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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디 가가와 오바마 두 딸을 사로잡은 건…

희고 가녀린 팔과 꼿꼿이 세운 가는 허리, 여기에 작은 엉덩이와 곧은 발끝. 흔히 '발레'라고 하면 떠올리는 발레리나의 모습이다. 특정 인종을 위한 춤이 아니라지만 세계적으로 유명한 주요 발레단 주역 무용수는 대개 백인들이다. 
그런데 지난 6월 3일 서울 성동구 서울숲에서 열린 ‘시티 포레스티벌2017’을 찾은 시카고 멀티컬처럴 무용단(Chicago Multi-Cultural Dance Center·이하 CMDC)의 발레는 달랐다. 일단 풍만한 몸매의 흑인 무용수 둘이 스포츠 탑과 레깅스 차림으로 무대에 섰다. 흘러나오는 음악은 클래식이 아니라 힙합이다. 발레 특유의 우아함보다는 흥겨움을 내세운 춤사위다. 점잖빼는 여느 발레 공연과 달리 관중들의 반응도 뜨거웠다.  

세계적 인기 '힙레' 창시자 호머 브라이언트 방한 인터뷰
"힙레 성공 이유? 상자 밖에서 생각하기"

힙레 창시자 호머 한스 브라이언트(가운데)와 시카고 멀티컬처럴 무용단원 니아 라이온스(왼쪽), 니아 파커가 6월 3일 서울숲에서 열린 '시티 포레스티벌'에 참가차 내한했다. 김상선 기자

힙레 창시자 호머 한스 브라이언트(가운데)와 시카고 멀티컬처럴 무용단원 니아 라이온스(왼쪽), 니아 파커가 6월 3일 서울숲에서 열린 '시티 포레스티벌'에 참가차 내한했다. 김상선 기자

이 춤은 힙합과 발레를 섞은 ‘힙레(Hip-let)’다. 무대가 끝나고 힙레 창시자이자 CMDC 예술감독인 호머 한스 브라이언트(67)를 만났다. 메인 무용수인 니아 파커(19), 니아 라이온스(18)도 함께했다. 
 
힙레가 대체 뭐지? 
일단 이 춤의 정체가 궁금했다. 브라이언트 예술감독은 이렇게 설명했다.  “신나는 음악에 맞춰 추는 발레다. 규칙은 없다. 즐겁고 에너지 넘치는 동작들은 고전적이면서 또 현대적이다. 힙합과 발레라는 두 장르를 섞은 춤이다. ”
힙합과 발레라니. 일회성 이벤트용으로 상극을 붙여놓은 게 아닌가 싶지만 힙레의 역사(?)는 생각보다 길다. 1980년대부터 랩 음악에 맞춰 추는 발레가 등장했다. 이른바 ‘랩 발레’다. 90년대에는 ‘힙합-랩 발레’라는 비슷한 장르가 이어졌다. 
힙레라는 이름이 생긴 건 2008년에 와서다. 발레를 배우는 소녀들에게 힙합을 가르쳐달라는 요청을 받은 브라이언트 예술감독이 힙레라는 춤을 재정립하고 상표 등록도 했다.  
 
흑인에게 벽 높았던 발레 
힙레 창시자인 시카고 멀티컬처럴 무용단 예술감독 호머 한스 브라이언트. [사진 CMDC 홈페이지]

힙레 창시자인 시카고 멀티컬처럴 무용단 예술감독 호머 한스 브라이언트. [사진 CMDC 홈페이지]

브라이언트 예술감독은 미국령 버진 아일랜드의 세인트 토마스 섬 출신이다. 어렸을 때 또래 친구들이 야구를 할 때 그는 댄스 스튜디오 창문 너머로 여자 아이들이 춤추는 모습을 몰래 지켜보곤 했다. 그는 이렇게 회상한다. “선생님이 더 이상 수업을 방해하면 경찰을 부르겠다고 했다. 춤을 추고 싶다고 말했더니 어머니를 모셔와 수업에 신청하라고 했다. 형편이 어려워 수강료를 못 냈는데 친구 어머니가 도움을 줘 여자 아이들과 탭 댄스와 재즈 댄스를 배울 수 있었다. ” 
춤에 재능을 보이자 선생님은 클래식 발레를 정식으로 배울 것을 권유했다. 1967년 뉴욕으로 가 유명한 흑인 무용단인 ‘댄스 시어터 오브 할렘’ 단원이 되었고, 결국 수석 무용수까지 올랐다. 이후 시카고에서 댄스 스쿨을 차렸다. 그리고 90년 ‘브라이언트 발레 스쿨 앤 컴퍼니’를 설립했고, 97년 지금의 CMDC로 이름을 바꿨다. 
3일 서울숲에서 열린 '시티 포레스티벌'에서 브라이언트가 힙레를 선보이고 있다. 양광삼 기자 

