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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년 매카시 74년엔 닉슨, 청문회 타격 받고 역사속으로

8일(현지시간) 워싱턴 DC 상원 정보위에서 실시된 제임스 코미 전 연방수사국(FBI) 국장의 청문회는 미국 국민들의 높은 관심 속에 대다수 방송사가 생중계했다. 이런 ‘수퍼보울(미국 프로미식축구 챔피언 결정전)’급 청문회는 처음이 아니다. 청문회는 미국 정계에 주요 사건이 있을 때마다 특정 여론을 형성해 국면 전환을 이끌어냈다.
 
매카시즘 광풍을 잠재운 ‘육군-매카시 청문회’는 청문회의 위력을 보여준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1950년 미국 공화당 상원의원 조지프 매카시는 공산주의자 색출을 위한 위원회를 조직하고 수백 명을 청문회로 불러들여 공산주의자란 굴레를 씌웠다.
 
그러나 청문회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른 매카시를 무릎 꿇게 만든 건 오히려 청문회였다. 54년 미국 상원이 육군과 매카시를 불러들여 실시한 육군-매카시 청문회는 매카시의 민낯을 낱낱이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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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카시는 근거 없는 의혹을 제기하며 상대측의 반박엔 폭언과 인신공격으로 일관했다. 이 모습을 생중계로 지켜본 국민은 매카시로부터 등을 돌렸다. 매카시는 그해 말 상원에서 불신임당했고, 3년 뒤 병으로 사망했다.
 
리처드 닉슨 대통령을 물러나게 한 워터게이트 사건의 전말도 청문회에서 드러났다. 닉슨의 불법 도청에 연루된 백악관 법률고문 존 딘은 73년 상원 청문회에 소환돼 나흘간 추궁을 받은 끝에 사건의 전말을 낱낱이 털어놨다. 막대한 돈을 풀어 증인들의 입을 막고 수사를 방해하던 닉슨 대통령은 딘의 증언에 타격을 입고 이듬해 사임했다.
 
의혹의 대상자들이 오히려 청문회를 통해 위기에서 벗어나게 된 사례도 있었다. 87년 로널드 레이건 정부가 적국 이란에 무기를 불법 판매하고 그 수익으로 니카라과의 친미 반군 ‘콘트라’를 지원했다는 의혹에 휘말리면서 이를 조사하기 위한 청문회가 열렸다. 당시 민주당은 이 의혹을 입증할 핵심 인물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소속 올리버 노스 중령을 청문회에 소환했다.
 
그러나 잘생긴 얼굴에 말쑥한 군복 차림으로 청문회에 출석해 자신의 입장을 단호한 태도로 변호하는 노스의 모습은 대중의 호감을 샀다. 당시 시사주간지 타임이 노스를 “수퍼스타”라 소개했을 정도였다. 노스가 출석한 청문회의 시청자는 5500만 명으로 당시 인기 드라마 ‘종합병원’ 시청자 수의 다섯 배에 이르렀다.
 
노스의 인기는 이 사건으로 정치적 곤경에 처한 레이건 대통령을 궁지에서 벗어나게 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이기준 기자 foridealis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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