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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문영의 호모디지쿠스] ‘노력’ vs ‘노오력’ 세대간 이해 격차 … 소통하려면 편견 깨야

우리는 지금 인터넷 덕분에 누구나 쉽게 읽고 쓰는 문자의 시대를 살고 있다. 그 덕분에 세상을 더 많이 알고 더 많이 소통하게 됐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더 많은 것을 잊어버리는 것을 우리가 모르고 있을 수도 있고 소통 대신 오해가 더 쌓여 갈 수도 있다. 문자는 늘 의미가 변하고 사람마다 다르게 이해하기 때문이다. ‘변수’라는 단어를 떠올려 보자.
 
지도자들은 ‘변수’를 나중에 닥칠 어떤 사건이나 예상치 못한 돌발상황으로 생각하겠지만 컴퓨터 프로그래머에게 변수는 가장 먼저 선언해야 할 것으로 이해한다. 프로그램 개발 과정에서는 변수가 무엇인지 컴퓨터에 알려 주는 것이 제일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치인에게 변수는 미래의 불확실한 어떤 것이지만 프로그래머에게 변수는 현재의 가장 명확히 해야 할 어떤 것이 된다.
 
단어에 대한 이해도 다르다. 전산 담당자에게 프로토콜(protocol)은 통신규약을 뜻하지만 외교관은 아마 의전(儀典)을 생각할 것이다. 전산 담당자는 프로토콜이 서로 올바른 메시지 전달을 위해 필요한 양방향적인 어떤 것이라고 여기는 반면 외교관은 그것을 높은 사람에게 예우하기 위해 필요한 일방향적인 어떤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디폴트(default)라는 단어 역시 마찬가지다. 기업인에게 디폴트는 채무불이행을 의미하지만 웹서비스 기획자에게 그것은 아무것도 안 했을 때 미리 지정된 값이다. 기업인에게 디폴트는 피해야 할 상황이고 웹 기획자에게 그것은 오히려 기본으로 정해지는 값이라는 차이가 있다. 줄임말에도 이런 차이는 많다.
 
단어에 대한 이해 격차는 직업 분야뿐만 아니라 세대 간에도 크다. 단 두 글자로 말하는 인생. 인생은 누구나 아는 단어지만 개인이 겪는 실존적 인생은 저마다 무게가 다르다. 인터넷 용어로 ‘인실X’라는 것이 있다. “인생은 실전이야, X야”라는 뜻이다. 아이들은 인생을 게임처럼 생각한다. 그래서 잘 안 풀리면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어)’이라고 하기도 한다. 마치 인생이 동전만 넣으면 쉽게 리셋되듯 말한다. 하지만 현실 속 밥벌이를 해야 하는 인터넷 형님들에게 인생은 실전이고 그래서 나온 말이 ‘인실X’인 것이다.
 
‘노력’이라는 단어는 어떨까? 성공한 어른 중에는 자신의 성공이 모두 자신의 노력 덕분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시대적 행운이나 다른 이들의 도움이 있었다는 사실은 잊은 채 젊은이들에게 ‘노력하라’고 곧잘 훈계한다. 젊은이들은 이런 사람을 ‘꼰대’라고 부른다. 그리고 그들이 요구하는 노력을 ‘노오력’이라며 조롱한다. 고성장시대를 살아온 꼰대들에 대한 저성장시대 젊은이들의 저항과 분노가 느껴진다.
 
이렇게 다른 느낌, 다른 뜻으로 해석되는 수많은 문자가 쏟아진다. 인터넷시대의 특징이다. 그래서 제대로 된 이해와 소통을 위해서는 단어가 가진 편견과 관념을 넘어서는 통찰이 필요하다. 굳이 인터넷시대가 아니더라도 위대한 인물들은 늘 쉽지 않은 이런 일을 해냈다.
 
통신이론을 만들어 낸 수학자 클로드 섀넌(Claude Shannon)은 메시지라는 단어에서 ‘의미’라는 불순물을 제거하고 순수한 공학적 정보인 ‘비트(bit)’를 발굴했다. 사람들은 ‘메시지’라고 하면 늘 내용을 먼저 떠올렸지만 그는 그 너머에 있는 신호의 전달 메커니즘을 바로 본 것이다.
 
정치사상가 마키아벨리 는 정치에서 ‘윤리’라는 위선을 벗겨 내 현실정치학을 찾아냈고, 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man)은 생각에서 ‘합리성’이라는 허구를 걷어 내고 생각의 원리를 발견해 냈다.
 
공자는 군군 신신 부부 자자(君君 臣臣 父父 子子),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한다”고 말했다. 이른바 정명(正名)사상은 이름 너머에 있는 의미를 강조한다. 새 정부도 ‘나라를 나라답게’라는 주장으로 국민의 선택을 받았다. 그래서 어쩌면 새 정부의 큰 과제는 ‘나라’에 대한 이해 격차와 소통의 오해를 줄이고 ‘나라’라는 글자 너머에 있는 정의와 안전, 번영에 대한 가치를 공동체에 되찾아 주는 것이 아닐까 싶다.
 
임문영 인터넷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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