3일 서울숲에서 열린 '시티 포레스티벌'에서 브라이언트가 힙레를 선보이고 있다. 양광삼 기자

CMDC는 여느 발레 스쿨과는 달랐다. 브라이언트 예술감독은 “90년대만 해도 흑인들은 백인들이 주로 가는 발레 스쿨에 입학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댄스 스쿨을 열고 흑인들을 차별 없이 받아줬다”고 말했다. 흑인 아이들에게 클래식 발레를 가르치는 동시에 흑인 특유의 유연성을 바탕으로 몸을 다양하게 움직이며 재미도 추구하게 했다. 그 과정에서 랩 발레를 하자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하이힐 신고 발레 하기도 
지금의 힙레가 자리 잡기 전에 발레 토슈즈 대신 하이힐을 신게 한 적도 있다. 또 탭 댄스 출 때 신는 신발을 발레 슈즈 밑창에 붙여보기도 했다. 브라이언트 예술감독은 “나는 항상 상자 밖에서 생각하는 사람"이라며 "평소 '한계를 넘는다'는 표현을 좋아하는데, 그렇게 해야 결과물을 이끌어 낼 수 있다”고 말했다.  
일주일 내내 엄격한 클래식 발레 수업을 하다가 딱 하루만 놀면서 추려고 만든 힙레가 세계적 히트를 쳤다. 김상선 기자

일주일 내내 엄격한 클래식 발레 수업을 하다가 딱 하루만 놀면서 추려고 만든 힙레가 세계적 히트를 쳤다. 김상선 기자

늘 색다른 것을 추구한지만 사실 그의 클래식 발레 수업은 엄격하기로 유명하다. 역설적으로 엄격하기에 자유분방한 힙레가 탄생할 수 있었다. 월요일에서 목요일까지는 엄격한 발레 수업을 한 뒤 금요일에만 학생들을 풀어주느라 춘 춤이 힙레이기 때문이다. 
 
노는 춤으로 세계를 강타 
힙레 무용수 라이온스는 “솔직히 지금 이렇게 유명해져서 그렇지 그 전에는 그저 ‘재미’로 시작한 춤"이라며 "금요일에 긴장 풀려고 우리끼리 ‘노는’ 춤이었는데 뜻밖의 결과가 나왔다”고 말했다. ‘그들끼리 노는 춤’은 인스타그램(이하 인스타) 덕분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춤이 되었다. 2016년 인스타에 올린 짧은 힙레 영상이 기폭제가 됐다. 브라이언트 예술감독의 인스타 팔로어는 당시 6000여 명에서 지금은 무려 11만2000명이 넘는다. 심지어 힙레 연습 영상은 7400만이 넘는 조회수를 기록했다. 
 
오바마 두 딸도 가르쳐
그 이후 수많은 러브콜이 쏟아져왔다. 팝스타 레이디 가가와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두 딸 샤샤와 말리아도 거기 포함되어 있다. 이들은 보그의 뉴욕 패션 위크 이벤트에 참석하고 메르세데스 벤츠와 광고 영상도 찍었다. 지난 미 대선 때는 미국판 보그 편집장 안나 윈투어가 주최한 힐러리 클린턴을 위한 기금 모금 행사에서 공연하기도 했다. TV 프로그램 출연은 기본이다. 굿모닝아메리카와 토크쇼 테드엑스에 출연해 미 전역에 이름을 알렸다.  
미국 TV 프로그램 '굿모닝아메리카'에 출연했을 당시 화면. [사진 힙레 발레리나 홈페이지] 

미국 TV 프로그램 '굿모닝아메리카'에 출연했을 당시 화면. [사진 힙레 발레리나 홈페이지]

사람들이 힙레에 이토록 열광하는 이유는 뭘까? 파커는 “당연히 ‘다름’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 "요즘 유행하는 음악에 춤을 춰 친숙하게 느낀다"며 "보통의 발레 음악에는 다들 너무나 지루해 한다”며 힙레 인기를 분석했다. 라이온스는 “물론 클래식 발레 그 자체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분명 있지만 '다른 무엇인가’를 원하는 사람도 있다"며 "우리가 그 ‘다른 무엇’이다”고 답했다. 브라이언트 예술감독은 “좋은 음악을 들으면 춤을 추는 게 당연한데, 힙레는 이런 움직임이 가진 본래의 에너지를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춤”이라고 했다.  
 
