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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G Picture] 견딜 만한 정치적 거짓말의 무거움

김환영논설위원

김환영논설위원

21만 년 전 호모사피엔스와 21세기 현대인 중 어느 쪽이 거짓말을 더 많이, 더 편하게, 더 잘할까. 느낌상으로는 지금이 더 심하다. 오죽하면 우리가 ‘탈진리(post-truth)’ 시대에 살고 있다는 주장이 나왔겠는가. “정직이 최선의 방책이다”는 말은 빛을 잃었다.
 

‘정치인=거짓말쟁이’가 상식인
탈진리·대안적 사실 시대 개막
국민·언론이 협업하지 않으면
팩트체킹 효과 보기 힘들 듯

사람은 태초부터 누구나 쭉 거짓말을 해 왔다. 연구 결과 조숙한 어린이의 경우에는 말을 하면서 거짓말을 구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성인이 된 다음에도 적어도 ‘하얀 거짓말’은 누구나 한다. 예컨대 “여보 나, 살 많이 빠졌지?”라는 물음에 솔직하게 답할 강심장 남편은 없다. 생존을 위해서라도 거짓말은 필수다.
 
정치인이나 장차관들 또한 본인의 영달이나 생존 혹은 대의를 위해 ‘정치적인 거짓말’을 한다. ‘거짓말이라는 기예(技藝)에 통달하지 못하면 결코 정치인이 될 수 없다’는 게 적어도 미국 워싱턴 정가에서는 상식이다. 외교관은 ‘국익을 위해 거짓말하는 사람’으로 정의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정치에 몸담은 사람들 또한 어떤 경우에는 대의를 위해 거짓말을 해야 한다. 사익을 위해 거짓말하면 정치꾼, 공익을 위해 거짓말하면 정치가다. 보다 많은 국민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하는 거짓말, 국민을 잘살게 하기 위한 거짓말은 소위 ‘숭고한 거짓말(noble lie)’에 속한다.
 
정권 (재)창출과 안정이라는 대의도 거짓말을 정당화한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대선 전후가 정치적인 거짓말의 대목이다. 상당수 대선 후보는 노골적인 거짓말을 한다. 일단 되고 볼일이니까. 발각되지만 않으면 된다. 유권자가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와 공모하면 언론 매체가 아무리 열심히 팩트체킹을 해도 소용없다. 유권자를 이길 수 있는 매체는 없다. 또 후보들의 일부 지지자가 바라는 것은 참말이 아니라 상대편 캠프에 일격을 가하는 통쾌한 ‘사이다 거짓말’이다.
 
대선이 끝나고 이제 청문회에 나온 공직 후보들은 ‘모른다’ ‘생각이 안 난다’고 답한다. 물론 그들이 참말을 하고 있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미국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거짓말이 탄핵 운운하게 만들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취임식이 끝나자마자 ‘대안적 사실(alternative facts)’이라는 거짓말에 대한 완곡어법 표현을 유행시켰다. 거짓말쟁이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를 찍은 유권자가 많다. 웬만하면 이번에도 눈감아 줄 가능성 또한 크다.
 
사실 위대한 지도자들 중에도 습관성 거짓말쟁이가 많았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에 대해서는 “작은 거짓말로도 충분한데도 큰 거짓말을 하고, 진실로 충분한데도 작은 거짓말을 한다”는 말이 있었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68%의 지지율로 대통령직을 마감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우리 편이라고 해서 거짓말을 용인하다 보면 정치공동체 전체가 망한다. 장사건 정치건 신뢰가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오히려 저쪽 편이 아니라 우리 편 거짓말에 더 가혹해야 전체가 산다. 애국시민은 정치인들의 거짓말을 응징한다. 거짓말은 정치공동체에 대한 배신행위이기 때문이다.
 
미래를 낙관적으로 내다본다면 언젠가는 거짓말이라는 대(對)국민 배신이 사라질 것이다. 르네상스 시대 교황들 중에는 ‘나쁜’ 교황이 상당수 있었다. 우리가 아는 교황들은 성인급이다. 정치인들과는 달리 교황에겐 거짓말조차 허용되지 않는다. 매체·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교황을 ‘감시’한다.
 
정치적 거짓말이라는 표현 자체가 용도 폐기되는 시대가 오기 전까지는 국민·유권자가 ‘거짓말 잘하는 유능한 공직자’와 ‘거짓말 못하는 무능한 공직자’ 사이에서 선택해야 한다. 이번 청문회 정국에서 국민·유권자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진위를 가리는 것은 귀찮다. 진위를 가리는 작업은 추가 에너지 소비를 요구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거짓말도 일단 믿어 주는 경향이 있다. 팩트체킹은 매체뿐만 아니라 시민 개개인에게 부과된 의무다. 언론의 팩트체킹과 유권자 개인의 팩트체킹이 반드시 만나야 한다. 그런데 팩트체킹을 잘하기 위해서는 정치·경제·사회에 대해 공부해야 한다.
 
오직 사익만을 추구하는 거짓말쟁이들을 응징하려면 국민·유권자가 공부해야 한다. 거짓말 근처에도 안 가는 유능한 지도자들의 시대를 열기 위해서도 공부해야 한다. 공부를 해야 참과 거짓을 가릴 수 있다. 공부해야 정치적 거짓말이 설 땅이 없게 된다. 정치인들의 공약(空約)과 허언을 오냐오냐하다 보면 온 나라가 거지꼴을 못 면하게 될 수도 있다. 공중의 무지는 정치적 거짓말에 영양분을 공급한다.
 
미국이나 한국이나 아직은 ‘정치적 거짓말’의 무게가 견딜만 한 게 아닐까. ‘정치가 썩었다 썩었다’ 하지만, ‘경제가 힘들다 힘들다’ 하지만 아직은 견딜만 한지 모른다. 하지만 진실과 대면해야 할 때는 온다. 체코공화국 대통령 깃발에 새겨져 있듯이 “진실은 이긴다”. 『걸리버 여행기』로 유명한 영국의 소설가 조너선 스위프트(1667~1745)는 이 말이 결국 옳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정치적 거짓말의 기예(技藝)’(1710)라는 에세이를 쓰기도 했다.
 
김환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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