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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로가 된 조선 국왕, 역사는 되풀이 되는가?

1894년 7월 23일 새벽. 총칼로 무장한 일본 군경이 경복궁을 에워쌌다. 광화문은 잠겨있었다. 군인들이 담을 뛰어넘고, 안에서 몇 발의 총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광화문이 스르르 열렸다.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일본군들이 궁 안으로 쏟아져 들어갔다.
 
고종은 잠들어 있었다. 군화로 침실로 뛰어든 일본 대장이 말한다.

밖에서 일본군과 조선군 사이의 소란이 있었습니다. 조선군은 모든 무기를 우리 일본군에 넘겼습니다. 이제부터 우리 일본군이 전하를 보호할 것입니다.

조선 역사 초유의 '경복궁 점령' 사건은 그렇게 끝났다. 궁궐을 지켜야 할 조선군은 제대로 반격 한 번 해보지 못했다. 고종은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한 나라의 왕이 자신의 궁에서 포로가 되는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류공다오에 전시된 아시아 전쟁의 원흉들. 이토 히로부미 사진(오른쪽 위)가 눈에 보인다. [사진 차이나랩]

류공다오에 전시된 아시아 전쟁의 원흉들. 이토 히로부미 사진(오른쪽 위)가 눈에 보인다. [사진 차이나랩]

사건 발생 이튿날이었던 7월 25일 오전. 영국 국적의 상선 코우싱호는 청(淸)군 1000여 명을 태우고 아산만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조선에 파병할 군사를 수송 중이었다. 코우싱호 앞에 일본 순양함 나니와(浪速)호가 나타났다. 선전포고도 없었다. 그냥 다가오더니 포탄을 쏟아부었다. 백인 승무원 80여 명을 제외한 1000명 이상의 청나라 군인들은 그대로 수장됐다. 며칠 후 일본은 성환 전투에서 손쉽게 승리하며 승기를 잡았다.  
 
청일전쟁은 그렇게 시작됐다.
 
이 땅 조선을 누가 지배할 것이냐를 놓고 벌어진 전쟁, 두 외세가 남의 나라에서 벌인 전쟁, 조선이라는 나라가 전쟁 전리품으로 전락한 전쟁, 그리고 수천 년 지속한 아시아의 판도를 바꾼 전쟁... 그렇기에 청일전쟁은 우리가 결코 잊을 수도 없고, 잊어서도 안되는 역사다.
 
산둥(山東)성 웨이하이(威海)취재 길, 시간을 쪼개 청일전쟁 박물관이 있는 류공다오(劉公島)를 방문한 이유다.
류공다오의 청일전쟁 기념관 입구. 중국은 청일전쟁을 '갑오(甲午)전쟁'이라 부른다. 전쟁이 발발한 1894년이 갑오년이었기에 붙혀진 이름이다. 남의 나라들 사이의 전쟁이니 우리는 그냥 '청일전쟁'이라고 했고, 중국은 자기 나라 일이니 '갑오전쟁'이라 했을 터다. [사진 차이나랩]

류공다오의 청일전쟁 기념관 입구. 중국은 청일전쟁을 '갑오(甲午)전쟁'이라 부른다. 전쟁이 발발한 1894년이 갑오년이었기에 붙혀진 이름이다. 남의 나라들 사이의 전쟁이니 우리는 그냥 '청일전쟁'이라고 했고, 중국은 자기 나라 일이니 '갑오전쟁'이라 했을 터다. [사진 차이나랩]

갑오전쟁 기념관이 있는 류공다오는 웨이하이에서 배로 약 15분 거리에 있다. 갑오전쟁의 주역들이 입구에서 관광객들을 맞는다. 서태후, 이홍장, 그리고 정여창...
 
서태후 얘기를 아니할 수 없다. 정원함은 원래 독일에서 만든 3000t급 정예 함선이었다. 아시아 최대였다. 일본의 배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컸다. 그런데도 일본에 무릎을 꿇어야 했다. 포탄이 없었기 때문이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당시 배에는 포탄 2발 밖에 없었단다. 아무리 큰 군함이라도 포탄이 없다면 종이호랑이에 불과하다.  
 
