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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속으로] 친환경·사회공헌·지배구조 따지는 ‘착한 투자’ 바람 세계적으로 분다

새 정부가 불 댕긴 책임투자 
다음은 주식 투자를 앞둔 가상 투자자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술, 담배, 도박처럼 이른바 죄악 산업을 영위하는 기업은 나쁜 기업일까.
돈 놓고 돈 먹는다 할 정도로 부정적인 인식이 많은 금융업은 무조건 투자 가치가 없을까.
 

엔론 회계부정, 가습기 살균제 계기
자산운용사들 책임투자 펀드 출시
옥스퍼드대 “ESG 우수하면 실적 좋아”

일반 투자가에게 답은 '맞다(O)' 일수도, '틀렸다(X)' 일수도 있다. 그러나 'ESG' 투자 관점에서 답은 '틀렸다'이다. ESG(화학조미료 MSG가 아니다)는 환경(Environment)·사회(Social)·지배구조(Governance)의 약자다. 투자할 때 기업이 얼마를 갖고 있고 얼마를 버는지 등 재무적 성과만 보지 않는다. 직원, 고객, 주주, 그리고 사회 전반에 얼마나 기여하는지 비재무적인 틀로 따져보는 '책임투자'를 지향하는 투자 철학이다. 
 
1970년대 술, 담배, 도박, 무기 산업은 일부 투자자에게는 투자 배제 업종이었다. 종교 단체 등은 이런 기업의 주식을 죄악주로 간주하고 투자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젠 책임투자를 평가하는 관점이 '착함'을 강조하는 수준을 떠나, 환경이나 사회 공헌으로까지 확대되면서 얘기가 달라졌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이 매긴 KT&G(담배)와 강원랜드(도박)의 지난해 ESG 등급은 A였다. 총 7개 등급 중 최상위인 S등급이 없었던 걸 고려하면 두 번째로 높다. 주주 배당과 자사주 매입 등 적극적인 주주환원 책이 배경이다. 죄악주라는 꼬리표를 의식해 사회 공헌 활동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선 결과이기도 하다. 물론 ESG 등급이 높은 것만이 투자의 충분조건은 아니다.
 
금융업종에선 신한지주, KB금융, DGB금융지주, 삼성화재해상보험 등이 대거 A+를 받았다. 금융업에 대한 법적 요구 수준이 높기 때문에 이를 준수하면 상대적으로 높은 등급을 받을 수 있다. 환경, 사회 부문에서 충실히 정보를 제공한 점도 반영됐다.
 
책임투자 바람이 다시 불고 있다. 크게 두 가지 이유다. 일단 새 정부가 불을 붙였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공적 연기금이 자산을 운용할 때 반드시 ESG를 고려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국회도 발맞추고 있다. 국민연금 등이 ESG를 따진 뒤 투자하고 이를 공시해야 한다는 내용의 법안이 발의됐거나 발의될 예정(권미혁·제윤경·이원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이다.
 
제프리 스킬링 전 엔론 최고경영자(CEO)는 회계부정으로 징역 24년형을 선고 받았다.

제프리 스킬링 전 엔론 최고경영자(CEO)는 회계부정으로 징역 24년형을 선고 받았다.

 
또 하나는 ESG 성과가 기업의 명운을 좌우할 수 있다는 인식이 퍼져서다. ▶한때 미국에서 가장 혁신적인 기업으로 꼽혔던 에너지기업 엔론은 자산과 이익 수치 대부분이 날조됐다는 회계부정이 드러난 뒤 파산했다. ▶옥시 가습기 살균제 피해 사건은 고객관리 실패는 물론 피해자에게 씻지 못할 상처를 남겼다. ▶미세먼지 저감을 위해 경유차를 정조준한 정부 대책은 관련 업체에 치명타를 입힐 수 있다. 세 건 모두 ESG 고려 요인이다.
 
방문옥 한국기업지배구조원 팀장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책임투자가 대안투자로 각광 받으며 세계적으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책임투자 선진국인 유럽에선 지난해 책임투자 자산운용 규모가 12조400억달러에 달했다. 전세계 52.6%를 차지한다. 그 뒤를 미국, 캐나다 등이 이었다. 반면 아시아는 일본을 빼고 520억달러(0.2%)에 불과했다.
 
