 둘 사이의 경계가 모호해지면 공공의 신뢰는 무너지기 때문이다."
 
제임스 코미 전 미국 연방수사국(FBI) 국장은 지난 1월 27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의 저녁 자리에서 이같이 말했다고 의회 청문회에서 증언했다. FBI와 법무부가 백악관으로부터 독립적이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면서다. 하지만 트럼프는 그에게 충성심을 요구했다. 코미는 "항상 정직하겠다"고 대답했지만, 트럼프는 "내가 말하는 게 바로 그 정직한 충성이다"고 말했다. 코미는 잠시 머뭇거리다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지난달 해임된 제임스 코미 전 연방수사국(FBI) 국장(왼쪽). 대통령이 러시아 스캔들 수사 중단 압력을 넣었다는 그의 청문회 증언은 폭탄급 발언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AF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지난달 해임된 제임스 코미 전 연방수사국(FBI) 국장(왼쪽). 대통령이 러시아 스캔들 수사 중단 압력을 넣었다는 그의 청문회 증언은 폭탄급 발언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AFP=연합뉴스]

미국 현대사를 연구하는 더글러스 찰스 미 펜실베이니아주립대 교수는 "FBI의 역사를 알면 트럼프에 대한 코미의 걱정을 보다 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한다. 
 
FBI의 전신은 1908년 설립된 법무부 산하 검찰국이다. 비밀스러운 특수수사 임무를 맡았던 이 조직은 1935년에 FBI로 이름을 바꿨다. 1924년부터 조직의 총 책임자를 맡았던 에드거 후버는 FBI의 초대 국장이 됐다.
 
1924년부터 1972년까지 48년간 미 연방수사국(FBI) 국장 자리를 지킨 에드거 후버. [중앙포토]

1924년부터 1972년까지 48년간 미 연방수사국(FBI) 국장 자리를 지킨 에드거 후버. [중앙포토]

후버는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부터 리처드 닉슨에 이르기까지 모두 6명의 대통령과 함께 일했다. 후버는 법무부 산하의 작은 조직이었던 FBI를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기관으로 키웠다. 이를 위해 후버는 프랭클린 루스벨트,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린든 존슨 등 출신 정당을 막론하고 대통령과 긴밀한 관계를 맺었다. 
 후버는 대통령에게 유용한 정치정보를 제공해 환심을 샀다. 이 과정에서 불법 도·감청과 사찰을 서슴지 않았다. FBI는 인권을 침해한다는 비판을 받았지만, 대통령들은 후버를 해임하지 못했다. 한편으론 FBI의 고급 정보를 갈망했고, 또 한편으론 FBI를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린든 존슨 대통령의 경우 오히려 FBI 국장을 종신직으로 하는 행정명령을 내려 후버에게 힘을 실어주기도 했다.
 
1955년 드와이트 아이젠하워(오른쪽)로부터 메달을 수여받고 있는 에드거 후버(왼쪽) 당시 FBI 국장. [중앙포토]

1955년 드와이트 아이젠하워(오른쪽)로부터 메달을 수여받고 있는 에드거 후버(왼쪽)당시 FBI 국장. [중앙포토]

후버는 말 그대로 '죽을 때까지' FBI의 정점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렸다. 
1972년 후버가 사망하자 마침내 FBI를 개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봇물 터지듯 쏟아져나왔다. 이후 대대적인 조직 수술이 이어졌고, 1976년에 국장의 '10년 임기제'가 도입됐다. 법무부는 FBI 국장과 백악관의 관계, 수사 방법 등에 관한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 이 가이드라인은 시간이 지나면서 수정을 거듭했다. 가장 최근에 개정된 가이드라인(2009년)에 따르면 사건의 수사 등에 관한 백악관과 법무부의 최초의 논의는 오직 법무장관이나 법무 부(副)장관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코미가 트럼프와의 독대나 전화통화를 부담스러워 한 이유는 이런 역사적 맥락과 닿아있다. 어두웠던 후버 시대 이후 FBI 개혁 작업은 수사의 진정성을 확보하고, FBI가 정치적인 영향에서 자유롭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코미가 주장하는 트럼프의 수사 외압은 이러한 원칙을 무너뜨리는 행위인 것이다. 찰스 교수는 "트럼프가 가이드라인을 무시하고 코미에게 구애를 한 것이라면, 그것은 과거로 회귀하려는 위험한 행위다"고 꼬집었다.
 