서태후의 탐욕 때문이다. 그는 함대 운영을 위해 이홍장이 숨겨둔 예산까지 찾아내 모두 자신의 정원인 '이화원'을 짓는데 사용한다. 군 자금을 빼돌려 사욕을 채운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권력자들의 탐욕과 부패는 나라를 망국에 이르게 한다.
전시관의 서태후 사진. 왼쪽 큰 사진이 이화원이다. [사진 차이나랩]

전시관의 서태후 사진. 왼쪽 큰 사진이 이화원이다. [사진 차이나랩]

전쟁은 청나라와 제국주의 일본이 했는데, 주 무대는 한반도였다. 1894년 7월 아산만에서 터진 후 평양, 압록강을 거쳐 대련으로 이어졌고, 결국 이듬해 1월 북양함대의 본산인 웨이하이에 정박해있던 주력함대가 궤멸되면서 전쟁은 끝났다.
전시관 바닥에 설치된 전쟁 흐름도 [사진 차이나랩]

전시관 바닥에 설치된 전쟁 흐름도 [사진 차이나랩]

전쟁은 많은 비극을 낳는다. 일본군이 대련을 침략했을 때 얘기다. 이웃 작은 마을 진저우(金州)에 살고 있던 취(曲)씨 가족은 들려오는 일제의 만행에 몸을 떨었다. '닥치는 대로 죽인다더라', '여자는 모두 끌고 가 겁탈한다더라'... 10명 가족 중 여성들은 일제 능욕을 피하기 위해 우물에 몸을 던진다. 그 장면이 밀랍으로 만들어져 전시되고 있었다.
취씨 가족의 비극 [사진 차이나랩]

취씨 가족의 비극 [사진 차이나랩]

전쟁의 막바지 포성이 일던 1895년 1월 12일 류공다오의 북양함대 본부. 정여창(丁汝昌) 제독은 푸른 눈의 영국인 군사 고문과 함께 있었다. 영국 고문이 말한다. 

끝입니다. 승패는 결정 났습니다. 우리가 졌습니다. 더 저항해봐야 죽음만 늘어날 뿐입니다. 항복해야 합니다.

정 제독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내가 죽은 후 항복 문서에 이 관인을 찍어 적장에게 넘겨주시오.

그게 마지막이었다. 정 제독은 호주머니에서 약 몇 알을 꺼내 입에 털어 넣었다. 독약이었다.
정여창 제독 전시관 [사진 차이나랩]

정여창 제독 전시관 [사진 차이나랩]

그렇게 전쟁은 끝났다. 이홍장은 시노모세키(下關)으로 가 항목 문서에 서명해야 했다. 시노모세키 조약. 그 조약의 제1조가 바로 '조선의 독립국을 인정하라'는 것이었다. "청나라는 이제 조선에서 손을 떼라, 조선은 내가 먹는다"라는 선언이었다.  
 
그렇게 대륙은 조선에서 멀어졌고, 일본의 침략이 본격화됐다. 이 전쟁이 남의 전쟁만은 아닌 이유다.
 
마지막 전시실. 의미심장한 영상 전시물이 눈에 들어온다. 거기에는 이렇게 쓰여있었다.

역사는 반복되는가....?

역사는 반복되는가? [사진 차이나랩]

역사는 반복되는가? [사진 차이나랩]

갑오전쟁 기념관은 중국인들에게 학습의 장이다. 그들은 일본의 우익 교과서 채택, 위안부 부정,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분쟁 등이 발생하면 이 전시관에 들어 항일의식을 마음에 되새긴다. 전시관을 보면서 "낙후된다면, 역사는 되풀이된다"라고 다짐할 터다.
 
어찌 중국인들만의 일이겠는가. '역사는 되풀이될 것인가?'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질문이다. 힘이 없기에 외세를 불러들여야 했고, 그 외세에 국토를 유린당해야 했다. 지식인이라는 사람들은 세상이 어찌 돌아가는 지도 모르고 주자학 틀에 갇혀 있었다. 전시장 그 영상물이 말하는 대로, 힘이 없다면, 낙후한다면 언제든지 역사는 되풀이된다.
 
사드, 북핵, 위안부, 일본의 재무장...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 환경은 우리에게 묻는다. '지금 당신은 나라는 외세를 뿌리칠 수 있을 만큼 힘이 있느냐?'고 말이다.
 
1894년 7월 23일 새벽. 그때 고종의 침전에 군화를 신고 들어온 군 책임자는 누구였던가?
 
이름은 오오시마 요시마사.  
아베 신조 현 일본 총리의 고조부다.
오오시마 요시마사. 아베 총리의 고조부다. [사진 차이나랩]

오오시마 요시마사. 아베 총리의 고조부다. [사진 차이나랩]

그러기에 우리는 다시 한 번 묻는다. "역사는 되풀이되는가?"라고 말이다.
 
웨이하이=차이나랩 한우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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