책임투자의 성과도 개선되고 있다. 옥스퍼드대 연구진이 2015년 ESG 성과와 재무 성과 관계를 분석한 200개 연구를 재분석해보니 "연구 대상 기업 88%에서 ESG 성과가 우수할수록 더 높은 재무 성과를 달성했다"는 결과가 나왔다.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옳은 일을 한 기업이 눈에 보이는 성과도 좋았다는 뜻이다. 박선호 하이자산운용 팀장은 "보통 ESG 성과에만 투자한다고 생각하지만 재무와 비재무 성과를 적절히 고려해 투자하기 때문에 수익률이 낮다는 건 고정관념"이라며 "외국에서 책임투자 펀드의 장기 운용 성과는 우월하다"고 말했다.  
 
국내에서는 이제 시작 단계이다. 자산운용업계가 이런 흐름에 맞춰 돛대를 달았다. 지금까지 국내에서 책임투자 간판을 달고 출시된 펀드는 넓게 봐서 10여개다. 하이자산운용은 지난달 말 책임투자 펀드로는 8년 만에 '하이사회책임투자펀드'를 내놨다. 한국거래소의 'ESG 리더스150' 지수를 추종한다. 지배구조 개선 기대가 큰 지주사 비중이 시총 대비 높은 편이다. 다른 책임투자 펀드는 대부분 삼성전자를 비롯한 시가총액 상위 종목을 포트폴리오에 담고 있다. 김후정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책임투자 펀드가 일반적인 대형주 펀드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지적이 많다"며 "아직은 사회적 책임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기업 수가 많지 않아 투자처를 찾기 마땅치 않은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이런 맥락에서 '큰 손' 국민연금의 역할이 강조된다. 국민연금은 서서히 움직이고 있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올해 투자지침서에 '책임투자를 이행한다'는 내용을 명시화할 것으로 알려졌다. 2015년엔 책임투자 컨설팅사 서스틴베스트와 책임투자 벤치마크를 개발했다. 책임투자 행보가 본격화하면 위탁 운용사는 이를 따를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최대 관건은 책임투자가 투자자에게 얼마나 많은 돈을 가져다줄지다. 책임투자는 기부나 자선이 아니라 말 그대로 투자다. 수익이 전제돼야 책임투자가 확산하는 선순환이 생긴다. 일부에선 국내 책임투자 시장에선 선(善)과 공공성이 과도하게 강조되고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투자리서치사 모닝스타코리아의 정승혜 이사는 "책임투자가 개인까지 확산되려면 자산운용사와 펀드 매니저의 전문성과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ESG 등급이 높은 기업을 취합하는 수준을 넘어 자신만의 철학과 관점으로 책임투자 기반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과 도토리 키재던 일본, 책임투자 샛별 부상한 이유
 
불과 3년 전만 해도 한국과 고만고만했던 일본 책임투자 시장은 이제 세계에서 샛별로 떠올랐다. 2014년 70억 달러였던 일본 책임투자 운용 규모는 지난해 4740억 달러로 6670% 불어났다. 이 기간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 지역(한국 포함) 책임투자 규모는 70억 달러(450억→520억 달러) 느는 데 그쳤다.
 
한국보다 보수적이고 신중한 일본이 책임투자 비중을 늘린 것은 2014년 일본 재무성이 만든 책임투자 원칙 때문이다. 세계 최대 연기금인 일본 국민연금기금(GPIF)을 필두로 6개월 사이 160개 기관이 서명했다.
 
국내 도입이 본격화하는 스튜어드십 코드(기관투자가의 의결권 행사를 강화하기 위한 지침)도 마찬가지다. 일본 GPIF가 위탁할 운용사를 고를 때 스튜어드십 코드에 참여하는 기관에 가산점을 주기로 하자 너도나도 도입했다. 지난해 말 일본 내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한 기관은 공무원연금 등 공적 연기금을 포함해 214개에 달했다. 이제 책임투자와 스튜어드십 코드 참여의 신발끈을 매고 있는 국민연금의 역할이 기대되는 이유다. 
 
이새누리 기자 newworld@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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