대통령과 FBI 국장의 악연
존 케네디(왼쪽) 대통령이 에드거 후버(가운데) FBI 국장, 로버트 케네디 상원의원과 담소를 나누고 있다. [중앙포토]

존 케네디(왼쪽) 대통령이 에드거 후버(가운데) FBI 국장, 로버트 케네디 상원의원과 담소를 나누고 있다. [중앙포토]

후버와 악연이었던 대표적 사례가 존 F 케네디 대통령이었다. 민주당 출신의 젊은 지도자는 자신의 동생 로버트 케네디를 법무장관에 앉혔다. 케네디 형제의 끈끈한 우애 사이에 후버가 끼어들 틈은 없었다. 법무장관을 통하지 않고는 대통령과 만날 수 없었던 후버는 지시에 따른 한정적인 정보만 제공했다. 한편으로는 케네디의 약점이 될 수 있는 은밀한 정보를 수집하기도 했다.
 
후버 시대 이후에도 대통령과 FBI 국장 간의 마찰은 종종 있었다. 1987년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 때 FBI 국장에 오른 윌리엄 세션스는 10년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1993년 빌 클린턴 대통령에 의해 해고됐다. 관용기를 이용해 여행을 하고, FBI 요원들을 사적인 일에 동원하는 등 특권을 남용했다는 이유에서다. 당시 클린턴은 FBI의 독립성을 침해한다는 비판을 받았지만 끄떡도 하지 않았다.
 
윌리엄 세션스(왼쪽) 전 FBI 국장(4대)과 루이스 프리 전 FBI 국장(5대). [사진=위키피디아]

윌리엄 세션스(왼쪽) 전 FBI 국장(4대)과 루이스 프리 전 FBI 국장(5대). [사진=위키피디아]

세션스의 후임으로 발탁된 루이스 프리 전 국장도 클린턴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 프리는 자신을 국장에 앉힌 클린턴의 대선 자금과 혼외 정사 관련 수사를 진행했다. 당시 FBI는 클린턴의 대선 자금에 중국 정부가 연관돼 있다는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임기 내내 현직 대통령을 수사하는 데 힘을 쏟은 프리는 조지 W. 부시 대통령 취임 후 리더십 부족 논란에 시달리다 스스로 사임했다.
 
2002년 5월 29일 로버트 뮬러 당시 FBI 국장이 워싱턴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FBI의 개혁 방안을 설명하고 있다.[AP=연합뉴스]

2002년 5월 29일 로버트 뮬러 당시 FBI 국장이 워싱턴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FBI의 개혁 방안을 설명하고 있다.[AP=연합뉴스]

트럼프 행정부의 '러시아 커넥션' 의혹을 수사할 특검으로 지명된 로버트 뮬러 역시 FBI 국장 출신이다. 그는 재임 시절 두 차례나 사표 카드를 꺼내면서 권력과의 타협을 거부했다. 2004년 부시 대통령은 국가안보국(NSA)이 영장 없이 도청할 수 있는 프로그램의 기한을 연장하려고 했다. 뮬러는 이같은 조치가 헌법에 위배된다며 "대통령이 계속 밀어붙이면 국장에서 물러나겠다"고 배수진을 쳤다. 뮬러의 강경한 태도에 결국 부시가 물러섰다. 뮬러는 2011년 후버 이후 역대 국장 중 처음으로 10년 임기를 마쳤지만, 오바마는 2년 더 일해달라고 부탁했다. 그의 임기 연장안은 공화·민주 양당의 초당적인 지지를 받으며 의회를 통과했다.
 
8일(현지시간) 청문회 증인으로 나선 제임스 코미 전 FBI 국장은 "트럼프 행정부는 나와 FBI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증언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의회 밖에서 변호사와 함께 증언을 지켜본 것으로 알려졌다. [AFP=연합뉴스] 

8일(현지시간) 청문회 증인으로 나선 제임스 코미 전 FBI 국장은 "트럼프 행정부는 나와 FBI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증언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의회 밖에서 변호사와 함께 증언을 지켜본 것으로 알려졌다. [AFP=연합뉴스]

코미는 재임 시절 대통령과 크게 부딪힌 적은 없다. 그러나 오바마 대통령 임기 말 대선을 불과 11일 앞두고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의 '이메일 스캔들' 재수사를 발표하면서 논란을 일으켰다. 당시 민주당 인사들은 "특정 정당의 후보를 도우려는 의도"라며 코미를 맹비난했다. 오바마도 한 언론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수사는 암시나 불충분한 정보, 누설 등으로 하는 게 아니다"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하지만 오바마는 끝까지 FBI의 수사에 개입하지 않았다.
 
하준호 기자 ha.junho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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