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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예술 - 미술] 예술이 삶에 얼굴을 내밀 때

이지은명지대 교수·미술사학

이지은명지대 교수·미술사학

지난 몇 주간 공공미술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서울로 7017의 개장에 맞춰 설치됐던 ‘슈즈트리’를 둘러싼 논란 덕이다. 헌 신발 3만여 켤레를 매달아 놓은 작품은 불결함과 악취에 대한 우려를 낳으며 인터넷을 달궜다. 예술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는 쪽은 대중의 몰이해를 탓했고, 작품 선정 과정의 적절성과 공공미술의 역할을 따지는 목소리는 세금을 낭비한 “흉물”이라는 격앙된 비난에 묻혔다. 각기 다른 취향과 가치관을 가진 모두를 만족시키는 작품은 없다. 하지만 공공미술은 개인의 선택이 아니다. 표현의 자유 못지않게 관람 주체인 공동체의 의견과 참여가 중요하다.
 

성북동, “살랑대는 예술 군도”

성북예술창작터가 진행하는 ‘성북예술동’ 프로젝트는 지역공동체와 예술가의 협업을 보여주는 좋은 예다. 예술인 조합 아트플러그, 예술마을 동네모임과 함께 ‘살랑대는 예술 군도’(6월 15일까지)를 기획했다. 성북동을 중심으로 미술기관과 문화거점, 예술가 작업실 등 섬처럼 흩어진 예술 공간을 연결하는 전시와 투어 로 구성된 주민 참여 프로그램이다. 발품을 팔면 동네 구석구석이 모두 미술관이다.
홍장오 작가의 ‘72구역’. 해로움을 쫓고 공동체를 보호하는 마을 장승의 역할을 한다. [사진 성북예술창작터]

홍장오 작가의 ‘72구역’. 해로움을 쫓고 공동체를 보호하는 마을 장승의 역할을 한다. [사진 성북예술창작터]

 
성균관대 후문에서 성북동으로 넘어오는 성북로 31길의 무허가 건물은 전시장이 되었다. 건물 밖 아카시아 숲과 연결된 공터에도 작품이 놓였다. 삼계탕을 팔던 ‘성 너머 집’ 터엔 박지인의 ‘아카시아 핑크’가 있다. 스티로폼과 합판으로 만든 가벽에 주변에서 발견한 폐품을 연결해서 ‘핫핑크’로 도색했다. 들풀이 우거졌던 공터는 긴장감 넘치는 공간으로 변했다. 새떼를 쫓기 위해 사용하는 알루미늄 허수아비도 예술이 됐다. 홍장오의 ‘72구역’을 채운 허수아비들은 바람과 빛을 동원해서 마을의 장승처럼 공터를 수호한다. 한양도성길 아래 빈집엔 조각이 놓이고 화장실에도 그림이 걸렸다. 인근 한성대 학생들과 지역작가 최병석의 ‘포스트 스튜디오’ 전시다.
 
기대하지 않던 장소에서 마주치는 예술은 경이롭다. 사람들은 “이게 뭐지?” 하며 다가간다. 부모를 따라온 아이들도 보물찾기 하듯 호기심에 차 이곳저곳을 탐색한다. 무심코 지나던 공터와 폐가에 들어선 낯선 작품은 익숙한 삶을 예술로 바꾼다.
 
예술생태계 형성을 위한 노력은 성북구와 예술가, 주민의 협업으로 이루어졌다. ‘성북예술동’ 프로젝트의 일환이었던 ‘이웃집 예술가’는 벽화나 간판 제작 등 주민의 예술적·디자인적 필요를 작가와 함께 해결하는 주민 주도형 공공미술을 실천했다. 카페와 꽃집, 경찰서가 예술에 자리를 내주었다. 작가는 동네 모임에서 작업을 설명하고 주민들은 마실 다니듯 예술을 누렸다. 예술과 삶 사이에 교집합이 생길 때, 우리는 비로소 예술에 마음을 연다. 공통분모를 늘리는 데는 쌍방의 노력이 필요하다. 이것이 공공미술이 공동체를 위한 미술로 진화하는 방식이다.
 
이지은 명지대 교수·미술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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