머리보다 몸으로 추는 춤 
올해 67세인 브라이언트 감독이 유난히 활력적으로 젊음을 유지하는 비결도 힙레다. 그는 “발레를 하면서 집중력과 섬세함을 배웠지만 늘 머리를 쓰면서 전략적으로 동작을 계산하는 것에 질릴 때도 있었다”며 “그래서인지 힙레를 처음 췄을 때 영감이 확 터질 수밖에 없었다”고 고백했다. 머리로 이것저것 재면서 집중할 필요가 없으니 몸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는 즐거움이 더 컸다는 얘기다.  
신나는 음악에 맞춰 몸을 자유롭게 움직이는 힙레는 '행복한 감정' 그 자체다. 김상선 기자

신나는 음악에 맞춰 몸을 자유롭게 움직이는 힙레는 '행복한 감정' 그 자체다. 김상선 기자

힙레 안무를 구성할 때도 딱히 원칙은 없다. 차를 타고 음악을 들으면서 가다가 아무 동작이든 해보고 힙레에 맞는 비트를 발견하면 바로 녹음을 하고 머릿속으로 동작을 그려본다. 파커는 “한번은 브라질 올림픽 얘기를 하다가 삼바를 발레하듯 까치발 들고 해보면 어떨까 라는 아이디어를 내기도 했다”며 웃었다. 다만 음악을 고를 때는 너무 저속한 가사의 음악은 배제한다. 아무래도 아직 어린 학생들이 많기 때문이다.  
현재 CMDC에서 힙레 발레리나를 꿈꾸는 소녀는 230여 명 정도 된다. 나이는 3~10세 정도로, 차세대 힙레 발레리나인 셈이다. 힙레가 유명해지자 많은 이들이 CMDC 문을 두드린다. 신나서 막 바로 힙레를 출 수 있을 것 같지만 이들을 기다리고 있는 건 엄격한 트레이닝이다. 발끝 포인트 동작을 백 번 천 번 연습한다. 2~3년 정도 완벽하게 연습한 뒤 동작을 배운다. 발끝으로 서는 것이 완벽하게 훈련된 사람만 출 수 있다.  
현재 공연을 할 수 있는 힙레 발레리나는 20여 명 정도다. [사진 르꼬끄 스포르티브]

현재 공연을 할 수 있는 힙레 발레리나는 20여 명 정도다. [사진 르꼬끄 스포르티브]

발레보다 어려운 춤?
힙레는 흑인만을 위한 춤은 아니다. 동양인도 있다. [사진 힙레 발레리나 홈페이지]

힙레는 흑인만을 위한 춤은 아니다. 동양인도 있다. [사진 힙레 발레리나 홈페이지]

어떻게 보면 발레보다 힙레가 더 어렵다. 발레의 기본 동작을 완벽하게 숙지한 상태에서 몸을 좀 다르게 적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라이온스는 “클래식 발레는 대부분 앞으로 숙이지만 힙레는 앞으로 숙이다가 도중에 뒤로 젖힌다”며 “처음 시작할 때는 발레 특유의 엄격한 동작에 익숙해져 있어 자유롭게 움직이기 어렵다”고 말했다. 파커도 “발레가 수직적인 동작이 많다면 힙레는 반대로 밑으로 향하는 동작이 많다”며 “발을 꼿꼿이 세운 채로 춤 동작의 무게와 압력을 견뎌야해 무게 중심을 컨트롤할 수 있는 능력도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언뜻 보기에도 상당한 근력은 물론 흑인 특유의 리듬감이 있어야 할 것 같다. 다른 인종에게는 무리가 아닐까. 하지만 브라이언트 예술감독은 “힙레가 모든 이들을 위한 춤은 아닐 지도 모른다”며 “하지만 클래식 발레는 이보다 더 하다”고 꼬집었다. 그는 또 “힙레의 기본은 다양성"이라며 "다양한 신체 조건을 가진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춤”이라고 했다. 
얼마전 시카고 과학 산업 박물관에서 열린 힙레 공연 포스터. 이 공연 역시 매진이었다. [사진 CMDC 홈페이지]

얼마전 시카고 과학 산업 박물관에서 열린 힙레 공연 포스터. 이 공연 역시 매진이었다. [사진 CMDC 홈페이지]

물론 전통 발레 쪽에서는 힙레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발목에 무리를 줄 수 있다느니 심지어 예술이 아니라는 말까지 한다. 브라이언트 예술감독은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조차 집에서는 인스타에서 힙레 동영상 보며 따라하고 있을 지 모른다”며 유쾌하게 웃었다.  
 
힙레에 손내미는 정통 발레 
최근 스위스의 한 발레단에서 힙레 강의를 요청하기도 했다. 발레를 배우는 이들뿐 아니라 아예 발레를 몰랐던 사람들에게도 힙레를 가르쳐주고 싶은 게 브라이언트 예술감독의 목표다. “지금 공연할 수 있는 힙레 발레리나가 20여 명 정도"라며 "이들과 함께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힙레 공연을 보여주고 관심을 갖는 이들에게는 동작을 맘껏 가르쳐주고 싶다”고 했다. 
유지연 기자 yoo.jiyo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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